묘호 | 열조(烈祖)→인조(仁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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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음력 | 서력 1595년 12월 7일~서력 1649년 5월 8일 | ||||
양력 | 서력 1596년 1월 6일~서력 1649년 6월 17일 | |||||
재위기간 | 왕 | 음력 | 서력 1623년 3월 13일~서력 1649년 5월 8일 | |||
양력 | 서력 1623년 4월 12일~서력 1649년 6월 17일 | |||||
부모 | 어머니 | 인헌 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 | ||||
아버지 | 원종 공량왕(元宗恭良王) | |||||
배우자 |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 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 |||||
후임 왕 | 효종(孝宗) | |||||
시호 | 인조헌문열무명숙순효대왕 (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 | |||||
휘 | 종(倧) | |||||
생몰장소 | 탄생장소 | 황해도 해주 | ||||
사망장소 | 창덕궁(昌德宮) 대조전 동침(東寢) | |||||
자 | 화백(和伯) |
인조는 조선의 16번째 임금이다. 광해군을 인조반정으로 쫓아보내고 등극하였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이때 일어나고 결국 조선이 져서 1637년 2월 24일(양력) 인조가 직접 청태종 앞에 가서 3번 절하고 머리를 9번 조아렸다.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 또는 치욕.
개막장의 끝을 달리던 김경징[1]과 또 다른 개막장인 김자점이 병자호란의 패배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1646년 6월 17일, 김자점의 음모로 인하여 임경업이 사망하였다.
묘호[편집 | 원본 편집]
사실 인조의 첫 선정은 열조(烈祖)였는데 효종이 인조(仁祖)로 바꿔버렸다. 실제 통치자 중에서 이런 묘호를 받은 양반은 아마 이 양반이 유일할 거다. 참고로 인(仁)은 유교에서 가장 최상의 덕목으로 치는 것으로, 이딴 암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반어법으로 지어준 것일 수도. 조선 시대의 흔한 블랙 코미디
각주
조선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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