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홍

丁淳紅.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8년 12월 10일 전라남도 무안군 외읍면 성동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김순기(金順淇), 강지석 등 10여 명의 마을 유지들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여 태극기와 경고문을 미리 만들었다. 이후 3월 20일 새벽, 그는 "친일파의 반성·자숙과 민중들의 궐기를 촉구"라는 제목의 경고문을 무안읍내 요소요소에 붙이고, 동시에 수십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인근 남산에 올라가 조국의 독립을 경축하는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1시경에는 공립보통학교 앞에서 일본경찰의 시위방해를 받으면서도 주동자들은 조국독립 경축의 의의(意義)를 그들에게 설명했다.

이에 오후 2시경에 시위 군중이 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일본 경찰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헌병과 함께 출동했고, 목포에서 무안군수와 목포경찰서장이 급히 이곳으로 달려와서 한편으로는 무력으로, 한편으로는 지면있는 기관장(機關長)들을 내세워 설득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날 밤 10시경까지 시위군중과 함께 계속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한 뒤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1919년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2] 이후 서울로 이주해 조용히 지내다 1961년 7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정순홍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 공훈록[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