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정몽주(鄭夢周, 1338년 1월 13일~1392년 4월 26일)는 고려 말기의 문신, 성리학자, 정치가이다.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며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충숙왕 복귀 6년 12월 22일에 태어났으며 공양왕 4년 4월 4일에 사망했다. 본관은 연일로 부친은 정운관, 모친은 영천 이씨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이색의 문인으로 1360년 24살에 초시(初試), 복시(覆試), 전시(殿試)의 삼장(三場)을 장원으로 합격하고 성균관 생활을 거쳐 외교 업무에서 활약했다. 1364년 삼선, 삼개의 난 진압을 시작으로 이성계와 함께 여러 차례 종군하였다.

1367년 공민왕이 중건한 성균관에서 재직하였다. 《주자집주》 등의 경서를 막힘 없이 강론해, 이색으로부터 동박 이학의 조(東方理學之祖)로 평가받았다. 1372년 서장관으로 사행한 것을 시작으로 고려 말 대명, 대일본 외교에 기여했다.

위화도 회군 이후 공양왕 즉위 이전까지 이성계, 정도전 등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 했다.

1392년(공양왕 4년) 이방원의 사주를 받은 조영규 등에 의해 불의(不義)[1]선죽교에서 피살되어 서세(逝世)[2]했다.

사상과 업적[편집 | 원본 편집]

고려의 마지막 충신

외교[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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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편집 | 원본 편집]

조선의 정치 세력인 관학사림의 학맥은 모두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16세기에 이르러 사림이 정치 세력으로 역사에 등장한 이후에는 의리론을 따라 더욱 숭상되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동시대인의 평가로 성품이 호탕하고 시원하다는 언급이 많다. 훗날 정적이 되는 정도전과는 본래 가까운 친구이자 이색 문하의 동문이었다.

대중문화 속의 정몽주[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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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옳지 아니한 일. 사람의 도리에 벗어난 일.
  2. 덕망 있는 사람이 사망하였을 때 사용하는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