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푸르

자이푸르인도 북부 라자스탄 주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1727년 암베르(Amber; 흔히 Amer로도 표기한다) 왕국의 지배자 자이 싱 2세가 이 도시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자이푸르라 이름 지었다. 2011년 기준 자이푸르의 인구는 310만 명으로 인도에서 10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자이푸르는 도시 내 건축물들의 주된 색조 때문에 '핑크 시티(Pink City)'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자이푸르는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로부터 280km(174마일) 떨어져 있다. 자이푸르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로서 델리, 아그라와 함께 서인도의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관광 코스를 이루고 있다. 자이푸르는 또한 조드푸르, 자이살메르, 우다이푸르, 아부 산 등 라자스탄 주의 다른 관광지들로 연결되는 관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이푸르에는 두 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잔타르 만타르이며 다른 하나는 암베르 성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자이푸르 시는 암베르 왕국의 왕(Raja) 자이 싱 2세(Jai Singh II, 재위 1699~1743)가 1727년 건설했다. 암베르 왕국의 원래 수도는 자이푸르로부터 11km(7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베르 시였는데, 자이 싱 2세는 인구 증가와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를 암베르에서 자이푸르로 옮기고자 계획하게 된다. 자이 싱 2세는 건축 서적과 건축가들의 조언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자이푸르의 큰 틀을 잡았다. 비디아다르 바타차리아의 지도 하에, 자이푸르는 '바스투 샤스트라(Vastu shastra = "건축의 학문")'라 불리는 힌두 전통 건축 체계[1] 및 실파 샤스트라(Shilpa Shastra = "공예의 학문")[2][3]라 불리는 공예법에 따라 계획되었다.[4] 도시의 공사는 1726년 착공되었으며 주요 도로와 관청, 궁궐을 완공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도시는 9개 구역으로 구획되었으며, 그 중 두 구역은 관공서와 궁궐이 들어섰고, 나머지 7개 구역은 민간에 할당됐다. 거대한 성벽에는 7개의 무장된 성문이 달렸다.

문화 유산이 풍부한 인도의 도시들 가운데서도 자이푸르는 특출난 도시이다. 1727년에 건설된 이 도시의 이름은 건설의 총 책임자였던 마하라자(Maharaja = 대왕) 자이 싱 2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는데, 자이 싱 2세는 라지푸트(Rajput) 족 카츠와하(Kachwaha) 왕가의 일원이었으며 1699년부터 1743년까지 이 일대를 지배했다.

1876년 사와이 람 싱 1세는 나중에 에드워드 7세가 되는 당시 영국 황태자(Prince of Wales)를 환영하기 위해 자이푸르 시 전체를 분홍색으로 도장했다. 지금도 상당 수의 거리들이 분홍색으로 칠해진 채 남아 있어서, 자이푸르 시에 독특한 풍경을 부여하고 있어 이 도시의 별칭이 '핑크 시티'이기도 하다. 19세기에 도시는 급격히 성장하여 1900년도에는 16만 명의 인구를 자랑했다. 넓은 도로들이 포장되었으며, 1868년에 설립된 미술학교에 힘입어 금속과 대리석 공예가 주된 산업이 되었다. 당시 자이푸르 시에는 마하라자 람 싱 2세 치세에 설립된 산스크리트대학(1865년 설립)과 여자대학(1867년 설립)을 비롯해 3개의 대학이 있었다.

주요 관광지[편집 | 원본 편집]

하와 마할[편집 | 원본 편집]

하와 마할(Hawa Mahal, 직역하면 '바람의 궁전')은 인도 자이푸르에 위치한 궁궐이다. 하와 마할은 적색과 분홍색의 사암으로 건축되었다. 하와 마할은 자이푸르 시의 고궁 유적지인 '시티 팰리스(City Palace)'의 외곽에 위치해 있으며, 여성들의 거처였던 '제나나(zenana)'까지 이어진다.

하와 마할은 1799년에 사와이 프라탑 싱 왕이 건설했다. 사와이 프라탑 싱은 준주누(Jhunjhunu) 시에 위치한 독특한 건축물인 케트리 마할(Khetri Mahal)에 깊이 영감을 받아 하와 마할이라는 웅장하고 역사적인 궁궐을 건설했다. 하와 마할의 설계는 랄 찬드 우스타드가 맡았다. 하와 마할의 독특한 5층 규모의 외관은 '자로카스(jharokhas)'라 불리는 복잡한 격자세공으로 장식된 953개의 작은 창문들과 함께 벌통의 벌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격자 디자인의 원래 의도는 황실의 여인들이 궁궐 아래 거리의 일상과 축제의 풍경을 구경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밖에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게끔 해주려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황실의 여인들은 '푸르다(purdah)'라는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으므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로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와 마할의 건축적 특징은 또한 벤튜리 효과(Venturi effect)를 이용해 건물 내부로 시원한 공기가 통과하도록 해서, 여름의 고온 속에서도 궁궐 내부 전체가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 것에 있다. 흔히 사람들이 거리 쪽에서 촬영한 하와 마할의 사진을 보고 이것이 궁궐의 전면부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실은 이것은 건물의 후면이다.

암베르 성[편집 | 원본 편집]

암베르 성(Amber fort, 흔히 Amer fort)는 인도 라자스탄 주 암베르에 위치한 요새이다. 암베르(Amber, 흔히 Amer)는 라자스탄 주의 주도인 자이푸르로부터 11km(6.8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4평방킬로미터(1.5평방마일) 면적의 마을이다.[5]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는 이 성은 자이푸르를 찾는 관광객들의 주요 관광 코스이다.[6][7] 암베르 마을은 원래 미나스(Meenas) 족이 세운 마을인데, 나중에 암베르 왕국의 왕(Raja) 만 싱 1세(1550-1614)가 이 지역을 지배했다. 암베르 성은 그 예술적인 힌두식 건축 요소들로 유명하다. 암베르 성은 커다란 성벽과 줄지어 선 성문들 및 자갈 깔린 도로와 함께, 암베르 궁의 주 수원(水源)인 마오타 호수(Maota lake)를 굽어보고 있다.

적색 사암과 대리석으로 쌓아올린 호화로운 궁궐은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층마다 뜰이 있다. 궁궐은 왕이 외부 접견객을 맞이했던 '디완 이 암(Diwan-i-Aam)', 신하들과 함께 회의 등 업무를 수행한 공간인 '디완 이 카스(Diwan-i-Khas)', '쉬시 마할(Sheesh Mahal; "거울 궁전")' 또는 '자이 만디르(Jai Mandir)'라 불린 공간, 그리고 궁궐 내의 인공 폭포를 통과해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시원한 환경을 조성해 놓은 공간인 '수크 니와스(Sukh Niwa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암베르 성은 '암베르 궁(Amber Palace)'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암베르 궁은 라지푸트 왕가의 대왕(Maharajas)들 및 그 왕실의 거처였다. 암베르 성의 가네시 문(Ganesh Gate) 근처에 있는 암베르 궁의 정문에는 차이타냐 신앙에서 모시는 여신 '실라 데비(Shila Devi)'의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은 라자 만 싱이 1604년 벵갈 지역 제소르(Jessore)의 왕(Raja)을 격퇴한 것을 기념하여 건립된 것이다.

암베르 궁은 자이가르성(Jaigarh Fort)과 함께 아라발리(Aravalli) 구릉지의 '칠 카 틸라(Cheel ka Teela; "독수리 언덕") 바로 위에 위치해 있다. 암베르 궁과 자이가르 성은 지하 통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유적지로 간주된다. 이 지하 통로는 원래 전쟁 시에 황실 가족들을 비롯한 인원을 암베르 성에서 탈출시켜 보다 안저한 자이가르 성으로 대피시키기 위한 탈출로였다. 암베르 궁을 방문하는 방문객 수는 하루 5천 명으로 집계되며, 2007년 한 해 동안 1400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13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된 제37차 회의에서 암베르 성을 라자스탄 주의 다른 5개 성과 묶어 '라자스탄 구릉 요새'라는 이름의 세계유산으로 공표했다.

암베르(Amber)라는 이름은 아메르(Amer)라고 들리기도 하는데, 칠 카 틸라 언덕 위에 세워진 '암비케슈와르 신전(Ambikeshwar Temple)'에서 유래한 이름으로서 여기서 '암비케슈와르'란 이 지역 방언으로 시바 신을 말하는 이칭이다. 그러나 지역 전승에 따르면 암베르 성은 그 이름을 두르가 여신의 이칭인 '암바'에서 따왔다고 하기도 한다.

잔타르 만타르[편집 | 원본 편집]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는 일종의 적도식 해시계(equinoctial sundial = equatorial sundial)로, 그 거대한 삼각형 형태의 해시계 기둥(gnomon)은 대각선 방향이 지구 자전축과 일치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기둥(gnomon)의 맞은편은 적도면과 평행하게 놓인 사분원(4분의1원)으로 되어 있다. 이 해시계는 매일의 시간을 측정하도록 고안되었으며, 오차 범위 0.5초의 정확도를 자랑하며 태양을 비롯한 천체의 고도를 측정할 수도 있다.

인도 전역에는 5개의 잔타르 만타르가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로서 세계 최대의 석제 해시계를 비롯해 여러 천문 기구들을 특징으로 한다. 자이푸르 잔타르 만타르에 있는 해시계 '브리핫 삼랏 얀트라(Vrihat Samrat yahtra)'는 오차 범위 2초의 정확도로 시간을 표시할 수 있다.[8]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8세기 초 자이푸르 왕국의 대왕(Maharaja) 자이 싱 2세가 총 5개의 잔타르 만타르를 뉴델리, 자이푸르, 우자인, 만투라 및 바라나시에 건립했다. 이들 잔타르 만타르는 각기 1724년에서 1735년 사이 기간에 완공되었다.

잔타르 만타르들은 공통적으로 삼랏 얀트라(Samrat Yantra), 자이 프라카슈(Jai Prakash), 람 얀트라(Ram Yantra) 및 니야티 차크라(Niyati Chakra) 등의 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각각의 장비를 이용해 다양한 천문학적 계산이 가능하다. 이 천문대들의 주 목적은 천문표를 편찬하고 태양, 달, 행성들의 운동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라는 이름이 최초로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적어도 200년 전인 1803년도부터이다. 그러나 자이푸르 왕국의 문헌, 예컨대 1735년이나 1737~1738년도의 장부에서는 이 단어가 'Jantra'로 쓰이지 않고 있어, 구어에서는 '잔타르(Jantar)'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9] '잔트라(Jantra)'라는 단어는 '얀트라(yantra : 직역하면 "기계", "장치")에서 파생되었으며, 접미어 '만트라(Mantra)'는 '계산하다'를 의미하는 '만트라나(mantrana)'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잔타르 만타르(혹은 얀트라 만트라)'는 직역하면 '계산 장치'가 된다.

나하르가르 성[편집 | 원본 편집]

나하르가르성(Nahargarh Fort)은 아라발리 구릉지의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으며,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 시를 내려다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암베르 성 및 자이가르 성과 함께, 나하르가르는 한때 도시를 지키는 강력한 방어선으로 기능했다. 이 성의 원래 이름은 수다르샹가르였는데, '호랑이의 거처'라는 의미의 나하르가르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승에 따르면 여기서 '나하르(Nahar)'는 이 궁궐에 영혼이 속박되어 건축을 방해했던 '나하르 싱 보미아(Nahar Singh Bhomia)'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하르의 영혼은 성 안에 그를 기리는 사원이 세워짐에 따라 평안을 얻었고, 그에 따라 성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나하르가르 성은 주되게는 1734년에 자이푸르 왕국의 마하라자(Maharaja)[10]였던 사와이 마도 싱(Sawai Madho Singh)이 도시 산꼭대기에 피난처로서 건설했다. 이 일대 산지의 능선을 따라 성벽이 건설되어, 나하르가르 성과 자이가르 성을 연결함으로써 암베르 왕국의 옛 수도를 둘러싼 방어선을 구축했다. 비록 나하르가르 성이 건립된 이래 공격받은 적은 한 번도 없긴 하지만, 18세기에 자이푸르 왕국과 전쟁을 벌였던 마라타 동맹(마라타 제국)과의 조약 체결이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등[11] 몇몇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 되기는 했다. 1857년 세포이 항쟁 기간 동안, 자이푸르 왕국의 왕 사와이 람 싱은 영국인 거주자들의 아내들을 비롯한 이 일대의 유럽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나하르가르 성에 피난시켰다.

1944년까지 자이푸르 왕국 정부는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 천문대에 위치한 '삼랏 얀트라(Samrat Yantra)에서 해시계를 읽은 뒤 나하르가르 성에서 대포를 쏘는 방식으로 매시 정각을 알렸다.

나하르가르 성 입구 왼편에 위치한 '자이푸르 밀랍 박물관(Jaipur wax museum)'도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이 박물관은 2016년 12월 개장했으며, 35개 이상의 밀랍 및 실리콘 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각주

  1. Quack, Johannes (2012). Disenchanting India: Organized Rationalism and Criticism of Religion in India. Oxford University Press. p. 119. Retrieved 17 August 2015.
  2. Stella Kramrisch (1958), Traditions of the Indian Craftsman, The Journal of American Folklore, Vol. 71, No. 281, Traditional India: Structure and Change (Jul. - Sep., 1958), pp. 224-230
  3. Sinha, A. (1998), Design of Settlements in the Vaastu Shastras, Journal of Cultural Geography, 17(2), pp. 27-41
  4. "Jaipur - The Pink Cit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7 July 2011. Retrieved 5 July 2011.
  5. Outlook Publishing (1 December 2008). Outlook. Outlook Publishing. pp. 39–. Retrieved 18 April 2011.
  6. Mancini, Marc (1 February 2009). Selling Destinations: Geography for the Travel Professional. Cengage Learning. p. 539. ISBN 978-1-4283-2142-7. Retrieved 19 April 2011.
  7. Abram, David (15 December 2003). Rough guide to India. Rough Guides. p. 161. ISBN 978-1-84353-089-3. Retrieved 19 April 2011.
  8. pareek, Amit kumar pareek and Agam kumar. "Jantar Mantar Jaipur". amerjaipur.in. Retrieved 2016-01-01.
  9. Sharma, V‌irendra Nath (1995), Sawai Jai Singh and His Astronomy,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Pvt. Ltd., pp. 98–99, ISBN 81-208-1256-5
  10. '대왕'. 각 소국의 소영주(raja; 왕)들로부터 조공을 받고, 제국 황제인 샤(sha)에게 조공을 바치는 지방 대영주.
  11. Naravane, M. S. The Rajputs of Rajput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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