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

  • liberal theology

개요[편집 | 원본 편집]

19세기에 성행하였던 합리주의낭만주의 계몽주의,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신학의 사조를 의미한다. 통상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말하면 정통주의에 대한 안티테제적 성격이 강하며,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보는 경향을 가지며, 특정한 신조나 신앙고백을 절대시하지 않고 해당 시대의 상황에 따라 성서의 해석이나 가르침을 자유롭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 자유주의라는 이름도 이성과 경험에 기반한 이런 자유로운 해석을 한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참고로 자유주의 신학과 대척점에 있는 신학 사조가 바로 근본주의 신학인데[1]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자유주의 신학의 경우 신학도 여타 학문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논리적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고, 이들 도구를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는데 비해 근본주의 신학은 과학이나 논리적 검증 같은 것은 모두 세상의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이고 성서와 이를 해석하는 자신들의 신학은 영원불변한 신성불가침의 진리로 생각하고 과학을 성서에 끼워맞추는 행위 등을 서슴지 않고 행하거나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를 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특성[편집 | 원본 편집]

  • 비문자적 성서 해석 : 성서의 본문을 축자적 영감 교리나 문자주의적 해석을 따르지 않고 비유, 시, 은유 등에 대한 글의 차이와 실지 원어가 뜻하는 단어의 의미, 그리고 본문의 배경 등에 따른 내용 등을 합리적인 연구와 문서비평 등을 통하여 해석해낸다.
  • 이성과 계시의 조화
  • 구속(redeemed)/구원 에 대한 비법정적 해석
  • 좁은 길 이외의 구원의 가능성 :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 길 이외에도 다른 구원의 가능성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견지한다.
  • 관용 : 다양한 신앙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가진다. 다른 기독교 교파 이외에도 다른 종교에게까지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 때문게 근본주의자들이 위의 다른 구원의 가능성과 함께 묶어서 자유주의를 극딜하는 소스가 된다.
  • 근원적 책임이 아닌 근원적 죄
  •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 믿음과 행위의 연결의 필연성
  • 가르침의 최소화
  • 수용가능한 삶의 방식의 다양성

한국에서의 취급[편집 | 원본 편집]

한국의 주류 신학은 보수신학[2]이 주류이며 약간의 신정통주의적 사조가 뒤섞여 있는 정도이다. 통상 한국내의 보수 교단의 목사나 신학생들에게 자유주의 신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바로 "사탄 마귀"라는 답이 나오거나 무신론자 취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의심말고 믿기만 하라"는데 문자적으로 충실할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인식 범위 내에서 이해가 가능한 것에 충실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을 믿음없는 자들이나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자들로 인식하고 나노단위나 쿼크단위로 까기 바쁘다.

심지어 한국내의 의 경우 교수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신학생들이 교단에 "교수가 자유주의자"라고 찌르는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문제는 정작 교수가 가르친 내용은 단순한 역사비평이나 히브리서의 원 뜻, 성서의 사본학적 의미, 그리고 자유주의가 아닌 신정통주의 신학과 같은 내용이었다는 것. 실제로 한국의 교계에서는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 자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자유주의로 싸잡아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신학이라는 것을 학문의 갈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이 강한 한국 개신교 교계 분위기상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탄마귀 집단에 소속된 사람이거나 마귀의 앞잡이 그 자체가 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분명 학문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학술적 토론이나 대화 같은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고 그저 죽여 없애버려야 하는 상대[3]가 되는 것이다.

한계[편집 | 원본 편집]

아무래도 낭만주의나 계몽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다 보니 역사적으로 이들 사조가 무너져 버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자유주의 신학 역시 한계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세계대전을 겪기 전 까지는 인간의 이성이 능력이 세상을 낙관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세계대전에서 보여준 수많은 인명 희생과 여과없이 드러나게 된 인간의 야만성으로 인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그다지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을만한 것이 밝혀진 것이었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의 유행에 대한 반발로 미국에서는 근본주의[4]자들이 득세하게 되었고, 유럽에서는 신칼빈주의와 신정통주의 신학이 등장하면서 사실상 힘을 잃게 된다.

다만 원래의 자유주의 신학은 쇠퇴했지만, 이후 발달한 후기 자유주의 신학은 신정통주의와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미국 북부와 서유럽의 주류 신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들[편집 | 원본 편집]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순수한 의미의 자유주의 자체는 힘을 잃었지만 경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다음 신학 사조들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 해방신학
  • 민중신학
  • 여성신학
  • 환경신학
  • 퀴어신학
  • 복음주의 : 근본주의에 가까운 미국식 복음주의가 아니라 유럽쪽의 복음주의권을 의미한다. 이쪽에서 주로 사용하는 성서 연구 도구들은 사실 자유주의 신학에서 사용하던 역사비평이나 문서비평학이 그 원조가 된다. 한국에서는 신정통주의가 이쪽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각주

  1. 다만 '근본주의'란 단어가 정식으로 등장한 건 1920년대에 들어서이며, 보수신학 전반을 근본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2. 복음주의, 근본주의, 영미식 개혁주의, 화란식 신칼빈주의 등
  3. 사실 이 정도도 완곡하게 쓴 것이다. 보수주의 기독교 단체에 가면 분위기 자체가 급이 다르다
  4. 일명 미국식 복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