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 해전

Battle of the Java Sea (Battle of the Java Sea -> Battle of Sunda Strait -> Second Battle of the Java Sea)

1942년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3일에 걸쳐 진행된 일본군과 연합군간의 해전. 제1차 자바 해전(2월 27일)과 순다 해협 해전(2월 28일~3월 1일), 그리고 제2차 자바 해전(3월 1일)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다 개별항목으로 존재하지만 순다 해협 해전이나 제2차 자바 해전 모두 제1차 자바 해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기에 본 위키에서는 하나의 항목으로 통합한다.

FM대로 직역하자면 자바 해 해전. 이는 영문에서 battle이 육전과 해전, 공중전을 구분하지 않기에 생기는 문제로 Battle of Java라고 하면 이 전투 직후 벌어진 일본군의 자바 섬 침공전투를 뜻하기에 영문으로는 꼭 Battle of the Java Sea라고 표기해야 한다. 한국어로 표기할 때야 어차피 해전이라는 명칭이 붙으면서 굳이 자바 라고 일일이 써넣지 않아도 다 알아듣지만. 어쨌든 주 전장은 자바 섬 북쪽 일대의 자바 해이다.

일본측에서는 이중 1차 자바 해전을 한정하여 수라바야 해전으로 부른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당시 일본군은 남방작전을 진행하며 파죽지세로 동남아시아를 석권하는 중이었고, 2월 하순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를 공략하고 있어서 수마트라 섬, 발리 섬, 셀레베스 섬 등지로 진출하고 있었다. 이들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의 중심지는 현재의 인도네시아가 그러하듯 자바섬이었다. 바타비아(현재의 자카르타)에는 ABDA 연합군 사령부가 존재하여 동남아시아 방위전을 총괄하고 있었다.

숫자만 많고 장비와 훈련도, 심지어 충성도조차 떨어지는 식민지군을 믿을 수 없었던 연합군은 일본군이 상륙하기 전에 수송선단을 격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같은 이유에서 진행된 1월의 마카사르 해협 해전(일본측 발릭파판 해전)에서는 성공적으로 다수의 수송선을 격파했으나 이미 상륙이 진행된 후라 침공을 저지하는데 실패한 전례가 있었다. 불과 10여일 전에는 ABDA 연합함대가 발리 섬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가 패퇴하기도 했다.(연합국측 바둥 해협 해전/일본측 발리 섬 해전) 때문에 연합군으로서는 어떻게든 일본군이 상륙하기 전에 수송선단을 격파해야 했다.

반면, 지난 마카사르 해협 해전의 교훈으로 수송선단의 호위를 증강한 일본군은 분명히 튀어나올 연합군 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눈을 밝히는 중이었다. 일본군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요충지인 자바 섬 공략을 위해서 수송선단을 무사히 호송하는 것이 중요했고, 또 일본 해군으로서는 지난 발릭파판에서의 호위 실패로 육군에게 신나게 까인 것을 어떻게든 만회해야 했다.(...)

전력[편집 | 원본 편집]

연합국은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4개국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각 다음과 같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 미군 - 중순양함 1척(USS 휴스턴), 구축함 4척(USS 존D.포드, 존D.에드워드, 애런, 폴 존스)
  • 영국군 - 중순양함 1척(HMS 엑시터), 구축함 3척(HMS 일렉트라, 엔카운터, 쥬피터)
    • 호주군 - 경순양함 1척(HMAS 퍼스)
  • 네덜란드군 - 경순양함 2척(HNLMS 드 로이터[1], 자바), 구축함 2척(HNLMS 코르테니어, 비테 드 윗)

그 외에 항공전력은 매우 미약하여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으며, 이를 보충하기 위한 전투기셔틀 임무를 띠고 미국 항공모함(당시에는 이미 수상기모함으로 개조된 후) USS 랭글리와 구축함 2척(USS 휘플, 에드살)의 호위를 받으며 P-40 전투기 32기를 싣고 자바로 향하는 중이었다.

랭글리 및 그 호위함을 제외한 연합군 전력은 현지 사정에 밝은 네덜란드군이 지휘하기로 합의하여, 네덜란드군의 카렐 도르만 소장이 지휘를 맡았으나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지휘과정에서 통역들이 달라붙어야 하는 등 여러 혼선이 발생했다.

한편, 일본군 호위함대는 제3전대와 제4수뢰전대로 이루어졌다.

  • 제3전대 - 다카기 다케오 소장
    • 중순양함 2척(나치, 하구로), 경순양함 2척(나카, 진츄)
  • 제4수뢰전대 - 니시무라 쇼지 소장
    • 구축함 14척(유다치, 사미다레, 무라사메, 하루사메, 미네구모, 아사구모, 유키카제, 토키츠카제, 하츠카제, 아마츠카제, 야마카제, 카와카제, 사자나미, 우시오)[2]

전체적인 전력으로 보면 연합군이 구축함 수가 5척 적지만 중순양함은 동등하고, 경순양함은 1척 많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일본군은 항공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고 연합군은 그러지 못했으며, 단일지휘체제의 일본군에 비해 연합군은 다국적 혼성함대로 합동훈련 경험조차 없어 공동작전시 유기적인 전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또 세부적으로 보자면 일본군 함정은 모두 정비를 제대로 받고 나왔지만 연합군 함정 중 USS 휴스턴은 기존의 전투 과정에서 공습으로 주포 9문 중 3문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휴스턴은 개전 직전 최신식 레이더로 현대화 개수를 받은 상황이었기에 주포 3문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또 일본측 중순양함 2척이 모두 8인치 10문을 탑재한 데 비해, 엑시터는 6문, 휴스턴은 상술했듯 사용불가한 주포 포함 9문, 사용불가 주포를 빼면 6문 총합 12문으로 화력의 열세에 놓여 있었다.

전투과정[편집 | 원본 편집]

암울한 징조 : 랭글리 격침[편집 | 원본 편집]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연합군에게 암운이 드리워졌다. 2월 27일, 일본군 정찰기가 자바로 항해중인 랭글리를 발견한 것이다. 발리 섬을 막 점령한 상태였던 일본군은 즉시 최우선목표로 랭글리를 격침시키기로 결정했고 발리 섬에서 이륙한 1식 육상공격기들이 즉시 랭글리를 공격한 것이다.

발리 섬 점령이 이루어진지 얼마 안지나서 미처 함상공격용 폭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일본군의 공격은 모두 육상공격용 폭탄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랭글리는 더 이상 항공모함이 아닌 수상기모함이었고, 자바 섬 방위를 위해 무리하게 전투기를 가득 싣고 있어서 함재기를 출격시켜 대응할 수 없었다. 애당초 갑판에까지 P-40을 잔뜩 주기시켜 놓은 마당에...

결국 랭글리는 공격받은지 2시간여만에 전원 퇴함명령이 내려졌고, 호위구축함에 의한 어뢰공격을 마지막으로 자침한다. 랭글리의 격침은 어떻게든 자바 섬 방위력을 높이려던 연합군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일이었다. 물론 이후의 타임테이블을 보면 랭글리가 격침되지 않았더라도 제때 자바 섬에 전투기를 공급해주진 못했겠지만.

혼전속의 자멸 : 제1차 자바 해전[편집 | 원본 편집]

한편, 연합군 함대는 2월 25일부터 지속적으로 출항과 초계, 귀항을 반복하며 일본군 수송선단을 찾았으나 탐색에 실패했다. 이후 2월 27일 새벽, 초계항해에서 또 다시 일본군 함대를 찾지 못한 연합군 함대는 휴식과 정비를 위해 자바 섬 동단의 수라바야로 귀항하고자 했으나 같은 날 11시, 정찰기에 의한 일본군 함대 발견 보고를 받고 즉시 반전했다.

같은 날 17시, 수라바야 동북방 해역에서 조우하여 포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측은 모두 서로에게 유리한 진형을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후 일본군이 구축함을 통해 수뢰전을 시도했으나 연합군의 거센 포화에 일시 후퇴했고 뒤이어 접근에 성공하여 발사한 39발이 모두 빗나가거나 자폭 혹은 유실(...)되었다. 거기다 어뢰의 자폭을 기뢰 폭발로 착각한 일본군은 적 기뢰지대에 접촉했다고 오인하고 소극적으로 변모한다.

그러던 중 90여분의 전투 끝에 드디어 제대로 된 명중탄 하나가 발생했다. 18시 35분, 엑시터가 8인치 포탄에 기관부가 직격되어 속도가 급감했다. 이로 인해 사실상 전투력 발휘가 어려워지자 카렐 도르만 제독은 비테 드 윗의 호위하에 엑시터를 이탈시켜 수라바야로 입항하라 지시했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카렐 도르만 제독의 엑시터 이탈 지시는 어째서인지 다른 아군함에 전해지지 않았다. 언어 및 사용단어의 차이, 공동작전 경험의 전무 등에 따른 지휘체계의 혼선이 혼전의 와중에 참극을 가져온 것이다. 엑시터가 진로를 바꿔 수라바야로 향하자 휴스턴과 퍼스는 이를 함대 일제 변침 및 퇴각이라고 오해하고 항로를 급변경, 엑시터를 뒤따르기 시작했고 졸지에 기함 드 로이터가 혼자 함대 대열 선두에서 고립되는 위기에 처했다. 거기다 그 와중에 일본군의 어뢰 하나가 구축함 코르테니어를 직격, 격침시키면서 연합군의 혼란은 가중되었고 있지도 않은 일본군 잠수함에 대한 대응으로 대열이 흐트러졌다.

결국 카렐 도르만 제독은 전 함대 퇴각명령을 내렸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일본군이 맹추격하여 양측 구축함간에 치열한 포격전을 펼쳤다. 영국군 구축함 일렉트라는 분전 끝에 격침되었고, 일렉트라와 포화를 주고받은 일본군 아사구모도 대파되었다.

일렉트라의 분전으로 겨우 퇴각에 성공한 카렐 도르만 제독은 함대를 재정비한후 야간에 일본군 수송선단을 기습하기로 하고, 연료가 부족한 미군 구축함 4척을 수라바야로 보낸 뒤 잔여함정으로 자바 섬 북안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영국군 구축함 주피터가 침몰했다!

이는 네덜란드 육군이 해안지대에 설치한 기뢰에 접촉한 것(...)으로 육군과 서로 정보교환이 제대로 되지 않다보니 일어난 참극이었다.(...) 더군다나 주피터 침몰 직후 카렐 도르만 제독은 기뢰지대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관계로 주피터 침몰을 일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단정짓고 또 다시 회피기동에 함대이동 등으로 시간을 날렸다. 이후 아군 격침함의 승조원들 구조 임무를 위해 마지막 남은 구축함 엔카운터를 현장에 남기고 드 로이터, 휴스턴, 자바, 퍼스 4척만으로 일본군에 맞섰다.

2월 27일에서 28일로 넘어가는 시간대의 2차 교전은 일본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일본군은 함포전으로 연합군의 주의를 끌며 어뢰를 발사, 드 로이터와 자바를 단번에 격침시켰다. 일본 해군의 야간전 능력은 확실히 뛰어났고, 안그래도 전력이 부족한 연합군이 이를 극복해내긴 힘들었다.

기함 드 로이터의 격침으로 카렐 도르만 제독이 전사하여 지휘부가 붕괴하자 생존한 휴스턴과 퍼스는 필사적으로 전장을 이탈하여 바타비아로 귀환했다. 한편, 일본군은 드 로이터와 자바의 격침에 너무 신나한 나머지 잔여함정을 제대로 추격하지 못하는 병크를 저지른다.(...)

휴스턴과 퍼스, 끝까지 의무를 다하다 : 순다 해협 해전[편집 | 원본 편집]

휴스턴과 퍼스는 자바 섬 서쪽을 돌아 호주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인근에 있던 네덜란드군 구축함 HNLMS 에버스텐이 일본군의 맹공에 힘 한 번 못쓰고 격침당하는 걸 지켜보고 전속력으로 도망간 뒤 일본군을 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던 2월 28일 23시경, 이들은 자바 섬 서단에 상륙하려는 일본군 수송선단을 발견했다. 비록 자바 섬 방위가 실패로 끝난 상황이긴 하지만 침공을 조금이라도 지연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들은 특별한 명령 없이 수송선단을 향해 개돌을 감행했다. 그러나 야간이어서 시야가 제한적이었던 탓에 미처 일본군 호위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중순양함 미쿠마와 모가미를 필두로 한 호위함대가 개돌하는 휴스턴, 퍼스를 향해 맹렬한 포화를 퍼부었고 여기에 경순양함 나토리와 구축함 다수가 가세했다. 그 와중에도 휴스턴, 퍼스 두 함정은 전투의지를 잃지 않고 격렬히 저항했으나 먼저 퍼스가 3월 1일 1시 40분에 어뢰에 피격되어 격침되었고 1시 59분 휴스턴도 어뢰에 피격되어 기동불능에 빠졌으며 이후에도 악착같이 저항했으나 끝내 2시 6분에 격침되었다.

필사의 탈출 : 제2차 자바 해전[편집 | 원본 편집]

한편 2월 28일 오전, 일찌감치 전열에서 이탈한 영국군 중순양함 엑시터와 구축함 3척은 순다 해협을 통해 실론으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말레이 해전으로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를 잃은 영국군 입장에서 금쪽같은 중순양함 엑시터라도 어떻게든 살려야 일본군의 서진을 견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들은 3월 1일 순다 해협을 통과하고자 했으나

그러나 순다 해협에는 일본군이 바글바글했다.

제1차 자바 해전에 참가한 나치, 하구로 외에도 묘코와 아시가라가 가세 총 중순양함 4척이 엑시터와 호위함을 상대로 신나게 포탄을 퍼부었고, 연합군 함대는 전멸했다. 단 1척, 미군 구축함 포프가 악착같이 연막을 치며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포프마저 자바 섬 동쪽의 룸북 해협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칼리마탄 해협에서 남하 중이던 경항모 류조를 만난다. 류조에서 이륙한 함재기들이 포프 단 1척을 노리고 맹공을 퍼부었고 결국 13시 5분, 포프는 격침된다.

막간극 : 순다 해협 해전 외전(?)[편집 | 원본 편집]

한편, 순다 해협 해전 도중 일본군은 휴스턴과 퍼스를 격침시키기 위해 너도나도 앞으로 나서며 포탄과 어뢰를 퍼부었고, 그 결과 육군 수송선 사쿠라마루를 격침시키는 대전과를 올린다.~~훌륭하다 훌륭하다 일본군놈들~~ 직접 격침시킨건 사쿠라마루 1척뿐이었지만 어뢰 난사를 피해 도망치느냐 수송선 류조마루도 좌초했고, 상륙계획이 무지 꼬였으며 병원선 1척도 대파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16군 사령관 이마무라 히토시 중장이 탑승하고 있던 신슈마루도 피격되어 착저했고 이마무라 중장은 바다에 뛰어들어 표류하다 구조되었다.(...) 역시 일본 육군과 해군은 다른 나라 맞다.

그나마 일본 해군이 수송선단 호위에 상당한 전력을 할애해주어 결과론적으로 수송선단이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고, 이마무라 중장 본인도 인격자였던지라 까이거 연합군에게 공격당한 걸로 하자며 사죄하러 찾아온 해군 장교들을 용서하였고 남방작전도 대승으로 끝나가는지라 조용하게 묻힐 수 있었다.

결과[편집 | 원본 편집]

일본군의 완승이었다.

  • 2월 27일 : 네덜란드군 경순양함 드 로이터, 자바, 구축함 코르테니어, 영국군 구축함 일렉트라 격침 (제1차 자바 해전)
  • 2월 28일 : 미군 중순양함 휴스턴, 호주군 경순양함 퍼스, 네덜란드군 구축함 에버스텐 격침 (순다 해협 해전)
  • 3월 1일 : 영국군 중순양함 엑시터, 네덜란드군 구축함 비테 드 윗, 영국군 구축함 엔카운터 격침 (제2차 자바 해전)

이상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5척을 단 3일만에 잃었다. 더군다나 이는 해전 도중 입은 피해만이다. 해전 이전에 격침된 수상기모함 랭글리, 1차 자바 해전 중 아군 기뢰에 접촉, 침몰한 영국군 구축함 주피터, 2차 자바 해전에서 겨우 탈출하다 류조의 함재기에게 격침된 미군 구축함 포프, 3월 1일 퍼스 공습 후 귀환하던 나구모 주이치의 기동부대와 조우하여 재수없이 격침된 미군 급유함 페코스까지, 2월 27일~3월 1일 단 3일에 걸쳐 동인도제도, 나아가 인도양-서태평양 일대 연합군 해상전력이 사실상 소멸한 것이었다.

반면 일본군은 제1차 자바 해전 도중 영국 구축함 일렉트라와 함포전을 벌인 아사구모가 대파된 것이 유일한 피해였다. 아사구모는 대파 후 본국으로 귀환한 후 회생불가 판정을 받아 스크랩 처리되었다. 그 외에 순다 해협 도중 일본군이 격침시킨 쇼난마루 등 육군 수송함 다수(...)라던가, 하구로에서 일사병으로 사망한 2명(...)[3]이 피해 리스트에 추가된다.

이는 작게 보면 자바 섬 방위작전의 실패였고, 넓게 보면 일본의 완벽한 제해권 확보 성공이었다. 이때문에 영국은 지중해 전역의 소강을 틈타 귀중한 전함과 항공모함을 일부 차출하여 동양함대를 편성해야 했고[* 그마저도 실론 해전으로 털린다.(...)] 미군과 호주군도 호주 서부 및 북부 해안, 뉴기니에 걸친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해야 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진 연합군이나 이긴 연합군이나 여러 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한 전투였다. 특히 개전 초라 그런지 무기체계의 신뢰성 문제가 심각했는데 어뢰의 경우 양군 모두 심각한 결함이 있어서 제대로 폭발하거나 항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경우 어뢰가 강한 파도의 충격으로 신관이 맛가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미군의 개전 초 어뢰 수준은 악명높기로 소문나서...

이 해전에서 일본군의 묘코급이 보여준 포격 및 뇌격 명중률은 실로 한심하기 그지 없다. 어뢰를 총 188발 발사해서 명중 4발에 주포탄도 엄청나게 낭비했지만 명중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전투에서 전사한 네덜란드군 카렐 도르만 제독은 전후 네덜란드군의 프리깃에 네임쉽으로 명명된다.

각주

  1. 영란전쟁 당시 수차례 영국 해군을 격파한 네덜란드의 명제독이다.
  2. 이중, 우시오, 사자나미, 야마카제, 카와카제는 임시 배속이다.
  3. 격렬한 함포전 와중에 미친듯이 포탄을 나르다가 지쳐 죽었거나 혹은 사고사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