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년 4월 22일~1804년 2월 12일)는 프로이센의 철학자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칸트는 1724년 2월 12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이 도시는 동 프로이센의 수도였고 칸트 시대에는 동 프로이센의 행정 중심지로 남아있었다. 칸트의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 칸트(1683~1746)는 마구(馬具) 제작자였고, 어머니 안나 레지나 네에 르우터(1697~1737)는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다. 칸트의 가족은 루터교 내의 개혁운동인 경건주의의 신봉자들로, 영국의 감리교와 뉴잉글랜드의 위대한 자각운동과 같은 18세기 기독교 운동과 같이, 개인 신앙과 양심에 큰 강조를 두었다. 칸트는 8세에서 16세 사이의 Pietist Collegium Fredericum이라는 도시의 선도적인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이 학교에서는 경건주의 신학을 가르쳤으나, 그것은 또한 라틴어에서의 엄격한 훈련과 라틴 문학에 대한 철저한 토대를 제공했다. 칸트의 어머니는 그가 13살 때 병을 통해 친구를 간호한 후 사망했다. 칸트는 1738년 9월 16세의 나이로 쾨니히그베르크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칸트는 1746년에 일반적인 학위를 받지 못하고 대학을 떠났다.

1747년부터 1754년까지 가정교사 생활을 한 칸트는 1755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으로 다시 돌아온다. 사강사 칸트는 1770년 그의 나이 46세에 비로소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정교수로 초빙되게 된다. 그의 성실한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1781년 칸트는 나이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출판하였다. 1804년 그는 사망했다.

사상[편집 | 원본 편집]

그는 『순수이성비판』, 『형이상학서설』 등을 통하여 인식론에 기여하였으며, 『윤리형이상학 정초』, 『윤리형이상학』, 『실천이성비판』 등의 저서를 통하여 윤리학에도 기여하였다.

저서[편집 | 원본 편집]

  • 순수이성비판
  • 형이상학서설
  • 윤리형이상학 정초
  • 윤리형이상학
  • 실천이성비판

어록[편집 | 원본 편집]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 위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 《실천이성비판

외부 참조[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