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國楨.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4년 3월 25일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중화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3.1 운동 이후 간도로 망명하여 윤준희, 한상호, 최이붕 등과 함께 철혈 광복단(鐵血光復團)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1920년 북로군정서에 가담하여 특파원이 되어 동지들과 함께 간도 와룡동에 소재한 김하석(金河錫)의 집에서 군자금 모집 방책을 상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김하석이 조선은행 회령 지점에서 조선은행 용정출장소로 자주 송금을 하고 있으니 이를 빼앗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그는 동지들과 함께 이에 동의했다.
이후 조선은행 회령 지점원전홍섭으로부터 1920년 1월 4~5일에 조선은행이 15만원을 용정으로 송금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는 한상호, 최이붕과 함께 용정촌 쪽으로 2리 쯤 떨어진 화룡현 동양리 버드나무 숲에서 매복하여 송금하고 있던 일본 경찰 3명을 습격해 현금 15만원을 획득했다. 그 후 1920년 1월 9일 그 돈을 가지고 가서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들어가서 체코슬로바키아제 총기류를 다량 구입하여 북로군정서에 제공했다. 한편 그는 서성권(徐成權)을 회장으로 하는 간도청년단의 운동부장으로서 강백규, 이광(李光)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0년 12월 밀정 엄인섭[1]의 밀고로 인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상호, 윤준희와 함께 체포되었고, 청진형무소에 보내졌다. 이후 1920년 11월 4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21년 2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1921년 4월 4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면서 사형이 확정되었다.[2]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임국정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66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15만원 탈취사건 - 세계한민족문화대전
- 임국정 - 세계한민족문화대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독립유공자 공훈록
각주
- ↑ 일제 정보기록에는 단지 '우리 밀정'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엄인섭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황상으로 볼때 북로군정서 사령관 김좌진의 비서 노릇을 하고 있던 그가 밀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