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寅正.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59년 6월 19일 충청남도 서산군(현 당진시) 대호지면 사성리에서 이택연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광평대군의 16세손이다. 1894년 내부 과시에 합격하고 17897년부터 1912년까지 자인 현감(군수)을 역임한 후 귀향했다. 1914년 3월 초대 대호지면장에 임명되었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사무소 사환 송재만 등이 이인정의 직인을 사용해 도로보수 부역이란 명목으로 주민들을 불러모았다. 이인정은 400~500명의 면민 앞에서 "여러분은 도로수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모인 것이오. 각자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의시장으로 행진하시오."라고 연설하였다. 이후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송재만 등이 마련한 태극기와 애국가를 군중에게 배포했다.
이날 정오경, 이인정은 주민을 이끌고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고 기물을 파괴한 뒤 일본인 집을 습격하여 엽총, 권총, 탄환 등을 획득했다. 이후 귀가하던 중 송재만 등이 확보한 총기와 탄약, 일경의 칼을 숨기라고 지시했다. 이에 송재만은 대호지면의 북쪽 끝자락에 있능 적서리 덤불 숲속에 숨겼다.
이 일로 체포된 이인정은 대호지면장 직임을 해직당했고, 1919년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상고했으나 1920년 2월 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2] 출옥 후 서산군에서 여생을 보내다 1934년 5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이인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