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사람의 모습으로 감춰진 이완용의 젊은 시절.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은 대한제국 시기 총리대신이자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는데 앞장서 경술국치라는 한민족 최대의 흑역사를 만들어낸 매국노이자 간신배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경기도 광주군에서 가난한 선비 이호석(李鎬奭)의 아들로 태어난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은 어려서 먼 친척뻘인 이호준(李鎬俊, 1821~1901)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이호준은 당시 예방승지(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의전비서관)였다. 이완용이 당대의 세도가 집안으로 입양된 것은 어린 시절 그가 신동으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참고로 이완용은 6세 때 천자문과 동몽선습, 7세 때 효경, 8세 때 소학을 뗐다고 한다).관련 기사

임관[편집 | 원본 편집]

1882년 임오년, 25세의 이완용은 증광문과(增廣文科) 별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처음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증광시(增廣試)'는 새 임금의 즉위 등 왕실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실시한 과거시험을 말하는데, 그 해의 증광시는 '임오군란'을 진압한 것에 대한 기념의 의미로서 실시한 것이었다.


총리대신으로서의 활동[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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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병합 조약에서의 역할[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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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활동[편집 | 원본 편집]

사생활[편집 | 원본 편집]

  • 이완용의 양부 이호준은 당대의 명필 이용희(李容熙)를 초빙해 이완용에게 한학과 서예를 익히게 했다. 평소 이완용은 내성적인 성격에 글읽기와 시문 쓰기를 즐겼으며, 술도 즐기지 않고 여자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청년 시절 그는 유교의 근본인 충효사상에 입각한 조선 선비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언론인 출신 운덕한이 펴낸 <이완용 평전>은 기록하고 있다. 인용 기사 및 상세 내용
  • 문헌에 의하면 이완용의 장남인 이승구는 당대의 절세 미인이었던 부인 임걸귀와 아버지 이완용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자살했다고 한다. 이승구는 이완용의 호적에서도 제외됐던 불행한 인물이다.관련 기사

사망[편집 | 원본 편집]

이완용은 1926년 2월 11일 서울 옥인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평가[편집 | 원본 편집]

한일병합 후, 한동안 옛 조선의 민초들은 화장실을 '이박식당'[1]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대소변= 이완용과 이등 박문이 먹는 음식' 으로 돌려서 극딜을 시전한 것이다.

  • 다만, 이완용이 생각했던 조국은 조선 왕실이며 이완용은 왕실의 존속을 위하여 노력한 것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완용은 이 왕가에 대해 훨씬 박한 대우를 하려는 식민당국에 맞서 그 후손들의 지위와 생활수준을 지키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조선왕조의 후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관련 및 출처 기사(기사의 내용을 보면 역사학자 김윤희의 '이완용 평전'을 인용한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의 주류적인 해석으로는,조선 왕조의 지지를 업고 나라를 팔아먹기 위한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해석되고 있다.
  • 위의 머리 좋다는 것과 연관지어서 보면 머리좋고 본인만 좋자고 행동하는 인성의 사람이 어떤 급의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한 반면교사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머리좋은 천재나 영재라고 하여서 그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착각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는 소리이다. 오히려 이런 영재나 천재가 개차반의 인성이나 자기 자신만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종류라면 그건 그야말로 핵폐기물급 재앙이나 다름이 없을 수 있다.
  • 조선 왕실은 이완용이 머리가 비상하고 국제 정세에 대해 잘 파악해서 중히 기용은 했지만 나라까지 팔아 먹는 짓을 할것은 예상치 못했다. 여기서 배워야 할점은 아무리 능력이 좋은사람 이래도 인성이 안되면 절대로 중요한 일을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나라 팔린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관련 문서[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이등 '박'문)의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