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

정의[편집 | 원본 편집]

이신칭의(以信稱義)란, 믿음으로서 옳다고 칭함을 일컫는다.

기독교교리 중 하나다. 주로 로마서사도 바울의 서간에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주제다. 간단히 요약하여 말하자면

선한 행동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기 때문에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라는 것. 물론 이 구원과 선한 행동 모두 믿음에서 온다고 여겨진다.

사실 신학적인 문제는 이보다 복잡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 개신교와 가톨릭(혹은 무신론자들)이 서로 오해하는 부분이라는 것.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사건이다.

각자의 입장[편집 | 원본 편집]

근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 개신교나 가톨릭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 없이는 구원도 없는 것이 맞고, 신앙이 있다고 악행을 마구 저질러도 구원받는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당장 양측 모두에서 인정하는 신약 중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 듣기만 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비판한다.

개신교[편집 | 원본 편집]

개신교는 가톨릭을 행위구원론자라고 비판한다. 주로 연옥과 엮어서 비판하는데, 엄밀히 말해 "신앙이 없어도 선한 행동을 하면 구원받는다."라는 것은 가톨릭의 교리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 가톨릭 교인들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애초에 모든 선함이 곧 신에게서 나오므로,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곧 "양심=신을 닮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표현되지 않았을 뿐 신에 대한 신앙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선행과 신앙이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이다.

굳이 연옥 교리를 들먹일 필요가 없는 게, 연옥교리는 교도권으로 명해진 교리가 아니고 신학의 한 설일 뿐이기 때문에 믿어도 안 믿어도 되는, 어디까지나 권고되는 사항일 뿐이다. 당연히 이신칭의나 구원론 같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끼워넣어 해석할 필요가 없다.

가톨릭[편집 | 원본 편집]

가톨릭은 개신교를 신앙과 선행을 분리하여 신의 이름에 먹칠한다고 비판한다.

이신칭의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진짜 이렇게 되기도 한다.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신앙이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

문제는 일부에서 정말로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택도 없는 소리로, 선한 행동=율법에 얽메이지 말라는 말이지 진짜 악행을 저질러도 신앙만 있으면 천국 하이패스라는 소리가 아니다!

당장 예수부터도 마태복음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더라도 그때(종말)가 오면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며 똑바로 살라고 경고하고 있다.그냥 착하게 살면 된다.

무신론[편집 | 원본 편집]

무신론자는 주로 개신교를 비판하는 목적으로 언급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신칭의를 휘둘러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잘못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을 비판하는 것인데, "믿기만 하면 선행을 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 또는 "회개만 하면 된다."라며 비도덕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한국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데, 목사들이 교세 확장을 위하여 신학의 여러 가지 관점을 부분부분 가져와 자기편의적으로 왜곡하여 신자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내가 뭘 하든 나는 구원받는다.'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행동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의 비판도 크게 둘로 나뉘는데, 기독교 교리를 잘 모르는 경우에는 "믿기만 하면 악행을 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너네 종교 이상하다."라는 형태로, 어느 정도 이상 아는 경우에는 "너 이단이다. 다른 사람한테 전도하기 전에 너네 교리나 제대로 배워라."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기독교(특히 본인이 소속된 개신교)에서 기부금도 많이 내고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라는 역반박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행이란게 단순히 돈 많이 쓰고 (전도를 전제로 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