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李始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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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부통령에 취임할 당시 연설하는 이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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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다른이름 | 성재(省齋), 시림산인(始林山人) |
출생 |
1869년 12월 3일 조선 한성부 남부 훈도방 저전동계 |
사망 |
1953년 4월 17일 (85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 |
직업 | 독립운동가, 정치인 |
활동기간 | 1885년 - 1953년 |
이시영(李始榮)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885년 사마시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한 이후 형조좌랑, 서연관, 우승지, 참의내무부사, 궁내부 수석참의 등 여러 관직을 거치다 1896년 장인인 김홍집이 살해되자 사직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형제·친척 50여 명과 함께 오늘날 중국 지린성 퉁화시 류허현으로 이주하여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1919년 3·1 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단독 정부 수립에 찬성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부통령을 맡았다. 6·25 전쟁 도중 일어난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이승만 정부에 크게 실망하여 사임하고 1952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