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용 (1898년)

李石用. 이명은 이성규(李聖奎).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8년 2월 18일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조일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통영에서 나전직공(螺鈿職工)으로 근무하다가 1921년 음력 4월 10일 통영면 심상고등소학교 뒤편의 송산에서 김형기(金炯綺)·장근숙(張根淑)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했다. 4월 20일, 김형기가 작성한 선언서와 장근숙이 작성한 선언문 두 장을 받아 탄산지(炭酸紙)를 이용하여 약 30매의 복제품을 만들었다. 김형기가 작성한 선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동포 형제는 상해, 간도 또는 철창 아래서 고통을 당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대한민국 3년 음력 4월 말일 안에 자유를 찾자는 소식이 있으니 우리를 도와 음력 4월 22일에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장근숙이 작성한 선언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민족의 경우는 여우같은 놈들의 포로이다. 포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활발하게 나아가 독립의 소망을 이루어야만 한다. 대한독립 승인은 민국 3년 음력 4월에는 확정될 것이니, 상해, 간도 또는 철창안의 동포를 기쁘게 하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음력 4월 22일 독립만세를 부르자.

세 사람은 30매의 복제품을 통영면에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1922년 1월 24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1] 이후 통영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4년 4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이석용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