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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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根周. 자는 문약(文若), 호는 청광(淸狂).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60년 2월 3일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서 부친 이현복(李玄福)과 모친 파평 윤씨 윤휘진(尹徽鎭)의 딸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말수는 적었으나 부지런했고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었으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1884년 25세 때 부친상을 당하자 묘지 옆에 묘사(墓舍)를 지으려 했지만 모친이 저지하자 중지하기도 했다. 그는 몸이 약해서 병을 자주 앓았지만 나일을 항상 걱정했다고 한다. 그는 풍양 조씨 조병삼(趙秉參)의 딸과 혼인하여 두 아들 이동로(李東魯), 이봉로(李鳳魯)를 낳았다.

그는 22세 때인 1881년에 공주의 마곡사 위에 있는 부용암에서, 다음 해는 덕산사에서 공부했다. 1884년에는 결성의 고산사에 들어가 독학했다. 그러던 1895년 을미사변단발령이 잇달아 발발하자, 그는 이에 통분을 느껴 1896년 1월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복한에게 호응해 홍주부 관찰사 이승우에게 거병을 권했다. 그러나 이근주가 면천에 있는 백형의 집에 머물던 모친을 뵈러 간 사이, 김복한 등 주도자 23명은 이승우에게 체포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모친에게 말했다.

의리는 의거(義擧)에 있는바, 이 대사는 하나는 국모의 원수를 갚고, 둘은 단발의 수치를 갚는 것입니다.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의리상 홀로 도피할 수 없으니 자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모와 형이 “네가 의로서 더불어 나가 죽는 것은 마땅하나 다른 날 다시 도모함만 못하다”라고 말려서 결국 자수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 수사 조의현(趙儀顯) 등이 청양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그 역시 의병을 일으키지 못하자 통분을 느꼈고, 이때부터 천식과 다리가 마비되는 병에 시달렸다. 그는 자택에 은거하면서 「을미록(乙未錄)」, 「절의가(節義歌)」, 「화심주가(和心舟歌」, 「신년탄사(新年歎辭)」, 「태일자문답약초(泰一子問答略抄)」, 「사자구(四字句」, 그리고 민영환이설에 대한 애도시 등을 지으며 일제의 침략을 성토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이 선포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는 자결을 결심했다. 1910년 9월 백형 이근하(李根夏)의 환갑 잔치가 끝난 뒤 중형(仲兄) 이근상에게 말했다.

삼천리 강토가 원수 오랑캐의 땅이 되고 5백년 예의의 나라가 변하여 오랑캐 나라가 되었으며, 한 나라의 임금이 갑자기 이적의 신민이 되었습니다. 절조가 있는 선비로서 어찌 편안히 배부르고 따뜻함을 얻겠습니까. 이는 개와 돼지와 같은 것이고, 또한 매국한 무리들과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삶을 훔치겠습니까.

이에 이근상이 일개 선비로서 죽는다면 누가 알아주겠냐며 말렸다. 그러자 이근주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옛날 노중련은 곧 제나라 동쪽에 사는 하나의 포의(布衣)인데, 진(秦)이 예의를 버리고 염치의 나라를 버린다면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 부끄럽다. ‘만약 중련을 진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동해에 나가 죽을 뿐이다.’고 하였으니, 내가 비록 포의이나 대대로 녹을 받은 집안과 시(詩)와 예(禮)를 아는 가문에서 태어나서 추운 절에서 다년간 괴로움을 겪으면서 공부를 하여 약간의 춘추(春秋)의 의리를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뜻으로 앞으로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나가서는 국모(國母)의 원수를 갚고 군부(君父)의 치욕을 설치(雪恥)하지 못하였고, 물러나서는 집에서 수신(修身)하지 못하고 입신(立身)하여 뜻을 이룰 곳이 없으니, 이는 바로 뜻이 있는 선비가 인(仁)을 이루는 때입니다. 자고로 절개를 세우는 자는 그 죽어야 하는 의리를 잡으면 나가서 죽을 뿐입니다. 어찌 이름을 당시에 구하고 내세에 복을 구한 뒤에 죽겠습니까!

그 후 그는 1910년 9월 23일 부모 묘에 제사를 지낸 뒤 자결했다. 그는 죽기 전 나무에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고, 사학을 배척하고 정학을 지킨다”는 ‘존화양이 척사부정’(尊華攘夷 斥邪扶正)이라는 8자를 써 놓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이근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