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반티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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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반티에우(Nguyễn Văn Thiệu/阮文紹/완문소, 1923년 4월 5일~2001년 9월 29일)는 베트남 공화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한국에서는 구엔 반 티유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원래는 베트남 독립 전쟁에 참가하다가 변절하여 프랑스군에 가담한 민족 반역자이지만 베트남 공화국 건국 이후 군 장성으로 있다가 응오딘지엠 내각의 붕괴 이후 내전을 종식시키고 국가영도위반 주석직을 거쳐 베트남 공화국 제2대 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3년 4월 5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닌투언 성에서 태어났다. 후에에 있는 천주교 학교를 다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일본 제국의 전쟁 발발 후 월맹에 가담한 뒤 베트남 독립 전쟁에 참가해서 두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1949년에 변절하여 프랑스군에 입대해서 월맹과의 전쟁에 앞장서는 매국 행위를 저지른다. 그럼에도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되지만 미국의 개입 때문에 남북으로 분단되는 상황을 맞았고 티에우 본인은 새로이 건국된 베트남 공화국에서 군사 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며 베트남 공화국 초대 총통 응오딘지엠의 신뢰를 얻는다.

그러다가 응오가 독재 논란으로 민심을 잃자, 1963년 친구이자 같은 민족 반역자 응우옌까오끼와 함께 군사 쿠데타에 가담 후 소장의 지위까지 올랐다. 응오는 총통직에서 쫓겨난 후 살해당하고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베트남 공화국은 각 지방 군벌들의 내전으로 혼란에 휩싸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티에우 본인은 중장을 거쳐 판후이꾸엇 수상의 내각에서 국방총장으로 임명됐다가 군부가 꾸엇 수상을 실각시키고 국가영도위반이라는 임시 지도 기관을 창설한 후 그곳의 주석으로 추대됐다.

이후 형식적인 총통 선거를 열고 직접 후보로 나가 베트남 공화국 제2대 총통으로 당선되고 자신의 동지인 끼를 수상으로 임명한 후 반공을 명분으로 군사 독재 정치를 펼친다. 군벌들의 난립을 잠깐이나마 종식시키고 베트남 전쟁을 지휘하며 베트남의 통일을 이룩하려 했지만 끼 수상과의 반목 및 각종 부패 문제, 본인의 무능함이 겹쳐 패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총통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낸다.

평가[편집 | 원본 편집]

쿠데타를 거쳐 임시 지도 기관의 수장을 거쳐 한 나라의 국가원수까지 해먹은 매국노라는 점 때문에 대한민국박정희 대통령과 비견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티에우와 박정희는 친분이 두터운 관계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