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청

柳淵靑. 자는 춘호(春浩) 또는 춘일(春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69년 6월 29일 전라도 고산현 서면 내월리(현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치복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義士)'라고 하는데, 여기에 가담한 이들은 그와 유치복을 비롯하여 유현석(柳炫錫), 유영석, 유준석(柳俊錫), 유태석(柳泰錫), 유명석(柳命錫), 유연봉(柳淵奉), 유연풍(柳淵豊)이다.

유연청은 친족 8명과 뜻을 모아 의병 활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기로 하였다. 그는 1906년 10월과 1907년 5월에 두 차례에 걸쳐 이봉승(李奉承)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1907년 10월 유현석(柳炫錫) 등 7명과 더불어 익산군 여산면(礪山面) 원수리(源水里) 노상에서, 1907년 10월에는 한흥수(韓興洙)의 집에서 모금하였다.

그 후 일제가 남한 대토벌 작전을 벌이자, 유연청 등은 의진을 해산하고 은신했다. 그러나 1916년에 일본 경찰에 탐지되어 유연청 등 '유문구의사'가 모두 체포되었다. 1910년 한일병합 당시에 의병 활동에 대한 대사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이들을 처벌할 수 없게 되자, 일본 경찰은 솔티재에서 행인의 돈을 강탈하였다는 죄를 날조하여 10~15년에 이르는 중형을 언도하였다.

유연청은 12년형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에 복역하였으며, 출소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8년 7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유연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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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