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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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대한민국정치인이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이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 희귀하게도 병사로 만기전역하였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며 美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KDI 선임연구원을 거쳐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정치 입문 이후[편집 | 원본 편집]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계에 몸담았다. 이후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3정조위원장을 거쳐 2005년에는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비서실장을 맡았다. 또한 2007년 박근혜 선거캠프에서 활동하였다. 2015년엔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냈지만, 2016년 총선에선 공천 탈락되어 당을 탈당해 당선되었다.

사상 초유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는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준비했었고, 이어 2017년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바른정당의 마지막 대표를 지낸 뒤에는 2018년, 국민의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만들어 초대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에는 6.13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자숙의 의미로 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 현재, 차기 대통령 선거 주자들 중 야당에선 가장 가능성이 높다.[1]

2015년 원내대표로 등장[편집 | 원본 편집]

2015년 초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당선을 계기로 유승민이라는 존재를 전국적으로 알리게되었다. 이후 유승민은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2]

이 연설을 통해 유승민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였고, 청와대의 지침을 받지 않을 것이며, 특히 원내대표로서 표단속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이는 친박계의 불안감을 키웠고, 그의 행보는 점차 청와대와 친박계의 불만을 야기하였다. 이는 2015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개정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하면서, 유승민 의원을 향해 원내대표직 사퇴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였다. 초반에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할 필요가 있는가 의견이었다. 유승민도 즉각적으로 청와대에 사죄를 표하는 등 사태가 진정되어가는듯 보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후 고위관계자의 말을 통해 유승민이 거부권의 대상이라고 후속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에 친박계는 유승민 의원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갔다. 그러면서 새누리당 내에서 본격적인 친박계와 비박계 간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 분쟁의 최고조는 김태호 최고위원의 발언이었다.[3]

친박계는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자진사퇴를 권유했고, 상황이 좋게 돌아가지 않자 김무성도 유승민에게 자진사퇴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유승민의 거취문제를 논의하도록 하였다. 7월 8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유승민의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여졌고, 이에 유승민은 그 의견에 따라 원내대표직을 사직하였다.

유승민의 원내대표 사퇴로 인해 새누리당은 친박계와 비박계 간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유승민은 원내대표 사퇴기자회견으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대선후보로 등극하였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유승민은 여권의 김무성 대표를 앞지르는 결과가 나왔다.

이회창의 재현?[편집 | 원본 편집]

모 정치평론가는 유승민이 끝까지 사퇴하지 않은 이유는 이회창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회창이 큰 인기를 얻은 것이 김영삼과 부딪치면서였다는 점에 착안해 유승민도 이번기회에 박근혜와 부딪치면서 박근혜와는 다른 인물임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이회창이 김영삼을 들이받았다는 점이 역효과였다는 점에 자신은 들이받지 않고 박근혜 또는 친박계가 직접 자신의 목을 치기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해서 유승민의 지명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로써 그의 정치적 입지는 축소되었다. 특히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의 경우 박근혜의 입김이 강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거의 정치적 상황이 최악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실제로도 이회창 전 총재가 유승민 의원을 정치판으로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승민 의원이 대선 후보로 출마 선언할 때 이회창 전 총재 역시 탈당하여 유승민 의원을 지원했다.

2016년 공천 갈등 그리고 무소속 출마[편집 | 원본 편집]

20대 총선에서 후보등록 마감시간 직전까지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불출마 압박 내지는 탈당 압박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한때 아예 무소속으로 출마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4] 결국 2016년 3월 23일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유 의원은 사퇴선언문을 통해 그간 새누리당이 보여준 모습은 정의와 민주주의, 상식과 원칙도 아니며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보복이라며 비판했다. [5]

무소속 당선 그리고...[편집 | 원본 편집]

  • 새누리당이 공천을 하지 않은 가운데 무소속으로 당선, 다시 복당하였다.
  • 이 과정에서 미모의 딸로 화제가 되었다.
  • 이후 다시 탈당하여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대선 후보로 출마 선언했다.
  • 바른정당 탈당 사태때 잔류파로 남아서 바른미래당 창당에 참여했다.

각주

  1. 국회의원이 뽑은 차세대 리더감에서도 1위를 했을 정도니..
  2. 유 의원은 이 연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습니다.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그분의 통찰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라며 보수정당 출신 의원 중엔 이례적으로 칭찬하였다.
  3. [1]
  4. 후보 등록 마감 코앞…유승민 무소속 출마 길도 막나, JTBC, 2016.03.21.
  5. 유승민, 탈당·무소속 출마 선언…"시대착오적 정치 보복", JTBC, 201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