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규 (1884년)

柳尙奎.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4년 2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 화원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초 기독교도 김복현(金福鉉), 유학생 최정두(崔正斗)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광주에서 벌이기로 계획하고, 3월 10일 천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에 일제는 일경은 물로 기마헌병을 동원하면서 총칼을 마구 휘두르며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이후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2] 출옥 후 광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6년 8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유상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독립유공자 공훈록[1]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