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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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基文. 이명은 유화민(柳華民).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0년 한성부 서서 인달방 분선공계 필운대(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동)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유찬희와 어머니 이안라(李安羅)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유년기를 한성부에서 보내다가 1911년 경기도 이천군으로 이주한 뒤 1913년 부친과 함께 만주 연길현 국자가로 이주했다. 그 후 부친을 따라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920년 부친과 함께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가서 소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다. 1922년에는 연길현 용정의 영신중학교(永新中學校)에 입학하여 2년간 수학한 후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松都高等普通學校)에 전학하여 1930년 졸업하였다.

1931년 인천에서 배를 타고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상하이의 일본총영사관 구치소에 구류되어 며칠간 고초를 겪은 후 천주로 가서 형 유기석을 만났다. 그는 형으로부터 아나키즘을 이수받은 뒤 아나키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입하였다.

1931년 11월 상하이 프랑스조계 포석로에 소재한 백정기의 숙소에서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 조직에 참여했으며, 1932년 10월 형과 유자명이 폭탄을 가져오자 그해 12월 16일 전이방(田理芳)과 함께 천진에 주재한 일본총영사관 관저에 폭탄을 던지고 뒤이어 프랑스 조계의 부두에 정박 중이던 일본 기선에 폭탄을 투척했다.

이후에도 남화한인연맹과 흑색공포단 활동을 하던 그는 1935년 5월 흑색공포단의 엄순봉과 이규호가 상해거류민회장 이용로(李容魯)와 옥관빈을 처달할 때 가담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유기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