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스케일 화재

오른쪽이 윈드스케일, 왼쪽은 콜더홀

윈드스케일 화재(Windscale fire)는 1957년 10월 10일 영국 셀라필드에서 발생한 원자력 사고로, 원자로 가동 중 피폭된 감속재에 불이 붙으면서 방사능을 함유한 연기가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다. INES 5등급.

윈드스케일 원자로[편집 | 원본 편집]

윈드스케일은 영국의 핵무기 제조를 위해 세워진 원자로로, 전력 생산 등의 기능 없이 단순히 우라늄 덩어리를 적당히 구워서 플루토늄 따위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기 위해 세웠다. 흑연 감속재로 만든 격자형 노심에 가공한 우라늄 뭉치를 밀어넣기만 했기 때문에 “윈드스케일 더미(Windscale Piles)”라고 불렀다.

감속재로 흑연을 쓰고 냉각재로 공기를 사용했으며, 경수로처럼 복잡한 냉각 계통이 없어 원자로 구조랄 것도 없이 불어넣어진 공기가 격자형 노심(흑연으로 만든 CANDU 노심 같은 물건)을 통과하면서 우라늄을 식히고 굴뚝으로 방출되는 단순한 형태였고, 방사능 따위는 120m 정도의 높이에서 어떻게 될줄 알았다. 근데 AERE의 존 콕크로프트가 강력한 필터를 달게 했고, 120m가 넘고, 그리고 공사가 다 끝나가는 굴뚝에 강력한 필터를 달게한 결정으로 인해서 엔지니어들은 삽을 펐고, 이 필터를 가리켜 콕크로프트의 뻘짓(John Cockcroft's Follies)라고 부르게 된다.

흑연 감속재의 경우 특이한 물성이 있는 데, 방사선을 쬐면 구조가 변하면서 스스로 발열한다. 이를 “위그너 에너지”라고 불렀으며, 250도씨에서 달궈주면 위그너 에너지가 해소된다는 것이 밝혀져 흑연의 자연발화를 막기 위해 적당한 때에 냉각팬을 끄고 적당히 달궈 위그너 에너지를 발산시켰다.

노심은 알루미늄으로 감싼 핵물질 형태였으며, 냉각을 위해 케이싱에 냉각핀이 달려있었다. 계획 당시에는 우라늄, 플루토늄 정도만 만들면 충분했지만, 사고 당시에는 핵실험 금지 조약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수소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작업에 매달렸으며, 핵물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노심의 핵물질 용량을 늘리고, 냉각핀의 크기를 줄였다.

경과[편집 | 원본 편집]

오전 중 1호기 화재발생
1호기의 흑연 온도가 올라가면서 위그너 에너지 발산을 위해 발열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한다. 명확한 시각은 알려져 있지 않은데, 화재가 번지기 전까지 제어실에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냉각팬이 풍로 역할을 하면서 화재가 계속 확대되었다.
11시경 방사선량 증가
핵연료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방사선 물질이 흩날리기 시작했고, 굴뚝의 계측기 수치가 치솟기 시작했다.
16시 30분 화재 확인
제어실에서 원격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운전원이 점검창을 열고 직접 들여다 보았다. 노심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사태가 이미 심각함을 확인했다.
19시 핵연료 인출시도
고온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리면서 연기와 함께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핵연료 인출을 시도했으나, 2개 연료집합을 꺼내는 데 그쳤다.
11일 4시 30분 CO2 주입
콜더홀에서 쓰는 냉각재인 이산화탄소를 일부 공수해와 주입했으나, 별다른 효과는 보지 못했다.
9시경 물 주입
논의 끝에 물 주입을 결정했다. 수소폭발로 이어질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 주입은 30시간 이상 이어졌다.
12일 진화
30시간 동안 이어진 소방수 공급 끝에 화재가 진화되었다.

피해[편집 | 원본 편집]

  • 12,740 테라베크렐에 달하는 방사성 물질 유출
  • 갑상선암 환자 240명 발생

윈드스케일 화재의 가장 큰 문제는 비상 계획이 없었다는 점으로, 현대의 원자로들과 달리 면밀히 검토된 운영 지침서가 없어 운전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어 피해를 키웠다. 그나마 '콕크로프트의 어리석음'이 방사성 물질의 95%를 차단하여 피해를 억제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1960년대 영국 국방부의 과학 자문위원을 맞았던 테렌스 프라이스(Terence Price)는 "사고 이후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는 부적합해 보인다."라고 평했으며 맨체스터 대학의 리처드 웨이크포드(Richard Wakeford) 교수는 엔지니어들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안일하게 판단했다고 평했다.[1]

영국은 대외적으로 윈드스케일을 콜더홀과 싸잡아서 평화적 원자력 사용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사고로 인한 피해를 숨겼지만, 주변 지역의 우유를 폐기하는 등 사태 정리에 힘썼다.

폐로[편집 | 원본 편집]

여타 사고친 애들이 다 그렇듯이 방사성 물질이 사방팔방으로 번지면서 시설 내부에 방사능이 너무 강해 작업자가 들어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영국 정부도 대충 봉인만 하고 2010년대 들어서야 철거 계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스리마일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노심 핵연료 제거(제거 불가능한 건 제외), 냉각수 배수 등의 기초적인 작업은 완료가 되었으며 남은 작업은 녹은 핵연료 제거, 원자로 건물 해체 등이 있다. 우선적으로 방사선 준위가 꽤 낮아진 굴뚝 철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2]. 굴뚝은 셀라필드 운영사에서 철거하지만, 노심은 별도의 기업에 용역을 발주하여 맡긴 상태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