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차범근

수원삼성의 제2대 감독

일명 '레알 수원' 시절을 함께하며 수원의 마지막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감독

프로필[원본 편집]

  • 이름: 차범근 (車範根/Cha Bum-kun)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일: 1953년 5월 22일
  • 출생지: 경기도 화성시
  • 학력: 화산초 → 경신중 → 경신고 → 고려대
  • 선수시절 소속팀: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1976) → 공군 축구단 (1976.10 ~ 1979.05, 군복무), SV 다름슈타트 98 (1978)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9 ~ 1983) → 바이어 04 레버쿠젠 (1983 ~ 1989)
  • 코칭스태프 경력: 현대 호랑이  감독 (1991 ~ 1994) →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 (1997 ~ 1998) → 선전 핑안 감독 (1998 ~ 1999) →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2004 ~ 2010)
  • 국가대표 기록: 136경기 58골
  • 별명: 차붐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시절[원본 편집]

2004시즌[원본 편집]

수원의 초대 감독이었던 김호가 2003시즌을 끝으로 구단과의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구단에서는 팀 쇄신을 위해 김호와 재계약을 맺는 대신 새 감독을 물색하였고 후임으로 차범근과 접촉하였다.6  이후 차범근이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2004시즌부터 수원의 제2대 감독으로써 팀을 이끌게 된다. 계약 기간은 3년. 수원 감독 부임 이후 그가 꾸린 코칭스태프진은 다음과 같다.

  • 수석코치: 마르코 페차이올리
  • 코치: 이임생, 서정원(플레잉코치)
  • 골키퍼 코치: 조병득
  • 피지컬 코치: 이창엽

04시즌은 부임 후 첫시즌이라 그런지 선수단에 많은 변화를 주지는 않았고 김대의, 그리고 브라질 출신 공격수 마르셀 등을 영입하였다. 차범근은 리그 개막전이었던 4월 10일 매북전을 통해 수원 감독 데뷔전을 치뤘으나 1대1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후 경기였던 4월 17일 포항전10 과 24일 성남전11 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다가, 5월 5일 대구전에서 나드손의 골에 힘입어 1대0으로 수원 감독으로서의 첫승을 힘겹게 따냈다. 하지만 차범근은 04시즌 전기리그12 를 4위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마쳤는데, 우선 김대의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두고 170cm의 단신이었으나 스피드가 좋았던 나드손, 그리고 187cm라는 큰 신장을 이용한 포스트플레이에 능했던 마르셀을 투톱으로 두었던 공격전술은 효과적이었다. 문제는 수비였는데, 특히 전기리그에서 영 좋지 않은 수비능력을 보였음에도 차범근이 꾸준히 기용하였던 곽희주에게 수원팬들의 비판이 집중되었다.  이외에도 차범근이 마르셀과 같이 영입했던 브라질 출신 센터백 크리스가 시즌 초에 부상으로 시즌아웃을 당했던 것도 차범근의 수비플랜이 꼬였던 원인 중 하나. 차범근의 수원은 전기리그에 총 19득점 16실점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전기리그 최다 득점이자 세번째로 높은 실점 기록이었다. 당시 수원의 장점과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던 기록.

이에 차범근은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크리스를 방출하며 새 외국인 수비자원을 물색하였고, 크리스의 대체선수로 아르헨티나 출신 센터백인 무사를 영입하였는데 이것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 본래 그리 큰 기대를 하고 데려온 선수가 아니었던 무사는 기대 이상의 수비력을 보여주었고, 여기에다가 전기리그에서는 불안한 수비능력을 노출하였던 곽희주가 후기리그부터는 급격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의 수비는 빠르게 안정화되었다. 원래 좋았던 공격력에다 수비력까지 향상된 후기리그의 수원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렸고, 결국 후기리그 1위를 차지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참가할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차범근의 수원은 12월 5일 전남과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다투게 되었고,이 경기에서 무사가 전반 4분만에 헤딩으로 결승골을 득점하면서 1대0으로 승리하여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포항 스틸러스. 두팀은 12월 8일 스틸야드에서 챔결 1차전을 치뤘으나 0대0 무승부로 끝났고, 12일 빅버드에서 열린 2차전도 0대0으로 끝나 연장전까지 갔으나 연장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운재가 포항의 다섯번째 키커로 나선 김병지14 의 슛을 막아내면서 수원은 1999시즌 이후 5년만에 사상 세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04시즌 챔결 1, 2차전은 영상 2분 30초부터)

-챔결 승부차기 풀영상-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서정원- <차범근의 04시즌 성적>

  • K리그: 전기리그 승점 18점으로 4위(5승 3무 4패), 후기리그 승점 23점으로 1위(7승 2무 3패), 전후기 통합 승점 41점으로 2위(12승 5무 7패)
  • 챔피언결정전: 플옵 전남전 1대0 승리, 챔결 포항전 1, 2차전 통합 0대0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4대3 승리
  • 리그컵: 승점 19점으로 4위(4승 7무 1패)17
  • FA컵: 16강에서 부산 아이콘스18 에게 탈락(1대2)

이렇게 차범근은 수원에 부임한 첫 시즌부터 리그 우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하였고, 2004 K리그 감독상까지 수상하면서 수원 감독으로서의 산뜻한 출발을 알리는 듯 하였다. 하지만....

2005시즌[원본 편집]

플레잉코치였던 서정원이 04시즌을 마친 후 오스트리아 리그로 이적하였고, 2군코치로 최만희와 계약하면서 코치진에 변동이 있었다. 작년 한해를 통해 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차범근은 05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을 입히기 위해 팀 리빌딩에 돌입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호 시절부터 수원을 응원했던 올드팬들로부터 많은 볼멘소리를 들었다. 특히 전남의 김남일을 영입하기 위해 고종수와 조병국을 트레이드시킨 것에 대한 비판이 거셌는데, 아무래도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고종수를 보내는 것에 대해 올드팬들이 반감을 느끼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고종수는 잦은 부상에도 재활을 게을리하고 훈련에도 자주 불참하는 등 태도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보여왔었기에19  사실 차범근의 트레이드 결정은 꽤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외에도 작년에 좋은 활약을 보였던 마르셀에게 포르투갈 리그에서 오퍼가 오면서 그를 보내주는 한편 송종국과 마토, 조원희 등을 영입하며 스쿼드를 보강하였다. J리그에서 뛰고 있던 산드로를 재영입하기도.

이렇게 팀 재정비를 마친 차범근은 시즌 시작 전 2월에 개최된 A3챔피언스컵20 에 참가하였고,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 3월 1일날 열린 부산과의 슈퍼컵 경기에서도 나드손의 골에 힘입어 1대0으로 승리하며 슈퍼컵 트로피까지 들어올렸고, 3월부터 5월 초까지 진행되었던 리그컵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였다. -리그컵 우승 후의 수원-

이렇게 리그가 개막하기 전까지 수원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으며, 팬들의 기대 역시 한껏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5월에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차범근의 수원은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일단 큰 기대를 모으며 입단했던 송종국과 김남일은 정작 리그가 시작하자 장기 부상을 끊어버렸다. A3챔피언스컵으로 인해 2월부터, 즉 5월에 리그가 개막하기 세달 전부터 시즌을 시작해야했던 것이 슬슬 팀의 과부하를 유발하기 시작했던 것. 더군다나 당시 차범근이 추구했던 스타일은 피지컬을 앞세운 롱볼 축구였기에, 부상자들을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선수들 역시 리그가 개막할때부터 체력이 어느 정도 떨어져있는 상태에서 차범근이 요구하는 플레이를 온전히 수행하기에는 무리였다. 즉, 시즌 초에 빡빡한 일정을 받아들고도 이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채 차범근 본인이 추구하던 스타일만을 고집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조금씩 보이고 있던 상황. 뿐만 아니라 리그 개막 후인 5월 20일에 있었던 첼시의 내한경기때에는 친선전임에도 불구하고 풀주전을 내보내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물론 해당 경기가 삼성전자에서 첼시와 스폰서십을 체결하면서 맺었던 계약의 일부였기에 손님을 홈구장에서 맞이하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는게 맞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가 아닌 선발 전체를 모두 주전선수로 내보낸 결정은 차후에도 계속 리그를 뛰어야하는 선수들에게 신체적인 부담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팀 분위기에 본격적으로 찬물을 끼얹은 사건은 바로 아챔 8강 진출에 실패한 것이었다.21  작년 리그 우승을 통해 2년만에 아챔에 진출한 수원은 당시 구단 차원에서 아챔 우승을 통해 클럽월드컵에 참가하여 아시아 최강팀이라는 이미지를 전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실제로 수원은 아챔 조별예선 다섯경기에서 4승 1무라는 좋은 성적을 내며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마지막 6차전 상대이자 조 2위였던 선전 젠리바오22 와 승점이 3점차였기에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23  하지만 5월 25일날 열린 6차전 경기에서 차범근의 수원은 선전에게 0대1 패배를 당해버렸고, 이로 인해 승점은 선전과 동률이 되었으나 당시 아챔은 승자승 원칙을 채택하였기에 조별리그 상대전적에서 1무 1패로 밀렸던 수원은 결국 2위로 떨어지며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다 잡았던 8강 진출을 막판에 놓쳐버렸으니 이것이 선수들에게 미친 영향은 안봐도 비디오....

아챔 8강 진출 실패는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특히 리그가 개막하고 얼마되지 않아 팀의 주포인 나드손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해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해버리고 만다. 리그 초반까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득점 역시 곧잘 해주던 나드손이었기에 그의 시즌 아웃은 차범근에게 너무나도 뼈아팠다. 해당 시즌부터 수원으로 돌아온 산드로는 전성기 때와 달리 차범근의 전술에 적응하지 못하며 나드손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고, 앞서 언급한 송종국과 김남일 이외에도 김진우이병근, 김대의 등의 주축선수들이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며 수원은 시즌 내내 전력 누수에 시달렸다. 이는 전기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이어졌고, 결국 차범근의 수원은 전기리그에서 9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전기리그에서의 부진을 겪은 차범근은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전력 보강에 나섰지만, 영입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우선 마토와 무사 두명의 수비수로 외국인 쿼터를 쓰는게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차범근은 무사를 울산에 팔았고, 무사가 나가면서 남은 외국인 쿼터 자리를 그의 부임 이후 전력외로 분류되어있던 개성환과 포항의 브라질 공격수 이따마르를 트레이드하는데에 사용하였다.24  문제는 이따마르 역시 포항에서 그리 좋은 공격수가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미드필더 자원이었던 전재운25 과 매북 공격수 손정탁을 트레이드하며 공격력 보강을 꾀하였는데, 손정탁 역시 당시 매북에서 주전급으로 나서는 선수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트레이드에 의문을 표하는 팬들이 많았다. 이외의 영입으로는 성남으로부터 센터백 이싸빅을 영입하는데 성공했지만, 팀의 핵심 미드필더였던 김두현이 성남으로 이적한 것은 많은 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26 

이렇듯 수원의 여름이적시장은 뭔가 찝찝한 느낌을 남긴채로 마감되었고, 이 느낌은 후기리그에서 경기력으로 그대로 드러났다. 후기리그에서는 부상에서 회복한 김남일이 그래도 중원에서 분전해줬지만, 이따마르는 후기리그 시작 전 우려에 걸맞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산드로 역시 여전히 부진하였기에 팬들로 하여금 나드손을 애타게 찾게 만들었다. 그리고 경기에 가끔씩 출전했던 손정탁의 경기력은 정말 다른 의미로 레전드....27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죄다 이 모양이었기에 후기리그의 수원은 전기리그 때보다 더 나아질 수 없었고, 전기리그 때부터 발생했던 주전 선수들의 크코 작은 부상 및 리그가 진행될수록 심화되는 체력 문제 또한 여전하였다. 결국 10월 23일날 열린 슈퍼매치에서 북패에게 0대3 대패를 당하자 팬들의 분노는 폭발하였고, 경기 이후 선수단의 버스를 막은채 차범근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차범근이 직접 팬들 앞으로 나와 1시간 가량의 간담회를 갖기도.관련 기사  하지만 이후로도 별다른 변화 없이 후기리그 역시 8위라는 낮은 순위로 마치게 된다. 차범근은 리그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FA컵에도 총력으로 나섰으나, 12월 10일날 열렸던 매북과의 8강전에서 3대3으로 비긴 끝에 승부차기에서 2대4로 패하여 FA컵 우승에도 실패하였다.

05시즌은 감독 차범근의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던 시즌이었다. 선수단의 체력문제를 간과한 시즌 운용은 잦은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고, 여름이적시장에서도 좋은 공격자원을 영입하지 못하면서 시즌 아웃되었던 나드손의 공백을 메우는데에 실패하였다. 해당 시즌 수원의 리그 최다골 득점자가 수비수인 마토(5골)였던 것은 당시 수원의 공격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부분. 안그래도 작년의 우승이 김호의 흔적이 남아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팬들이 있던 상황에서 05시즌의 부진은 감독 차범근의 능력에 대한 팬들의 의구심을 커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마토와 김배신의 영입은 괄목할만한 성과로 평가받았다.

<차범근의 05시즌 성적>

  • K리그: 전기리그 승점 14점으로 9위(3승 5무 4패), 후기리그 승점 14점으로 8위(3승 5무 4패), 전후기리그 통합 승점 28점으로 9위(6승 10무 8패)
  • 리그컵: 승점 25점으로 1위(7승 4무 1패)
  • FA컵: 8강에서 매북에게 탈락(3대3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2대4 패배)
  • K리그 슈퍼컵: 부산에게 1대0 승리
  • 아챔: E조 2위로 조별예선 탈락(4승 1무 1패)
  • A3챔피언스컵: 1위(2승 1무)

2006시즌[원본 편집]

콩 시즌

2년동안 차범근을 보좌했던 페차이올리 수석코치가 팀을 떠나면서 이임생이 수석코치로 승격되는 등 코치진에 변화가 생겼다.

• 수석코치: 이임생

• 코치: 최만희, 박건하(플레잉코치)

• 골키퍼 코치: 조병득

• 피지컬 코치: 리차드 프라츠28 

시즌 시작 전에는 인천으로부터 이정수를 영입하였고, 성남에서 뛰고 있던 데니스를 재영입하였다. 하지만 오랜 부상에서 돌아온 나드손의 요청에 따라 그를 브라질 코린치안스로 임대보낼수밖에 없었고, 전 시즌에 부진하였던 이따마르와 산드로는 팀에 잔류하였다. 즉, 전년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스쿼드에 큰 변화가 없었기에 시즌 시작 전부터 팬들의 우려를 샀던 차범근의 수원이었다.

그리고 전기리그의 수원은 놀라울 정도로 작년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4월 23일 부산전에서 팬들의 불만은 폭발해버린다. 부산전 전까지의 수원은 전기리그에서 3승 6무를 기록하였는데, 패한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무를 많이 캐서 순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과 맞붙은 차범근의 수원은 한수아래라 평가받았던 부산에게 전반에만 세골을 얻어맞는 졸전을 선보였고, 후반에도 한골을 더 실점하면서 0대4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를 선보였다. 믿기지 않는 광경을 직접 보고 있던 수원 서포터들은 부산에게 네번째 골을 실점한 후에 급기야 서포팅을 중단해버렸고, 오히려 부산 선수들을 응원함으로써 졸전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 그래도 경기 종료 직전에 마토가 만회골을 넣으면서 영패는 면했지만, 부산에게 1대4 대패를 당했다는건 당시의 수원팬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결과. 경기가 끝난 뒤의 수원 서포터들은 오히려 인사를 온 부산 선수들에게는 박수를 보내주는 한편, 반대로 수원 선수들에게는 분노와 야유를 퍼부었다. 그리고 다음 홈경기였던 5월 5일 포항전에서는 아래의 현수막을 내걸면서 서포팅을 보이콧하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남은 전기리그 동안에도 수원의 경기력은 여전하였고, 결국 06시즌 전기리그도 8위로 마치며 차범근의 부진은 계속되었다. -전기리그 포항전때 빅버드에 걸렸던 현수막-

5월에 아쉬운 전기리그를 마친 수원은 바로 리그컵에 참가해야했는데 이운재, 송종국, 조원희, 김남일이 독일월드컵에서 뛰어야 했기에 이들 없이 리그컵을 치룰 수 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경기력에 국대급 주전들까지 빠진 차범근의 수원은 그야말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5월 리그컵 개막 이후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다. 그러던 5월 말,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그것은 바로 차범근이 MBC의 독일월드컵 해설위원을 맡았다는 소식이었다.29  안그래도 팀 성적이 개판인 상황에서 감독이 팀 정비는 커녕 해설하러 독일로 날라간다는 소식을 접한 팬들은 분노를 금하지 못하였고, 이후 홈경기였던 5월 24일 울산전에서 수원 서포터들은 응원가 대신 차범근의 독일행에 항의하는 노래를 불렀다. 경기 종료 후에도30  N석에 'Sale Cha(차범근을 팝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가 붙는 등 차범근에 대한 질타가 멈추지 않았을 정도로 그의 독일행에 대한 팬들의 반감은 상당히 높았다. 오죽했으면 김대의가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직접 N석 쪽으로 왔을 정도. 차범근은 6월 6일 부산전을 끝으로 결국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고(....),31  월드컵이 끝난 후 7월에 다시 팀으로 복귀하였다. 그에 대한 팬들의 민심이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기에 차범근은 반드시 반등해야했고, 이를 위해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대대적인 보강에 나선다. 우선 06시즌 전반기에도 여전히 부진하였던 이따마르를 성남에 팔았고, 그와 같이 부진하였던 산드로를 전남으로 임대를 보냈다. 그리고 이 둘의 자리를 우루과이 출신 공격수 올리베라와 브라질 출신 공격수 실바를 영입하면서 외국인 공격수 두명을 모두 물갈이하였다. 그리고 북패로부터 백지훈을,32  대전으로부터 이관우를 영입하며 미드필더까지 보강하는데 성공한 차범근이었다. 특히 이관우같은 경우는 대전에서 이미 중원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던 선수였기에, 그의 영입 자체만으로 수원팬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황혼기가 오며 전반기 동안 경기에 거의 나오지 못한 레전드 이병근이 대구로 이적하며 수원과의 아쉬운 이별을 고했고, 5년동안 수원의 오른쪽을 책임져준 최성용도 요코하마FC로 임대를 떠났다.33  이렇게 알찬 보강을 마친 차범근은 월드컵 이후 첫 경기였던 7월 15일 매남전에 나섰으나 1대1로 비겼고 이로 인해 전기리그 경기였던 4월 23일 부산전부터 이어진 무승의 고리를 못 끊는듯 하였으나,34  다음 경기였던 19일 광주 상무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하며 약 3개월만에 드디어 무승행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리그컵을 워낙 죽쒀났기에(....) 14개 팀 중 12위라는 성적표로 리그컵을 마칠 수 밖에 없었던 차범근의 수원이었다.

하지만 수원은 후기리그부터 영입효과를 똑똑히 보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롱볼만을 고집하던 차범근은 백지훈과 이관우 영입 이후 이들을 활용한 중원에서의 빌드업을 선보이기 시작하였고, 이 둘은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하며 후기리그 팀 상승세의 주역이 되었다. 리그 후반기에는 기존의 쓰리백에서 이정수, 이싸빅, 마토, 곽희주로 이뤄진 포백도 실험하는 등 후반기 반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이는 후기리그 1위와 FA컵 결승 진출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전기리그와 리그컵에서의 졸전을 생각하면 굉장히 놀라운 반전. 잘만 하면 전반기의 부진을 씻고 리그와 FA컵 우승으로 시즌 더블까지 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후기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수원은 11월 12일,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두고 포항과 다투게 된다. 해당 시즌 포항과의 세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패한 수원이었지만 선수들은 챔결 진출을 위해 분전하였고, 결국 후반에 백지훈이 대포알같은 중거리슛으로 득점에 성공하며 1대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포항전 백지훈 골-

포항을 꺾으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수원의 상대는 당시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성남 일화. 대망의 챔결 1차전은 11월 19일에 펼쳐졌는데, 두팀은 경기 내내 치열한 공방을 펼쳤으나 경기 종료 직전에 성남 우성용에게 헤딩골을 헌납하며 수원이 0대1로 패하게 된다. 이후 25일날 열렸던 2차전에서도 성남 모따에게 전후반에 각각 한골씩 내주며 끌려가다가 수원 실바가 추격골을 넣으며 따라잡기 시작했으나 경기는 그대로 1대2로 끝났고, 결국 합산 스코어 1대3으로 수원은 성남에게 리그 트로피를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아쉬운 리그 준우승을 거둔 차범근의 수원은 FA컵 결승에 모든걸 걸어야했다. 결승전 상대는 전남 드래곤즈. 하지만 수원은 12월 3일날 열린 FA컵 결승에서도 전남에게 0대2 패배를 당하며 FA컵 역시 준우승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35 

06시즌은 차범근에게 지옥과 천당을 오고갔던 시즌이었다. 전반기의 극심한 부진, 거기다 독일월드컵 해설이라는 악수까지 두면서 짧은 수원 감독 커리어를 거의 끝낼뻔한 위기를 겪었으나 후기리그 반등을 통해 다행히도 팬들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데에 성공한 차범근이었다. 특히 백지훈과 이관우의 영입은 이때뿐만 아니라 향후 몇년간 수원 성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차범근의 감독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의 영입을 통해 롱볼만을 고집하지 않고 중앙을 거치는 플레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상당히 고무적이었던 부분.36  하지만 부진한 공격진을 물갈이하기 위해 데려온 올리베라와 실바 두 외국인 공격수가 마찬가지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해당 시즌에 수원으로 복귀한 데니스 역시 전성기 때와 달리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공격진 보강 실패는 최전방에서의 파괴력 부족으로 나타났고, 이는 막판에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쳐버리는 아쉬운 결과를 야기하였다. 결국 05시즌부터 지속된 나드손의 빈자리가 차범근의 발목을 잡았던 셈. 팬들 중 일부는 이를 두고 우승컵을 들기 위해서는 결국엔 감독을 바꿔야한다며 차범근에 대한 불신을 지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차범근의 06시즌 성적>

• K리그: 전기리그 승점 16점으로 8위(3승 7무 3패), 후기리그 승점 27점으로 1위(8승 3무 2패), 전후기리그 통합 승점 43점으로 3위(11승 10무 5패)

• 챔피언결정전: 플옵 포항전 1대0 승리, 챔결 성남전 1, 2차전 통합 1대3 패배

• 리그컵: 승점 12점으로 12위(2승 6무 5패)

• FA컵: 결승에서 전남에게 패배(0대2)

2007시즌[원본 편집]

06시즌까지가 계약 마지막 시즌이었던 차범근은 작년 후기리그를 통해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덕분에 06시즌 종료 후 수원과의 3년 재계약에 성공한다. 재계약을 마친 그는 더욱 더 공격적인 영입으로 07시즌을 준비하였는데, 우선 06시즌 후기리그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던 올리베라와 실바를 반년만에 처분하였고 전남에서 임대생활중이었던 산드로도 전남 측에서 완전영입을 제안하면서 수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그리고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나드손이 코린치안스 임대를 마치고 드디어 팀에 복귀하였으며, 특히 분데스리가 마인츠로부터 브라질 공격수 에두를 영입하면서 K리그 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에두의 영입에 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기본적으로 마인츠에서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던 선수가 K리그에 온다는거 자체가 상당히 띠용한 상황이었다. 에두의 수원 이적은 그의 마인츠 팀동료이자 차범근 아들인 차두리의 추천, 그리고 수원 구단이 그에게 통 크게 제안한 금전적인 조건 덕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레알 수원 시절의 위엄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시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와의 계약이 끝난 이후 무적 신세였던 안정환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하면서 그동안의 부진한 공격진에 한이라도 맺힌듯한(....) 공격수 보강을 선보인 차범근이었다. 이외에도 대전으로부터 배기종을 영입하였고, 공격수 유망주였던 신인 하태균과 프로계약을 맺으며 그를 팀에 데려오기도 하였다. 대신 요코하마에서의 임대생활이 끝난 최성용이 울산으로 이적하였으며, 수원 레전드 박건하가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하며 플레잉코치에서 전임코치로 전환하였다.

이렇게 차범근은 꽤나 화려한 공격진을 꾸린 상태에서 시즌에 돌입하였고, 리그 초반부터 괜찮은 페이스를 보여주었다.37  3월 17일 부산전에서는 나드손의 프리킥골 덕분에 1대0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승리 덕분에 수원은 K리그 사상 최단기간 200승(433경기만에 달성)이라는 기록도 세울 수 있었다. 이후로도 차범근의 수원은 시즌 초부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상승세를 탔는데, 이 상승세에는 나드손과 에두 두 투톱의 공이 상당히 컸다. 특히 좋은 돌파로 찬스는 다 만들어놓고 정작 슛은 어이없게 날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던 당시의 녹두에 반해(....) 나드손은 몇년전에 보여줬던 무시무시한 기량을 회복하며 팬들이 그동안 애타게 그를 기다린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07시즌 이전의 차범근은 한두골 차이 싸움을 주무기로 삼았었기에 성적과 관계없이 경기 자체가 재미가 없다는 평을 듣기도 했으나, 해당 시즌부터는 이 투톱의 화끈한 공격력을 앞세워 서너골을 득점하는 경기도 자주 만들어내면서 세간의 인식을 뒤집는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한창 폼이 좋던 나드손이 시즌 중반에 발목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해버리고 만다. 간만에 수원에 복귀했던 그였기에 더욱 더 아쉬웠던 상황.... 이외에 차범근은 06시즌에 실험하였던 포백을 해당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 역시 상당히 잘 먹혀들어갔다.38 

차범근은 시즌 중반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뛰던 홍순학과 전남의 양상민을 영입하며 수비와 미드필더 쪽을 보강하였다. 여름이적시장 이후의 수원의 기세 역시 무서웠는데, 특히 8월 11일 부산전부터 9월 2일 남패전까지 리그 6연승이라는 미친 경기력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결국 수원은 성남에 이어 2위로 리그를 마치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수원의 플옵 상대는 작년에 이어 다시 플옵에서 마주치게 된 포항. 하지만 당시에 파리아스 감독이 이끌고 있던 포항은 리그를 5위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플옵에서 매남과 울산을 차례대로 잡고 올라와 기세가 상당히 올라있는 상태였다. 두팀은 10월 31일에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놓고 대결을 펼쳤는데 수원은 경기 종료 직전에 포항 박원재에게 헤딩골을 실점하며 0대1로 패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39 

차범근의 07시즌은 수확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시즌이었다. 우선 06시즌 후기리그때 올라오기 시작했던 경기력이 해당 시즌부터는 더욱 무르익은 것이 눈에 보였다. 특히 분데스리가 출신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던 에두는 골결정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 이외의 돌파력이나 테크닉, 볼키핑력 등에서는 수준급의 기량을 선보이며 역시 분데스리가 출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해당 시즌에 프로데뷔를 한 하태균 역시 첫시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에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기도.40  그리고 수비에 대해 말해보자면, 차범근은 작년 후반기부터 준비했던 포백을 07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꽤나 효과를 발휘하며 수원은 07시즌 리그에서 네번째로 실점이 적은 팀이라는 기록도 세울 수 있었다. 또한 작년부터 영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던 라이트백 조원희를 시즌 중반부터 수미로 기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대박을 치면서 조원희 커리어의 전환점을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다만 1년만에 팀에 복귀했으나 반년만에 다시 시즌 아웃을 당한 나드손의 부상은 상당히 아쉬웠고, 많은 기대를 모으며 입단했던 안정환의 부진 역시 옥의 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리그 우승에 실패하면서 트로피에 대한 구단과 팬들의 갈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범근은 수원에서의 다섯번째 시즌인 2008시즌을 맞게 된다.... <차범근의 07시즌 성적>

• K리그: 승점 51점으로 2위(15승 6무 5패)

• 챔피언결정전: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에게 탈락(0대1)

• 리그컵: 승점 17점으로 B조 2위(5승 2무 3패)41 

• 리그컵 토너먼트: 6강 성남전 4대1 승리, 4강 울산전 0대1 패배

• FA컵: 16강에서 북패에게 탈락(0대0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2대4 패배)

2008시즌[원본 편집]

차범근 감독 커리어 최고의 시즌

07시즌을 통해 팀 안정화에 성공한 차범근은 대망의 2008시즌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미 스쿼드 자체는 크게 흠이 없었기에 영입보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선수들을 정리하는데에 중점을 뒀다. 우선 자의로 정리한건 아니지만 부상으로 07시즌 대부분을 날렸던 김남일이 구단의 뒤통수를 치고(....) J리그 비셀 고베로 이적하였다(이 사건 이후로 김남일은 수원팬들에게 '김배신'이라고 불리기 시작한다. 자세한 내용은 마계대전 / 작계대전 문서의 작계대전 카테고리 참조). 그리고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줬던 안정환을 부산의 안영학과 트레이드하였고, 수원으로 복귀한 이후에 마찬가지로 전성기 때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던 데니스도 러시아리그 팀으로 이적시켰으며, 이미 30대 중반의 노장이었던 이싸빅도 전남에 팔았다. 하지만 팀을 떠난 선수들 중 가장 아쉬웠던 선수는 아무래도 나드손. 작년 중반에 당한 부상이 장기화되었고, 팀과의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에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구단 측에서 나드손과의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나드손과 수원의 인연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만다. 부상 전에 보여줬던 폼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부분. 새 외국인 선수로는 브라질 미드필더 루이스를 임대로 데려왔다.42  이외에 박현범, 조용태 등의 신인선수들과 프로계약을 맺으며 새 피를 수혈하기도. 그리고 지난 07시즌을 끝으로 수원 레전드 김진우가 현역에서 은퇴하였으며,43  2년동안 팀의 피지컬 코치로 재직하였던 리차드 프라츠가 팀을 떠나면서 독일 출신의 조지 마이어가 새 피지컬 코치로 부임하였다.

이렇게 보강보다는 정리에 치중했던 차범근이었기에 시즌 개막 전에는 팬들 사이에서 그래도 보강이 너무 없는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하였으나.... 막상 시즌이 개막한 후의 수원은 차범근 부임 이후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K리그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당시 수원은 이미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레알 수원'이라고 불리며 매시즌마다 리그 우승 후보로 뽑히던 시절이기는 하나, 그래도 이정도까지의 경기력을 보여줄꺼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차범근이 그동안 추구해온 피지컬 축구가 가장 잘 구현된 시기가 바로 이 08시즌 전반기. 특히 작년에 다 잘했지만 득점이 아쉬웠던 에두가 해당 시즌부터는 결정력까지 좋아지면서 나드손의 공백을 잘 메워준게 꽤 컸다. 그리고 차범근은 에두의 투톱 짝으로 당시 한국나이 22살이었던 신영록을 중용하였는데, 둘의 호흡이 상당히 잘 맞으며 팀의 공격력이 극대화되었다. 신영록이 자신에게 온 롱볼을 헤딩으로 떨궈주면 에두가 그걸 받아 득점하는 것이 주요 공격패턴. 공격뿐만 아니라 이정수, 마토, 곽희주, 송종국으로 이뤄진 포백, 그리고 그 앞에서 수미로써 볼을 쓸어담으며 수비라인을 보호해준 조원희가 버티고 있던 수원 수비진 역시 말 그대로 벽 그 자체였다. 그리고 골키퍼는 이운재.... 이외에도 당시 신인이었던 박현범과 조용태도 경기에 나올때마다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받았다.44  덕분에 차범근의 수원은 리그 개막전이었던 3월 9일 대전전부터 7월 5일 인천전까지 리그에서 12승 1무를 기록하는 위엄을 보였다. 밑에 후술할 기록들도 모두 08시즌 전반기때 만들어진 기록들.45 

• 구단 사상 최다 연승: 8경기(2008년 3월 19일 ~ 4월 26일)46 

• 구단 사상 최다 무패: 18경기(2008년 3월 9일 ~ 6월 28일)

• 구단 사상 최다 연속 무실점: 7경기(2008년 3월 19일 ~ 4월 20일)

-5월 24일 포항전에서 차범근의 생일을 맞아 수원 서포터들이 준비했던 카드섹션 및 생일축하자리-

시즌 전반기까지는 기록에서도 볼수있다시피 너무나도 완벽한 시즌이었기에 차범근은 여름이적시장때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우선 루이스를 반년만에 내보내고 프랑스 2부리그에서 뛰던 브라질 공격수 루카스를 영입하였는데, 이 영입에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원래 수원은 시즌 시작전에 루이스가 아닌 루카스를 영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럽리그는 추춘제이므로 루카스의 원소속팀은 당시에 아직 시즌이 한참 진행중이었고, 이에 따라 그 시즌이 끝나는 08년 중반에 루카스를 영입하고 그전까지는 같은 에이전트가 관리하고 있던 루이스를 반년동안 데리고 있겠다라는 것이 당시 수원이 맺은 딜이었다. 하지만 루이스가 수원에서의 반년동안 그닥 많은 경기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범근은 그의 기량에 만족감을 표하였고,47  따라서 루이스와의 계약을 연장하고자 했으나 에이전트 측이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원래 딜대로 루이스를 내보내고 루카스를 영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루카스는 수원에서의 반년동안 뻘짓만 하였다....48  이외에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후보로 전락한 이천수를 반시즌 임대로 데려왔으나,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고 부상당했을때는 재활하라는 팀의 지시도 거부하는 등 코치진에게 항명하면서 팀의 분위기만 저해시켰다.49  이때의 이천수를 본 수원팬들은 지금까지도 이천수를 굉장히 싫어한다.

하지만 기세가 등등했던 차범근의 수원은 시즌 중반부터 조금씩 삐걱거린다. 7월 13일에 대전에게 패하며 리그 첫패를 기록하더니, 이후로는 패하는 경기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 이 문제의 원인은 결국 차붐표 피지컬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선수들의 피로도 및 잦은 부상 빈도가 다시 도지기 시작한 것에 있었다. 시즌 중반부터 주전 선수들이 하나둘씩 부상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단단했던 조직력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결국 패배하는 경기가 점점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특히 9월 27일에는 매북에게 2대5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는데 이 경기는 수원과의 끝이 좋지 않았던 조재진에게 한골, 그리고 수원을 떠난 직후에 다시 매북으로 임대를 갔던 루이스에게 두골을 먹히는 등 팬들에게 여러모로 치욕적인 경기였다.50  결국 차범근은 06시즌 이후로 버렸던 쓰리백을 재가동하며 변화를 꾀하였다. 그리고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반기에는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배기종, 홍순학, 최성환 등을 중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선수들이 나름 공백을 잘 채워주며 시즌 말에는 다시 승리를 거두기 시작하였다. 결국 수원은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치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할 수 있었고, 리그와 같이 병행되었던 리그컵에서도 A조 1위를 차지하며 리그컵 토너먼트에 안착하였다.

이렇게 더블의 기회를 맞게 된 차범근의 수원은 먼저 리그컵 사냥에 나섰다. 수원의 리그컵 4강 상대는 6강 토너먼트에서 성남을 꺾고 올라온 포항. 둘의 대결은 10월 8일에 열렸는데, 양팀은 치열한 공방에도 득점을 내지 못하며 0대0 무승부로 90분을 마쳤고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해 결국 승부차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여기에서 페널티킥의 신 이운재가 포항의 3, 4, 5번째 키커였던 황지수, 김기동, 스테보의 슛을 연속으로 막아내는 미친 캐리를 선보이며 수원은 결국 승부차기에서 3대2로 승리, 리그컵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특히 스테보의 파넨카킥을 간단하게 잡아낸 뒤 그에게 메롱을 시전하는(...) 이운재의 모습이 압권.해당 경기를 보도했던 MBC뉴스 영상클립  리그컵 결승에 올라온 수원의 상대는 당시에 박항서 감독이 이끌고 있던 전남 드래곤즈. 두팀의 결승전은 10월 22일에 열렸고, 수원은 배기종과 에두의 골을 앞세워 2대0으로 승리하며 리그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는 차범근이 05시즌 이후 3년만에 들어올렸던 리그컵 트로피였다. -리그컵 결승에서 나온 배기종의 선제골- 리그컵 획득에 성공한 차범근은 드디어 대망의 리그 우승에 도전한다. 리그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바로 귀네슈 감독이 이끌고 있었던 북패. K리그 최고의 라이벌인 두팀이 리그 트로피를 두고 대결을 펼치게 되자 양팀 팬들이 불타오른 것은 물론, 타팀팬들의 시선 역시 이들의 대결에 집중되었다. 챔결 1차전은 12월 3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킥오프하였다. 하지만 수원은 전반에 북패에게 밀리는 양상을 보였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정규리그경기 이후 약 한달만의 경기라서 그런지 실전감각이 좀 떨어져있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에 비해 이미 플레이오프에서 울산과의 경기를 치르고 올라온 북패는 전반에 수원을 압박하였고, 결국 기성용이 올린 코너킥을 아디가 헤딩골로 연결시키며 수원은 리드를 허용한다. 하지만 귀네슈는 후반 초에 데얀을 빼고 이을용을 투입하는 등 꽤나 일찍 잠구기에 돌입하였고, 이를 본 차범근은 이관우와 배기종 등을 투입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나섰다. 북패가 엉덩이를 뒤로 빼기 시작하자 경기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수원에게 넘어왔으며, 결국 후반 34분 마토의 헤딩슛이 키퍼에게 막히고 나온걸 곽희주가 밀어넣으면서 1대1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경기는 그대로 종료. 이렇게 원정경기에서 득점이 나온 무승부라는 소정의 성과를 거둔 차범근의 수원은 2차전을 위해 빅버드로 돌아온다.

-챔결 1차전 하이라이트-

운명의 챔결 2차전은 12월 7일 빅버드에서 개최되었다. 이 날 수원은 경기 직전까지 눈이 올 정도로 추운 날씨였으나, 4년만의 리그 우승의 현장을 보기 위해 4만명이 넘는 팬들이 빅버드로 발걸음을 하여 경기장을 가득 채워주었다.

-챔결 2차전 킥오프 전에 수원 서포터들이 선보인 퍼포먼스-

그리고 수원은 전반 11분만에 에두가 상대 실책을 선제골로 연결시키며 북패로부터 한걸음 달아나게 된다. 선제골 이후로 수원은 주도권을 잡고 북패를 계속 압박하였으나 전반 23분에 북패 김한윤이 찔러준 롱패스에 순간적으로 뒷공간을 내주어 이운재와 이청용의 일대일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운재가 이 과정에서 반칙을 범해 북패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만다. 그리고 이를 정조국이 성공시키며 스코어는 1대1 원점.51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전반 34분에 에두가 북패 페널티박스 안에서 김치곤에게 걸리며 페널티킥을 얻어낸다. 수원의 키커로 나선 선수는 08시즌의 주장이었던 송종국. 송종국이 때린 슛은 북패 키퍼에게 막혔으나, 그는 세컨드볼을 침착하게 밀어넣으며 득점에 성공하였다. 송종국이 득점 이후에 팀동료들과 함께 선보였던 볼링 세러머니는 이후로도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52  전반에만 세골이 나온 뒤에도 양팀의 치열한 공방전은 경기내내 계속되었으나 수원은 리드를 지켜내며 2대1로 승리하였고, 결국 합산 스코어 3대2로 북패를 꺾고 사상 네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여담으로 경기 시작 전에 그쳤던 눈이 후반 추가시간쯤에 다시 내리기 시작했는데, 수원의 우승을 축하라도 해주듯 눈이 내리던 이 광경은 현장에 있던 많은 팬들에게 아직까지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챔결 2차전 풀영상

-챔결 2차전 하이라이트-53 

-리그 트로피를 들고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는 이관우와 김대의-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차범근과 마토-

-우승 이후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차범근-

08시즌은 차범근이 수원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최고의 경기력과 성적을 내었던 시즌이었다. 강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그의 롱볼 축구는 두터웠던 당시 수원 스쿼드와 최상의 시너지를 보여주었고, 특히 전반기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은 현재까지도 팬들에게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거기에다 리그 우승을 두고 다툰 팀이 다른 곳도 아닌 북패였던 것도 우승 후 팬들의 기쁨이 배가 되는데에 한몫하였다. 이렇게 수원에게 네번째 별을 선물해준 차범근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8 K리그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감독 커리어 사상 두번째 감독상을 받는 영광까지 누리게 된다.

<차범근의 08시즌 성적>

• K리그: 승점 54점으로 1위(17승 3무 6패)54 

• 챔피언결정전: 챔결 북패전 1, 2차전 통합 3대2 승리

• 리그컵: 승점 21점으로 A조 1위(6승 3무 1패)

• 리그컵 토너먼트: 4강 포항전 0대0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3대2 승리, 결승 전남전 2대0 승리

• FA컵: 16강에서 광주 상무에게 탈락(1대1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4대5 패배)

08시즌의 수원은 그야말로 두려울 것이 없던 팀이었고, 때문에 팬들은 올해의 기세를 타고 내년에도 파죽지세의 수원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2009시즌[원본 편집]

수원에게 네번째 별을 선물해준 차범근은 지난 08시즌이 계약 마지막 시즌이었고, 구단은 리그 우승을 이끈 그에게 당시 분위기로써는 당연히 재계약을 제안하면서 차범근은 수원과 3년 재계약을 채결한다. 그리고 2년동안 코치로 재직하였던 박건하가 매탄고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 대신 매탄고 코치였던 김진우가 1군 코치로 새로 부임하는 등 코치진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이렇게 디펜딩 챔피언으로써 09시즌에 참여하게 된 수원이었지만, 작년에 우수한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들이 워낙 많았기에 08시즌 종료 후 여러 해외구단에서 수원 선수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우선 작년에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주가를 올린 마토와 이정수가 J리그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수원의 허리를 든든히 지탱해주던 조원희는 EPL의 위건 애슬레틱으로, 전방에서 역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신영록은 터키의 부르사스포르로 각각 이적하며 유럽무대에 진출하였다. 이외에는 먹튀였던 루카스와의 계약을 해지하였고, 팀에 민폐만 끼친 이천수와의 임대 역시 해지하였다.55  이렇게 팀 전력, 특히 마토와 이정수의 이적으로 수비전력에 누수가 생긴 차범근은 이를 보강하기 위해 브라질 센터백 알베스와 중국 센터백 리웨이펑을 영입하였다.56  하지만 이들 중 리웨이펑의 영입에 대해 팬들의 시선은 다소 부정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과 중국간의 국가대표경기가 있을때마다 보여왔던 그의 거친 플레이 때문이었다.57  이외에도 울산으로부터 북짜를 영입하기도 하였다.

작년의 찬란한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던 팬들은 이번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고, 특히 05시즌 이후 4년만에 진출한 아챔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두길 고대하였다. 이렇게 많은 기대를 받으며 09시즌을 시작한 차범근의 수원은 개막 직후에는 3월 11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아챔조별예선경기에서 4대1 대승을 거두면서 기대에 부응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이후로는 작년과 너무나도 다른 경기력으로 부진에 빠져버리는데, 아무래도 작년 우승의 핵심 선수들이 팀을 떠난 후 생긴 공백이 너무나도 컸다. 특히 그나마 센터백 자원들을 영입했던 최종수비라인과 달리 작년 수원의 핵심 수미였던 조원희의 대체선수는 영입하지 못하였는데, 이에 따른 결과로 09시즌의 수원은 허리가 그대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 마토와 이정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영입한 알베스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선보였고, 시즌 초부터 왼쪽 무릎 연골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어버린 이관우의 빈자리 역시 컸다. 팀의 주포였던 에두 또한 시즌 초에 당한 부상으로 인해 본래 폼을 되찾기까지 꽤나 애를 먹기도. 사실 선수들의 잦은 부상은 차범근 사단이 잘나갈때나 못나갈때나 언제나 제기되어오던 문제점이었는데, 이 문제점이 09시즌에도 여전했던 것. 그리고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주던 이관우가 못나오게되자 차범근은 다시 뻥축으로만 일관하였고(....), 자연스럽게 예전 안좋았던 시절의 경기력이 나오면서 성적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아챔에서는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였으나, 6월 24일날 열린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16강전에서 1대2로 패하며 4년만에 참가한 아챔마저 일찌감치 끝마쳐버리고 만 차범근의 수원이었다.58 

이렇게 한시즌만에 다시 위기를 맞은 차범근은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보강에 나선다. 일단 주전에서 완전히 밀린 알베스와의 계약을 반년만에 해지함과 동시에 과거 대구와 전남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바 있는 브라질 공격수 산드로 히로시를 영입하였으며, 역시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티아고를 임대로 영입하며 공격진을 보강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옛제자이자 당시에 EPL 웨스트 브로미치에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던 김두현을 재영입하면서 중원을 보강하였다. 이로써 김두현은 05시즌에 성남으로 이적한 후 4년만에 수원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원은 여름이적시장 이후로도 리그에서 크게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결국 리그 10위라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고 만다. 하지만 그 와중에 FA컵에서는 꾸준히 올라가면서 06시즌 이후 3년만에 FA컵 결승에 진출하였다. 이 FA컵 결승은 차범근이 리그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7월 15일 전남과의 FA컵 8강전 골장면(3대0)-

-10월 7일 매북과의 FA컵 4강전 골장면(3대0)-

이렇게 FA컵 결승에 올라온 수원의 상대는 최고의 라이벌 중 하나였던 성남 일화. 당시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던 성남은 정규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며 수원보다 월등히 좋은 모습을 보여왔고, 리그 6강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해있었기에 더블에 대한 의지가 강한 상태였다. 하지만 차범근도 이미 리그를 죽쒀놨기에(...) FA컵 트로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때문에 두 감독은 각자의 상황으로 인해 모든걸 걸고 11월 8일날 열린 결승전에 임하였다.59  이 경기에서 차범근의 수원은 전반 27분 성남 라돈치치60 에게 헤딩골을 내주며 선제골을 헌납하였으나, 후반에 들어서면서 성남을 가둬놓고 일방적으로 패더니 결국 경기 종료 직전에 티아고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에두가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드는데에 성공한다. 1대1 동점이 된 두팀은 연장전까지 뛰게 되었고, 연장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하며 결국 승부차기로 우승팀을 결정하게 된다. 승부차기에 들어간 수원은 경기 내내 괜찮은 활약을 해준 티아고가 세번째 키커로 나섰다 실축하며 위기를 맞는 듯 보였으나, 페널티킥 전문가 이운재가 곧바로 성남의 3, 4번째 키커의 슛을 막으며 팀을 구해내었고 이후 수원의 다섯번째 키커로 나선 김대의가 과감하게 중앙으로 찬 볼이 골망을 가르면서 승부차기에서 4대2로 승리,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림과 동시에 다음시즌 아챔 티켓까지 획득하게 된다. 이는 2002년 이후 7년만의 FA컵 우승이자 구단 사상 두번째 FA컵 우승, 그리고 차범근이 수원에 부임한 이후 처음 거둔 FA컵 우승이기도 하다.

-FA컵 결승전 하이라이트-

차범근의 09시즌은 엄밀히 말하자면 실패한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04시즌에 리그 우승을 한 후 바로 다음 시즌이었던 05시즌에 9위로 거꾸러졌던 것과 놀랍도록 똑같은 데자뷰였는데, 이는 08시즌 우승멤버들이 이적한 공백을 메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관우가 시즌 아웃을 당해 중앙에서 볼을 배급해줄 선수가 없어지자 롱볼로 일관하면서 경기력마저 05시즌으로 회귀한 점(....) 역시 감독 차범근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던 전술적 유연성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던 부분. 그래도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김두현을 복귀시키며 이관우의 공백을 메워주었고, 에두 역시 시즌이 진행될수록 폼이 점점 올라와 팀의 주포로서의 면모를 점차 회복해주며 그래도 FA컵 우승이라는 유종의 미는 거둘 수 있었다. 시즌 중반에 합류한 티아고 역시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FA컵 우승에 일조하였으며, 영입 당시만 하더라도 팬들의 우려를 샀던 리웨이펑은 팀이 부진에 빠진 와중에도 최후방에서 헌신적으로 수비를 해줌과 동시에 걱정했던거와 달리 비매너적인 모습은 딱히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한시즌만에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이렇게 감독 커리어 첫 FA컵 우승 트로피를 획득한 차범근은 이를 통해 감독 생명을 연장하며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받게되나.... <차범근의 09시즌 성적>

• K리그: 승점 32점으로 10위(8승 8무 12패)

• 리그컵 토너먼트: 8강에서 포항에게 탈락(1, 2차전 통합 0대4)61 

• FA컵: 결승 성남전 1대1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4대2 승리

• 아챔: 16강에서 나고야 그램퍼스에게 탈락(1대2)

2010시즌, 그리고 시즌 도중 사임[원본 편집]

작년 FA컵 우승으로 죽다 살아난 차범근은 2010시즌을 통해 반드시 반등해야했다. 때문에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였는지 차범근이 수원으로 부임한 04시즌 때부터 그와 함께해온 이임생 수석코치가 09시즌을 끝으로 코치진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새 시즌을 준비하던 수원에게 큰 변수가 하나 발생하는데, 바로 3년동안 팀의 주포로 활약한 에두가 분데스리가 샬케04로 이적하게 된 것이다. 08시즌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에두였기에 많은 팬들이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가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닌 분데스리가였기에 팬들은 그가 지금까지 수원에서 보여준 활약에 고마워하며 그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그리고 에두는 훗날 2016시즌을 앞두고 K리그 복귀를 추진하며 수원으로 돌아오는 듯 하였으나, 매북과의 가계약 논란을 낳으며 결국 매북으로 이적하면서 수원팬들의 영웅에서 배신자로 전향해버리고 만다. 이때 벌어진 일련의 이적과정으로 인해 수원팬들은 이제 에두를 '녹두', '매두' 등으로 부르고 있다. 2016시즌 녹두 가계약 논란 정리글

아무튼 이렇게 팀의 주포였던 녹두가 떠났고, 이외에도 반년동안 괜찮은 활약을 하며 FA컵 우승에 일조한 티아고 역시 임대만료로 수원을 떠났으며 그와 같이 팀에 왔으나 별 활약을 못한 산드로 히로시와의 계약도 해지되었다. 이렇게 팀의 기존 공격자원들이 떠난 상황에서 차범근은 새 공격수들을 물색하였고, 브라질 공격수 헤이날도를 영입함과 동시에 스웨덴 리그에서 뛰고있던 브라질 공격수 호세모따를 임대로 데려왔다. 그리고 작년에 조원희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낀 차범근은 위건에서 밀린 그를 1년만에 다시 임대로 데려왔고,62  남패의 센터백 강민수와 수미 이동식을 영입하기 위해 배기종과 박현범을 이들과 트레이드하였다. 그리고 염기훈이 이때 수원으로 오게 된다.63  이외에는 매탄고를 졸업한 민상기와 프로계약을 채결하였다.

하지만 10시즌의 수원은 작년보다 오히려 더 나빠진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작년의 단점이 전혀 개선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녹두를 대체하기 위해 영입한 새 공격수들도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득점력마저 떨어져버렸고, 거기에다 팀 창단때부터 15년동안 수원의 골문을 듬직히 지켜주던 이운재마저 노쇠화로 인해 폼이 떨어지면서 그동안의 그와 달리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그리고 차범근은 이런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팬들의 인내심에 슬슬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결국 작년부터 이어진 부진에 폭발한 팬들은 4월 24일날 열린 강원과의 홈경기에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며 팀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게 된다.64  당시 수원이 얼마나 심각했냐면 3월 28일 매남전부터 5월 1일 전남전까지 리그에서 6연패를 기록할 정도로 경기력이 최악이었고,65  특히 전남에게 패하면서 리그 꼴찌인 15위까지 추락해버리는 역대급 부진을 선보였다. 그나마 아챔에서는 리그와 달리 선전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였고 5월 11일날 열린 베이징 궈안과의 16강전에서도 2대0으로 승리하며 차범근 부임 이후 처음으로 아챔 8강에 진출하게 되나, 리그에서 적당히 못하는게 아니었기에(....) 팬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범근은 결국 5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을 뜻을 밝혔고, 남아공월드컵 기간동안 있을 리그 휴식기 전 마지막 경기인 6월 6일 매북과의 리그컵 경기를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하였다. 해당 소식을 보도했던 KBS뉴스 영상클립 

차범근이 사임 의사를 표하고 가진 첫경기였던 22일 전남과의 리그컵 경기에서는 곽희주가 골을 넣은 후 세러머니로 차범근에게 가서 큰절을 올리기도 하였다.66관련 기사 그리고 차범근의 퇴진을 간절히 원하던 팬들 역시 막상 그와의 이별이 다가오자, 고별전을 앞두고 한 신문사에 그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는 광고를 게재하는 등 팀에게 두개의 별을 선물해준 차붐에게 마지막 예우를 다해주었다. 팀의 변화를 위해서 차범근은 떠나야했지만, 그래도 그가 그동안 안겨준 우승컵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이었다. -수원 서포터즈가 게재했던 신문광고-

결국 차범근은 6월 6일 매북과의 리그컵 경기를 마지막으로 지휘하며 6년 반동안 함께해온 수원과의 이별을 고하게 된다.67  이 경기에서만큼은 수원 서포터들도 그의 앞날을 응원하는 현수막과 응원가 등을 통해 차붐과의 마지막을 함께하였고, 차범근도 경기 종료 이후 진행된 고별식에서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며 수원과의 작별을 알렸다. 관련 기사  그리고 그의 후임 감독으로는 윤성효가 부임하였다....

-팬들의 응원문구가 적힌 롤링페이퍼를 받은 차범근- <차범근의 10시즌 성적(사임 전까지)>

• K리그: 승점 7점으로 15위(2승 1무 8패, 당시 리그 최하위)68 

• 리그컵: A조 3위(2승 2패)69 70 

• FA컵: 32강에서 동국대를 2대0으로 이기며 16강 진출71 

• 아챔: 16강에서 베이징 궈안을 2대0으로 이기며 8강 진출72 

수원 감독으로서의 총평[원본 편집]

강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롱볼 축구를 추구했던 감독이었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번에 차준 볼을 피지컬로 상대를 찍어누르며 받은 뒤 골로 연결하고자 했던 것이 그의 전술 모토.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예전 EPL의 스토크 시티 덕분에 일명 '남자의 축구'라고 불리며 유명세를 탔던 전술인데, 이것이 잘 먹힌 시즌에는 리그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상대팀을 시원시원하게 부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전술이 가장 잘 구현되었던 시기가 바로 08시즌 전반기. 06시즌 중반에 이관우와 백지훈을 영입한 후로는 중앙을 거치는 공격도 병행하였으나,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루트였지 메인 전술은 언제나 이 롱볼 축구였다.

하지만 이 전술이 먹히지 않을 때는 그야말로 흔히 말하는 뻥축(...)이 되어버리며 그 위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차범근의 수원이 못한 시즌에는 그냥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너져버리는 수준으로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 그리고 그의 전술은 피지컬을 전면으로 내세웠기에 선수들의 몸에 꽤나 부담이 갈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의 재임기간 내내 수원은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롱볼축구가 먹히지 않을때도 롱볼만을 추구하는 전술적 유연성의 부재 역시 감독 차범근의 치명적 약점. 결국 이러한 그의 단점이 09시즌과 10시즌의 연속된 부진으로 이어지며 그의 수원 감독 커리어의 종지부를 찍어버리게 된다.

사실 롱볼축구라는 전술 자체가 호불호가 갈리는 전술이기도 하고, 특히 윙어를 중심으로 한 스피드있는 축구를 추구했던 김호 시절부터 수원을 응원해왔던 올드팬들 사이에서는 차붐표 롱볼에 대한 반감이 당시엔 꽤나 강했다. 하지만 말년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원에서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많은 팬들의 머릿속에 08시즌의 파괴력이 강력하게 남아있기에 차붐 시절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팬들 역시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원의 마지막 리그 우승을 이뤄냈던 장본인이라는 점이 수원의 현 상황과 대비되며 팬들로 하여금 그 시절을 더욱 더 그리워하게 만드는 중.

수원 감독 시절 시즌별 성적 총 정리[원본 편집]

시즌 리그 리그컵 FA컵 아챔 비고
2004 우승 4위 16강 출전실패
2005 9위 우승 8강 조별예선 탈락 K리그 슈퍼컵 우승, A3챔피언스컵 우승
2006 준우승 12위 준우승 출전실패
2007 3위 4강 16강

출전실패 73

2008 우승 우승 16강 출전실패
2009 10위 8강 우승 16강

2010

(사임 전까지)

15위 조별예선 3위 16강 진출 8강 진출 2010년 6월 중도 사임

• 수원에서의 총 전적: 241전 102승 69무 70패(승률 약 42%)

수원 및 K리그 관련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엄격한 규율과 선수들의 철저한 자기관리를 중시하는 감독이었다. 선수들의 잘못된 행동에는 확실한 징계를 내렸다고.
  • 리그팬들 사이에선 매강희와의 악연이 유명하다. 1991시즌에 차범근이 현대 호랑이(현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부임할 때 매강희는 현대의 고참 선수였는데, 규율을 중시하는 차범근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근데 이게 축구판에서 흔한 감독과 선수간의 갈등 정도가 아니라 차범근이 선수들에게 영양제를 나눠주자 자신의 몫을 통채로 버리더니 라커룸에서 보란듯이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가하면, 차범근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그림을 걸고 선수들과 함께 다트를 던지는 등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짓거리들을 하였다. 특히 다트 사건은 매강희 본인이 훗날 인터뷰에서 자랑이랍시고 직접 떠벌리면서 리그팬들에게 비난을 듣기도 하였다. 선수가 이런 짓을 하니 차범근 역시 그를 좋아했을리가 없고 이걸 참으면 보살이지 매강희는 결국 차범근와의 갈등 끝에 1992시즌이 끝난 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그리고 훗날 둘은 각각 수원과 매북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팀의 수장으로서 다시 한번 충돌하게 된다. 차붐의 수원 고별전이었던 2010년 6월 6일 매북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매북이 1대3으로 이긴 후에 매강희가 차범근과 악수도 하지 않은 채 바로 들어갔던걸로 봐서는, 이때까지도 차붐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있었던 듯 하다. 본인이 한 짓은 생각 못하고....
  • 2004년 7월 29일에 바르셀로나가 내한하여 차범근의 수원과 친선전을 가졌는데, 수원이 1대0으로 승리하였다! 이때 바르셀로나가 후보를 내보낸 것도 아니고 호나우지뉴, 사비, 푸욜 등 주전 스타선수들을 대부분 출전시켰기에 더욱 놀라웠던 승리. 특히 유고연방 출신의 수원 레프트백 우르모브가 후반에 터뜨린 대포알같은 프리킥 골은 아직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이후 1년 뒤인 2005년 5월 20일에는 첼시가 삼성전자와 스폰서십을 체결한 기념으로 내한하여 수원과 친선전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는 전반에 조 콜에게 실점하며 0대1 패배.

이로부터 2년 뒤인 2007년 7월에 차범근의 수원은 미국에서 열린 친선대회인 '월드 시리즈 오브 풋볼 2007'에 초청받았는데,75  이 대회에 첼시도 초청받으면서 두팀은 2년만에 리턴매치를 가지게 된다. 두팀의 경기는 7월 18일 LA에서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 수원은 후반에 드록바에게 실점하며 다시 한번 0대1로 패하게 된다.

-드록바 골장면 고화질 버젼-

여담으로 여러 커뮤니티에서 흔히 차범근의 위엄이라고 돌아다니는 아래의 짤이 바로 해당 경기 중계때 잡힌 장면이다.

  • 선수들에게 발리슛 연습을 시켰는데, 아무래도 난이도가 있는 기술인만큼 선수들의 슛이 골대를 계속 빗나가자 그것도 못하냐면서 직접 나서 한번에 발리슛을 넣었다는 일화가 카더라로 돌았었다. 그리고 이 썰은 2020년 곽희주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뷰]
  • 아버지인 차범근은 수원에서 감독을 지낸 경력이 있지만, 아들인 차두리는 선수 말년이었던 2013시즌에 북패에 입단하여 2015시즌까지 뛰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2016년 수원과 북패의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수원 구단 측에서 차범근이 수원팬들에게 보내는 영상메시지를 공개한 적이 있다.
  • 2019년 3월 31일 빅버드에서 열렸던 수원과 인천 경기의 식전행사로 진행된 조원희의 은퇴식에 찾아와 옛제자의 선수 커리어 마지막 순간(이었던 상황) 76  을 함께해주었다.

그리고 2020년부터 개인 유튜브를 시작한 조원희는 '조차박'이라는 단어를 밀기 시작하였다. 이는 한국축구 최고의 레전드라고 불리는 손흥민과 차범근, 그리고 박지성을 묶어 말하는 '손차박'을 패러디한 것으로, 조원희가 유튜브를 통해 차범근과 박지성이 자기를 1대1에서 한번도 뚫어본적 없다고 주장하면서 밀기 시작한 단어였다.77  그리고 이를 접한 차범근의 반응은 "원희가 우리하고 일대일이 되냐? 원희야 꿈도 크지...." 물론 조원희가 유튜브에서의 재미를 위해 말하고 다니는 것이므로 이 단어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위 발언 이외에도 조원희를 쥐었다 폈다하는 차붐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

  • 2020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08시즌 우승 당시를 회상하기도 하였다. 당시 수원에서 뛰었던 옛제자들도 인터뷰에 참여하였다.
  • 2004시즌부터 6년동안 차범근을 보좌했던 이임생 수석코치는 이후 2019시즌에 수원의 5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하지만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부임한지 1년 반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06시즌엔 플레잉코치로, 07시즌과 08시즌에는 전임코치로 차범근과 함께했던 박건하가 이임생의 뒤를 이어 수원의 6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