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지지대더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안양 LG 치타스 1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K리그를 대표하던 라이벌매치 중 하나

수원의 전성기를 함께해온 라이벌매치

하지만 북패의 연고이전으로 인해 역사속으로 사라진 라이벌매치

소개[원본 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안양 LG 치타스의 매치업을 지칭하는 명칭.

명칭[원본 편집]

명칭은 경수산업도로의 의왕시 고천동에서 수원시 이목동·파장동으로 넘어가는 구간 중 하나인 지지대(遲遲臺) 고개2 에서 땄다. 그러나 실제로 수원과 안양간의 경기가 실제할때에는 이 명칭이 쓰이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는 '수도권 더비'라는 명칭을 많이 썼고, 이 외에는 '1번국도 더비', '경부선 더비', '경기남부 더비'라는 명칭 등도 쓰였다. 그리고 K리그팬들이 즐겨쓰던 명칭은 수원을 비하할때 자주 인용되는 동물인 닭과 안양의 마스코트인 치타를 합친 '치닭전'(....). 지지대더비라는 명칭이 처음 퍼진 것은 2003년에 싸커월드의 한 안양팬이 쓴것이 그 시작이었는데, 해당 유저가 2013년에 쓴 글에 따르면 작명시기에는 LG의 연고 이전설이 이미 암암리에 퍼져가던 때였으며, 이로 인해 안양이 K리그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걸 막기 위해 북패가 창단한 후에도 수원과의 라이벌매치 명칭으로 쓰지 못할 명칭을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래 링크글에서 더 자세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볼 수 있다.

지지대 더비 명칭 최초 작명자가 오리지널 클라시코라는 새로운 더비명칭에 대해 쓴 글

더비를 이루는 주체 중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라고 할 수 있는 양 팬들의 대립 중 한 쪽이 안양에서 북패로 완전히 바뀐 슈퍼매치와는 엄연히 별개의 더비이다. 물론 안양 LG 치타스를 응원하다가 팀 따라 북패로 팬고이전한 팬들도 없진 않겠지만 안양팬 전체, 북패빠 전체 중에서 그 비중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슈퍼매치가 그 이름이 붙고 흥행하기 시작한 것은 북패란 팀이 생긴 직후도 아니고 몇 년 후였다. 따라서 지지대 더비와 슈퍼매치 사이에는 단절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별도의 더비로 볼 수 있는 것이다.3 

역사[원본 편집]

수원은 신생팀으로 창단된 이후 1996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던 LG치타스는 같은 년도에 시행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인해 안양을 연고로 자리잡게 되면서 안양LG치타스로 재탄생한다. 이렇게 아예 신생구단인 수원, 그리고 새 연고지에서 출발하게 된 안양간의 첫 맞대결은 96시즌 4월 1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리그컵 경기였는데 수원에서는 조현두와 박건하가, 안양에서는 자심과 스카첸코가 각각 골을 넣으며 2대2 무승부로 끝났다. 그뒤 6월 16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두팀의 사상 첫 리그 경기에서는 수원 박건하와 알라올이 골을 넣으며 2대0으로 승리하였다. 이때도 두 지역간의 근접성 때문인지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당시 안양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않았기 때문에 라이벌이라고 칭할 정도로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안양 감독 시절의 조광래-4 

하지만 두팀의 관계는 1999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나빠지는데, 이에 대한 원인으로는 두 인물을 꼽을 수 있다. 첫번째 인물은 조광래. 조광래는 원래 수원 초대 감독인 김호와 깊은 연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김호가 1992년에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도 조광래를 코치로 불러들였고, 그가 96시즌에 수원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할 때도 조광래를 코치로 선임하였다. 하지만 수원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되고,5  결국 조광래는 97시즌을 끝으로 수원을 떠난다. 그 뒤 조광래가 99시즌에 감독으로 부임한 팀이 바로 안양. 당시 수원팬들은 자신들의 초대 코치진이었던 인물이 안양의 감독으로 부임한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그쳤으면 수원과 안양은 그렇게까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사이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팀의 사이에 기름을 부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치타스 시절에 수원을 상대로 뛰는 서정원- -99시즌 수원에 입단한 서정원-

바로 안양의 스타였던 서정원이 조광래가 안양 감독으로 부임한 시기와 비슷한 때에 수원으로 이적한 것이다! 이 이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서정원은 1992시즌 치타스에서 프로데뷔를 하여 1997시즌까지 뛰며 안양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서정원은 뛰어난 실력으로 인해 몇몇 유럽팀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왔었고, 이에 서정원은 유럽진출을 지속적으로 원했으나 안양 측이 그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그러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97-98시즌에 리그앙의 RC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는데에 성공한다. 리그앙에 진출한 서정원은 첫시즌에 좋은 활약을 선보였으나, 그 다음시즌인 98-99시즌부터 팀에 새로 부임한 감독이 그가 아시아 선수라는 이유로 기용하지 않으면서 주전에서 밀리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정원은 국내 복귀를 추진하면서 처음에는 당연히 친정팀인 안양과의 협상을 시작하였는데, 둘간의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을뿐더러 자신의 유럽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안양의 과거 모습으로 인해 서정원은 타팀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때 그에게 손을 내민 팀이 바로 수원. 애초에 서정원은 국내 복귀를 추진하면서 국내에 계속 머물 생각이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유럽무대에 다시 도전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수원 측이 유럽에서 오퍼가 오면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고 제안하면서 결국 99시즌 서정원 영입에 성공한다.6  서정원이 안양에 다시 돌아올꺼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안양팬들은 이에 큰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서정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고, 서정원 유니폼에 화형식을 거행할 정도로 당시 안양팬들의 반응은 격렬하였다. 이렇게 두팀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채 99시즌이 개막하였고, 전 시즌 리그 우승팀인 수원과 FA컵 우승팀인 안양은 3월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슈퍼컵 경기에서 시즌 첫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이 경기에서 수원은 샤샤의 해트트릭,7  그리고 비탈리와 신홍기가 각각 한골씩 득점함으로써 백형진이 한골을 넣은 안양을 5대1로 대파하고 슈퍼컵 트로피를 차지하였다.

(서정원의 수원 이적 관련 스토리를 다뤘던 다큐. 수원이 5대1로 이겼던 슈퍼컵 경기 영상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두팀간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99시즌 두팀간의 첫 리그경기였던 6월 2일 경기에서는 수원 신홍기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1대0 승리를 챙긴다. 해당 경기를 보도했던 KBS뉴스 영상 클립 그 뒤 둘은 8월 11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리그컵 결승에서도 만났는데, 수원은 샤샤의 멀티골과 신홍기와 고종수가 각각 한골을 득점하며 정광민이 멀티골을 기록한 안양을 4대2로 누르고 리그컵 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데니스가 기가 막힌 패스로 고종수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장면은 이날 경기 최고의 명장면. 해당 경기를 보도했던 KBS뉴스 영상 클립 하지만 수원은 10월 6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리그 경기에서는 2대1로 앞서고 있다가 경기 종료 직전 추가시간에 안양 정현호와 정광민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2대3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기도 하였다.

두팀간의 감정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지속되었다. 수원팬들은 안양을 비하하는 용어로 '치토스'를, 안양팬들은 수원을 비하하는 용어로 '치킨' 혹은 '닭날개'라고 서로를 지칭하며 도발하기도.... 2002년 4월 5일에는 아시안클럽 챔피언십8  결승전으로 이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지지대더비가 펼쳐졌는데, 두팀은 0대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수원이 4대2로 승리하며 2년 연속 아시아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는데에 성공하였다. 해당 경기를 보도했던 기사 -02년 아시안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수원-

그리고 2003시즌에 지지대더비를 불태운 또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안양 소속이었던 브라질 선수 뚜따가 해당 시즌에 수원으로 이적했던 사건이었다. 2002시즌에 안양에 입단한 뚜따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안양의 공격을 이끌었다. 문제는 실력과 별개로 인성이 그렇게 좋은 선수는 아니었고, 플레이 또한 개인적인 플레이를 선호하여 조광래와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9  이로 인해 뚜따는 시즌이 끝난 뒤 안양을 나왔고, 이를 지켜보던 수원은 재빠르게 뚜따에게 계약을 제시하여 그를 영입하는데에 성공하였다. 서정원에 이어서 다시 한번 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를 수원에 뺏긴 안양팬들은 분개하였고, 이는 해당 시즌 지지대더비가 더욱 더 치열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03시즌 지지대더비때 수원팬들이 걸었던 안양 도발 걸개. 굉장히 선정적인 내용의 걸개이지만 지지대더비를 말할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걸개라 부득이하게 업로드하였다) (이에 대한 안양팬들의 대응 걸개. 참고로 치타가 두손에 쥐고 있는 닭들의 백넘버인 14번과 9번은 각각 당시 서정원과 뚜따의 백넘버였다) (지지대더비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

이런 분위기에서 훗날 수원팬들에게 최고의 지지대더비가 펼쳐졌던 시즌이라 평가받는 03시즌이 시작된다. 해당 시즌 첫 지지대더비는 5월 18일 빅버드에서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 서정원은 자신의 친정팀을 상대로 전반에 자신의 커리어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아름다운 바이시클 킥을 성공시키며 수원의 선제골을 득점한다. 이후 안양 김동진이 곧바로 동점골을 기록하지만, 이번에는 역시 안양 출신인 뚜따가 경기 막판에 결승골을 넣으며 안양에게 다시 한번 비수를 꽂아버리고10  경기 종료 직전 추가시간에는 수원 가비가 쐐기골까지 넣으면서 경기는 3대1 수원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수원팬들 입장에서는 라이벌팀 출신의 두 선수의 골로 라이벌전을 이겼으니 더할 나위없이 기쁜 날이었고, 반대로 안양팬들 입장에서는 아마 1년뒤 당할 야반도주 다음으로 끔찍한 날이 아니었을까 예상해본다....

이후 6월 22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수원의 故정용훈11 과 김두현, 그리고 안양의 정조국과 히카르도가 각각 골을 기록하면서 2대2 무승부를 거두었고, 9월 14일 빅버드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수원 나드손과 에닝요12 의 골로 2대0 승리를 따내었다. 그 뒤 10월 8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시즌 네번째이자 결과적으로 사상 마지막 지지대더비가 되어버린 경기가 펼쳐졌는데, 전반에 안양 박요셉이 선제골을 넣으며 안양이 앞서갔으나 수원 나드손이 후반 41분과 43분에 연달아 멀티골을 넣으며 2대1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게 된다. 이 경기 또한 수원팬들이 지지대더비하면 많이 떠올리는 경기 중 하나이다.

(서정원의 바이시클킥이 나온 5월 18일 경기, 그리고 나드손이 멀티골을 넣은 10월 8일 경기 골모음 영상)

이렇게 지지대더비는 양팀간의 감정이 점점 더 타오르며 K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매치로 남을 줄 알았으나, 다음해인 2004년 북패의 연고이전 덕분에 안양LG치타스와 지지대더비는 다소 허무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역대 전적 및 기록[원본 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안양 LG 치타스

수원종합운동장(1995~2001),

빅버드(2001~)

홈구장 안양종합운동장
38전 16승 11무 11패 역대 총 전적 38전 11승 11무 16패
24전 11승 4무 9패 리그 전적 24전 9승 4무 11패
10전 4승 4무 2패 리그컵 전적 10전 2승 4무 4패
1전 1무

FA컵 전적 13

1전 1무
1전 1승 K리그 슈퍼컵 전적 1전 1패
2전 2무 아시안클럽 챔피언십 2전 2무

막상막하의 전적이나, 수원이 근소하게 앞선 모습이다.

• 지지대더비 첫 골: 안양 자심(1996년 4월 10일 리그컵 경기)

• 지지대더비 마지막 골: 수원 나드손(2003년 10월 8일)

• 최다 득점자: 수원 박건하, 샤샤(각각 7골)

• 지지대더비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서정원은 안양에서 수원을 상대로 3골을, 그리고 수원에서 안양을 상대로 3골을 넣으며 지지대더비에서 총 6골을 득점하였다.

• 지지대더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 수원 샤샤(1999년 3월 20일 K리그 슈퍼컵 경기)

• 최다 득점차 경기

1. 1999년 3월 20일 K리그 슈퍼컵 경기(5대1 승)

2. 1999년 7월 21일 경기(4대0 승)14 

• 양팀 도합 최다 득점 경기: 2000년 4월 9일 리그컵 경기(5대4 승) 해당 경기를 보도했던 KBS뉴스 영상 클립

• 최다 관중 경기: 38245명(2002년 8월 18일 빅버드에서의 홈경기)

양팀 모두에서 뛰었던 선수[원본 편집]

※ 양팀간의 다이렉트 이적은 화살표로 표시

  • 서정원: 안양(1992~1997), 15   수원(1999~2004)

  • 박정석 16  : 수원(1996~2001), 안양(2001~2003) 17  
  • 비탈리: 수원(1998~2000), 안양(2001) 18  
  • 뚜따: 안양(2002) → 수원(2003)
  • 이정수: 안양(2002~2003), 수원(2006~2008, 2016~2017)
  • 한동원 19  : 안양(2002~2003), 수원(2012)

양팀의 서포터들[원본 편집]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두팀이었던만큼, 지지대더비는 양팀 서포터들의 응원열기 또한 뜨거웠다. 특히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의 카드섹션, 그리고 안양 서포터 '안양 레드 치타스(줄여서 그냥 '레드'라고 자주 불렀다)'20 의 홍염 퍼포먼스는 당시 지지대더비의 또하나의 관전 포인트. 참고로 현재 K리그는 경기장 내에서의 홍염을 금지하고 있기에 지금와서 경기장에서 홍염 붙였다가는 애꿎은 구단만 벌금을 물어내야한다.

기타[원본 편집]

• 살벌했던 분위기의 매치였던만큼 팬들간의 각종 사건사고도 꽤나 발생했는데, 이중 제일 황당했던 사건은 빅버드 닭 투척(!) 사건이었다. 2002시즌 11월 13일 빅버드에서 지지대더비가 진행되던 중, 후반에 일부 안양 서포터들이 살아있는 닭을 그라운드를 향해 던졌던 사건....

• 수원의 레전드 센터백인 곽희주는 안양 유니폼을 입을 뻔한 적이 있었다. 곽희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안양 입단테스트를 봤는데, 이 테스트에서 합격을 했던 것. 하지만 테스트를 같이 봤던 친구가 탈락하자 곽희주는 맘이 편치 않아 안양 입단을 거절하고 대신 대학에 진학하였고, 대학 졸업후 수원에 입단하면서 그의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하마터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곽대장이 없을 뻔....

• 2013시즌에 FC안양이 창단되면서 지지대더비 부활 여부에 대한 K리그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이에 수원 서포터즈와 FC안양 서포터즈는 공동 성명문을 발표하면서 두팀간의 경기를 '오리지널 클라시코'라 명명하기로 합의하는데, 이에 대해 수원팬들 사이에서는 말이 좀 있다. 일단 라이벌전을 두팀의 서포터즈들이 만나서 명칭을 합의하는 그림 자체도 뭔가 좀 부자연스럽지만, 무엇보다도 수원과 FC안양을 애써 라이벌 관계로 엮는게 여러모로 억지스럽다는 것. 우선 안양LG치타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가 당시에 9년이나 지났던 때였고, 그 이후에 유입된 수원팬들 입장에서는 FC안양에 라이벌 감정을 대입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다 두팀은 각각 K리그1과 K리그2에 속해있기에 맞붙을 일도 사실상 없다고 봐야하는 상황.21  수원FC와의 수원더비 역시 두팀이 속한 리그가 달라 맞대결을 펼칠 일이 거의 없지만, 이쪽은 적어도 같은 연고라는 명분이라도 있기에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더비이다. 하지만 오리지널 클라시코라고 명명된 이 매치업은 라이벌매치가 갖춰야 할 요소가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사실. 때문에 현재 수원팬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으로 라이벌매치라고 인식되고 있는 매치업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