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조원희

조투소

수원의 중원을 든든히 받쳐주며 08시즌 팀의 더블에 공헌했던 언성 히어로

프로필[원본 편집]

  • 이   름: 조원희 (趙源熙 / Cho Won-Hee)
  • 국   적: 대한민국
  • 출생일: 1983년 4월 17일
  • 출생지: 서울특별시
  • 신   체: 177cm, 72kg
  • 학   력: 논현초 → 배재중 → 배재고
  • 소속팀: 울산 현대 (2002 ~ 2004), 광주 상무 불사조 (2002.12 ~ 2004.12, 군복무 임대) → 수원 삼성 블루윙즈(2005 ~ 2008) → 위건 애슬레틱 (2009 ~ 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임대) → 광저우 에버그란데 (2011 ~ 2012) → 우한 줘얼 (2012 ~ 2014), 매남 (2014, 임대) → 오미야 아르디자 (2014) → 서울 이랜드 (2015)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 ~ 2018) → 수원FC (2020, 플레잉코치)
  • 국가대표 기록: 36경기 1골
  •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풀백, 라이트윙백
  • 종   교: 개신교
  • 애   칭: 조투소

클럽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원본 편집]

본래 초등학생때까지 쇼트트랙을 했던 조원희는 초등 5학년때 학교에 축구부가 신설되면서 축구로 전향하였다. 유년 시절 조원희의 포지션은 공격수로, 이후 축구 명문인 배재중과 배재고에서 주장까지 맡으며 유소년 쪽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울산 현대 입단, 그리고 광주 상무 임대[원본 편집]

조원희는 원래 고교 졸업 이후에 일본 쪽으로 대학을 진학하려고 하였으나, 조민국 당시 고려대 감독의 권유로 졸업 이후 대학을 가지 않고 2002시즌 K리그 신인선발의 번외지명을 통해 연습생 신분1 으로 울산에 입단하였다. 당시 조원희는 연령별 대표팀에도 선발될 정도로 그 잠재력은 인정받았지만, 정작 구단에서는 별 기회를 받지 못하며 1경기 출전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프로데뷔시즌을 마쳐야했다.

팀에서 사실상 전력외로 분류된 조원희는 시즌을 마친 2002년 12월 아버지의 권유를 받고 군입대를 한다. 이렇게 2003시즌부터 광주 상무에서 뛰게 된 조원희는 이강조 당시 상무 감독의 지시로 공격수에서 윙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이후 상무에서 꽤나 많은 경기에 출전하면서 점점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상무에서 03시즌 리그 23경기 2골, 04시즌 리그 21경기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운 뒤 2004년 12월 전역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1기[원본 편집]

조원희의 커리어 하이

04년 12월 상무에서 전역한 후에는 수원삼성으로 이적하며 2005시즌부터 빅버드에서 뛰기 시작하였다. 등번호는 23번. 상무 시절과 마찬가지로 라이트윙백 혹은 풀백으로 주로 뛰었는데, 측면에서의 다부진 돌파와 준수한 스피드로 이적 첫 시즌부터 수원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5월 11일날 열린 호앙 안 지아 라이2 와의 아챔 조별예선경기에서는 수원 데뷔골까지 넣으면서 팀의 6대0 대승에 일조하기도. 그는 해당 시즌 리그에서 총 20경기를 뛰었고, 수원팬들이 뽑은 올해의 최우수 선수와 2005 K리그 시즌 베스트일레븐까지 선정되면서 이대로 탄탄대로만을 걷는 듯 하였다.

하지만 2006시즌부터 조원희의 약점이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돌파능력은 준수했던 그였지만 크로스는 그에 미치지 못하였고, 특히 오버래핑 이후 수비 복귀가 늦는 단점 때문에 수원팬들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풀백이라는 비판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06시즌까지는 리그 23경기에 출전하며 주전으로 나섰으나, 다음 시즌인 2007시즌에는 주전에서 밀리며 시즌 전반기에는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즌 중반에 이관우, 김남일 등 중앙미드필더 자원들이 줄줄이 부상을 당하자 차범근 당시 수원 감독이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기가 막힌 한 수가 되어 시즌 중반부터 그는 다시 주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07시즌 스탯은 리그 14경기 출전.

이렇게 수미로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에 성공한 조원희는 다음 시즌인 2008시즌에는 등번호를 6번으로 바꾸고 경기에 임하였다.3  그리고 수미로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해당 시즌 수원은 마토와 이정수, 그리고 곽희주를 주축으로 한 쓰리백으로 견고한 수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조원희는 넓은 활동량과 적극적인 몸싸움을 바탕으로 이들 수비라인을 보호해주면서 수원의 짠물수비에 크게 공헌하였고, 이 모습을 본 수원팬들 역시 다시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나타내었다. 가투소를 패러디한 '조투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 10월 18일날 열린 광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는 수원 입단 이후 첫 리그골까지 터뜨리며 팀의 2대0 승리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이후로도 그의 폼은 여전하였고, 북패와의 챔피언결정전 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수원의 리그 우승과 리그컵 더블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조원희의 08시즌 리그 스탯은 25경기 1골.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 덕분에 수원은 더블이라는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그는 해당 시즌에 리그 최고의 수미로서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고, 이를 인정받아 2008 K리그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며 커리어 사상 두번째로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뽑히는 영광까지 누릴 수 있었다. 해당 시즌에 조원희와 같이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된 수원 선수로는 이운재와 마토, 그리고 녹두가 있었다.

위건 애슬레틱 시절[원본 편집]

-맨유와 위건의 경기에서 박지성과 맞대결을 펼쳤던 조원희-

08시즌 수원에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덕분에 조원희는 몇몇 해외 구단의 관심을 끌었고, 2009년 1월 프랑스 리그앙의 AS모나코가 그에게 입단 테스트까지 제안하였다. 입단 테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그대로 모나코에 입단하는걸로 보였으나, 원래 모나코를 떠나기로 했던 프레디 아두4 가 팀에 잔류하면서 외국인 쿼터가 꽉 차버리는 변수가 발생하고 만다. 중간에 붕 떠버리고만 조원희의 유럽무대 도전은 이렇게 불발되는 듯 하였으나, 유럽 에이전트가 스티브 브루스 당시 EPL 위건 애슬레틱 감독에게 그의 영입을 제안하였고 브루스 감독이 입단 테스트를 수락하면서 조원희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이 입단 테스트에서도 합격점을 받으며 09년 2월에 위건에 입단, 사상 여섯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될 수 있었던 조원희였다.5  등번호는 5번.

이렇게 08-09시즌 중반부터 EPL에 합류한 조원희였지만 입단 직후에는 부상 등으로 인해 경기에 나서지 못하였고, 시즌 막판인 5월 16일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야 선발출전하며 EPL 데뷔전을 치뤘는데 이것이 해당 시즌 조원희의 유일한 출전경기였다. 다음 시즌인 09-10시즌에는 위건 감독이 스티브 브루스에서 로베르토 마르티네스로 바뀌었고, 조원희는 리그 개막전인 8월 15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교체로 출전하였다. 이후 30일 에버튼전에서도 교체출전하였으나, 그 뒤로는 오랫동안 벤치에만 앉아있어야했던 조원희였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2010년 남아공월드컵 출전을 노리고 있었던 조원희는 당시에 상당히 조급해했다고. 이후 11월 22일 토트넘전에서 경기종료 직전에 교체로 나오며 약 세달만에 출전할 수 있었던 그였지만, 이미 위건이 0대7이라는 참담한 스코어(....)로 지고 있을 때 투입되었던거라 큰 의미는 없었다.6  조원희가 위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던 차범근 수원 감독은 영국으로 두번이나 직접 와서 마르티네스 감독과 그의 수원 복귀를 위한 미팅을 가졌고, 남아공월드컵을 노리던 조원희 역시 수원 복귀를 강력하게 원하였다고 한다. 이에 마르티네스 감독이 월드컵 출전을 위해 후반기부터 출전기회를 늘려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조원희의 맘은 이미 떠나있었고, 결국 해당 시즌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임대 형식으로 수원 복귀를 확정지었다.7  이후 12월 30일 맨유와의 경기에서 위건에서의 두번째 선발출전경기를 가졌고, 이것이 그가 위건에서 뛴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8  참고로 이 경기는 박지성과 조원희의 맞대결로 당시 국내에서도 꽤나 화제가 되었던 경기였다. 이 경기를 보도했던 KBS뉴스 영상클립

이렇게 조원희는 위건에서의 1년동안 다섯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한 아쉬운 성적으로 EPL 도전을 마치게 된다. 참고로 훗날 조원희가 밝히기로는 당시 팀내에서 그를 향한 인종차별까지 있었기에 심리적으로도 상당히 위축되었다고.... 이러한 위축이 그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가 향수병을 앓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는데, 이러한 환경이 영향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부분.

임대로 수원에 복귀하다[원본 편집]

힘들었던 1년간의 EPL 생활을 마치고 2010시즌 임대 형식으로 수원에 복귀하였다. 등번호는 08시즌 수원에서 달았던 6번 그대로였으며, 공백기가 1년밖에 안되어서인지 복귀 시즌부터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2월 27일 리그 개막전인 매북전을 통해 수원 복귀전을 치뤘는데, 경기 시작 4분만에 환상적인 중거리골을 넣으며 화끈한 복귀 신고를 하였다. 그러나 팀은 이후 매북에게 내리 3골을 내주며 1대3 역전패를 당하였다.

이후로도 조원희는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였으나, 당시 수원의 경기력은 굉장히 부진하였고 조원희 역시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차범근이 시즌 중반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안고 자진 사퇴하였으며, 후임으로는 윤성효 감독이 선임되었다. 윤성효는 부임 초에는 조원희에게 기회를 부여하였으나 그의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하였고, 결국 시즌 후반부터는 그를 팀전력에서 제외하였다. 조원희의 10시즌 리그 스탯은 20경기 1골. 시즌 종료 후에는 윤성효의 리빌딩 정책에 따라 팀의 새 시즌 구상에서 제외되었다.

중국 리그 시절[원본 편집]

-광저우 시절에 아챔 매북전에서 이동국을 상대로 몸싸움을 하는 조원희-

2010시즌 이후 수원은 울산에서 오장은을 영입하기 위한 맞트레이드 카드로 조원희를 활용하려했으나,9  조원희의 거부로 무산되었다.10  이후 그는 해외 이적을 모색하였고, 2011시즌부로 중국의 광저우 에버그란데에 입단하면서 중국 리그에서 새 출발을 시작하였다. 당시 광저우 감독은 이장수 감독으로, 조원희는 그의 밑에서 주전으로 뛰며 해당 시즌 광저우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다음 시즌인 2012시즌 전반기까지도 조원희는 팀의 주전이었으나, 시즌 중반에 이장수 감독이 경질되고 마르첼로 리피가 새 감독으로 오면서 그의 입지가 점차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중국 1부리그로의 승격이 확정된 우한 줘얼로 이적한다. 여담으로 12시즌 여름이적시장때 김영권이 광저우로 오면서 둘이 잠시나마 한솥밥을 먹기도 하였다.

2013시즌부터 우한에서 뛰게된 조원희는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며 시즌 중반에는 주장 완장까지 넘겨 받았으나,11  팀 자체가 워낙 약체였기에 1부로 승격한지 한시즌만에 다시 바로 강등되었다.

매남 임대, 그리고 J리그 이적[원본 편집]

-매남에서의 조원희-

우한 줘얼이 2부리그로 강등되자 2014시즌 매남으로 임대를 오면서 4년만에 K리그로 복귀하였다. 시민 구단인 매남이 조원희의 연봉을 감당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는데, 조원희가 자신의 연봉을 깎는 대신 해외 구단에서 오퍼가 오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를 수용할 것을 조건으로 임대를 갔다고 한다. 이렇게 매남 생활을 시작하게 된 조원희는 가자마자 팀의 핵심으로 거듭났지만, 임대를 온지 반년만에 J1리그의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완전 이적 오퍼가 오게 된다. 매남 측은 당연히 조원희가 시즌 말까지는 남아주기를 바랬지만, 선수 본인의 의지도 있었고 이미 계약을 하면서 뱉은 말이 있었기에 그를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매남 측도 반시즌만에 오퍼가 올줄은 몰랐을 듯 하다....

-오미야에서의 조원희-

이렇게 14시즌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J1리그 오미야로 완전이적한 조원희였지만, 정작 이곳에서는 반시즌동안 경기에 별로 나서지 못하였다. 리그 하위권이었던 팀 역시 반등에 실패하며 그대로 J2리그 강등 확정....

서울 이랜드 시절[원본 편집]

2015시즌부로 당시 신생팀이었던 서울 이랜드로 이적하며 팀의 창단멤버가 되었다. 이랜드는 해당 시즌부터 2부리그에 참가하였고, 조원희 역시 팀의 주전으로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였다. 5월 2일날 열린 수원FC와의 경기에서는 멋진 원투패스를 통해 이랜드에서의 첫골을 득점하며 이랜드 사상 리그 첫승에 공헌하였다.

(조원희 골은 영상 3분 21초부터)12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였던 10일 매남전에서는 멋진 중거리슛으로 두경기 연속골을 득점하였다.

23일날 있었던 고양 Hi FC13 와의 경기에서도 중거리슛으로 득점에 성공하였다.

조원희는 이후로도 경기에 개근하였고, 7월 4일날 열린 강원과의 경기에서는14  상대 키퍼의 실책 덕분에 시즌 4호골을 득점할 수 있었다.

(조원희 골은 영상 3분 47초부터)

이후 8월 8일날 열린 수원FC와의 경기에서 다시 한번 득점에 성공하였고, 시즌이 끝날때까지 팀내에서 주전 자리를 지켰다. 이랜드에서의 그의 15시즌 스탯은 40경기 5골이었으며, 2015 K리그 챌린지15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다만 이랜드 팬들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평이 갈렸는데, 중원에서 경기를 잘 조율했다는 호평과 공을 끌어서 오히려 공격 템포를 늦췄으며 기복 또한 있었다는 비판이 공존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3기, 그리고 첫번째 은퇴[원본 편집]

이랜드에서의 생활을 1년만에 정리하고 2016시즌부로 서정원 체제의 수원으로 이적하면서 수원에서의 세번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등번호는 8번. 그는 2월 24일날 열린 감바 오사카와의 아챔 조별예선경기에 선발출전하며 수원 복귀전을 치뤘고, 이후 3월 20일 전남전에 선발출전하며 수원 복귀 이후 첫 리그 경기를 가졌다. 16시즌 전반기까지의 수원은 라이트백 자원들의 부상 이탈이 심하였고 이에 따라 조원희는 간만에 라이트백으로 출전하였는데, 너무 오랜만에 그 자리에 뛰어서였는지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해당 시즌 팀 경기력 부진의 주범 중 한명으로 수원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라이트백 자원들이 돌아오면서 조원희는 다시 수미 자리에서 뛸 수 있었고, 이 자리에서는 여지없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번 조투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7월 31일날 열린 남패전에서는 팀이 4대3으로 간신히 앞서고 있던 후반 42분에 리드를 지키기 위해 투입되었는데, 오히려 경기 종료 직전에 각도가 거의 없던 상대 골망의 왼쪽 측면에서 쐐기골을 득점하면서 수원 복귀골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덕분에 팀은 5대3으로 승리.16 그의 16시즌 스탯은 35경기 1골로, 시즌 중반부터 보여준 모습만 본다면 베테랑으로서의 품격을 다시 보여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2017시즌부터는 폼이 상당히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때 이미 우리나라 나이로 35살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긴한데.... 6월 25일 강원전에서 팀이 3대2로 앞서고 있던 후반 40분에 팀의 리드를 지키기 위해 교체투입되었는데, 경기 종료 직전에 상대 크로스를 막겠다고 머리를 갖다댄게 수원 골대 쪽으로 기가 막히게 빨려들어가면서 3대3 동점을 허용해버리고 만다.... 이 장면과 그뒤에 그대로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원희를 비추는 중계화면은 이후로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명장면(?). 결국 경기는 그대로 3대3으로 종료되고, 수원팬들도 그대로 뒷목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17 

조원희의 이 자책골은 K리그 팬덤 밖에까지도 화제가 되었는데, 이 장면을 올린 한 유튜브 영상이 2021년 1월 기준으로 조회수 415만회라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18  이 자책골 이외에도 17시즌 조원희의 폼은 전반적으로 많이 하락한 상태였고, 해당 시즌에 총 31경기를 나오기는 했으나 이미 그의 나이 때문에라도 그에 대한 수원팬들의 기대치는 많이 떨어져있었다. 그러나....

2018시즌 초반에 다시 조투소로서의 위엄을 회복하며 수원팬들로부터 회춘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최고 전성기라고 불리는 08시즌때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당시의 조원희는 한국나이로 36살인 노장이었기에 더욱 더 놀라운 부분이었다. 특히 5월 16일날 열린 울산과의 아챔 16강 2차전에서는 중원을 말그대로 쓸어담으며 팀의 3대0 대승에 공헌, 수원의 7년만의 아챔 8강 진출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즌 중반에 구단에서 공개한 인터뷰 영상-

하지만 나이 때문인지 시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그의 폼은 다시 급격하게 떨어졌고, 시즌 중반까지 팀 상승세의 원동력이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시즌 후반부 팀 하락세의 원인 중 한명으로 지적받게된다. 물론 18시즌 수원은 리그와 FA컵, 그리고 아챔이라는 세개대회를 병행하면서 시즌이 진행될수록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모두 퍼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36살의 노장을 대체할 자원이 없던 팀의 미드필더 뎁스 역시 고려해야될 부분이긴 하다. 이렇게 조원희는 18시즌에 총 31경기에 출전하며 만족감과 아쉬움이 공존한 채로 시즌을 마쳤으며, 시즌이 끝난 뒤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에 구단에서는 2019시즌 3월 31일날 열린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식전행사로 그의 은퇴식을 치뤄주었다. 은퇴식에는 그의 옛 스승인 차범근 전 수원 감독도 찾아와 오랫동안 고생한 제자의 커리어 마지막(이였던) 순간을 함께해주었다.

여담으로 이 경기를 중계한 JTBC스포츠는 수원의 선발 라인업을 소개하면서 선수들의 얼굴을 모두 조원희로 띄우기도 하였다....

그가 수원삼성에서의 여덟시즌동안 남긴 총 스탯은 239경기 4골.

10. 잠깐의 공백기[원본 편집]

현역 은퇴 이후 2019년부터 JTBC스포츠의 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으나, 별로 좋은 평을 듣지 못하고(....) 1년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2019년에 인기 축구 유튜브 채널인 '슛포러브'에 출연, 슛포러브 직원들을 훈련시키는 '조투소의 조밥탈출'(....)이라는 컨텐츠를 진행하며 대중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에는 '이거해조 원희형'이라는 이름의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는데, 이것이 상당한 인기를 끌어 21년 1월 기준으로 구독자 18만명을 보유한 유튜버로 거듭나게 된다.

2020시즌을 앞두고 수원삼성의 코치진으로 합류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으나, 본인이 고사하였다고 알려져있다.

은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운동하는 모습을 꾸준히 공개하였는데, 팬들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들까지도 현역 때보다 오히려 몸이 더 좋아진거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죽하면 '은퇴형 미드필더'라는 드립까지 나왔을 정도.... 때문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현역으로 다시 복귀해야되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곤 하였는데....

11. 수원FC로 잠시 현역에 복귀하다[원본 편집]

2020년 7월, 이임생 당시 수원삼성 감독의 제안으로 수원삼성에 현역 복귀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당시 수원삼성은 최성근이 장기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었고, 때문에 유일하게 믿을 수미 자원이 고승범 정도였기에 1년 반이라는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수원삼성팬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얼마 못가 이임생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없던 얘기가 되어버렸고, 이로 인해 그의 현역 복귀는 무산되는듯 하였으나 이때 K리그2의 수원FC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후 그는 입단 테스트에서 합격점을 받으며 20년 7월부로 수원FC의 플레잉코치로 합류, 은퇴한 지 1년 반만에 현역에 복귀하게 된다. 이 상황을 지켜본 수원삼성팬들은 꽤나 아쉬워했는데, 그에게서 현역 말년때의 곽희주와 같은 역할을 기대할수도 있었기에 더욱 아쉬워했던 것으로 보인다.19 밑에 영상을 보면 주변에서 몸이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했던 반응들이 실제로 그가 현역 복귀를 결심하는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서정원의 조언도 그의 현역 복귀 결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관련 기사

이렇게 2020시즌 중반부터 K리그2 수원FC에서 뛰게 된 조원희는 8월 1일 안산 그리너스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현역 복귀전을 치뤘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백기가 있다보니 경기력이 완전히 돌아온 모습은 아니었으며, 체력 문제 때문인지 전반 40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교체되었다. 이후로도 보통의 플레잉코치들이 그러듯 경기 자체에는 많이 출전하진 못했지만, 코치의 일원으로 팀 상승세에 일조하며 해당 시즌 수원FC의 K리그1 승격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백기 때문에 선수로서는 경쟁력이 많이 밀렸던게 사실이고, 때문에 시즌 종료 후 반시즌만에 다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 경력[원본 편집]

2005년 수원삼성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드보카트 당시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았고, 그해 10월 12일날 열린 이란과의 친선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뤘다.20  그리고 경기 시작 59초만에 A매치 데뷔골을 득점하였는데, 조원희의 슛이 이란 선수 세명이나 맞고 굴절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이 골은 당구의 쓰리쿠션을 연상시킨다하여 '쓰리쿠션슛', 그리고 당시 인기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1의 유닛인 뮤탈리스크의 공격 모션을 연상시킨다하여 '뮤탈슛' 등으로 불리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골은 한국 성인대표팀 사상 네번째로 이른 시간에 들어간 득점이기도. 대표팀은 조원희의 골에 힘입어 이란을 2대0으로 꺾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아드보카트는 조원희를 꾸준히 실험해보았고, 결국 2006년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승선하는데에 성공하였다. 다만 월드컵 본선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하였다. 독일월드컵 이후 대표팀 감독이 故 베어벡 감독으로 바뀐 후에도 조원희는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으나, 정작 2007년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드는데에는 실패하였다. 아시안컵 이후로는 대표팀 감독이 허정무로 교체되었고, 허정무는 2008년부터 조원희를 다시 실험해보기 시작하였으나 2009년 말에 조원희가 위건에서 출전수 부족에 시달리자 2010년부터는 그를 발탁하지 않았고, 이것이 조원희와 대표팀의 마지막 인연이 되었다.

조원희의 A매치 기록은 36경기 1골.

두번째 은퇴 이후[원본 편집]

2020시즌을 끝으로 수원FC에서 은퇴한 뒤로 현재까지는 개인 유튜브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수원삼성 초기였던 05시즌에는 라이트풀백 혹은 윙백으로 출전하며 저돌적인 돌파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06시즌부터는 다소 평범한 크로스, 그리고 오버래핑 이후 수비가담이 늦는 단점이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차범근 감독이 07시즌 중반부터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대박을 치면서 수원팬들이 현재까지도 기억하는 조투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수미로서의 조원희는 왕성한 활동량과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적극적인 몸싸움을 통해 수원의 수비라인을 보호해주면서 중원에서 궂은일을 다해주었다. 이러한 그의 장점이 극대화되었던 때가 바로 수원이 더블을 달성했던 08시즌.

다만 수비적인 능력에 비해 빌드업이나 전진패스 등 공격적인 능력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중원에서 경기를 풀어줄 선수와 같이 배치해야 그의 장점이 극대화되었다. 그리고 2010년 매북전에서는 환상적인 중거리골을 넣은 적이 있기는 하나, 커리어 전체적으로 봤을 땐 슈팅 능력 또한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거리를 때리는 비중이 꽤나 높았던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 이외에도 잘한 시즌과 못한 시즌의 기복이 있는 편이기는 했으나, 폼이 좋을때는 워낙 잘해주었고 특히 수원의 마지막 리그 우승의 주역이라는 점 때문에 수원팬들에게는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는 선수이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의외로(?) 초등학생때 전교회장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 한참 대표팀 경기에 출전할때, 대표팀 팀닥터로부터 조상 중에 아프리카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 위건 시절에 박지성과 집이 가까워서 21   서로 왕래를 자주 하였다고 한다. 심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많이 의지하였다고.
  • 파브레가스의 팬이었다고 한다. 위건 시절에 아스날과의 경기가 있던 날, 경기 종료 후 파브레가스와 유니폼 교환을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 위에서도 언급했던 17시즌 강원전 헤딩 자책골의 여파가 상당히 컸다고 한다. 훗날 본인이 밝히기로는 그날 이후로도 한동안 플레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후유증이 컸다고.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본인도 유튜브 등을 통해 헤딩 감아차기, 푸스카스상을 패러디한 조스카스상(....) 등으로 부르며 자학성 개그를 즐겨한다. 수원팬들 역시 경기 당시에는 조원희에게 많은 질책을 날렸지만 지금은 같이 웃고 즐기는 수준. 여담으로 해당 경기는 유주안의 프로데뷔전이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 유주안은 데뷔전에서 1골 1도움이라는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으나 조원희의 자책골로 인해 묻힌 감이 있었다.... 이에 대해 조원희가 훗날 사과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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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자책골을 처음 본 박지성 반응-

서정원 앞에서 자책골 썰푸는 조원희

  • 2018년부터 '저스트풋볼 아카데미'라는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프로 선수들도 개인훈련을 위해 자주 방문하는 듯 하다.
  • 2019년 7월 유벤투스 내한경기 23  를 기념하여 펼쳐진 자선경기에서 에드가 다비즈를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물론 이때의 다비즈는 40대 중반이긴하지만....
  • 2020년에 개인 유튜브를 시작한 후로 밀고 있는 단어로는 '가야돼'와 '조차박'이 있다. 이 중 '조차박'은 한국축구 최고 레전드라고 불리우는 손흥민과 차범근, 박지성을 묶어 말하는 '손차박'을 패러디한 것으로, 조원희가 유튜브를 통해 차범근과 박지성이 자기를 1대1에서 한번도 뚫어본적 없다고 주장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24   조원희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유튜브에서의 재미를 위해 말하는 것이므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듯.... 이후 슛포러브에서 박지성과 차범근에게 실제로 조원희를 뚫어본 적이 없냐고 물어봤는데, 이에 박지성은 "그럼 걔가 맨유를 갔겠지....", 차범근은 "원희가 우리하고 일대일이 되냐? 원희야 꿈도 크지"라는 반응을 각각 보였다....
  • 수원삼성에서의 첫번째 은퇴 이후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끌어 유튜브 측에서 구독자 10만 이상의 채널에게 주는 실버버튼을 받기도 하였다.
  • 2020년 한 매체에서 진행한, 차범근 전 수원 감독과 08시즌 우승 주역들이 나온 인터뷰에 출연하여 당시를 회상하는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