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정대세

블루 불도저

인민 루니1 

경력[원본 편집]

  • 이   름: 정대세 (鄭大世 / Jong Tae Se 2  , Chong Tese 3  )
  • 출생일: 1984년 3월 2일
  • 국   적: 대한민국, 북한  4
  • 출신지: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
  • 신   체: 180cm, 81kg
  • 포지션: 스트라이커
  • 소속팀: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6~2010) → VfL 보훔 (2010~2012) → 1.FC 쾰른 (2012)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5) → 시미즈 S펄스 (2015~) 
  • A매치: 33경기 15골

2. 클럽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원본 편집]

아이치 조선제2초급학교 3학년 시절 축구를 처음 시작했다. 학교 내에서 정대세는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고, 도슌조선중급학교와 아이치조선고급학교, 도쿄 조선대학교를 거치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지만, 학교 특성상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정대세는 일본에서는 전혀 두각을 내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해외 생활[원본 편집]

조선대학교5 를 다니던 시절 우연히 정대세의 연습경기를 지켜본 에이전트에 눈에 들어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테스트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2006년 가와사키와 입단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2006 시즌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데뷔골을 쏘아 올리며 1군 무대에서 주전 자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총 114경기에서 42골을 터트렸다.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에서 북한을 44년만에 본선에 올려놓으며 해외 여러 팀들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2010년 7월 분데스리가.2 소속 VfL 보훔과 2년 계약을 맺었다. 시범 경기에서 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시즌 1라운드 데뷔전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보훔에서 총 10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주전으로서 맹활약했으나 4월초에 부상으로 5경기를 쉬게 되었다.

2012년 1월 31일 1.FC 쾰른의 상징 루카스 포돌스키가 큰 부상을 당하면서, 대체자로 쾰른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당시 클럽 단장이6  감독과 상의 없이 마음대로 지른 것이었다. 당시 쾰른 감독이었던 스톨레 솔바켄은 "내가 원한 선수가 아니고 내가 원한 스타일도 아니다"고 대놓고 얘기했고, 벤치에는 계속 들고 있지만 분명히 들어갈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7  데뷔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여 알력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안습. 결국 쾰른이 2011~12시즌에서 강등당하면서 다시 2부리그 소속이 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원본 편집]

2.1. 2013 시즌[원본 편집]

2012년 10월 31일 기회를 계속 얻지 못하자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면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덕분에 11월 들어 찌라시들이 정대세 K리그 영입설을 퍼뜨렸다. 하지만 해외축구 팬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 소식을 터뜨린게 일간스포츠라서 애초에 찌라시라고 무시하기 힘든 소식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충분한 자금력을 갖춘 2개 클럽이 관심을 보였다는 기사가 떴다. 곧이어 2개 클럽은 수원과 울산이라는 기사도 떴다.

이후 수원으로 이적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대전 시티즌이 구단주가 뭔 돈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일까지 직접 가는 등 깜짝 영입을 시도하기도 했다.8 9  그러나 결국 2013년 1월 정대세의 수원 입단이 확정됐다. 2015년까지 3년 계약.

비록 북한 대표팀에서 뛰고 있기는 하나, 대한민국 국적이기 때문에 수원 삼성으로서는 외국인 선수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이점이 있다10 11 그뿐만 아니라 독일 2부를 씹어먹던 실력인만큼 활약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다만, 위에서 언급된 쾰른에서의 문제로 인하여 1년 내내 경기를 아예 뛰지 못했기에 이에 대한 우려 또한 많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가시와 레이솔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2개를 실축하며 팀 6-2 패배의 원흉으로 등극했다(...) 자신이 얻어낸 PK 2개를 모두 자신이 날려먹으며 K리그 사상 최초로 한 경기 2실축 선수가 되었다. 다행이도 다음 경기인 K리그 대구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했다.12  그리고 맞이한 슈퍼매치에서 전반을 채 못지나서 화려하게 경고누적으로 퇴장(...). 경기 초반 얻은 옐로우카드를 까먹고 있다가 일 저지르고 기억났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고. 정대세에게는 다행이게도 수원은 후반 87분 라돈치치의 동점골로 패배를 면하며 슈퍼매치 수원 무패 행진은 끊기지 않았다.

부산과의 경기는 징계로 결장한뒤 대전전에 선발출장,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특히나 첫번째 두번째 골은 각각 홍철과 조지훈의 중거리슛을 감각적으로 방향만 살짝 틀어서 넣으며 골키퍼를 벙찌게 만들었다.

2013 시즌 23경기 리그 10골 2도움을 기록하며 수원 선수에서 가장 득점을 많이 올렸다. 23경기 밖에 안 뛰고도 가장 득점이 많았다는걸 보면 수원이 얼마나 빈공에 시달렸는지를 알 수 있다.

====2.2.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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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 만큼 아쉬웠던 시즌

31라운드를 돈 시점에서 22경기 48슈팅 4골 1도움, 그나마도 1골은 페널티킥.

20경기 넘게 뛴 주전 원톱 스트라이커로는 아쉬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하태균의 전역 이전까지는 로저와 더불어 팀에 단 2명뿐인 원톱이었는데, 상반기 로저의 부진과 정대세의 부진이 겹치며 수원은 깊은 시름에 빠져야 했다. 그나마 로저는 하반기돼서 살아나기라도 했지, 정대세는 하반기에 또 부상을 당하며 계속 죽어 있는 상태.

이 와중에도 올스타전이나 친선경기, 연습경기 등 비정규 경기에서는 꾸준히 골을 넣으며 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방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2선 공격의 활로를 뚫어놓는 로저와 달리 정대세는 위치선정 능력을 살려 적진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이렇게 공을 받아놓고 어처구니 없이 날려먹는 경우가 많은지라 이왕 똑같이 결정력이 시망이라면 한창 물오른 산토스의 득점 능력에 추가로 기대해볼 수 있는 로저 쪽이 더 꾸준히 기용되고 있는 상황.

인터뷰에서 에이전트에게 돈을 떼먹히고 후술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등 여러 심적인 요소로 인해 위축됐었다고 밝히긴 했지만, 그 문제들이 해결되어도 과연 믿고 기댈 수 있는 스트라이커로 살아날지는 미지수.

결국 28경기 7골 1도움을 기록했다 참고로 막판 3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후반기엔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게 희망. 2015 시즌을 기대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2.3. 2015 시즌[원본 편집]

갓대세

수원 팬들이 정대세를 그리워하게 된 이유

시즌 개막 전 인터뷰를 보면 '자신이 팀에 많은 해를 끼쳤다', '난 쓰레기였다' 등의 발언으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고 팀에 더 녹아들 것을 암시했다.

그리고 진짜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다!! 지난 시즌들과는 달리 이제 스스로 무리한 슈팅이나 돌파 등은 자제하고 팀에게 도움이 되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하기 시작해서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수원 블루윙즈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4월 18일 홈 경기로 열린 리그 7차전 슈퍼 매치에서 2골 2도움을 기록는 맹활약을 선보이며 북패를 5:1로 뭉개버리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6월 7일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수비수 정준연과의 경합 도중 의식을 잃었으나 금방 깨어났다.(정준연은 경고 처리)13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수원에서 활약하는 줄 알았지만..

=== 갑작스런 일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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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시미즈 S 펄스로 이적료 약 50만 달러 (5억 6000만원)과 연봉은 수원에서 받는 금액의 2배 이상을 받는다는 조건 하에 이적, 3년 6개월 계약이 확정되었다. 정대세 스스로는 수원에 남아 있길 내심 바랬지만, 계약 연장 오퍼가 들어오지 않아 시미즈의 이적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체 선수로는 일리안 미찬스키가 영입되었다.

정작 시미즈 S펄스 이적 후에는 소속팀에서 11경기 무득점 1도움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등 부진해 팀 강등의 원흉으로 뽑히고 있다.14  그리고 팀도 리그 17위로 강등당해 16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 리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근데 지역 라이벌 주빌로 이와타는 다시 승격했다.

전년도에는 부진해서 큰 욕을 먹었으나,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당하자 오히려 수준 차이를 보이며 큰 활약을 하고 있다. 결국 팀인 시미즈를 승격시켰고 본인도 26골로 J2리그 득점왕이 되었다. 득점왕이 확정된 후에는 울어버렸다고.

2017 시즌 복귀하자마자 강등의 위기를 겪어 2015 시즌의 재림이 되는 줄 알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비셀 고베를 꺾고 잔류에 성공한다. 정대세 본인은 팀 최다 득점자가 될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국가대표[원본 편집]

2007년 EAFF 동아시안컵 2차 예선 몽골과의 경기에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다. 이 경기에서 정대세는 4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데뷔하였으며, 그다음 경기인 마카오와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로 4골을 성공, 국가대표 두 경기 출전에 8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EAFF 동아시안컵 본선 무대에 참가하였고, 공격 루트가 오직 역습밖에 없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역습의 최전방에 위치해 북한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언론에 "이왕이면 강팀들과 대결했으면 좋겠다"라고 수차례 발언했다가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이 속한 죽음의 조에 들어가면서 소원을 이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막 직전, 남북한의 특수성과 국적 문제가 맞물리는 데다가, 북한 선수들 중에선 드물게 영어에도 능통할 뿐더러, 심지어 포르투갈어 구사도 가능한지라 외신 기자들의 인터뷰 세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 브라질전에서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명인 루시우와 맞대결을 펼치며 절대 밀리지 않는 막강한 피지컬로 인민 루니라는 별명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특히 브라질 전에서 국가가 흘러 나올 때 눈물을 흘린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이 사진은 뉴욕타임스의 월드컵 사진 10선에도 뽑혔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기적처럼 국가대표가 되고 또 월드컵에 진출한 그간의 파란만장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감격해 운 것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하게 된 탓인지, 2009년 12월에 북한 정부에서 주는 '인민체육인'15  칭호를 받았다.16 

그러나 2010년 12월. 북한을 위해 뛰지 않겠다고 선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찌라시의 낚시였다. 사실은 북한이 미숙한 행정 탓에 공문을 제때 발송하지 못한 바람에 소속팀이 이를 근거로 아시안컵 차출을 거부하자 실망감을 표시한 것.

결국 팀을 설득해 북한 대표팀에 합류했다. 북한은 이란, 이라크, 아랍에미레이트와 함께 D조에 속했는데, 1무 2패 무득점 2실점으로 탈락했다. 정대세는 몸 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 내내 별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2011년 6월 5일 잉글랜드 웸블리 스터티움에서 북한 대표팀과 잉글랜드 대표팀 친선경기에 나갔다.

2011년 11월까지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 북한 국가대표로 소집되었으나 현재는 왜인진 모르겠지만 국가대표팀에서 멀어진 상태이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2013 시즌 기록한 공격 포인트를 분석해보면, 절반에 해당하는 4골 2도움이 대전과 대구를 상대로 올린 거였으며, 4골 1도움은 4위권 내 팀들을 상대로 기록한 것으로 약팀에게 강한 공격수라는 인상을 크게 주었다. 또한 정대세의 그간 문제점은 팀 플레이에 융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혼자서 해결하려다 팀 공격 전체를 막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5년부터 피지컬을 활용하여 포스트 플레이를 하는 것과 동시에 연계 플레이에 눈을 떠서 플레이의 질이 상당히 좋아졌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형 정이세도 한국 국적이며, 그 당시 한국 내셔널리그에 참여중이던 충주 험멜에서 골키퍼로 뛰었다가 방출되었다.
  • 자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엄청 높기 때문에 오만하게 보일 때가 많다. 때문에 북한 대표팀 합류 초기에는 팀원들과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정대세의 한국어 베이스가 남한 말투인데다 교포 특유의 어색함이 섞인 것도 한 몫 한다. 다른 조총련 계열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상당히 중요한데 안영학이 잘 다리를 놓아준 듯. 17  그래도 왕따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골 세레모니 할 때도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하지만 대표팀 밖에서 그를 만난 기자들은 예의 바른 청년이라고 평했다.
  • 매스컴을 피하는 축구선수가 많지만 정대세는 인터뷰를 너무 하고 싶어한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매스컴에 나서는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친목질에 매우 열심히다. 독일서 뛸 당시 아무래도 일본에서 자랐다보니 일본 선수들과 친한지 같이 독일서 뛰던 일본인 선수들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심지어 네덜란드에서 뛰는 일본인 선수랑 노는 모습도 종종 트위터 등에 올라왔다. 한국인 선수로는 박지성을 가끔씩 만나는데, 맨유 경기 끝나고 뜬금없이 버스 옆에 정대세가 박지성에게 인사하러 왔다는 기사가 몇 번씩 뜨고 있다.
  • 2012년 SBS의 런닝맨과 힐링캠프에 출연한 적이 있다. 런닝맨에서는  숨겨진 형 18  개리와 만나 나름 화제. 아시안 드림컵 출전자 두명을 가리기 위한 최종 레이스에 참가했다. 힐링캠프에서는 일본에 MC들을 초대했다. 방영분은 총 1.5주분.
  • 머리도 상당히 좋고 공부도 열심이라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확인된 것만 5개 국어 이상이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등. 정대세의 한국어는 북한보다 남한 쪽에 더 가까우며 재일 한국인이 쓰는 말투이다. 추성훈과 말투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아무래도 거주지나 평소 쓰는 언어 때문에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편하다고 한다.

  • 취미로 디제잉을 한다는데, 그 투자와 공부의 수준이 장난 아니다. 가정 배경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 2013년 6월 2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어 수원지검 공안부에서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후 1년만에 무혐의 처리나면서 형식적인 수사로 마무리되었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브라질과의 시합 이후 카카와 유니폼 교환이 하고 싶어 포르투갈어 공부까지 해갔지만 19   카카는 정대세가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 들어서 실패했다. 나중에 어떤 일인지 알아낸 카카가 정대세를 브라질 라커룸으로 초대해 호비뉴의 유니폼과 자신의 유니폼을 선물했다고...
  • 과거 한겨레 신문 주말 매거진에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네이버 스포츠란에서 연재하고 있다. 특히 한겨레 칼럼에서는 그의 소탈한 글 스타일이 드러나며 인간적인 면모도 접해 볼 수 있다.
  • 특이하게 응원가가 존재한다.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절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펑크밴드인 블루 하츠의 곡 TRAIN TRAIN의 후렴구를 개사했다. 가사는 '대세~ Get the goal~ 대세~ 오오오오~(반복)' 수원에서는 2014년부터 응원가가 등장했다. 원곡은 빈지노의 Boogie on&on. 가사는 '수원 정대세~ 수원 정대세~ 오오오 대세! 수원 정대세~(반복)'

  • 초중고 전체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조선학교에서 받았는데,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인정하는 학교가 아니다. 그래서 정대세의 공식 학력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적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적임에도 이청용과 같은 이유로 징병검사 없이 제2국민역으로 바로 빠져서 병역 문제에서 자유롭다.

  • SBS프로그램 동상이몽, 너는 내 운명에 아내와 함께 출연했으나 축구에 전념하기 위해 하차했다.

  • 동무 려권내라우에서 타이완 수배자로 나온다(...)정대세, 질투심때문에 애미나이를 살해했나플레이어 : 발치몽이십네까? 정대세 : 여권에 그렇게 적혀있잖나

  • 2015년 전반기 동안 정대세가 도움에 눈을 뜬 비결(?)은 도움 수당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