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이상협

인천 유나이티드 FC No. 18

이상협 (李相協 / Lee Sanghyeob)

등록번호

20130034

생년월일

1990년 1월 1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고양시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주발

오른발

신체조건

176cm, 67kg

학력

무원초 - 백양중 - 백암중 - 백암고 - 고려대

프로입단

2013년 FC 서울

소속팀

FC 서울 (2013~2016)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7~ )

상주 상무 (2018~2019, 군 복무)

국가대표

U-17 0경기

별명

중원의 태양, 제 2의 하대성, 협론소

개요[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을 주로 소화한다.

클럽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원본 편집]

원래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축구를 접했고, 이후 축구부에 들어가서 활동하게 됐다. 무원초 축구부를 졸업한 후에는 용인에 위치한 백암중, 백암고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백암중 축구부에 들어가기 전 테스트를 봤을 때는 탈락했었지만,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모습을 보고 다시 연락을 받아 합류하게 됐다. 주축 멤버 중 하나로 성장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팀이 징계를 받아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기간 동안 슬럼프가 왔고, 다시 경기를 뛸 기회가 오자 바로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명문인 고려대 축구부에 진학했고, 고려대에서 4학년까지 활동을 이어나갔다.

FC 서울[원본 편집]

고려대를 졸업한 후 드래프트를 통해 FC 서울에 입단했다. 첫 시즌에는 리그 5경기에 출전했는데, 기회를 얻는 경기에서 프리킥, 코너킥 등을 전담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제 2의 하대성으로 기대를 모았다. FA컵에서는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출전하여 데뷔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2014 시즌에는 한결 출전 기회가 늘어나면서 이상협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후반기에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원더골을 넣으면서 리그 데뷔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탈압박 및 피지컬 면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인 여파로 후반기에는 고명진, 마우리시오 몰리나, 오스마르 이바녜스에게 밀려 후보 멤버가 됐다. 그래도 하대성이 중국으로 떠난 후 제법 성장한 모습을 보여 앞으로가 기대되는 선수로 꼽힌 시기였다.

하지만 2015년에는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전반적으로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교체로 투입됐다가 다시 재교체를 당한 적도 있었다. 리그에서 10경기를 소화하긴 했지만 뒤로 갈수록 기회가 사라진데다, 리그에서 한 경기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는 등 입지가 상당히 불안했다. 이런 상황은 2016년에도 이어져서 시즌 초에는 계속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고, 시즌 중반에 가서야 종종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 FA컵 8강 전남 드래곤즈 전에는 승부차기 3번 키커로 등장해 득점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내내 다카하기 요지로, 신진호, 이석현, 주세종, 오스마르 등에 비해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 입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누적이 부족했다고 판단해서인지 같이 지원한 서울 소속 김남춘, 윤주태, 유상훈과 달리 홀로 탈락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원본 편집]

3.1. 2017년[원본 편집]

상주 상무 탈락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게 되었다. 인천의 감독 이기형은 FC 서울 시절 이상협을 코치로 지도해본 인연이 있었고, 이상협이 중원 뎁스 강화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상협은 상주 입대도 무산된 상황이라 출전 기회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

시즌 초에는 윤상호박세직, 김도혁에게 밀려 경기를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박세직의 입대가 다가오고 중원 멤버들의 부진이 이어지자 FA컵 등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서서히 주전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피지컬 및 체력 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고, 김동석과 비슷하게 경기장에서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인천 스쿼드 내에서 제일 뛰어난 패스 능력을 지닌 선수라는 점은 팬들도 인정했으며, 결국 빈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능력이 필요했기에 지속적으로 출전 기회를 받았다. 이상협이 약 60~70분 이후에는 급속도로 방전되는 모습을 보이는지라 교체 카드 사용이 강요되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받았지만, 이기형 감독에게는 나름 신뢰를 얻어서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시즌 중반에 김동석이 회복되면서 출전 시간을 늘렸고, 그 여파로 이상협이 로테이션 멤버가 됐다. 하지만 김동석이 부진에 시달리고 퇴장 징계를 받게 되자 다시 선발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이상협 본인의 폼도 이 시기에는 썩 좋지 못해서 템포를 잡아먹는다는 평이 나왔고, 윤상호에게 자리를 내준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 중반을 넘긴 후 몸이 만들어진 덕분에 한결 민첩한 모습이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90분을 소화해도 괜찮을 정도의 체력이 올라왔고, 조용히 뒤에서 팀을 조율하고 돕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한석종의 보조 역할을 무난히 잘 수행해주면서 8월 인천의 상승세에 한 축을 담당했다.

시즌 후반에도 김도혁, 한석종과 함께 주전 삼각편대를 형성했고, 자신감이 붙은 모습도 보여주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냈다. 이상협의 플레이 스타일 자체는 김동석, 박세직과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서 사람에 따라 평가가 많이 다른 선수 중 하나였지만, 시즌 막판에는 확실히 팀에 도움을 주는 데 성공했다. 선수 개인으로도 간만에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하면서 반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다시 상주 상무에 지원하여 두 번째 시도만에 합격해 인천을 잠시 떠나게 됐다.

3.2. 상주 상무 입대[원본 편집]

상주에 입대하였으나 입대 동기 윤빛가람을 비롯해 중원의 경쟁자가 워낙 많은지라 크게 신임을 받지는 못했다. 입대한 직후인 2018 시즌 전반기에는 거의 기회를 받지 못하다가 후반기에 가서 서서히 출전 시간을 끌어올렸는데, 경기력 자체는 크게 나쁘진 않았지만 눈에 띄는 활약도 없었다는 것이 중론. 첫 시즌에는 리그 5경기 출전에 만족해야 했다.

두 번째 시즌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만큼 보다 나은 활약을 기대받았지만, 잦은 부상을 겪으면서 전반기 내내 거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규성, 윤빛가람 등이 확고한 주전으로 올라서면서 이상협의 입지는 더욱 애매해졌고, FA컵에서 잠시 주장 완장을 차거나 리그 경기에서 서브에 이름을 올리며 스쿼드에는 들어가기 시작했으나 특별한 활약은 없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서 잠시 선발로 출전하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확실히 전보다 늘어난 활동량과 적극성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경기 중 부상을 당해 전반에 교체되는 불운을 겪기도. 결국 2019년에도 전역 전까지 리그 3경기 출전에 그쳤다.

3.3. 2019년[원본 편집]

2019년 9월에 전역이 예정됐었고, 8월에 전역한 김도혁과 마찬가지로 말년 휴가를 이용해 팀 훈련에 빨리 합류하였다. 전역 후에는 2017년에도 달았던 17번을 다시 등번호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상주에서 출전 시간을 많이 못 얻은 상황이라 큰 기대를 품지 않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상협 본인이 자신의 컨디션이 좋다고 밝히기도 해서 스쿼드 멤버로 힘이 되주길 기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인천이 장윤호, 라시드 마하지 등을 영입하면서 중원 뎁스가 상당히 두꺼워졌고, 이로 인해 이상협의 위치가 많이 애매해졌다. 그리고 경쟁자들에 비해 이상협은 기동력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 스타일 면에서도 다소 붕 뜨는 면이 있었다. 연습경기에서 종종 활약했지만 리그에서는 강등권 경쟁에 허덕이는 팀 사정 상 로테이션을 돌릴 수도 없었고, 결국 시즌 막판까지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3.4. 2020년[원본 편집]

인천에서의 입지가 많이 악화된 상황이었고 장윤호는 떠났지만 김준범 등 다른 경쟁자가 더 늘어나면서 여전히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상협이 이적할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지훈련에 동행하면서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됐고, 1군 멤버와 동행하면서 경쟁을 이어나갔다. 시즌 시작을 앞두고는 잠시 부상으로 이탈했다가 6월 경에 다시 훈련에 돌아왔다. 하지만 복귀한 후에도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마하지, 김도혁, 문지환, 안진범, 임은수, 최범경, 이제호 등과의 경쟁에서 다소 뒤처진 모양새이다. 비슷하게 입지가 불안했던 이호석도 차별화되는 특성을 살려 기회를 얻었는데, 이상협은 그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편이다. 특히 엘리아스 아길라르의 영입이 이상협에게는 악재인데, 아길라르가 활동량, 기동력, 수비력이 부족한지라 뒤에서 뛰는 중원 파트너는 뛰어난 기동력이나 피지컬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상협은 신체 능력 면에서 아쉬움을 보이는지라 아길라르와의 공존이 애매하고, 그 여파로 더욱 경쟁이 어려워졌다. 결국 시즌 종료 시점까지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교체 명단에 포함된 적도 없었다. 인천이 전력 외 선수를 정리한다는 루머가 돌면서 거취는 더욱 불투명해진 상태.

국가대표 경력[원본 편집]

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 잠시 U-17 대표팀 훈련에 참가한 적이 있다고 본인이 밝혔다. 하지만 그 후로는 대표팀과 큰 인연이 없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스타일의 미드필더이다. 시야가 굉장히 넓고, 패스 센스도 상당히 좋다. 그래서 지공 상황에서도 역습 상황에서도 기습적인 패스로 분위기를 바꾸는 능력을 종종 보여줬다. 공을 다루는 기술이 탄탄하고 중원에서 자신이 어느 공간을 점유해야 하는지를 잘 인지하고 있는 미드필더이다. 덕분에 패스 줄기를 끊어내는 수비에 강점을 보이고, 주변 중원 파트너들의 보조 역할도 자주 수행했다. 프로 초창기에는 킥력으로 주목받았는데, 실제로 이상협의 킥은 슈팅, 세트피스 상황에서 유용히 사용할만한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이런 능력에 비해 신체적인 부분에서 약점이 보인다. 살이 잘 안 붙는 체질이라 몸싸움 및 경합에는 불리하고, 발이나 순발력도 빠른 편은 아니라 기동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전반적인 체력 및 탈압박 능력도 프로 무대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했으며, 상대의 적극적인 플레이에 노출되면 고전하는 성향이 드러났다. 결국 이런 성향때문에 2선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올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3선에 고정되었다. 한편, 안정감은 보여주지만 경기를 뒤집을만한 플레이가 많지는 않으며 경기장 내에서 주인공이 될만한 스타일은 아니다. 선수 자체는 성장을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편이며, 상주 시절에는 활동량을 크게 늘려서 측면까지 커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천에서의 출전 기록[원본 편집]

1군[원본 편집]

시즌 소속리그 리그 FA컵 전체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17 K리그1 20 0 0 1 0 1 0 0 0 0 21 0 0 1 0
2019 K리그1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2020 K리그1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총합 20 0 0 1 0 1 0 0 0 0 21 0 0 1 0

=[원본 편집]

5.2. R리그 ===

시즌 R리그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17 4 0 0 0 0
2019 0 0 0 0 0
총합 4 0 0 0 0

여담[원본 편집]

  • 군대 입대 당시 훈련소에서 당시 소속팀이었던 인천의 팬과 만났다고 한다. 해당 팬은 이상협과 본인의 입소일이 같은 것을 알고 있었고, 혹시나 마주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상협 포토카드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옆중대에 배치되면서 실제로 이상협을 만났고, 싸인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협이 전역 영상을 찍으면서 실제로 이 일을 언급했고,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라고 밝혔다.
  • 신인 시절 이상협의 플레이를 보고 차범근이 극찬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차범근이 인정한 유망주라는 타이틀이 한동안 따라다녔었다. 훈련장에서는 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전에서는 100%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
  •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의 포지션은 스위퍼였다. 중학교 시절에는 잠시 공격수로도 뛰었고, 그 때의 롤모델은 티에리 앙리. 박희성?
  • 2013년 서울 소속으로 FA컵 연세대 전에 나섰을 당시 최현태와 교체되어 투입됐는데, 최현태가 자신에게 주장 완장을 주려고 하자 완장을 자신 말고 김현성에게 주라고 강력히 어필했지만 결국 자신에게 완장이 넘어왔다. 이때 굉장히 긴장해서 아예 완장을 자기가 김현성한테 줄지까지 고민했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이 완장을 찬 채 경기를 소화했다.
  • 생일이 무려 정확히 1월 1일 0시 0분 0초이다. 살면서 생일을 제대로 챙긴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 본래 빠른년생이었지만 학창 시절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어 1년이 밀린 뒤 제 나이대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대학에 가기 전에는 89년생, 90년생 모두와 친구로 지냈는데 대학에 간 후에는 89년생을 형으로 대접해서 족보가 꼬여버렸다. 정작 서울 입단 전까지는 인연이 없던 김남춘은 89년생인데도 경기를 같이 뛰니 친구라는 이유로 형이 아닌 친구로 지냈다. 같은 89년생인 김현성의 경우는 형으로 대접해서, 이들끼리 같이 있으면 호칭이 굉장히 복잡해진다. 그래서 종종 애매한 상황에서는 호칭을 빼고 대화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 대학교를 같이 나온 동기 박희성과 친하다. 서울에서도 룸메이트로 지낸 적도 있었다. 이상협에 따르면 박희성은 여가시간에도 축구 생각을 엄청 많이 하는 선수라고 한다.
  • 동명이인으로 '미친 왼발'이란 별명을 지닌 1986년생 이상협 선수도 있다. 선배 이상협 역시 FC 서울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어서 선수 생활 초기에는 종종 비교되기도 했는데, 포지션과 역할이 달라서 점차 동명이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덜 엮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