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양상민

푸른 늑대

수원삼성의 베테랑 수비수

프로필[원본 편집]

  • 이     름: 양상민 (梁相珉 / Yang Sang-min)
  • 출 생 일: 1984년 2월 24일
  • 국     적: 대한민국
  • 출 신 지: 인천광역시
  • 포 지 션: 센터백, 레프트백
  • 신     체: 182cm / 80kg
  • 학     력: 석남서초 → 제물포중 → 강화고 → 숭실대
  • 소 속 팀: 전남 드래곤즈(2005 ~ 2007) → 수원 삼성 블루윙즈(2007 ~), 안산 경찰청(2012.12 ~ 2014.9, 군복무 임대)
  • 국가대표 기록: 2경기 출전
  • 애칭: 푸른 늑대, 1   양쌍

클럽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 & 대학 시절[원본 편집]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였다. 처음에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딱히 축구 자체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운동 자체를 좋아했고, 반대로 공부는 적성에 안 맞아서 축구부에 가입한게 양상민 축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축구부에 가입할 당시에는 양상민의 부모님이 크게 반대하였으나, 나중에 양상민이 프로 데뷔를 한 뒤에는 이 때 축구를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한다. 유소년 시절에는 미드필더나 윙포워드, 스트라이커 등 공격적 롤을 많이 맡았는데, 이 때의 경험이 양상민의 공격적 성향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숭실대에 진학하면서 그의 현재 포지션인 레프트백과 센터백 등을 보면서 수비수로서의 능력을 익히게 된다. 당시 숭실대 감독은 훗날 양상민이 수원에서도 만나게 되는 윤성효.

전남 드래곤즈 시절[원본 편집]

2005 시즌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면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시즌 개막전이었던 3월 6일 북패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양상민은 프로데뷔시즌부터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보이며 전남의 주요 선수로 자리잡게 된다. 9월 25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전반 31분 이 경기의 유일한 골을 넣어 전남 드래곤즈의 승리를 이끌었다. 05시즌 총 스탯은 20경기 1골.

2006 시즌에도 양상민은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였고, 4월 29일 남패와의 경기에서 0-2로 끌려가던 후반 13분 만회골을 넣은 뒤 후반 45분 동점골을 뽑아내어 팀을 극적인 무승부로 이끌었다. 한 달 후 5월 31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 경기에서도 동점골을 넣었다. 11월 8일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FA컵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 마지막 키커로 나선 양상민이 성공시키면서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12월 3일 열린 결승전에서도 출전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2-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하였다. 06시즌 총 스탯은 23경기 2골.

2007시즌 수원으로 이적하기 전까지는 전남에서 총 3경기를 뛰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군복무 이전)[원본 편집]

2007시즌이 갓 개막한 후 트레이드를 통해 레프트백 자원을 물색하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한다.2  3월 17일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 데뷔전을 치룬 양상민은 수원에서의 첫 시즌부터 날카로운 오버래핑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레프트백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총 24경기에 출전하였다. 2008 시즌 대전과의 경기에서 고종수를 수비하는 양상민

하지만 다음 시즌인 2008 시즌에는 기회를 많이 부여받지 못하였다. 시즌 초 포백에서의 레프트백 주전은 당시에 레프트백으로 보직을 변경한 이정수였고, 시즌 중반 쓰리백으로의 변경 이후에는 레프트윙백으로써 간간히 나오기는 했지만 차범근이 홍순학, 김대의 등도 같은 포지션에 출전시키면서 확고한 주전을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결국 북패와의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차범근이 이 정도의 큰 경기 경험이 없는 양상민 대신 김대의를 출전시켰고, 이렇게 양상민은 챔결 1, 2차전 모두 출전하지 못하였다. 챔결 2차전 이후 수원의 리그 우승이 확정된 뒤에도 해당 경기 명단에 들지 못한 선수들은 우승 세러머니에 참여하지 못했었는데, 당시 양상민은 이에 대해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양상민의 08시즌 총 출전 횟수는 17경기.

2009 시즌에는 7월 15일 자신의 친정팀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FA컵 8강전에서 수원 데뷔골을 넣으며 팀의 3대0 대승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시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경기력이었다. 09시즌 총 스탯은 25경기 1골.

다음 시즌인 2010시즌부터는 숭실대에서 연을 맺었던 윤성효 밑에서 경기를 뛰게 되었지만 폼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해당 시즌 총 출전횟수는 32경기.

10시즌 팀의 FA컵 우승 뒤 팬들과의 뒷풀이 자리에서의 양상민

2011시즌에는 9월 28일 이란 클럽인 조브아한과의 ACL 8강 2차전에 출전, 염기훈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 동점골을 기록하여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1차전에서 1대1로 비겼던 수원은 이 덕분에 현 아챔 체재에서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3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때까지도 폼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슬럼프를 겪고 있던 양상민이었다. 훗날 그는 이 긴 슬럼프의 원인으로 자신의 안일한 마음가짐, 축구외적인 개인적인 일들, 그리고 계속되는 부진에 의한 자신감 하락을 꼽았다. 11시즌 총 스탯은 33경기 1골.

이렇게 오랫동안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던 양상민이었지만 2012 시즌, 드디어 긴 부진을 털어내고 '푸른 늑대'라는 별명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나이 때문에 시즌이 끝난 뒤 군 입대를 해야하는 그였는데, 이것이 정신 무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더군다나 개막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내내 굳은 의지로 이를 버티며 출전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놀라운 상황.4  그의 최고장점인 저돌적인 오버래핑과 날카로운 왼발 킥력이 살아나면서 해당 시즌 부진에 빠져있던 수원에서 팬들의 희망이 되어줬던 선수 중 한명이 바로 양상민이었다. 6월 23일 강원과의 경기에서는 행운의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4대1 대승에 일조하기도 하였다.5 

8월 5일 울산과의 경기에서도 김영광의 알까기 덕분에 선제골을 득점하였다. 하지만 팀은 2대3으로 패배.

10월 24일 매남전에서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조동건에게 2어시스트를 해주면서 조동건의 수원 커리어 최고의 경기를 만들어주었다. 팀도 2대1로 승리.

이렇게 긴 부진에서 드디어 벗어난 양상민이었지만 나이로 인해 시즌 종료 후 2012년 12월 27일 오범석과 함께 군 입대를 하게 된다. 한참 좋은 폼을 보여줬던 시즌이었기에 수원팬들도, 양상민 본인도 아쉬움을 표했던 상황. 군입대 전 12월 8일 결혼식을 올리며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양상민은 그렇게 수원과 잠시의 이별을 하게 된다. 12시즌 총 스탯은 31경기 2골.

안산 경찰청 임대(군복무)[원본 편집]

기초군사훈련 이후 오범석과 함께 2013시즌부터 경찰 축구단 소속으로 뛰게된다. 이 때 경찰 축구단에는 이미 염기훈구자룡이 뛰고 있었는데, 수원에서는 한참 선배인 양상민이 구자룡의 후임이 되어버렸었다.... 경찰 축구단에서의 첫 시즌부터 양상민은 주전으로 뛰었는데, 이 때 감독의 주문에 따라 대학시절 이후 오랜만에 센터백도 소화하게된다. 그의 13시즌 스탯은 28경기 1골. 2014시즌 팀 이름이 '안산 경찰청'으로 바뀐 이후로도6  전역 전까지 1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였고, 시즌 도중 2014년 9월 26일 오범석과 함께 전역하여 수원으로 복귀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군복무 이후, 2014~)[원본 편집]

14시즌 도중 전역한 뒤 서정원 체제의 수원으로 복귀하였지만, 입대 전과 달리 양상민의 입지는 좁아져있었다. 양상민의 군복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영입했던 홍철이 그동안 절정의 활약을 보이며 부동의 레프트백 주전으로 발돋음해있었고, 해당 포지션은 최재수도 경쟁상대였다. 결국 양상민은 레프트백 자원 포화와 부상으로 인해 전역 이후 14시즌에 3경기를 출전하는데에 그쳤다. 너무도 좁아진 팀 내 입지에 양상민은 이적까지 고려할 정도였지만, 서정원 감독이 그에게 안산 시절에도 봤던 센터백 자리를 제안하면서 다시 한번 도전을 하게 된다. 이렇게 2015 시즌부터는 센터백으로 출전하게 된 양상민이었는데, 시즌 초기에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적응을 해나갔다. 당시 양상민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원래 그의 장점이었던 스피드는 줄었지만 대신 피지컬이 더 좋아진 상태였고, 거기다가 본 포지션이었던 레프트백 특성상 패스능력도 준수했기에 센터백에 섰을 때 후방 빌드업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4월 12일 전남과의 경기에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기도 하였다. 경기 결과는 1대1 무승부. 골영상

5월 31일 인천전에서는 멋진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도 하였다. 이 경기 결과도 1대1 무승부.

6월 21일 매북전에서는 수원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매북 코치인 박충균7 이 터치라인으로 나간 볼을 주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려고 하자 그와 신경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해당 장면 이후 수원은 산토스가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데에 성공하였다.

10월 4일 광주FC와의 경기에서는 헤딩골을 기록하며 팀의 4대2 대승에 일조하였다. 이 경기는 산토스가 해트트릭을 기록한 경기이기도 하다.

이후 시즌 막판에는 구자룡과 연제민이 좋은 합을 보여주면서 시즌 초중반보다는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했지만, 대신 본 포지션이었던 레프트백으로써 홍철의 로테이션으로 간간히 출전하며 나올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양상민은 전역 이후 위태로웠던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는데에 성공하게 되었다. 15시즌 총 스탯은 35경기 3골.

2016 시즌에도 주로 센터백으로 출전했던 양상민이었지만, 해당 시즌은 수원이 최악의 부진을 보이던 시즌이었고 양상민 또한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었다. 결국 시즌 중반 수원이 쓰리백으로 포메이션을 바꾼 이후로는 주로 이정수와 구자룡, 곽광선이 출전하였고 이에 따라 양상민의 출전 횟수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렇게 후보로 밀리며 16시즌을 마치는 듯 보였지만 시즌 막판 북패와의 FA컵 결승 1, 2차전에 깜짝카드로 선발출전하였고, 쓰리백 체재에서도 준수한 수비력과 빌드업 능력을 보이며 팀의 FA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16시즌 리그 출전횟수는 16경기.

FA컵 결승에서 보여준 활약 덕분에 다음시즌인 2017시즌에도 쓰리백의 한 축을 담당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해당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리그 6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 부상이 꽤나 오래가서 2018 시즌도 러시아월드컵 이전 전반기를 통으로 날려버렸고, 이에 따라 팬들의 우려도 깊어졌었다. 양상민은 월드컵 이후 후반기가 되어서야 경기에 출전을 하게 되었고, 7월 7일 남패전에서 선발출전하면서 팀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이 경기의 74분에 동점골을 넣으며 수원팬들에게 자신의 복귀를 확실히 알린 그였다. 하지만 팀은 그 이후 다시 결승골을 헌납하면서 2대3으로 패하였다.

8월 15일 광복절날 열린 슈퍼매치 시작 전에는 10년 넘게 팀에서 헌신한 그를 위해 수원 서포터즈들이 카드섹션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놈의 부상이 다시 양상민의 발목을 잡았다. 시즌 중반부터 경기에 나오면서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얼마 안가 다시 장기 부상을 당하며 일찌감치 시즌을 마쳐야 했던 그였다. 더군다나 해당 시즌 수원의 수비는 말 그대로 헬이였기 때문에 양상민의 부상이 더욱 아쉬웠던 부분. 이렇게 그는 18시즌을 12경기 1골이라는 스탯으로 조기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2019시즌 팀이 이임생 체재로 바뀐 이후에도 베테랑으로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였다. 간혹 실수를 연발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인 경기도 나왔지만, 시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래도 30대 노장 치고는 나쁘지 않은 폼을 보여주었다. 해당 시즌 총 출전횟수는 26경기.

2020시즌에는 팀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분위기 반전을 위해 삭발을 감행하고 경기에 나서는 등 고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9월 16일 포항전에 선발출전하며 수원 소속 300경기 출전이라는 업적을 기록하기도.

-양상민의 수원 소속 300경기 출전을 기념하여 구단 측이 공개한 인터뷰-

이후 염기훈과 함께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팀을 잘 추스르며 후반기 팀의 반등을 이끌었으며, 리그 종료 후 재개된 아챔8 에서도 민상기, 장호익과 함께 견고한 쓰리백을 구축하며 팀의 8강행에 크게 공헌하였다. 사실 아챔이 재개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비의 핵심인 헨리가 부상으로 대회 불참이 확정되면서 수비에 대한 우려가 많았으나, 이 세 선수는 헨리의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대 이상의 수비력을 선보이며 수원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해당 시즌 아챔은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의 여파로 일정이 빠듯해지면서 2, 3일에 한경기 꼴로 경기를 진행하는 살인적인 스케줄로 짜여졌는데, 팀의 얇은 수비진 뎁스로 인해 이를 모두 소화해야했던 양상민은 당시 한국 나이로 37살의 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강 경기까지 모두 풀타임으로 뛰는 저력을 과시하였다.9  일각에서는 이 대회가 양상민 프로커리어 최고의 경기력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양상민이 20시즌에 출전한 총 경기수는 20경기.

국가대표 경력[원본 편집]

양상민의 국대 데뷔전이었던 북한전 사진. 이운재 바로 왼쪽에 있는 선수가 양상민이다.

국대와는 거리가 먼 선수이다. 프로데뷔시즌이었던 05시즌 전남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자 본프레레 당시 국대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5년 8월 4일 북한과의 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뤘다. 하지만 이 경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본프레레는 국대감독에서 물러났고, 이에 따라 양상민도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멀어졌었다. 하지만 전남에서 꾸준히 좋은 폼을 보여주자 2006년 당시 국대감독이었던 핌 베어벡이 그를 다시 국대로 콜업하였고, 그해 11월 15일 이란과의 2007 아시안컵 예선전에 출전하면서 그의 생애 두번째 A매치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후로는 국대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2007 아시안컵 예비명단에 들기는 했지만 역시나 본선에는 출전이 불발되었다. 베어벡은 아시안컵 이후 감독에서 물러났고, 이와 동시에 양상민과 국대의 연도 끝나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전남 시절, 그리고 수원에서의 07시즌과 12시즌에는 공격적 성향에서 강점을 보이던 레프트백이었다. 수준급의 오버래핑 능력과 스피드, 그리고 날카로운 왼발 킥력이 최고 장점이었던 선수. 하지만 이런 공격적 스타일의 풀백 대부분이 그러하듯 뒷공간을 자주 내주는 등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은 아쉬웠고, 맨마킹 능력이나 피지컬도 다른 풀백들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렇게 젊은 시절 레프트백으로 뛰었던 양상민은 군복무 기간동안 센터백도 소화하게 되고, 전역 이후 수원 레프트백 자원의 포화로 인해 본격적으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된다. 센터백으로서 양상민의 장점은 바로 발밑. 덕분에 센터백에서 플레이 시 후방 빌드업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숏패스뿐만 아니라 전방으로 차주는 롱패스의 질 역시 괜찮은 편. 다만 레프트백 시절에도 그러했듯이 수비력 자체는 리그 내 타 센터백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입단 첫 해는 개막 후 영입된지라 30번을 배정 받았다. 그 다음 시즌부터는 계속 3번을 사용 중이었으나 2010년에 한 차례 번호를 28번으로 변경했었다. 이유는 본인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전남 드래곤즈 시절 배정 받았던 28번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하였는데, 실질적 이유는 당시 입단했었던 주닝요가 어느 팀을 가던지 3번을 고집하는 모습이라 잠시 양보해준 것 같아 보인다. 2011년부터는 계속 3번을 사용 중.
  • 어느 순간부터 경기에 나설 때 양쪽 손목에 아대를 차고 나오는데, 손목이 선천적으로 약해서 부상 방지를 위해 착용한다고 한다.
  • 팀 내에서 가장 친한 선수로 숭실대 후배이기도 한 곽광선을 뽑았다.
  • 2011 시즌을 앞두고 윤성효와 몇몇 선수들이 섹시컨셉(....)의 화보를 찍은 적이 있는데, 이 때 양상민도 포함되었다. 당연히 팬들은 이 화보를 흑역사 취급....
  • 아들 양은우 군의 축구 실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킥, 패스 등 어린아이임에도 보통이 아님을 보여주는 축구 실력과 어린아이에게서 나오는 귀여움으로 수원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당장 수원 유스로 데리고 오라고 아우성(?) 중.

이 외에도 환상적인 발재간을 선보이기도 하였고, 자동차로 골을 넣은뒤(?) 왠만한 브라질리언 못지 않은 환상적인 세러머니를 선보이기도 하였으며,

자신이 수원의 열렬한 팬임을 증명하기도 하였다.

이에 양상민은 아들의 인기를 실감한 듯 상당히 질투심을 보이는 듯한 피드와 해시태그를 올렸는데10 , 이 글에 달린 하혁준 피지컬 코치의 댓글이 압권. "아들에게 속아 마누라를 잊지말자(...)"

  • 2019년 초 장호익이 상무 입대를 하게 되자 인스타를 통해 글을 남겼는데, 이 글에서 장호익 덕분에 도핑 선수가 될뻔한 일화를 공개하기도 하였다. 물론 장호익은 선배를 위한 마음에서 그런거겠지만, 잘못하면 양상민의 선수 커리어가 끝날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