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송종국

2008시즌 수원삼성의 주장이었던 송종국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송종국

2008시즌 수원의 더블을 이끈 캡틴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멤버

한국축구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전성기 시절의 임팩트

프로필[원본 편집]

  • 이   름: 송종국 (宋鍾國 / Song Chong-Gug)
  • 출생일: 1979년 2월 20일 1
  • 국   적: 대한민국
  • 출신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 종   교: 무교 → 개신교 2
  • 포지션: 라이트백, 라이트윙어, 수비형 미드필더 등
  • 신   체: 175cm, 77kg
  • 별자리: 물고기자리
  •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 22번, 부산 아이콘스 - 24번,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24번, 수원 삼성 블루윙즈 - 8번, 울산 현대 - 14번
  • 학   력: 명원초 → 배재중 → 배재고 → 연세대
  • 소속팀: 부산 아이콘스 3  (2001~2002)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2002~2005) → 수원 삼성 블루윙즈(2005~2010) → 알 샤밥 FC(2010~2011) → 울산 현대(2011) → 톈진 터다(2011~2012)
  • 국가대표 기록: 60경기 3골
  • 별명: 쿠키 4  

클럽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 & 대학 시절[원본 편집]

놀랍게도 송종국은 중학교 1학년때 축구를 시작했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였지만 친구들과의 축구 시합에서 단연 눈에 띄었고, 먼저 축구부에 입단했던 친구가 추천했다. 송종국의 재능을 알아본 배재중의 백현영 감독이 부모님을 설득했고 어렵지 않게 축구를 배울 수 있었다. 그때가 중학교 1학년 말이었다.

인용되는 말을 적어주세요.

송종국은 2009 시즌 22경기를 뛰는 등 팀 반등을 위해 애를 썼지만 분위기의 반등은 혼자의 힘으로 되지 않았다. 당시 수원은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었고, 이에 그는 삭발 투혼까지 감행하면서16  투혼을 발휘했지만 팀은 결국 10위에 그쳤다. 이때부터 송종국도 나이를 먹음에 따라 폼이 저하되어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폼 저하에 따라 2010시즌에는 입지가 더욱 줄었고, 시즌 도중 알 샤밥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17경기 출장17 에 그치며 수원에서의 커리어를 마치게 된다.

이후[원본 편집]

2010 시즌 도중, 수원 삼성 측의 만류에도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의 알 샤밥으로 이적하였으나 사우디아라비아 시즌 개막 1주일을 앞두고 연습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2개월 가량 결장하였다. 이후, 필드에 복귀해 측면 미드필더로 뛰면서 7경기 출장 2골을 기록했으나 인내심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우디 아니랄까봐, 2011년 2월 초 느닷없이 송종국 측과 계약해지했다. 출장 기록도 변변찮고, 다른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쿼터를 비워야겠다는 이유였다. 결국 송종국 측은 알 샤밥과의 계약해지 후 국내 복귀를 추진해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다. 송종국은 김호곤 감독 밑에서 새로이 싹 바뀐 울산의 수비진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울산에서 주전을 먹고 뛰던 중 갑작스럽게 울산으로부터 7월 5일자로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되고 바로 중국의 텐진 터다로 이적하게 된다. 울산 측의 설명으로는 송종국과의 계약 옵션에 따라서 연봉 및 계약기간에 대한 협상을 벌였으나 서로 이견이 있어서 결국 자유계약으로 풀어주게 되었고 중국의 텐진 터다가 영입하게 되었다고. 송종국의 영입에 있어서는 전 수원 삼성 소속이자 당시 텐진 소속이었던 리웨이펑의 추천이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2012년 1월 10일, 텐진 터다로부터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된다. 잘 하긴 했지만, 나이가 있어서 새로운 한국인 미드필더로 아시아 쿼터를 채우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밀리게 되었다는 듯.

2012년 3월 27일, 은퇴를 선언하였는데, 그 이유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도저히 선수생활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고... 사실 송종국의 어머니는 운동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갑자기 쓰러지고, 송종국은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만다. 큰 충격을 받은 송종국18 은 더 이상 축구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은퇴를 하게 되었다. 항간에는 '이제 갈 데가 없어서 은퇴하는거 아니냐'라는 얘기도 나왔는데, 실제 여러 구단에서 입단 제의를 받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결국 은퇴 선언으로 기나긴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국가대표 경력[원본 편집]

프로 데뷔전 대학선수였던 2000년 6월 7일 마케도니아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뤘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남자 축구 엔트리에도 뽑혀 올림픽 무대에도 출전하게 된다. 이후 히딩크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그의 눈에 들게 되며, '히딩크의 황태자'라고 불릴 만큼 그의 총애를 받았다. 2001년 2월 11일에 열린 UAE와의 경기에서는 멋진 중거리 골을 넣으며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 경기는 한국이 4대1로 승리하였고, 고종수도 골을 기록하였다.

2001년 11월에 치뤄진 크로아티아,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맹활약하여 AFC 11월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2년 1월에서 2월에 개최되었던 북중미 골드컵에는 한국국대도 참가하였는데,19  송종국은 1월 19일 미국과의 조별예선 경기 중 랜던 도노반의 선제골로 1대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또다시 중거리골을 넣으며 자신의 두번째 A매치 득점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경기 종료 직전 실점을 허용해 1대2로 패배하였다.

그 뒤 송종국은 자신의 커리어 최전성기인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 대표팀의 부동의 오른쪽 윙백으로 활약하게 된다.20 특히 포르투갈전에서 그 유명한 루이스 피구를, 이탈리아전땐 델 피에로를 완벽히 지워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된다.

-포르투갈전에서의 송종국 활약상-

터키와의 3, 4위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때린 중거리슛이 차두리를 맞고 굴절되어 만회골로 기록, 자신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A매치 득점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송종국은 자신의 A매치 득점을 모두 중거리슛으로 넣은, 보기 드문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송종국은 단일 월드컵 최장시간 출전 한국 선수이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무려 687분을 뛰었다.21  이운재와 타이기록이지만 골키퍼가 아닌 필드 플레이어로 국한시켜보면 단연 유일하다. 게다가 송종국은 단일 월드컵에서 출장할 수 있는 최다 경기인 7경기에 모두 나와 풀타임을 뛰었고, 거기에 한국은 2002 월드컵에서 연장전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에 한국 축구사에서 도저히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이처럼 월드컵 내내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서 02 월드컵 이후 한국선수들의 유럽 이적 돌풍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선수는 박지성, 이천수 등도 아닌 송종국이었다. 이후 한국 국대 오른쪽 윙백으로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때 가장 각광받던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그 동안의 폼 저하를 겪었고 그마저도 발목 부상과 수술이 잘못되어 재수술까지 하는 등 위상이 많이 변했다. 왼쪽 풀백에서 김동진이 맹활약하자 이영표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경기 자체도 토고전 외에는 출전하지 못하였다.

이어진 2007년 아시안컵에도 선발되었지만 일반인들의 인식을 뒤집진 못했다. 당시 수원에서는 폼이 살아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 대회에서 송종국은 꽤나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다. 결국 허정무호 출범 이후로는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사실상 낙마하게 된다.

A매치 총 기록은 60경기 3골.

선수 은퇴 이후[원본 편집]

은퇴 직후에는 TV조선의 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13년 TV조선이 K리그 중계를 중단한 이후에는 주로 예능에 많이 출연하였고, 특히 MBC 예능 '아빠! 어디가?'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때는 김성주, 안정환과 함께 MBC의 월드컵 해설위원을 맡았다.

2015년부터 송종국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박건하 등과 함께 MBC스포츠플러스의 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엠스플이 K리그 중계에서 사실상 발을 빼면서 자연스럽게....

2018년에는 김병지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 '꽁병지TV'에 출연하다가, 2019년부터는 '송타크로스'라는 유튜브채널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채널 링크

2021시즌부로 FC안양의 어드바이저로 임명되었다. 안양 구단의 행정에 조언을 주는 직책이라는 듯.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전성기 시절에는 단단한 피지컬과 끈적한 대인마크, 수준급의 볼키핑과 빠른 오버래핑, 그리고 날카로운 크로스와 중거리슛 능력을 자랑하던 선수였다. 한일월드컵 전 경기 풀타임을 출전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체력도 엄청났으며 양발 모두에 능숙했다는 것도 큰 장점. 다만 페예노르트에서의 첫 시즌 이후부터 폼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전성기가 꽤나 짧았다는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 페예노르트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폼이 떨어질때로 떨어진 상태였고, 이는 수원 이적 후 첫 시즌인 05시즌까지 지속되다가 06시즌에 다시 폼을 회복하여 전성기때만큼은 아니지만 K리그 내에서는 탑급의 기량까지 올라오게 된다.

또한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역시 멀티플레이어였다는 것. 주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 혹은 윙백이었지만 페예노르트 시절에는 오른쪽 윙어로 뛰기도 하였고 수원 시절에는 중앙미드까지 보며 만능맨으로서의 재능을 자랑하였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네이버 웹게임 '풋볼데이' 광고에 출연하여 일인다역의 열연을 펼친 적이 있다....
  • 2014년 브라질월드컵 벨기에와 러시아의 조별예선 경기에 송종국의 딸인 송지아 양이 에스코트 키드로 선정되어 루카쿠와 함께 입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송지아 양은 좀더 성장한 후에 아버지의 피를 물러받은 것인지 굉장한 드리블을 선보이기도....

  • 사생활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결혼과 이혼을 두번씩 반복하였는데, 이 두 이혼에 관해서도 상당히 말이 많았다. 두 번째 아내였던 배우 박연수 22  와의 이혼도 송종국의 바람으로 이혼했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 이와 관련하여 2018년에는 꽁병지TV에서 김병지에게 송종국의 라이벌은 피구도 앙리도 아닌 라이언 긱스라는 디스를 당하기도....

 

특히 박연수와의 이혼은 당시에 여러가지 말이 나왔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이 무뎌진건지 현재는 그냥 친구와 같은 사이로 지내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이혼 후 둘 사이에 낳은 두 자녀의 양육권은 박연수에게 주어졌는데, 그래도 아버지인 송종국과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잘 지내고 있는듯. 두 자녀는 송종국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송타크로스'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다. 박연수 또한 2019년 자신의 인스타에 아래와 같은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보아 세월이 지나면서 둘 사이에 있던 감정의 골이 많이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 2017년 슛포러브에 출연하여 박건하 등 엠스플 K리그 해설위원들과 팀을 짜 김병지, 최진철, 이천수 등을 상대로 풋살 경기를 하였다. 여기서 그는 녹슬지 않은 발재간을 자랑하였지만, 마지막 승부차기 때는 홈런을 날려버려 08시즌 재연에는 실패하였다....
  • 2018년 꽁병지TV에서 박건하, 김병지와 크로스바 챌린지를 벌였는데 여전한 발끝 감각을 보여주었다.
  • 2018년 꽁병지TV에서 자신의 유럽 커리어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썰을 풀었는데, 이 중에서 페예노르트 시절 팀동료였던 디르크 카윗에게 본의 아니게 디스를 당했던 썰이 압권이다.... 이 외에도 여러 썰을 많이 해주니 시간나면 꼭 한번 아래 영상을 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