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백지훈

승리의 파랑새

프로필[원본 편집]

  • 이름: 백지훈 (白智勳 / Baek Ji-Hoon)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일: 1985년 2월 28일
  • 출생지: 경상남도 사천시
  • 신체: 175cm, 65kg
  •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 (2003~2004) → 북패 (2005~2006)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2016) 상주 상무 (군복무) (2012~2013) → 울산 현대 (임대) (2014) → 서울 이랜드 FC (2017) → 리만 FC (2018~ )

소개[원본 편집]

대한민국 국적의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 축구선수. 현재는 홍콩 프리미어 리그 리만 FC 소속이다.

어린 시절[원본 편집]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태어나 봉래초등학교, 풍기중학교,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 백지훈은 학창시절 축구센스가 뛰어난 선수로 정평이 높았으며, 2001년 백록기 고교축구대회 어시스트상과 2002년 전국고교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슈퍼루키의 탄생을 알렸다.

클럽[원본 편집]

전남 드래곤즈[원본 편집]

안동고를 졸업한 백지훈은 김진규와 함께 2003년 전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전남에는 김도근을 비롯해 유상수, 박종우, 이영수, 김홍철 등 쟁쟁한 선배들이 버티고 있었다. 때문에 백지훈은 즉시 주전감으로는 활용되지 못했지만, 간간히 조커 멤버로 나오면서, 주전경쟁에 서서히 열을 올렸다. 2 3 백지훈은 전남에서 2004년까지 22경기에 출전 1골을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당시에는 어린 나이였고, 대표선수 생활로 인해서 자주 차출이 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연착륙이었던 셈이었다.

북패[원본 편집]

2005년 백지훈은 전남을 떠나 북패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북패는 이장수 감독 체제 아래에서 리빌딩을 시작했고, K리그에서 검증받은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훼이종과 노나또를 필두로 박성배, 이기형 등을 영입한 북패는 즉시 전력감이었던 이준영을 전남에 내주고 백지훈을 데려오며 리빌딩에 방점을 찍었다. 백지훈은 이장수 감독의 지원 아래 22경기에 출전 2골을 넣었고, 이듬해인 2006년 전반기까지 15경기 1골을 넣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백지훈은 2006년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에도 뽑혔다. 당시 백지훈은 잘생긴 외모와 탁월한 축구센스로 일종의 신드롬 속에 2005년에 입단한 박주영과 함께 북패의 관중몰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원본 편집]

그리고 2006년 당시 북패 감독이던 이장수 감독이 김동진, 박주영, 백지훈과의 불화로 선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팀내에서 입지가 좁아져 있었다. 게다가 6개월 뒤에 FA가 되면 국가대표팀 미드필더를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내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감독과 구단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고, 마침 전남 시절부터 백지훈을 탐내던 수원이 15억원을 제시하자 4 선수의 동의 없이 구단 간 이적을 합의한다. 백지훈 측은 하우젠컵 우승을 눈앞에 두고 북패를 떠나기 싫어하기도 했으며, 이렇게 비싼 이적료로 이적을 하게 되면 해외리그 진출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수원 이적을 원하지 않았으나, 북패와 수원이 열심히 설득한 결과 월드컵 직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된다.

수원 팬들은 고종수나 김두현의 공백을 메워주며 수원의 중원에 창의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재라는 이유로 환영했으나, 북패 팬들은 '확실한 핵심 선수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하필이면 왜 수원이냐...'하는 심정으로 백지훈의 이적을 지켜보았다. 서정원 이적 파동 때와 달리 백지훈은 양 팀간 증오를 낳는 수준은 아니었다.

수원으로 이적한 후 백지훈은 비로서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게 된다. 2006년 반 시즌만 수원에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14경기 5골을 기록하며 수원 팬들에게는 기쁨을 주었다. 이후 2007년 23경기 6득점 1도움, 2008년 22경기 4득점 2도움을 기록한다.

북패 시절에는 팀 내에 걸출한 공격형 미드필더 히칼도가 있었기 때문에 주로 2선으로 내려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장점인 공격력은 살리지 못하고 단점인 수비력 부족만 노출했던데 반해, 수원에서는 김남일, 이관우 등의 지원을 등에 업고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맡게 되며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다만 2009년부터 최성현과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출장경기 수 대비 출장시간은 줄어들어갔고, 2010년부터 벤치를 데우는 일이 많아지며 팀내의 입지가 많이 불안해졌다. 그러나 2010년 6월 차범근 감독이 사임하고 ㅇㅅㅎ 감독이 부임한 이후부터 주전으로 출장기회가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9월 22일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 성남과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입고 난 후 시즌 아웃, 기나긴 재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긴 부상 기간과 불안한 입지 때문에 이적 루머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일단 수원에 남았다. 그러나 2011년에는 재활에 전념하느라 2011년 9월 17일 현재까지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관우의 사례가 다시 벌어지지 않을까 팬드은 우려했다. 결국 2011년은 끝내 복귀하지 못한 채 한 시즌을 통째로 까먹었고, 2012년 상주 상무 서류 전형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상무로 입대했다.

백지훈은 상주에 입대해서도 부상여파 때문인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2년 백지훈은 14경기에 나왔지만 1도움에 그쳤고, 팀이 K리그 챌린지에 참여한 2013년에도 11경기에 나와 1골에 그쳤다. 제대 이후에 원소속팀에 복귀하는 듯 싶었지만, 수원은 백지훈을 자유계약으로 풀어버리면서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울산 현대[원본 편집]

2014년 2월 백지훈은 울산 현대로의 임대이적을 확정짓게 되었다. 수원팬들은 백지훈이 울산에서 부상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2014년 울산의 조민국 감독은 백지훈에 큰 기대를 걸면서 울산을 이끌어주길 바랐지만,5  백지훈은 좀처럼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팀의 성적도 급전직하. 조민국과 함께 울산 추락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결국 2014년 말미 조민국 감독은 해임되었고, 윤정환 감독이 부임하면서, 백지훈을 조기에 돌려보냈다.6 

다시 수원으로[원본 편집]

상주 상무와 울산 현대에서 끝내 폼을 회복하지 못한 채 백지훈은 친정팀인 수원 삼성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복귀 후, 팬들 사이에서는 예전과 같이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과 부활을 기대하면서 과거 '승리의 파랑새'였던 백지훈을 반기는 모습으로 나뉘었는데, 오래 지속된 부진으로 방출설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정원 감독은 베테랑인 백지훈 선수의 존재가 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 팀에 잔류시켜 차기 시즌인 2015 시즌을 준비하였다. 5년 만의 2015년 3월 14일 인천 유나이티드와 경기에서 권창훈과 교체로 출전했는데 경기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후반 종료 직전 김대중의 실책을 놓치지 않고 정대세에게 패스를 전달해  염기훈의 역전골에 간접 기여하면서 반신반의의 평가를 연장하게 되었다. 이 경기 이후로는 보다 수비적인 위치에서 경기에 출전, 초반에 받았던 템포를 쫓지 못한다는 평을 연장하였다.

올 시즌은 수원의 미드필더 자원이 워낙 얇은데다가, 김은선의 부상까지 겹치며 미드진에 구멍이 커지자 자주 기용되고는 있지만 기복을 매우 탄다. 잘 하면 그냥 평범한 수준이고 못 하면 투명인간급. 그래도 중앙 미드필더 요원인 김은선과 오장은이 동시에 드러누운 상황에서 빈 자리를 메워 줄 로테이션 멤버 정도로서는 나쁘진 않지만...... 주전으로서 중용하기에는 애매한 상태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6 시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주로 기용되고 있다. 김은선의 입대와 이용래의 부상 후유증 등으로 볼란치 자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백지훈이 대체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인데, 팬들은 대체적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에 걸맞는 백지훈이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편. 결국 2016 시즌도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그대로 계약이 종료되었다.

리만 FC[원본 편집]

한동안 뛸 팀을 구하지 못하고 무적 상태로 지내다가 작년 창단된 홍콩 프리미어 리그 팀인 리만 FC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올라왔다. #백지훈의 풍부한 경험을 보고 영입했다고. 이적이 성사되면서 2018~19 1년간은 홍콩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다행히 리그 적응도 잘하고 활약도 하면서 팀내 입지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기사

국가대표[원본 편집]

2003년 말레이시아 청소년축구대회를 위해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에 만 18세의 나이로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소집되었다. 이후 2004년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후반 10분 결승골이자 청대 마수걸이골이 골을 넣으며 1:0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당시 한일 청소년 대표팀 상대전적이 22승 4무 3패로 압도적으로 한국이 우위에 있었지만 올림픽대표팀에 승선했던 히라야마가 버티고 있었고 원정이라는 열세에 있던터라 쉽지만 않은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활약을 한 박주영과 백지훈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본 킬러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부산 4개국 청소년축구대회에서도 당당히 승선하여 주축 공격라인으로 활약하였다. 미국과 폴란드를 꺾은 데 이어 사상 처음으로 브라질과의 경기에도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7 아무리 홈이라고 하지만 브라질 멤버들이 대부분 프로에 몸담고 있었고 FIFA 주관 U-17, U-20 경기를 다 휩쓸었던 강팀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값진 승리였다. 물론 브라질 결승골의 주인공 박주영과 김진규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잘생긴 외모와 매경기 통쾌한 중거리슛을 날린 백지훈도 상당히 찬사를 받았다.

이후 부상을 당했지만 기존에 있었던 대표팀과 클럽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 청소년 (U-20)선수권 대회 엔트리에 들게된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동남아시아 우기까지 겹쳐 조별예선에서 탈락 위기까지 몰렸지만 박주영의 활약으로 간신히 8강 진출하게 되고 우즈벡까지 꺾으며 4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후 4강 한일전에서 백지훈은 선취골을 넣으며 일본킬러로 확실히 눈도장을 받았고 팀은 2:2로 비겼지만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승리하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중국이었는데 지긋지긋한 공한증의 역사를 중국에 다시 한번 뼈저리게 각인시키며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성인대표팀이 성적부진과 졸전으로 많은 팬들의 질타가 있었기에 청소년대표팀의 선전과 투혼은 많은 축구팬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백지훈은 이 대회를 통해 신영록과 같이 차세대 스타플레이어라는 기대를 받게된다.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에서도 선발되어 공격진엔 박주영 중원엔 백지훈 수비진엔 김진규, 부동의 주전으로 뛰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스위스 이기는' 심리전 3가지를 말했는데 상당히 순수하다. 물론 스위스한테 1:2로 패배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도 중거리슛은 상당히 위력적이었고  신영록의 선취골도 백지훈의 슈팅이 포문이 되었다. 이후 나이지리아전에선 인저리   타임에 무각골을 넣으며 국민들에게 백지훈이라는 이름을 알렸고 그 경기와 골은 아직도 회자될 만큼 최고의 명경기와 역전골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경기의 감동은 정치인들까지 이용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전에 모든 걸 쏟아부는 태극전사들은 다음 브라질전에서 거짓말 처럼 패배하고 만다. 세계선수권 조별예선탈락 이후 백지훈, 박주영, 박성화 모두 세계의 벽을 넘기위해선 조직력과 체력, 투혼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선수개인기량 향상이 숙제라고 얘기했다.

분명 동 나이 한국 선수 중에선 최고의 미드필더이자 아시아에선 경기 운영 능력이나 중거리슛과 같은 능력은 월등히 좋은 선수였지만 세계수준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는 대회였다. 하지만 FIFA에서도 예비스타로 낙점할만큼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고 박성화 감독도 백지훈의 개인기량이 일취월장 발전했다고 한 점이 위안거리가 되었다. 잘생긴 외모와 나이지리아 전 역전골로 인해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기사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뽑혔을만큼 공격 가담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이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한편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은 기복. 몇 경기에서 MOM급 활약을 보여주며 큰 인상을 남기다가도 몇몇 경기에서는 경기장에서 거의 안 보이는 닌자급 활약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잔부상 때문에 꾸준하게 출장하지 못하며, 간신히 출장해도 몸이 덜 만들어져서 활약 미진 - 몸이 만들어져서 활약 - 팬들 기대 - 부상 - 회복 - 몸이 덜 만들어져서 미진한 활약 식의 무한 로테이션을 탄다(...)

2009 시즌 이후부터는 공격형 미드필더 치곤 패스의 정확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는 점 또한 단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공격에 특화한 선수라 아무래도 수비 가담 능력이 좋지 않아서 백지훈을 기용할 때에는 다른 미드필더에게 수비 부담이 따른다는 한계도 있다. 그나마 2015년 들어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하면서 수비 가담에 잘 참여하기는 하지만 안드레아 피를로나 사비 알론소같은 레지스타들처럼 3선에서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하고 중원장 악력이 우수하지도 못하다보니 2015년부터는 다소 계륵같은 위치에 있었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슈가의 리더였던 박수진과의 열애설이 나왔고, 결별설이 나올 때 박수진이 공식으로 연인 사이임을 인정했었다. 서로 연애 사실을 인정했던 희귀한 케이스.
  • 외모가 상당히 잘생겼다. 전성기 시절에는 각 팀의 여성 팬들 지분도 상당 부분 책임졌을 정도. 일각에서는 저 외모 덕에 그가 있던 팀의 마케팅에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 2018년 5월 1일자 슛포러브 지구방위대 새 멤버로 합류하였다. (사실상 축구선수에서 은퇴한 듯...) 했지만 리만 FC에 합류하면서 은퇴는 하지 않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