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프로필[원본 편집]
- 이 름: 박기동 (朴基棟 / Park Gi-Dong)
- 출생일: 1988년 11월 1일
- 국 적: 대한민국
- 출생지: 대전광역시
- 학 력: 중리중 → 충남기계공업고교 → 숭실대
- 포지션: 중앙 공격수
- 신 체: 191cm, 83kg
- 소속팀: FC 기후 (2010) → 광주 FC (2011~2012) → 남패 (2013.01~2013.07) → 전남 드래곤즈 (2013.07~2016) →상주 상무 (2014.12~2016.09 , 군 복무)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7~2019) → 매남 (2019~ )
- A매치: 1경기
클럽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원본 편집]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대전 중리중, 충남기계공고, 숭실대학교를 나왔다. 충남기계공고 시절부터 장신의 포스트 플레이어로 활약하였으며, . 숭실대에서 주력 공격수로 맹활약하면서,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선발되어 대학 무대에서 맹활약했다. 2009 덴소컵1 2 에서 일본 대학선발과 맞붙으며, 한단계 높은 타점과 마무리 능력으로 일본 수비진을 압도하며 2골을 기록, 덴소컵 MVP를 수상하였다. 당시 이 대회를 관전하던 J리그 스카우터들의 눈에 띄었다. 대학 무대에서는 주로 좋은 피지컬을 앞세워 포스트 플레이를 이용해 골을 넣으면서 활약했다.
FC 기후[원본 편집]
-정말 몇 없는 기후 시절 사진.-
덴소컵 활약을 바탕으로 박기동은 일본 구단들의 러브콜을 받았고 2010년 1월 J2리그의 FC 기후로 이적하게 되었다.
박기동 입단 당시, FC 기후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팀 스폰서가 자금 지원을 철회함에 따라, 선수들에게 제때 월급도 챙겨주기 어려웠던 것. 당시 FC 기후에 박기동 선수보다 1년 먼저 입단했었던 서관수는 넌더리를 내면서 내셔널리그로 돌아간 바 있을 정도로, FC 기후는 J2에서도 환경이 가장 열악한 팀 중 하나였다. 결국 박기동은 이러한 팀 형편 속에서 2010시즌 J2리그 6경기 1골에 그치며 1년을 낭비한 뒤 국내 복귀를 택했다.
광주 FC[원본 편집]
2011년 드래프트에 신청하여 광주 FC에 우선지명 되며 광주에 입단하게 된다. 비록 일본에서 부진했지만, 대학 시절 명성도 있고, 또 박기동을 팀의 간판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즌 개막을 앞두고 광주 FC의 초대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K리그 개막전에서 대구 FC를 상대로 2골을 터뜨리며 데뷔전 2골을 기록한 신인으로 언론에 깜짝 조명을 받았고 마침 그 경기를 본 조광래 국가대표 감독의 눈에 들어 국가대표에 차출되어 온두라스 전에 출장까지 하는 등 눈깜짝할 사이에 스타덤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다만 국가대표 차출 이후에는 활약도가 잠잠해지며 결국 2011 시즌 3골 5도움으로 아쉬운 데뷔 시즌을 마쳤다. 물론 광주 FC가 창단팀이다 보니 뎁스가 얇은 것도 있지만, 초반 활약을 이어가비 못한 부분도 있었다.
2012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전반기에 출전을 못했다. 후반기에 나와서 나름 활약하기는 했지만 명성에 비해 만족스러운 활약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최전방 공격수 치고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했고 주로 2선에서의 패스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31경기 5골 5도움이라는 그저 그런 기록으로 마무리하며 광주의 주포라 부르기에는 미진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 때 박기동은 득점을 스스로 터뜨리기 보다는 주로 이승기, 김은선, 주앙 파울로 등 2선에서 침투하는 동료들에게 볼을 떨궈주는 역할이 더 돋보였던 편.
남패[원본 편집]
이후 2013 시즌을 앞두고 팀의 원년 멤버인 박병주에 현금 7억원을 얹는 조건이 성사되어 남패로 이적한다. 나름대로 거액을 들여 남패가 박기동을 데려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일본 팀과의 평가전에서 장기 부상을 당하며 쓰러져, 프리 시즌을 병상에서 보내야했다. 여기에 당시 남패는 서동현과 페드로 라는 막강한 공격자원이 있었기에, 박기동에기 경기에 나설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전남 드래곤즈[원본 편집]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합성 퀄리티를 보여주는 전남...3 -
결국 6경기 교체 출장에 그친 박기동은 남패 입단 6개월 만에 이적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됐다. 매물로 나온 박기동을 전남 측이 이를 놓치지 않으려 재빨리 영입을 제의했고 전남의 수비수 황도연과 현금을 얹는 조건이 성사되어 전남으로 이적한다. 1시즌에 두번 이적도 쉽지 않은데 그 두번 모두 트레이드로 타 팀 이적을 했으니.. 전남에서는 출장 기회를 충실히 부여받았지만, 예전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9월 경남 FC 전에서의 선취골을 제외하곤, 득점포도 침묵하며 하석주 감독의 속을 썩이던 박기동은 본격적으로 포텐이 터진 이종호에게 밀리며 중앙 미드필더로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손정탁 클럽에도 가입하고 말았다..
2014 시즌에도 전남에 잔류하였지만 스테보, 이종호 등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박기동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결국 본인도 딱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2014 시즌도 8경기 출장에 그치는 부진을 보인 끝에, 2015년을 앞두고 팀 동료인 박준태와 함께 군 입대를 택하였다.
상주 상무[원본 편집]
2015시즌부터는 상주 상무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상주에서 박기동 선수는 그럭저럭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그동안 보여준 하향세를 만회하였으며, 2015년 상주 상무에서의 첫 시즌에 35경기 6골 5도움을 기록하며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교체출전이 많았다는 걸 감안하면 꽤 괜찮은 기록.
상주가 승격한 2016년에는 주전 공격수로 득점과 연계 모두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9득점 8도움을 올리는 대단한 활약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조진호 상주 감독이 박기동의 전성기를 찾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그러나 2016년 9월부로 군 전역 뒤, 원소속팀 전남에서는 이런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원본 편집]
7.1. 2017 시즌[원본 편집]
전남 드래곤즈에서 5경기 출전하여 무득점에 그치는 아쉬운 활약을 보인 박기동은 시즌 종료와 함께 매번 이적 시장마다 장신 공격수를 노리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강력히 연결되었고, 전남 역시 자일이라는 확실한 득점원의 존재와 헝가리 국가대표 출신 페체신의 영입에 착수한 상태였기에 박기동을 이적시장 매물로 내놓게 되었다.
그렇게 2016년 12월 31일 단독 기사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한다고 발표되었으며, 2017년 1월 4일로 연제민과 트레이드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입단이 확정되었다. 수원 팬들은 공격수를 영입한 건 좋은데 왜 하필 로컬보이인 연제민을 보냈냐며 아쉬워했다. 여담으로 박기동은 남패, 전남에 이어서 수원에 트레이드로 입단하면서 트레이드로만 3번 이적한 진기명기(?)한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박기동은 말라가 전지훈련 연습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수원 팬들로부터 큰 기대를 받게 되었는데, 정작 시즌이 개막하고는 또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ACL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여러 차례 놓치며 수원의 16강 진출 실패의 원흉이 되었다. 리그에서도 딱히 잘한건 아니여서 전반기 15경기 5슈팅 0골이라는 처참한 스텟을 쌓았다. 여기에 조나탄이 시즌 초반 부진을 끝내고 연속 득점 행진을 보여주고, 신예 유주안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점점 입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골이 터지지 않아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박기동은 28라운드 전남전 에서 드디어 첫 골을 기록했다. 김민우의 슈팅이 골대 맞고 나온게 박기동의 몸을 맞고 들어간 것. 비록 본인이 만들어낸 골은 아니었지만, 다행인 점은 연계 플레이로 골에 관여했고 피지컬로 최전방에서 비비면서 슈팅을 날리는 등4 본인의 장점을 살리는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 후 박기동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늘 간절하게 임할 것'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10월 1일 매북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시즌 2호골.
이어 10월 8일 포항전에서도 골을 넣어 2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다만 팀은 또 쎄오타임이 작렬하며 승리를 놓쳤다. 10월 15일 스플릿 첫경기인 울산전에서 조나탄과 투톱으로 선발출전 피지컬로 울산의 수비진을 들쑤시며 승리의 숨은 공신이 된다.
시즌 최종기록은 25경기 21슈팅 3골. 본인이 목표로 했던 10골 7도움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그래도 시즌 막판에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7.2. 2018 시즌[원본 편집]
전반기에 또 부상을 당하며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또한 데얀, 김건희, 전세진, 유주안 등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 7월 25일 김포시민축구단과의 FA컵 경기에서 오랜만에 선발출장했다. 팀은 6:1로 대승을 거뒀으나 본인은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며 전세진과 교체되었다.
8월 4일, 21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데얀과 교체되며 리그 첫 출장을 기록했지만, 역시나 부진했다. 피지컬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기대했는데 정작 몸싸움에서 밀리고 측면으로 빠져버리는 모습을 보여 팬들이 뒷목을 잡게 했다(...).
8월 12일 22라운드 울산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해서, 전봇대 롤을 소화했다. 데얀의 체력 안배를 위한 조처. 다만 이전 경기들에 비해 미약하나마 존재감은 보였다. 그러나 김건희의 상무 입대 이후, 2선발 스트라이커가 꽤나 부진한 수원에게는 박기동의 부활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아직까지는 자신감이 크게 부족한 모습. 게다가 젊은 군필 자원인 한의권의 합류로 입지 또한 위태로워졌다.
8월 29일 매북과의 ACL 8강 1차전 경기에서는 데얀과 투톱을 이루어 출전했는데, 골은 없었지만 장점인 피지컬로 데얀을 지원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후반에 킬혁의 살인태클로 부상을 당하며 김은선과 교체되었다. (킬혁의 만행을 알 수 있는 사진.)
이후 수원팬들은 살인태클로 박기동에게 부상을 입힌 킬혁이 2차전에 나올 시 공을 잡을 때 마다 강한 야유를 퍼부으려고 했으나,5 경기엔 출장하지 않아 아쉽게 이뤄지진 않았다.
매북 전때 입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라는 얘기가 있었을 만큼 부상이 심각하리라 예상했지만 서정원 감독의 복귀 첫 훈련에서 박기동이 부상이 나은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10월 17일 남패와의 FA 컵 8강 경기에서 교체로 출장해 염기훈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밀어넣으면 드디어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한 방에 날려버린 멋진 헤딩골.
01월 24일, 가시마와의 2차전에서는 후반에 최성근과 교체되며 출전, 본인의 장점인 힘과 높이를 활용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팀은 고질적인 수비불안으로 아쉽게 탈락.
10월 31일, 울산과의 FA컵 4강전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며 후반 이종성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하지만 팀은 패배해 탈락.
11월 10일, 리그에서 다시 만난 울산과의 경기에서 한의권과 교체되어 출전, 2-0으로 지고있던 후반 데얀의 만회골을 어시스트하고 이어서 울산의 이명재가 헤딩으로 걷어낸 공을 차 넣으며 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1골 1도움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팀은 또 쎄오타임이 작렬해 3-3 무승부(...). 어째 본인이 잘할 때마다 팀이 승리를 놓치고 있다.
시즌이 마무리되어가는 와중, 현재까지의 모습만 보면 리그 1골, FA컵 1골로 여전히 아쉬운 모습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더티 플레이를 보여주는 빈도가 늘어나 비판받고 있다.
결국 리그와 컵을 합쳐 2골 2도움만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
시즌 종료 후 단독 기사에서 이적료 5억에 매남으로 이적한다는단독 기사가 떴다.
국가대표[원본 편집]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그 후론 리그에서 부진하면서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2016년 상무에서 보여준 엄청난 활약으로 잠시 국가대표 발탁 가능성이 높아졌던 적이 있었다.6 하지만 이 해에는 대표팀에 발탁되지는 못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가장 돋보이는 장점은 피지컬. 191cm의 장신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 플레이에 능하다. 또한 큰 키에 비에 발재간도 좋은 편인데, 주발이 어느 발인지 헷갈릴 정도로 양 발을 모두 잘 쓴다. 가장 잘했던 상주 시절을 보면 왼발과 오른발로 넣은 골 둘 다 많다. 그런데 프리킥 준비 상황에서 오른발 쪽으로 서있던 것을 보면 그래도 오른발을 조금 더 잘 쓰는 듯.
단점은 역시나 골 수가 너무 적다는 점. 2011년 데뷔 이후 7년간 넣은 골이 총 24골이다. 그나마도 상무에서의 기록을 빼면 9골. 골 넣으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까이던 강수일이나 삼동현과 비슷한 수준이다. 원래 득점력보다 포스트 플레이가 장점인 선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은 스텟 생산량은 공격수로서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커리어 하이인 상무 시절에는 동료들과의 연계를 통해 본인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며 만능 공격수나 다름없는 활약을 보여줬는데, 이러한 모습을 앞으로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
플레이 영상[원본 편집]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FM 2012에서 싸고 포텐이 펑펑 터지는 공격수로 나와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나름 유명했다. 그런데 2016 시즌에 진짜 포텐이 펑펑 터졌다!!!
- 박주영을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광주 시절 국대에 뽑혔을 당시, 무척 떨려서 3일 동안 말도 못했다고. 이후 박주영이 편하게 대하라고 말하면서부터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사
- 전술한 광주에서의 데뷔전 멀티골 덕분에 국가대표 발탁설이 나오며 한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이때 '박기동, 국대가자'라는 것을 누군가 오타를 내서 '박기, 동국대 가자'라고 하는 바람에 못 할 때마다 그래가지고 동국대나 갈 수 있겠냐고 까였다 (...)
- 2017년 28라운드 전남전에서 제 3의 다리(?)로 골을 넣은 적이 있다.(...) 물론 제 3의 다리가 어딘진 잘 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