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마틴 레니

프로필[원본 편집]

  • 이름: 마틴 레니 (Martin Rennie)
  • 출생: 1975년 5월 22일
  • 출생지: 영국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주 써소
  • 국적: 영국(스코틀랜드), 미국
  • 직업: 축구감독
  • 소속: 캐스케이드 서지 (2005) 클리블랜드 시티 스타즈 (2007~2008) 캐롤라이나 레일 호크스 (2009~2011)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2011~2013) 서울 이랜드 FC (2014~2016) 인디 일레븐 (2018~)

==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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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전 감독이자, 서울 이랜드 FC의 창단 감독이다.

감독 경력[원본 편집]

감독 커리어 이전[원본 편집]

1975년 5월 22일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주 써소(Thurso)에서 태어났다. 그 후 하일랜드의 베티힐에서 목사이신 아버지와 10년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재학 중이던 어느 주말, 우연히 지역 축구 팀인 폴커크 FC란 팀의 볼보이로 불려졌다. 그 때부터 그는 축구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 그는 이후 글래스고 칼레도니안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전공했다. 대학 마지막 해에 샬럿 이글스란 팀의 축구 적격 심사를 받지만, 오른쪽 무릎 십자 인대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레니는 하는 수 없이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일찍 접고 그 대신 축구 마케팅으로서 또 다른 축구인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감독 커리어 시작[원본 편집]

스코틀랜드로 다시 돌아간 레니는 스코틀랜드의 몇몇 유소년에서 마케팅과 코치를 맡게된다. 그는 이 과정에서 번 돈으로 스코틀랜드 축구협회 코치 자격증을 얻기 위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UEFA A급 코치 자격증도 얻게 된다. 이후 로시스 FC란 팀에서 첫번째 코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미국 무대 입성[원본 편집]

2003년에는 미국 축구 팀들의 아프라카 자선 투어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고, 이 인연으로 레니는 미국 축구계에 진출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레니는 2005년 미국의 축구 4부 리그 팀인 캐스케이드 서지란 팀에서 처음으로 감독직을 맡게 됐는데 레니는 이 팀에서 노스 웨스트 부문 타이틀 우승, 웨스트 코스트 대회 우승, US 오픈 컵 참가 자격 획득, 페어 플레이상등 각종 부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

MLS[원본 편집]

이후 클리블랜드 시티 스타즈, 캐롤라이나 레일 호크스를 거쳐 2011년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레니가 밴쿠버를 맡기 전 밴쿠버는 MLS에서 바닥을 기는 하위권 팀이었다. 하지만 레니는 팀을 재편성하고 젊고 흥미로운 선수들과 EPL 출신의 선수들을 데려왔다.1 

레니는 벤쿠버에서 포백과 투볼란치를 겹겹이 쌓고, 그 기초 위에 공격진들의 성향과 능력에 맞게 선수 선발과 배치를 조정하여 그럴 듯한 그림을 만들어 내는 역량을 보여주었으며,2 비록 후반기에 급속히 힘이 빠지면서 순위 상승의 동력을 잃었긴 했지만 팀을 공격적이고 재밌는 스타일의 팀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부임 첫시즌부터 벤쿠버를 이끌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유일한 MLS 플레이 오프를 진출한 캐나다 팀이되었다. 하지만 이후 밴쿠버는 좋은 성적을 거두긴 하지만, 이렇다 할 우승을 거두지 못했으며, 결국 레니 감독은 팀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이후 레니는 대한민국 K리그에서 창단되는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정된다.

한편 이영표는 마틴 레니는 선진화된 훈련 방법과 시스템에 능하며 선수의 인성과 심리를 잘 관리해 팀의 단합을 주도하는것이 장점인 감독이라고 언급했었다.

언론에서는 레니가 벤쿠버에서 경질당한 이유에 대해 시즌 내내 일관적인 경기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특히 시즌 후반기까지 팀을 안정적인 폼 아래에 끌고가지 못하는 미숙한 시즌 운영 탓이라고 말했다.

서울 이랜드 FC[원본 편집]

벤쿠버에서 감독 생활을 정리한 마틴 레니는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14년 7월로 창단 준비 과정에 있었던 서울 이랜드 FC의 초대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K리그 무대에 진출하였다. 서울의 창단 첫 시즌인 2015년에는 2014년 동안 U리그 대회를 관람하며 옥석을 고른 유망주를 영입하고, K리그 클래식에서 다년간 활약한 조원희, 김영광, 김재성 등 베테랑, J리그에서 활동하다가 군 문제로 복귀하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청단 첫 시즌 승격이라는 야심찬 목표로 출발하였다. 외인 수급에도 다른 K리그 챌린지 구단들보다 더욱 열정을 보이기도 했는데, 마틴 레니 감독은 벤쿠버에서 까밀로를 활용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몰타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타라바이를 영입하고,3 북중미 국가에서 국가대표로 활동한 칼라일 미첼, 라이언 존슨, 그리고 일본에서 유망주였던 보비로 첫 시즌을 준비하였다. 여기에 새로운 트레이닝 방식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도입하며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레니는 골키퍼부터 시작되는 볼 공급, 전방으로 향하는 플레이, 침투와 크로스 등으로 시작해 전후방 압박과 공수 전개 시점의 원활한 확보로 끝을 마무리하는것, 빠른 패턴 플레이를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공격축구를 펼쳤으며, 특히 주민규 등의 흙속의 진주를 찾아내며 선수를 보는 높은 안목을 과시했다.

창단 첫 해부터 서울 이랜드 FC를 상위권에 올려놓았고 승강 준 플레이오프도 확정지었으나, 한시즌동안 일관적인 경기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특히 시즌 후반기까지 팀을 안정적인 폼 아래에 끌고가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수원 FC에 밀려 승격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2년차인 2016년 경기력이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는데다가, 작년에 비해 비교적 덜 공격적이고 수비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는 자칭 재미 없는 축구를 보여주었으며, 중앙 미드필드진과 공격 2선에서 답답한 플레이를 보이는 등의 한계를 들어냈고 추가로 지난시즌 이랜드의 공격의 핵이였던 주민규의 부상 악재도 겹쳤고, FA컵에서 설기현의 성균관대에게 패하며4 탈락해 비판 의견이 점점 늘고 경질 여론이 불기 시작했다.

애초에 2016시즌의 경우 레니 본인의 축구를 펼치기 더 유리한 스쿼드를 구성하고 있었다. 측면 수비진에 풍부한 리그 경험을 갖춘 이재훈과 이규로가 새롭게 가세하였고, 수비 리딩 역할을 분담해 줄 수 있는 김동진이 합류하였고, 김동철과 김준태 역시 지난 시즌의 조원희와 비교했을때 훨씬 레니의 투보란치에 적합한 선수들이었다. 공격진에서는 벨루소라는 검증된 득점 카드가 더해졌기에 2015시즌보다는 확실히 더 좋은 선수 구성이였으나, 그걸 살리지 못한 것이였다.

결국 6월 15일 계약 해지를 발표하고 경질되었다. 이후 인창수 수석코치가 잠시 감독 대행을 맡았고 후임 감독은 박건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가 내정됐다.

마틴 레니와 이랜드의 실패는 필연이었나?: 밴쿠버에서부터 6.15 경질까지의 발자취

서울 이랜드 이후[원본 편집]

이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던 레니는 2018년 미국 NASL의 인디 일레븐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감독 스타일[원본 편집]

전통적인 영국식 선굵은 축구를 선호하며 선수단을 자율적인 생활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지도 스타일을 지녔다. 서울에서 감독직을 수행할 당시에는 측면 수비수들의 활발한 공격 가담과 수비 전환을 요구했으며, 미드필더 선수들의 정확한 롱패스를 통해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마무리 짓게 하는 유형의 전술을 보여주었다. 또한, 선수 발굴에 있어도 일가견이 있는데, 수비형 미드필더로 고양 Hi FC에서 평범한 선수로 지내온 주민규를 스트라이커로 기용해 K리그 챌린지 대표 스트라이커로 거듭나게 했던 안목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경기 스타일에 있어 체력 소모가 극심하고 세밀함이 부족해 경기 스타일이 단조로워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으며, 세부 전술에 대한 세밀함 역시 아쉬움이 크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종합하자면, 안목이나 동기부여 능력은 좋지만 전술적 측면은 아쉽다는 평.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이영표와 돈독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두 인물은 벤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2014년 여름에 창단 준비 과정에 있던 서울 이랜드 FC의 초대 감독으로 이영표가 마틴 레니를 적극 추천하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 서울 이랜드 구단 마스코트 중 양복을 입은 표범 '레니'가 마틴 레니 감독을 모티브로 했다. 하지만 레니 경질 이후 안 보이더니 결국 최종적으로 레울 패밀리가 등장하며 없어진 마스코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