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김호남

인천 유나이티드 FC No. 11

김호남 (金浩男 / Kim Honam)

등록번호

20110193

생년월일

1989년 6월 14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전라북도 부안군

포지션

윙어, 우측 윙백,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주발

오른발

신체조건

177cm, 74kg

학력

부안초 - 삼천남초 - 전주해성중 - 전주공고 - 광주대

프로입단

2010년 사간 도스

소속팀

사간 도스 (2010)

광주 FC (2011~2015)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6~2019)

상주 상무 (2017~2018, 군 복무)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9~ )

국가대표

U-23 0경기

별명

호남의 아들, 호남두, 호남턴, 김메남 1 , 인천의 아들, 존나좌

개요[원본 편집]

"정말 감사하고... 제가 이런 분들과 같이 축구를 한다는게 너무 영광스럽고... 진짜, 존나 멋있는 것 같아요! 어디 안 갈 거니까! 같이 있는 동안 진짜 한번 미쳐봅시다 우리! 감사합니다!"

- 2019 시즌 최종전을 마친 뒤 서포터즈 앞에서 남긴 말.

"프로라는 이유로 억울한 거 다 품고 이제까지 해왔는데 참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다시는 내가 속한 팀이라고 해도 다시는 완전히 다 믿지말자라고 다짐했었는데, 또 바보같이 인천을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거를 보면 축구가 주는 감동을 인천에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얼마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인천이라는 팀에 있는 만큼은 정말 진심을 다해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마음고생이 심했던 2019년을 마친 뒤 구단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했던 말.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2020 시즌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주장을 맡았다. 공격 진영에서 주로 활동하는 선수.

클럽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원본 편집]

전주 지역에서 축구를 배웠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빠른 발을 지닌 측면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후 광주대학교 축구부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사간 도스[원본 편집]

광주대를 다니던 중 중퇴를 선언하고 2010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윤정환 감독이 이끌고 있는 J2리그의 사간 도스로 이적했다. 광주대 축구부 출신으로는 최초로 프로에 진출한 선수였다. 간암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던 아버지에게 프로 데뷔하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 내렸던 결정이었지만, 6개월 동안 4경기 교체 출장에 그쳤고 이 시기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스스로의 회상으로는 그 때 철이 덜 들었었다고.

광주 FC[원본 편집]

3.1. 입단 초기[원본 편집]

한 시즌만에 국내로 돌아온 김호남은 2011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고, 신생팀인 광주 FC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게 된다. 이 당시 광주 FC의 창단 멤버가 꽤 화려한데, 김동섭, 김수범, 김은선, 이승기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열악한 재정 상황 및 강등 문제가 겹치면서 얼마 안 가서 떠나는 선수가 발생했고, 광주가 1부리그에 복귀한 2015년 기준으로는 창단 멤버 중 김호남과 임선영 두 선수만이 남아있었다. K리그 첫 시즌인 2011년에는 리그컵 2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2 시즌에도 1경기 출전에 만족해야 했다.

3.2. K리그2 시절[원본 편집]

잊혀져가던 김호남은 팀이 강등당한 뒤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광주 FC의 강등 첫 시즌이자 K리그 챌린지 원년인 2013년 김호남은 28경기에 출전해 7경기 6도움을 기록했다. 13득점 10도움으로 팀내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루시오에 이어 확연히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듯한 모양이었으나, 이 시즌 광주는 3위를 기록하며 승강 PO 진출에 실패한다. 비록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김호남의 활약은 그 다음 해에도 멈추지 않았다. 2014년에는 37경기 8득점 5도움으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승격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강원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경남과의 승강 플옵 2차전에서 막판 동점골을 넣으며 팀의 승격을 확정지었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여름, 임선영 등과 함께 광주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로 꼽히기도 하였다.

3.3. 2015년[원본 편집]

1부 리그를 주전 멤버로써 제대로 맞이하게 되는 첫 시즌인 2015년에도 초반 대전과 부산과의 경기에서 2득점 1도움을 터뜨리며 흐름을 이어가는 중. 2015시즌 최종 성적은 29경기 8골 1도움. 팀내 최다골을 기록하고 팀이 K리그 클래식 잔류에 공을 세웠다. 1부리그에서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자신의 실력을 당당히 입증하면서 광주의 에이스로 인정받았다. K리그 올스타전에도 참가했으며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FC[원본 편집]

4.1. 2016년[원본 편집]

광주에서의 활약이 점점 좋아지면서 더이상은 광주가 잡기 어려운 선수로 성장한 김호남은 이적을 선택한다. 결국 12월 말 제주 유나이티드 FC 이적이 확정되었고, 이적료는 약 5억 정도로 밝혀졌다. 시즌 초반에는 이근호, 마르셀루 토스카누 등 막강한 경쟁자들에게 밀려서 기회가 제한적이었지만 여름을 기점으로 제주의 주축 공격 자원은 올라섰다. 광주 시절 보여주던 활약을 제주에서도 이어가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였으며, 최종 31경기 8득점 3도움이라는 우수한 기록을 남겼다.

4.2. 상주 상무 입대[원본 편집]

2016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 입대를 결정했다. 주전 윙어로 나서며 상주의 핵심 선수로 꼽혔던 멤버였다. 2017 시즌에는 시즌 말미까지 변함없는 활약으로 팀을 이끌었지만 2018 시즌에는 시끄러운 와중에 본인도 폼이 다소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초반에는 빠른 득점에 성공해서 잘 풀리나 싶었지만 포지션도 흔들리고 폼 유지에도 실패하는 바람에 전역 전에는 약간 아쉬운 기록을 남겼다.

4.3. 전역 이후[원본 편집]

2018 시즌 막판에 전역해서 팀으로 돌아왔다. 윙어로 주로 뛰던 김호남이었지만 쓰리백 전술에 맞춰서 종종 윙백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이 기용이 독이 되어 선수의 기량에는 치명타를 주고 말았다. 윙백으로 자주 나왔지만 스타일이 공격수에 더 어울리는 편이라 활약상은 애매했고, 정작 윙어로 다시 올라가자 오랜 윙백 생활때문에 감이 다소 죽은 모양새였다. 이런 애매한 문제는 2019 시즌에도 이어져서 오랫동안 무득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성실한 선수라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열심히 개인 훈련을 하며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원본 편집]

5.1. 2019년[원본 편집]

그런데 갑작스레 2019년 7월 3일,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주장인 남준재와 트레이드가 전격 성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소식에 팬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는데, 선수 본인도 충격을 받고 말았다. 김호남 본인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트레이드였기 때문. 김호남은 이 트레이드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트레이드 당일에 통보받았다고 한다. 제주 프런트는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했지만 당연히 제주 프런트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이 이어졌다. 김호남도 제주 팬들에게는 감사 인사를 남겼지만 프런트에게는 원한이 남은 모습을 보여줬다.

사건 초반에는 포커스가 죄다 남준재에게 쏠려 힘든 시간을 겪었다. 남준재는 인천의 주장이면서 차기 레전드감으로 꼽히는 선수였기 때문. 남준재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이뤄진 트레이드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사건이 진행되면서 남준재 측의 이적 의사가 없던 것은 아니라는 정황이 드러났고 이후 남준재 측에서 보여주는 행보에 인천 팬들이 반감을 표시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와 동시에 초기에는 환영받지 못하던 김호남도 '선수에게는 죄가 없다.'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김호남이다.'라는 여론이 나오면서 응원을 받기 시작했다. 김호남 본인은 "인천의 아들이 되겠다. 가장 콜을 받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면서 제대로 각성한 상태.

이적 직후 첫 경기인 울산 현대 원정은 이사 문제로 불참했고, 그 다음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데뷔가 점쳐졌으나 가벼운 부상으로 잠시 쉬고 다음 라운드로 데뷔를 미뤘다. FC 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인천 소속으로 첫 데뷔전을 치렀는데, 전반에는 괜찮은 돌파를 몇 번 선보이는 등 나름 활약했으나 후반으로 가서는 힘이 빠지면서 점차 활약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기대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데뷔전이었지만 아직 팀원들과의 호흡을 맞출 시간 자체가 부족했던 점, 팀의 중원이 힘이 많이 빠져있던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적응을 더 기다려야 할 듯.

23라운드 경남 FC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오른쪽 윙어로 선발 출전해 곽해성의 낮고 빠른 크로스에 감각적으로 뒷발을 갖다 대며 득점, 동점골을 기록했다. 매우 센스가 있는 득점 장면이어서 슬슬 폼이 올라온다는 평을 들었으며, 팬들의 평가도 점점 올라갔다. 아쉽게도 24라운드 성남 FC 전에는 부정확한 플레이가 나오며 부진했다. 그러나 25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에는 인천 선수 중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영웅에 등극했다. 후반 초반 곽해성의 크로스를 수원 박형진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공을 잡고 각이 없는 상황임에도 강력한 슈팅으로 마무리해 결승골을 기록한 것. 공격수로 지속적인 출전을 이어가면서 점점 득점 감각이 살아나고 있고, 스테판 무고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던 인천의 공격도 김호남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한결 나아졌다. 2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전에는 2 : 0으로 끌려가던 도중 하창래, 강현무가 호흡이 맞지 않는 틈새를 노려 추격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무고사의 멀티골이 터지면서 3 : 3까지 만들었지만 결국 수비 붕괴로 인해 3 : 5 참패를 겪었다. 그리고 29라운드 FC 서울과 치른 경인더비에서도 무고사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시즌 중후반부에 무고사와 더불어 인천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자리를 잡았다. 팬들에게도 인정받으며 본인이 입단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가장 많은 응원을 받는 선수 중 하나가 됐다. 시즌 막판에는 파괴력이 살짝 떨어졌지만 끝까지 투지 있는 플레이를 이어갔고, 잔류 확정 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최종전을 마친 뒤 팬들 앞에서 "정말 감사하고... 제가 이런 분들과 같이 축구를 한다는게 너무 영광스럽고... 진짜, 존나 멋있는 것 같아요! 어디 안 갈 거니까! 같이 있는 동안 진짜 한번 미쳐봅시다 우리!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며 잔류 선언까지 했다.2 

5.2. 2020년[원본 편집]

팬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하나였고, 새 시즌에도 인천과 함께 가는 것이 확정된 상황. 전지훈련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예전 팀 동료인 김성주가 합류하면서 좀 더 편한 생활을 할 것으로 보인다. 초반부터 자주 인터뷰에 등장하는 등 팀의 상징으로 올라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김도혁과 더불어 2020 시즌 공동 부주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원래 주장인 이재성이 시즌 준비 도중 갈등이 일어나면서 공식 발표는 없지만 김호남이 대신 주장직을 맡게 됐다. 구단에서도 SNS를 통해 김호남이 캡틴이라는 표현을 했고, 이재성과 함께 출전한 경기에서 김호남이 대신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김호남이 부상으로 빠진 후에는 다시 이재성이 완장을 찬 것으로 보아 이재성이 주장은 아니지만 부주장까진 올라온 것으로 보이며, 결과적으로 김호남과 이재성의 위치가 바뀌었다.

프리 시즌 막판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더니 개막전에도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공격 시에는 공격수처럼 움직이고, 수비 시에는 적극적으로 뛰며 상대를 제어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김도혁에게 전개 부담이 너무 쏠리면서 공격이 잘 안 풀렸고, 김호남은 너무 많이 움직이는 바람에 정작 힘을 폭발시켜야 할 돌파 상황에서 체력이 부족해지는 리스크가 있었다. 김준범이 부상을 달고 있어서 임시방편으로 택한 포지션이지만 썩 효과를 거두진 못한 느낌. 그 후 최전방까지 올라갔으나 중앙에서는 상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밀려나는 장면이 많았다.

한동안 안 맞는 포지션에서 고생하다가 4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전에서 임완섭 감독이 3-4-3 포메이션을 꺼내면서 드디어 윙어로 출전했다. 전반 초반부터 2실점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코너킥 상황에서 흐른 볼을 잘 잡아 놓은 후 팔라시오스를 제치고 환상적인 중거리 슛을 꽂아 넣으며 인천의 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 이후로도 가벼운 몸놀림으로 상대를 위협했지만, 팀은 수비 붕괴로 대량 실점하며 4 : 1로 패배. 다음 경기인 5라운드 강원 FC 전에는 경기 초반 정동윤의 땅볼 크로스를 마무리하면서 선제골을 기록했다. 두 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했으나 인천은 2실점을 기록하며 역전패를 당했다.

초반부에 빈공에 시달리는 인천 내에서는 그나마 희망적인 모습을 계속 보여줬고, 한때 인천의 유일한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열심히 뛰었지만 주변이 부진하는 와중에 득점이 쉽게 터지지 않았고 본인도 시즌 중반에 부상을 당해 컨디션이 흔들렸다. 한편 인천은 포메이션을 4-2-3-1로 전환하면서 윙어의 중요성이 더 커졌는데, 지언학의 폼이 살아나면서 김호남의 입지가 약간 애매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잔부상이 심해지면서 조성환 감독 부임 후에는 오랫동안 명단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파이널 라운드 돌입을 앞둔 시점에서 드디어 라시드 마하지와 함께 정상 훈련에 복귀하였다. 우선 감각을 올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이며, 팀 내에서는 무고사 다음으로 득점력이 좋은 자원인만큼 득점을 만들어가는 플랜을 세울 때 중용받을 전망이다. 24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에 좌측 윙백으로 선발 출전하면서 복귀전을 치렀고, 경기 초반에 빠른 돌파로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러나 헤딩 경합 과정에서 뇌진탕 증세를 겪었고, 결국 전반이 끝나기도 전에 스스로 교체되어 나갔다. 다행히도 병원에 간 후 빠르게 회복해서 훈련에 돌아왔고, A매치 휴식기를 통해 컨디션을 찾으면서 25라운드 강원 FC 전에는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후반에 득점이 필요해지자 교체로 투입되었는데... 공을 두고 경합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발을 들고 들어갔다가 이현식의 배를 가격하는 사고를 내고 퇴장당했다. 김호남 본인도 의도한 상황이 아니어서 당황한 채로 바로 이현식에게 사과했지만, VAR을 거쳐 퇴장 판정이 나오면서 인천에게 또 다른 악재를 낳고 말았다. 김호남이 평소에 이미지가 좋은 편이고, 해당 장면도 김호남이 고의로 한 장면보다는 부주의에서 나온 사고였기 때문에 선수에 대한 비난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인천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는 상황. 퇴장 징계는 최소 2경기 결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김호남은 시즌 아웃이 되고 말았다. 김호남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인천은 잔류에 성공했지만, 개인으로 보면 아쉬움이 크게 남는 시즌이었다.

국가대표 경력[원본 편집]

광주대를 다니던 시절 잠시 홍명보에 의해 올림픽 대표팀으로 소집된 적이 있다. 점검을 받긴 했으나 일본 이적 후 고생하면서 청소년 대표팀과 거리가 멀어졌다.

광주 FC의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주목받던 당시 국가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었고 2015년 올스타전에서 본인도 국가대표에 대한 열망이 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슈틸리케호 합류는 결국 불발되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슈팅력을 장기로 삼는 윙 포워드이다. 개인기를 많이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드리블 능력도 준수하고, 힘과 스피드를 고루 갖춘 돌파로 상대를 교란하는 편. 좌측에 배치되면 인사이드 포워드 느낌의 플레이를 주로 보여주고 우측에 배치되면 비교적 크로스도 자주 시도한다. 오른발잡이지만 왼발도 그럭저럭 쓰는 편이라 기습적으로 왼발 슛을 시도하기도 한다. 어떤 위치에서든지 유효슈팅을 뽑아낼 수 있는 위협적인 공격수인데다 활동량과 적극성도 높아 상대 수비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능적인 플레이로 상대 선수를 속이기도 하는데, 공을 자신이 받는 척 하면서 갑자기 돌아서며 공을 흘려주는 장면이 대표적. 직접 세트피스를 종종 처리하기도 한다.

다만 세트피스를 전담하는 데 비해 성과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빠져나온 공을 잡아서 재차 중거리슛을 시도하는 편이 더 정확도가 좋은 편. 크로스도 슈팅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편이다. 체력 상태에 따라 경기력의 차이가 큰데, 체력이 떨어지면 스피드를 살린 돌파가 확실히 둔화되는 편이다. 그래서 선발로 출전해도 후반에 교체로 나가는 상황이 자주 보인다. 스피드와 힘을 위주로 돌파를 하는 타입이라 경기가 말릴 때 크랙처럼 화려한 드리블로 뚫고 나가는 장면은 많이 나오지 않는 편. 가끔 측면 수비수로 나오기도 했는데, 활동량이 많은 선수기는 하지만 수비 면에서 그리 안정감을 가진 선수도 아니고 선수의 장점과 그닥 어울리지 않아서 김호남 풀백, 윙백 기용은 부정적인 평을 많이 받았다.

인천에서의 출전 기록[원본 편집]

1군[원본 편집]

시즌 소속리그 리그 FA컵 전체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19 K리그1 18 4 0 1 0 0 0 0 0 0 18 4 0 1 0
2020 K리그1 14 2 0 1 1 0 0 0 0 0 14 2 0 1 1
총합 32 6 0 2 1 0 0 0 0 0 32 6 0 2 1

=[원본 편집]

5.2. R리그 ===

시즌 R리그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19 0 0 0 0 0
총합 0 0 0 0 0

여담[원본 편집]

  • 김호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창 시절을 모두 호남 지방에서 보낸 선수. 다만 한자 표기는 다르다. 한편 형 이름은 무려 김영남. K리그에 동명이인의 축구선수 김영남도 있다.
  • 2015년 리그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할 때 부산의 이범영이 고의적으로 잔디를 훼손해서 패널티킥을 실축했던 사건의 당사자이다. 이로 인해 패배를 당하는 등 꽤 파장이 컸지만 선수 본인은 자신이 부족해서 실축했다며 넘어가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줬다.
  • 부인은 일본에서 지내던 시절 처음으로 연락을 시작해 국내 복귀 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고 한다. 2016년에 결혼했고 2019년에 쌍둥이를 낳았다. 트레이드 사건이 터질 당시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힘든 상황에서도 급하게 제주에서 인천까지 올라오고 집을 알아보기 위해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일은 제주 구단이 팬들에게 더욱 큰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실제로 김호남은 트레이드 당시 진심으로 이적하기 싫어했는데, 아내가 만삭이었던 점이 제일 컸다. 하지만 이미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여서 결국 이적이 성사됐다.
  • 2018 시즌에 상주 상무가 구단 역사 상 처음으로 해외 전지훈련을 갔는데 김병오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논란이 됐다. 이 때 김호남도 가족이 전지훈련에 동행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선수 본인이 개입한 게 아니라 가족들이 일정을 보고 그에 맞춰서 자발적으로 여행을 왔던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 팬 서비스가 상당히 좋으며 인터뷰 스킬도 아주 좋아서 가는 팀마다 평판이 매우 좋은 선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