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김성주

인천 유나이티드 FC No. 22

김성주 (金成柱 / Kim Sungju) 1

등록번호

20150066

생년월일

1990년 11월 15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포항시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좌측 윙백, 좌측 풀백, 윙어

주발

왼발

신체조건

179cm, 73kg

학력

포항제철동초 - 포항제철중 - 동래고 - 숭실대

프로입단

2012년 알비렉스 니가타

소속팀

알비렉스 니가타 (2012~2013)

카탈레 도야마 (2013, 임대) 카탈레 도야마 (2014) 서울 이랜드 FC (2015~2017) 상주 상무 (2016~2017, 군 복무) 울산 현대 (2018)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8~2019)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0~ )

국가대표

U-23 2경기

별명

개요[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터, 윙어, 윙백, 풀백 등 다양한 포지션이 가능한 멀티플레이어이다.

클럽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원본 편집]

포항시에서 축구를 시작해 포항제철중까지 진학했지만 포항제철고로는 진학하지 못했고, 대신 동래고등학교를 거쳐서 숭실대학교로 진학하였다. 어린 시절을 포항에서 보낸 영향으로 포항 출신 선수들과 친분이 있는 편이다. 원래 본인도 포철고 진학을 원했으나 포철고로 진학하는 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동래고로 간 뒤에는 부상으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대학 시절에는 윤성효 감독과 함께 했는데, 윤성효 감독에 대해 무서운 분이었다고 회상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J리그 시절[원본 편집]

숭실대학교 3학년 때 중퇴를 선택하고 이후 J1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했다. 그러나 이 팀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며 올림픽 대표팀과도 멀어졌다. 일본 생활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 마음 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이후 J2리그 카탈레 도야마에 합류하여 60경기를 뛰었으나 팀은 J3리그로 강등되었고, 국내 복귀를 추진하였다.

서울 이랜드 FC[원본 편집]

2015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의 감독 마틴 레니가 우선 지명을 하면서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했다.

3월 29일 FC 안양을 상대로 역사적인 첫 리그 홈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차츰 주전으로의 입지를 굳혀가기 시작했다. 이후 선문대학교와의 FA컵 3라운드 홈 경기에서 선발로 바와 전반 30분 오창현의 드로인을 이어받아 첫 득점을 기록했다. 팀은 2 : 0으로 승리하여 32강전에 진출했다. 4월 18일 안산 경찰청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해서 전반 7분 프리킥 상황에서 높이 찬 공이 주민규의 발 앞으로 뚝 떨어지면서 주민규가 침착하게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도움을 기록했다.

5월 2일 수원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61분에 이재안과 교체되며 출전했고, 76분에 김창욱이 보낸 패스를 받아 살짝 드리블 후 왼발로 감아찬 공이 멋진 궤적을 그리며 득점에 성공했다. 5월 13일 강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교체로 들어갔고, 주민규의 득점을 패스로 이끌어냈으나 패배를 막지 못했다. 5월 16일 충주 험멜과의 리그 홈경기에서는 전반 34분 엄청난 개인기에 이은 크로스를 선보였다. 이를 주민규가 헤딩으로 골을 넣으며 도움을 기록하고 48분에는 주민규의 힐패스를 받아 수비와 키퍼 사이로 패스, 타라바이가 마무리하면서 넣으며 2도움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김영근은 K리그에 온 뒤 처음으로 MOM에 선정됐다. 동시에 팀도 4 : 0 완승을 거두며 리그 홈 첫 승리를 거뒀다.

5월 23일 고양 Hi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주민규가 뺏은 공을 잡고 드리블을 하다가 때린 슛이 들어가면서 득점에 성공했다. 이어서 코너킥 상황이 진행되던 도중 상대 키퍼가 처리한 공을 그대로 차 넣으면서 멀티골까지 기록. 두 경기 연속 MOM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5월 30일 수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김창욱이 뺏어낸 공을 받아서 주민규에게 쓰루패스를 줬다. 이 공을 주민규가 그대로 마무리하면서 도움을 하나 더 쌓았다. 김영근의 맹활약 속에 팀은 리그 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시즌 초중반까지 서울 이랜드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페이스가 떨어졌다. 한편 시즌이 진행되던 중 개명이 완료되어 김성주라는 새 이름으로 활동하게 됐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김성주의 왼발 킥과 개인 기량은 팀의 핵심 공격 루트 중 하나였다는 평이 많았던 시즌. 최종 성적은 37경기 5골 6도움이었다.

3.1. 상주 상무 입대[원본 편집]

2015 시즌을 마친 후 상주 상무 입대를 선택했다. 상주에서는 기존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좌측 윙백으로 위치를 바꿨다. 첫 시즌에는 11경기 1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경쟁의 여파로 기회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7 시즌에는 상주에서 주전급으로 올라서며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잠시나마 같이 뛰던 홍철 이상으로 유용한 선수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상주에서 멀티 포지션 선수이면서 기량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 주가가 많이 올라갔다.

3.2. 전역 이후[원본 편집]

2017년 9월 경에 전역해서 서울 이랜드로 돌아왔다. 남은 시즌동안 꾸준히 출전했지만 중간에 퇴장을 당하는 등 팀에 큰 힘을 주지는 못했다. 시즌이 종료된 후 상주 시절의 활약때문에 여러 팀으로 이적설이 돌기 시작했다.

울산 현대[원본 편집]

2017년 12월 19일 울산 현대 이적 오피셜이 나왔다. 영입 당시에는 좋은 자원을 영입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정작 시즌 시작 후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다. 프리시즌의 폼은 준수했으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부진했고, 이 여파로 2군으로 밀려났다. 울산에서는 그를 측면 수비수로 기용하려고 생각했지만, 김성주가 측면 수비 자리에서 힘을 그다지 쓰지 못하며 계획이 꼬여버린 셈. 시즌 중순에 미드필더로 기회를 얻어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국 주전 도약에는 실패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FC[원본 편집]

결국 2018 시즌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제주의 배재우와 트레이드되어 울산을 떠났다. 울산은 전문 풀백인 배재우를 영입해 측면 수비를 강화하고, 제주는 멀티 플레이어 김성주를 영입해서 스쿼드를 전반적으로 보강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진 트레이드.

이적 이후에도 주로 좌측 윙백으로 기용됐다. 초반에는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나름 호평을 받았으나, 수비력에서 점점 허점을 노출했다. 시즌 막판 포항 스틸러스에게 원더골을 넣으면서 그래도 나름대로 시즌은 잘 마무리했다. 살짝 아쉽긴 했지만 측면에 활력을 불어넣은 자원으로 평가받았던 시즌.

2019 시즌에도 주로 측면 자원으로 모습을 보이는 중. 2019년 4월 17일 강릉시청 축구단과의 FA컵 32강전에서 전반전 추가 시간에 골을 넣었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도 1번 키커로 나와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하지만 계속 측면 윙백 위주로 기용되면서 종종 아쉬운 모습을 남기기도 했다. 아주 나쁜 모습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애매하다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시즌이었다. 종종 중원으로 투입되기도 했지만 중원에서도 확실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고, 제주의 중원에 개인 능력은 좋으나 서로 융화되지 못하는 선수가 워낙 많았기에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 점도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원본 편집]

제주가 강등당한 후 이적설이 있었지만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던 도중 정승용 영입이 무산된 인천이 급하게 여러 타겟을 노리기 시작했고, 결국 2020년 1월 7일 인천으로 이적에 합의했다. 인천도 좌측 윙백 포지션이 비어있는 상태였으므로 해당 포지션을 소화하게 될 전망이다.

합류 후 주전조로 분류되어 훈련을 받았다. 프리시즌 도중 날카로운 크로스로 김준범의 득점을 돕기도 했다. 예열을 마친 후 1라운드 대구 FC 전에 선발로 투입되어 롱패스를 공급하는 역할을 중점으로 수행했다. 나름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살짝 애매한 기색도 있긴 했는데, 전반적으로는 좋은 데뷔전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계속해서 팀 전술의 주축으로 실험받았는데 뛰어난 킥력으로 측면 전환을 수행하거나 전방의 공격수를 향해 롱패스를 제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윙백임에도 미드필더처럼 플레이하는 그의 성향이 워낙 특이해서 전술의 불균형을 가져왔고 그 결과 점점 경기력 자체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6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 전에는 날카로운 킥을 보여줬으나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에서 어이없는 슈팅을 기록하며 득점에 실패했다. 이때문에 비판 여론이 생기기도 했다. 윙백 자리에서 경기력이 지지부진하기 시작하자 팀에서도 강윤구에게 기회를 주는 등 변화를 시도했고, 포백으로 전환하면서 더더욱 애매한 상황에 놓였다. 이런 와중에 FC 서울 원정 경기에서 사건을 터뜨렸다. 강등권에 놓인 두 팀의 일전에서 또 패배했는데, 경기 후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김성주 본인은 웃으면서 박주영 등 서울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는 바람에 분노한 팬들에게 항의를 받은 것. 김성주는 제주 시절에도 팀의 강등이 확정된 경기에서조차 상대 선수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전례가 있었는데 인천 이적 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구설수가 생기게 됐다. 일이 커지자 다음 날 김성주는 사과문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그래도 친한 선수끼리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웃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의견과 '다른 선수들 중 아무도 저렇게까지 대놓고 웃으며 친목을 나누는 모습을 보인 경우가 없었는데 연패에 강등 위기까지 놓인 팀 소속 선수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부딪혔다.

사건 이후에도 일단은 출전 기회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풀백으로 잠시 몇 경기를 나서더니 울산 현대 원정 4 : 1 패배 이후 강윤구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본인은 명단에서 아예 제외되기 시작했고,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박대한이 합류하면서 풀백 위치에서는 미래가 많이 암울해졌다. 2선 자리를 노려볼 수는 있겠지만 2선도 지언학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데다 김성주와 제일 직접적으로 맞는 위치인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엘리아스 아길라르가 있으니 입지가 상당히 붕 뜨게 됐다.

조성환 감독 부임 후에는 벤치에 꾸준히 앉고 있는 중. 주전으로는 선택받지 못했지만 멀티성은 인정받았다. 가끔 윙백으로 투입되기도 했고, 23라운드 성남 FC 전에는 윙어로 기용되었다. 경기력 자체는 크게 모난 것 없이 무난하고, 패스 성공률은 상당히 높은 편. 일단은 김성주를 투입할 경우 안정적으로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경기를 지배하려는 시점일 때가 많다. 그러나 시즌 최후반부에는 김채운이 교체 명단에 들어오면서 김성주가 구상에서 제외되기 시작했고, 결국 애매한 결과를 남긴 채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주전 멤버로 꽤나 기대를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족하기에 아쉬운 부분이 많은 한 해였다.

시즌 종료 후 거취가 불투명한 편이다. 12월 중순에 실시한 제주도 소집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고,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김성주의 이적설이 종종 제기되었다. 김성주가 그래도 왼발잡이, 희귀 포지션, 멀티플레이어 메리트를 지닌 선수라서 수요는 있겠지만, 동시에 1부에서의 경쟁력도 애매한 상황이래 거취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

국가대표 경력[원본 편집]

숭실대학교 재학중이던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어 U-23 대표팀 소속으로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이적 이후 페이스가 떨어져서 국가대표와 멀어졌다. 서울 이랜드 시절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주민규와 함께 슈틸리케호 승선을 목표로 노력하기도 했지만 성인 대표팀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서울 이랜드 시절에는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의 자질을 보여주었던 선수이다. 날카로운 킥력을 바탕으로 공격 포인트를 생산했고, 위협적인 발재간을 이용한 탈압박과 돌파도 간과할 수 없는 무기였다. 상주 입대 이후로는 측면에서도 뛰면서 영향력을 넓혔고, 멀티성에 테크닉까지 고루 갖춘 알짜배기 자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울산 이적 이후로는 성장세가 다소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아졌는데, 포지션이 점차 측면으로 굳어지면서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수비수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수비 면에서는 불안함이 있을 수밖에 없고, 미드필더 출신이라서 전문 측면 자원에 비해서는 스피드도 아쉬운 면이 보였다. 수비수 김성주가 제일 아쉬운 면은 수비 집중력 및 해당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 포지션 변경 자체가 늦었기 때문에 필연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인천에서의 플레이를 보면 확실히 윙백에서 뛰지만 윙백은 아닌 김성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성주는 좌측 사이드에 빠져있을 뿐, 그의 플레이는 마치 미드필더와 비슷하다. 덕분에 그는 킥을 크로스가 아닌 다른 용도로도 활용하면서 팀 전체의 전개에 큰 영향을 발휘하지만, 전반적인 팀의 균형이 좌측에 쏠리게 되면서 공격 루트가 단조로워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그리고 스피드나 움직임이 위협적인 스타일은 아니라 공격 시 엔드라인까지 밀고 들어가는 플레이는 적고, 대신 다른 선수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간을 허물어보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다. 김성주의 특이한 스타일은 팀에 차별점을 주면서도 동시에 전술적 리스크를 수반하고 있는데, 어찌됐건 그의 킥이 워낙 좋은 무기다보니 이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동윤이 전진성을 얻은 후부터는 우측도 무시할 수 없게 됐고, 덕분에 김성주로 인한 좌우 불균형이 다소 해결됐다.

인천 이적 후 초반에는 이런 전술이 나름 먹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위기에 처했다. 김성주는 그럭저럭 재능이 있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고, 전반적인 능력치가 애매한 육각형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특출난 능력까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전술의 중심에 놓여버리면서 팀 전체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고, 결국 포백으로 전환한 뒤에는 점점 입지가 약화됐다. 포백에서는 수비수로 뛰기에 많이 부족하고, 2선으로 가기에도 색깔이 애매하기 때문.

인천에서의 출전 기록[원본 편집]

1군[원본 편집]

시즌 소속리그 리그 FA컵 전체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출전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20 K리그1 14 0 0 0 0 1 0 0 0 0 15 0 0 0 0
총합 14 0 0 0 0 1 0 0 0 0 15 0 0 0 0

여담[원본 편집]

  • J리그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계기 중 하나가 판타지스타 만화였다고 한다. 그 만화를 본 뒤부터 일본에 관심이 생겨서 어릴 때부터 J리그를 염두에 뒀다고.

  • 본래 이름은 김영근이었지만, 국내 복귀 후인 2015 시즌 도중 김성주로 개명하였다.

  • 상당히 잘 생긴 편이다. 외모로도 꽤나 유명한 선수.
  • 2020 시즌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FC 서울김남춘 선수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김성주는 김남춘과 상주 상무 시절 굉장히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서 이 소식을 듣고 SNS에 슬픔을 표현하였다. 동시에 김성주는 서울에게 무조건 이겨야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인천 소속이라 굉장히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기도 했다. 이후 경기를 마친 뒤 김성주는 SNS에 추모 글을 다시 한 번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