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김선민

서울 이랜드 FC No.88

김선민

(金善珉 / Kim Sun-Min)

출생

1991년 12월 12일
경기도 수원시
국적 대한민국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 조건 168cm / 65kg
학력 안용중학교 (2004~2006)

수원공업고등학교 (2007~2009) 예원예술대학교 (2010~2011)

종교 개신교
소속 팀 가이나레 돗토리 (2011~2012)

울산 현대미포조선 (2013) 울산 현대 (2014~2015) → FC 안양 (2015 /임대) 대전 시티즌 (2016) 대구 FC (2017~2020) → 아산 무궁화 (2018~2019 /군 복무) 서울 이랜드 FC (2021~ )

소개[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현재 서울 이랜드 FC 소속이다.

선수 경력[원본 편집]

프로 입단 이전[원본 편집]

경기 수원 세류초등학교, 안용중학교, 수원공고를 졸업했다. 이후 전북 임실에 위치한 예원예술대 1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진출한다.

가이나레 돗토리[원본 편집]

2011년 대학 중퇴 후 J2리그 가이나레 돗토리와 계약하며 프로에 데뷔했지만 왼쪽 발목 골절 부상으로 수술을 하는 등 부침을 겪었고, 2012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었다. 2012 시즌 종료 후 가이나레 돗토리에서 재계약을 제안했지만, 네덜란드 진출이 무산되면서 국내 복귀를 택했다.

울산 현대미포조선[원본 편집]

원소속팀 돗토리와의 재계약을 거절하고 국내로 돌아온 김선민이었지만 드래프트 시기를 놓치면서 반 시즌 동안 무적 신세로 지내던 김선민은 그 해 하반기 내셔널리그 소속 울산 현대미포조선에 입단했다.1  디음 시즌 드래프트에 지원할 목적으로 반 시즌 동안 몸도 만들고 국내 지도자들에게 눈도장도 찍을 겸 해서 내셔널리그행을 택한 것인데, 문제(?)는 내셔널리그 레벨이 아닌 선수가 뛰다 보니 리그를 아예 씹어 먹어 버린 것. 본 포지션이 아닌 공격수로 뛰었는데도 무려 7경기 연속 골이라는 진기록을 남겼고, 반 시즌 동안 16경기 11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2013 내셔널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챔피언 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울산 현대[원본 편집]

미포조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4 K리그 드래프트에서 울산 현대에 3순위로 지명되었다. 미포조선에서 김선민을 지도했던 조민국 신임 감독이 김선민을 강력히 원했다고 한다.

3월에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간결한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준수한 활약으로 본인과 조민국 감독에 대한 팬들의 지지를 올렸지만 결국 4월부터 스승과 함께 침몰하는 모습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열심히는 하지만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큰 기대를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시기 감독을 비롯한 팀 전체가 막장이었고, 숨만 쉬는 사이버 선수가 즐비했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조민국 체제에서 들어온 선수들 중 드물게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

FC 안양[원본 편집]

2015년 2월 9일 FC 안양으로 1년 임대가 확정되었다.

서울 이랜드 FC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겼다.

최진수의 공백을 완벽히 메우며 핵심 선수로 도약했다. 1부 리거로는 아쉽고 2부 리거로는 넘사벽인 1.5부 리거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대전 시티즌[원본 편집]

2015년 울산 윤정환 감독은 서명원을 영입하기 위해 김선민을 트레이드 카드로 제시했고 2016년 트레이드 형식으로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다. 입단하자마자 2016 시즌 대전 시티즌의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시즌 개막 후 무득점 연패가 이어지자 4라운드 부천 FC 1995전에서는 공격수로 기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대전은 주전 공격수 서동현이 개막전에서 안면 골절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윙백 완델손을 공격수로 기용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는 나오지 않았고, 완델손의 컨디션이 많이 떨어지면서 공격 가담 시 좋은 활약을 보였던 김선민을 공격수로 올린 것이었다. 6월 8일 친정팀 FC 안양 전에서 대전 데뷔골을 기록하였으며, 이후 경남 FC전에서 2경기 연속 골을 기록했다.

대전에 입단한 이후로는 기량이 확실히 자리잡았다는 평가와 함께 준수한 모습을 선보였다. 보다 수비적인 역할도 이전보다 잘 소화하였고, 공격적인 역할도 준수한 만능 선수로 성장했다. 황인범, 김병석과 함께 챌린지 내 최고의 중원을 형성하였으며, 최문식 감독의 신임 하에 2016 시즌 30경기에 출전하였다.

성실한 플레이로 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김선민이었지만, 대구 FC 전에서 패배를 기록하며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이었음에도 경기 종료 후 관중석에 있던 자신의 교회 교인들과 웃으면서 셀카를 찍어 대전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시즌 중반 개최된 팬 간담회에서 일부 팬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대구 FC[원본 편집]

2016년 12월 11일,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한 대구 FC로 이적하면서 다시 클래식 무대를 밟게 되었다. 원래는 군 입대를 할 생각이였지만, 조광래 사장의 설득이 주효했다고 한다.

대구에서 김선민은 빠르고 뛰어난 기술과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중간에서 경기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여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였으며, 후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패스를 돌리다가 순간적으로 공격수들과 윙백들에게 전진 패스를 연결해 공격을 이끌었다.

특히 29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시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하면서도 많은 득점을 올리던 팀의 키 플레이어 세징야가 이전 경기에서 퇴장당하면서 김선민에게 주어진 전술적 역할이 매우 커진 상황에서 수세에 몰렸던 대구가 만든 대부분의 득점 찬스에 관여하면서 끊임없이 수원 수비진을 위협하였다.

2018 시즌을 앞두고 군경구단 아산 무궁화에 합격하면서 군 복무를 수행하게 됐지만 중원에 이명주, 주세종, 황인범 등 국대급 경쟁자들이 즐비했던 탓에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리그 2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2019 시즌 역시 4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9 시즌 김동진과 함께 전역 후 대구로 복귀하였고, 등번호 88번을 받은 김선민은 26라운드 경남 FC전에서 선발 출전하며 대구 복귀전을 치렀고, 중원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팀의 승리와 무승 탈출에 기여했다.

27라운드 강원 FC전에서는 후방 빌드업이나 수비 가담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2골에 관여하며 공격적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해 주며 시즌 막판까지 부상으로 이탈한 츠바사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2020 시즌을 앞두고 계속 달아왔던 등번호 8번을 받았다.

1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선발 출전했고, 후반 31분 츠바사와 교체되었다.

3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전반 24분 쿠니모토를 향한 태클로 경고를 받았고, 후반 31분 빌드업 과정에서 결정적인 터치 미스로 조규성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내줬으나 조규성이 자비를 베풀며 실점은 면했다. 후반 40분 김보경을 향한 태클로 2번째 경고를 받으며 퇴장당했다.

5라운드 성남 FC 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는 팬들이 기대하던 츠바사와의 중원 조합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팀의 시즌 첫 승에 기여했다. 츠바사와의 호흡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14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에서 전반 34분 한석희에게 백태클을 걸어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며 시즌 2호 퇴장을 기록했다. 이후 코칭스태프에 찍힌 건지,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다.

서울 이랜드 FC[원본 편집]

시즌이 끝난 이후 팀 동료 황태현과 함께 트레이드를 통해 정정용 감독이 있는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했다.

12월 21일, 풋볼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적 과정과 모양새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내용은, 자신은 대구에 잔류하고 싶었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그렇게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으며 이적 자체가 팀 단위로 강제적으로 이뤄진건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선수가 불만인 것은 자신이 황태현과 묶여 서경주하고 트레이드 될 만큼의 가치를 지닌 선수였냐는 불만이다. 물론 황태현 선수와 서경주 선수, 두 선수를 존중하나 구단에게 자신이 그 정도 였다는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구단 인스타그램의 트레이드 이적 발표 게시글에서 작별의 인사가 아닌 ‘?’ 이라는 댓글을 달게 됐다는 것. 기사 전문

다만 이적 과정 자체엔 불만이지만, 서울 이랜드 구단에게는 감사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원해주고 대우도 좋았으며, 베테랑 역할을 기대한다고 했으며 수원 집에서 출퇴근도 가능하다고.

1라운드 부산전에서 왜 자신이 K리그1 주전 미드필더였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시야, 투지, 패스 모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가대표[원본 편집]

2011년 U-20 대표팀에 소집된 경력이 있고, 2013 U-22 챔피언십에 선발되었다.

2013 톈진 동아시안게임에서 5골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작은 체구이지만 민첩함과 왕성한 활동량, 정교한 패스를 가지고 있다. 원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를 가리지 않는 멀티 플레이어 능력을 지니고 있다. 챌린지에서 활동한 이후로는 중앙 미드필더로 자신의 포지션을 굳혔는데, 팀 플레이가 좋고 본래 장점으로 평가받은 활동량과 패싱 능력이 자리잡아 A급 중앙 미드필더 자원으로 성장하였다. 수비 상황에서는 신체적으로 불리함이 있어 상대 선수들에게 밀리는 경향이 있으나, 수비를 지능적으로 하는 편이라 이런 신체적 약점을 크게 나타내지 않는 것도 큰 장점으로 불리고 있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2013시즌 시작을 앞두고, 김선민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어느 클럽과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에이전트와 문제가 생겨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국내로 돌아오려고 했을 때는 이미 2013년 드래프트가 일찌감치 끝난 상황이었고, 내셔널리그 선수 등록 기간도 넘긴 시점이었다. 결국 2013년 후반기에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에 입단하기 전까지 김선민은 무려 6개월간 무적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 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후반기 내셔널리그에서 14경기를 나와 10골 2도움을 기록해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 골 세리머니로 기도를 하고 합숙 기간 동안에도 예배를 드리는 등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잘 알려져 있다.
  • 2017년 8월 5일 FC 서울 전에서 K리그 1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으며, 이 날 경기에서 하프타임에 프러포즈를 하기도 했다. 2017 시즌 종료 후 임민혁의 누나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한 달 후에 군 입대를 했다.
  • 배우 유해진을 닮았다.
  • FC 안양 시절 프로필 사진으로 섹시 화보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