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김두현

중원 사령관 제라두현

램파두현

닌두현

프로필[원본 편집]

  • 이름: 김두현 (金斗炫 / Kim Do-Heon) 1
  • 출생일: 1982년 7월 14일
  • 국적: 대한민국
  • 출신지: 경기도 동두천시
  • 가족: 1남 1녀 중 첫째
  •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 신체: 177cm, 73kg
  • 입단: 2001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1~2005) - 성남 일화 천마 (2005~2007) -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2008~2009)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9~2014) - 안산 경찰청 (2011~2012, 군 복무) - 성남 FC (2015~2017) - 네그리 셈빌란 FA (2018~ )
  • A매치: 62경기 12골
  • 종교: 개신교

소개[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선수 경력[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원본 편집]

통진종고 시절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1997년 추계중고축구대회 MVP 를 수상한바 있었다. 이 활약을 발판으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U-17 대표로 선발되어  김호 감독의 눈에 들었으며, 2001년 드래프트에서 고교 지역연고 지명을 통해 김두현을 수원 삼성에 입단시키게 된다. 소위 당대 수많은 김호의 아이들 중 한명이었다.2 

수원 1기[원본 편집]

데뷔 시즌인 2001 시즌에 신인치고는 많은 경기수인 15경기에 출장하며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수원 팬들에게  고종수의 뒤를 이을 패스가 좋은 유망주로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2002년부터는  고종수의 장기 부상, 가비의 잔부상과 폼 저하 등의 문제, 에닝요3  의 기량 미달 등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공백을 틈타 2002년 20경기, 2003년에는 34경기에 출장하며 팀내에서 주전 자리를 굳히며 김호의 아이들 중 가장 잘 수원에 정착하게 된다.

2004년까지 팀내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2002년 FA컵 우승, 2004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차범근 감독의 부임 이후로 선호하는 자리였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내주고 3-5-2에서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윙백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동하게 되며,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소화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와중에 2005년 여름에 성남 일화 천마의 이적 요청을 받고 성남으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김두현의 이적조건이 연봉과 이적료를 합쳐 10억을 웃돌며 최고의 수준을 보장받는다는게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성남 일화 천마[원본 편집]

성남 일화로 이적해서는 김학범 감독이 선호하던 4-2-3-1 포지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서 성남 일화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이전 차범근 감독 시절에는 김두현에게 공격과 수비의 부담이 같이 주어져서 공격도 수비도 안되는 어중간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으나 성남의 4-2-3-1에서는 김두현에게 주어지는 수비 부담이 덜어졌고 김두현이 공격에 전념하는 동안 김상식, 김철호, 손대호 등의 K리그 최상위권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뒤에서 궂은 일을 해 주면서 김두현의 수비 부담을 덜어준 것이 크다. 4 

이후 성남의 김두현은 3년 연속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선정, 2006년 시즌 MVP 선정과 팀의 리그 우승을 견인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밥값을 해내는데 성공하였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원본 편집]

그 이후에도 계속된 K리그에서의 활약으로 풋볼 리그 챔피언쉽5 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의 초청을 받게 된다. 2007년 12월에 오퍼를 받은 후 2008년 1월에 6개월간 임대 이적하였고, 2008년 5월에 우승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승격과 함께 완전이적 계약을 하게 된다.

2008년에 아스날과의 경기를 통해 인상적인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하였고, 이후에도 주전으로 뛰며 볼턴 원더러스과의 경기에서는 골대를 맞추어 거의 득점을 할 뻔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서 영국 현지에서는 '썬더볼트'라는 별명까지 얻기도 했으나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8주 무릎 부상을 당한 이후 주전 자리를 빼앗기면서 거의 출장하지 못했다.

수원 2기[원본 편집]

결국 경기감각 회복을 위해 2009년 시즌 중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 사실은 직전 소속팀인 성남 일화 천마로 복귀하려고 했으나, 구단의 자금줄이 사라지면서 같이 영입하려던 몰리나와 김두현 둘 중 하나밖에 잡을 돈이 없었고, 결국 성남은 김두현을 포기하고 몰리나를 영입하였다6 . 2010년까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2011년부터는 안산 경찰청 축구단에 입대한다.

2013년이 되면서 주장을 맡아서 홈 개막전에서 강원 FC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3월 17일 포항전에서 전반 12분 만에 전방 십자 인대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해 교체, 6개월 부상을 끊었다. 그 뒤로는 간간히 나오면서 수원의 중원을 책임지는 것은 여전했으나 존재감은…

2014 시즌에는 회복 후 경기를 나서고 있지만, 2014년 4월 발표된 K리그 선수 연봉 공개에서 K리그 국내 선수 중 연봉 3위에 해당하는 사실이 밝혀지면서7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소속팀 수원의 상황과 맞물려 정리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여러 사정이 얽히고 김두현 본인도 장기 부상 후유증으로 컨디션을 늦게 끌어 올리면서 한 때는 신예 권창훈에게 자리를 내주기도 하였는데, 가을 이후부터는 정상 경기력을 회복해 노련한 플레이로 서정원 감독 전술에 한 축을 담당하였다.8 그러나 앞서 언급되었던 고액 연봉은 시즌 종료 후에도 문제가 되고 말았다. 결국 고액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구단 측에서 판단, 염기훈과 김두현 두 선수의 잔류를 조율한 끝에 김두현과의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자유계약 대상자로 수원을 퇴단하였다. 퇴단 이후로는 오랜 기간 러브콜을 보내온 매북과 연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으나, 구체적인 오피셜 뉴스 없이 개인훈련을 통해 몸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성남 FC[원본 편집]

2014 시즌 종료 뒤 수원과 재계약을 하지 않은 채 개인 훈련을 하면서 고심하던 끝에 옛 스승 김학범 감독의 말에 따라 2015년 2월 2일 FA 자격으로 성남 FC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4억. 계약기간은 1년으로 추정된다. 2015년 2월 3일 오전 성남시청 대회의실에서 공식적으로 김두현의 성남 FC 입단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두현은 "8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면서 우승을 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성남 FC에 입단한 김두현은 첫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클래식에서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노련미 있는 플레이로 공격 전반에서 쏠쏠한 활약을 선보이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는 2016년 전반기에도 이어져 티아고과 함께 핵심 자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점차 김학범 감독의 시대에 뒤떨어진 주먹구구식 체력 위주 훈련에 선수단의 체력이 고갈되면서 김두현의 수비 가담이 늘어 경기를 거듭할 때마다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나이를 못 이기는지, 잔부상이 많아지며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김두현을 받쳐줄 줄로 알았던 황진성이 유리몸을 되찾는(...) 와중에 황의조도 폼이 떨어진 성남은 주 득점원인 티아고 하나만 바라보다, 티아고가 사우디로 떠나자마자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더니 김학범 감독을 경질시키고 대행의 대행이라는 촌극을 겪는 끝에9 소속팀 성남이 K리그 챌린지로 충격적인 강등을 맞이하고 말았다.

챌린지 강등 후로는 팀에 잔류를 선언, 2017 시즌 승격을 위해 힘을 쏟았으나, 박경훈 감독 역시 기대와 달리 무기력하고 수비적인 축구로 일관하였고 김두현도 2016년 보여주었던 노쇠화를 연장하면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나마 시즌 중후반부에 노익장을 발휘하며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노장 반열에 오른 김두현 홀로 승격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시즌 종료 후에는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위해 클래식 규모의 자금을 쏟아부은 소속팀 성남이 지출을 줄이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고액 연봉자에 노장인 김두현은 다시 정리대상에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성남에서 생활도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10 

네그리 셈빌란[원본 편집]

정리대상에 오른 김두현은 결국 성남 FC와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새로운 행선지를 모색하였으며, 어학 지원이나 은퇴 후 지도자 보장 등 후한 조건을 내세운 말레이시아 1부 승격팀 네그리 셈빌란 FA에 입단하게 된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 구단에서 주장으로 활동하는 걸 알 수 있다.

국가대표[원본 편집]

국가대표로는 2003년에 한일전으로 데뷔. 그러나 K리그에서는 제라두현, 램파두현 별명을 붙일 정도로 본좌급 활약을 벌이는 것에 비해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여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서 국내용 vs 국대용 선수에 대한 키배가 벌어지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국가대표 경기에서 잠수를 계속 타다가 중거리슛 한방에 점수를 내고 다시 잠수를 탄다고 해서 불려진 별명이 '닌두현'[8]. 사실 국대가 4백을 쓴 이후로 큰 경기에서 4-2-3-1 포메이션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를 쓸 때는 대부분 후반에 골을 노릴 때라 수비적인 면이 떨어져도 공격적인 면이 훨씬 뛰어난 안정환에게 밀릴 수 밖에 없으므로 포메이션이 4-3-3일 때나 간혹 중앙 미드필더로 주전으로 나섰고, 심지어 4-3-3을 쓸 때에도 이번에는 다른 선수도 아닌 박지성이 중앙으로 오면 김두현의 자리는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잘못 만난 선수. 2012년 5월 매강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안산 경찰청 축구단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스페인과의 친선전에서 골을 넣었다. 2013년 3월 카타르전을 앞두고 다시 소집되었으나 무릎부상으로 하차했다.

이렇듯 국가대표 경력은 그다지 존재감 제로지만, 이 선수가 아니었다면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은 물거품이 되었을 수도 있다. 2004년 당시 아시아 3차예선이 진행될 때 한국은 3월 31일 몰디브와의 원정경기에서 0:0 무승부라는 치욕을 맛봤으며 이로 인해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이 자진사퇴하고 조 2위 레바논에 승점 1점차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양팀이 계속해서 1승을 쌓아가며 순위 변동이 없다가 10월 13일 레바논과의 원정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11월 17일 몰디브와의 경기에서 최종 순위가 결정되는 상황. 조 1위만이 최종예선에 진출하기에 몰디브와의 홈경기를 무조건 이기지 못하면 월드컵 도전은 경우의 수로 넘어가는 일.[9] 후반까지 몰디브를 상대로 쩔쩔 매며 위기에 봉착한 순간, 김두현이 중거리슛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이후 매동국의 추가골로 간신히 2:0 승리를 거두었고, 김두현의 득점은 극찬을 받았다.

A매치에서 총 12개의 골을 득점했다. 이중 8골을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중거리 슈팅으로 넣었으며, 놀라운 점은 주발이 오른발임에도 불구하고 8골 중에서 5골이 왼발 중거리 슈팅이다. 그의 득점분포를 보면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의 중거리슛 8골이 있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 넣은 4골 중 3골은 제법 거리가 있는 위치에서 넣었으며, 나머지 1개는 페널티킥 득점이다.[10] A매치 마지막 골은 2012년 5월 30일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종료직전 성공시킨 동점골이었으며(이때도 중거리 슛이었다), 당시 실점한 스페인의 골키퍼는 현재 나폴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페페 레이나(당시 리버풀 소속)이다. 여담으로 12골 중에서 헤딩 골은 없으며, 왼발과 오른발로 각각 6골씩 넣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김두현의 특징은 공격수들에게 좋은 패스를 하면서 잘 배급해 준다는 점과 경기장에서의 활동량이 좋은 편이라는 점, 그리고 킥이 정확하여 프리킥, 코너킥 등을 전담할 수 있으며 2선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을 때릴 수 있어서 상대 수비진들이 밀집해 있을 때 좋은 공격 옵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흔치 않은 선수로 거의 완벽한 양발잡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등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으나 가장 좋은 능력을 보여준 포지션은 수비 부담이 덜한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이다.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설 때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수비 실력을 부지런한 활동량으로 커버하는 스타일이자 피를로처럼 다양한 패스와 좋은 볼 컨트롤로 공격의 줄기를 뚫어보려고 시도하는 스타일이다. 또한 시야와 패스의 질도 좋기에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는 것도 김두현의 장점이다. 그러나 잦은 부상 문제와 상대적으로 느린 스피드가 아쉬운 점.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공격형 미드필더로의 정석인 플레이어로 불렸던 만큼, 이 포지션 선수들이 늘 따라다니는 강력한 대인방어에 지워지는 단점 역시 지녔다. 그런 이유로 닌두현 11  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기도 하였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팬북 인터뷰에서 수원이 자신의 커리어 종착역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성남 FC로 이적하면서 종착역을 환승하였다. 12  
  • 축구 전문잡지 포포투의 외부 기고가로 활약한다. 13  2015년 7월호에는 14   "투자가 늘어날 수 없는 이상 K리그도 벨기에처럼 셀링 리그를 검토할 때가 되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 논문 표절 혐의를 받은 대표적인 선수이다. 2011년 명지대학교 체육대학원에서 운동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제출한 논문이 2008년 경희대에서 나온 다른 논문과 비슷한 정도를 넘어서 그냥 복붙수준이다.그런데 기자도 한 커뮤니티의 글을 표절해서 올렸다 KBS 시사프로그램에서 토씨 하나까지 베꼈다며 확인사살까지 당했으나 문대성, 이원희 등에 비해 이슈화가 덜하다.
  • 김두현과 권창훈 둘의 사이가 각별하다. 권창훈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하던 2013년, 자신의 프로 데뷔모습과 비슷한 점을 많이 느낀 김두현이 권창훈의 멘토를 자청하며 수원에서 함께 한 2년간 룸메이트 생활을 했다. 김두현은 “창훈이 모습을 보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수원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많이 도와주고 싶다.”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고 권창훈도 김두현의 모든 것을 배우고자 했다. 이후 권창훈은 일취월장했고 위 사진과 같이 권창훈이 김두현에게 최고의 멘토라고 고마움을 표하자 김두현은 "권창훈은 장차 수원을 이끌어갈 재목이다"라고 덕담했다.
  • 수원삼성 1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뽑힌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