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암성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환도산성이라고도 한다. 고구려의 유리왕(22년)때 국내성으로 천도한후 국내성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성으로 위나암성을 짓게된다. 국내성의 길목에 건설되어 전쟁과 같은 국난이 닥치면 왕궁을 옮길때 사용되었다. 즉 행정 중심지인 수도는 국내성이었지만 전시 수도 및 지휘소의 역할을 하는 성은 이 위나암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러한 모습은 이후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평시에는 행정 중심의 읍성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유사시에는 인근의 산성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전과[편집 | 원본 편집]

그후 대무신왕(11년) 신대왕(8년)때 후한의 군대를 지구전과 청야전술로 이기며 전과를 올렸다.

그후[편집 | 원본 편집]

유리왕때 시작된 건설은 산산왕때 들어 완성되고 산상왕은 이곳으로 도읍을 천도하고 이름을 환도산성으로 바꾼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