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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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仁錫.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9년 6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임해면 원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상하이로 망명한 뒤 1919년 4월 1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해 내무부 참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1920년 4월 27일 해임되고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로 임명되어 그해 7월 29일까지 활동했다. 11월 20일 중국 봉천성 안동에 근거지를 둔 대한독립청년단의 본부원으로 가담하여, 국내의 대한청년단원(大韓靑年團員)인 지응진(池應晋)으로부터 독립군 자금 200원을 받아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1921년 7월 18일 천진에 있던 한혈단(韓血團)의 교통부장으로 임명되어 부인회(婦人會)를 조직하여 부녀층을 규합하고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의 참가에 소요되는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50원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이어 그해 8월 중국 천진에서 대한회복충의열사단(大韓恢復忠義烈士團)을 조직하였으며 북경 및 천진지방을 중심으로 기관지인 <독립신문(獨立新聞)>의 발간을 추진하다가 국민대표회(國民代表會)의 준비위원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상하이로 돌아갔다.

1921년 10월 1일에는 중국 천진에서 항일 활동을 하던 김병조, 조상섭, 신창희등의 가족들을 봉천성 안동시에 소재하던 이융양행(怡隆洋行)의 기선을 이용하여 탈출시키기도 했다. 이후에도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관여했다가 1942년 3월 5일 허베이성 스자좡시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오인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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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