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부

오사카
大阪
Flag of Osaka Prefecture.svg
깃발
Map of Japan with highlight on 27 Osaka prefecture.svg
지역 정보
종류
나라 일본
인구 8,825,075 명 (2020년 기준)
인구밀도 4,632 명/km2
면적 1,905.14 km2
기타 정보
시간대 일본 표준시 (UTC+09:00)

오사카부(大阪府(おおさかふ), Ōsaka Prefecture)는 일본 긴키 지방의 2부 5[1] 중 하나로, 긴키 지방의 중부에 자리잡은 부이다.

또한 대개 간토 지방에 대응하여 간사이 지방으로 분류되는 2부 4현[2]에도 포함된다.

부청소재지는 같은 지명을 쓰는 오사카시.

지리와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Osaka-map.png

긴키-간사이 지역(게이한신)의 중심부에 자리하며, 동쪽으로는 나라현, 서쪽으로는 효고현, 남쪽으로는 와카야마현, 북쪽으로는 교토부와 접한다. 부의 서남쪽으로 오사카만을 끼고 있어, 예부터 가미가타(上方)라고 불린 긴키 지역 관문 구실을 하였다. 또한 세토 내해를 통한 주고쿠, 시코쿠, 규슈와의 해상 교역도 성행하였다.

오사카시[편집 | 원본 편집]

부청 소재지인 오사카시는 총 24개의 구로 이루어진다.

오사카 북부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서북부 효고 방면으로 도요나카시(및 이케다시)를 통과한다. 교토 방면으로는 한큐 전철 노선을 따라서 스이타시~셋쓰시~이바라키시~다카쓰키시(+시마모토 초)가 이어지고, 게이한 전기철도 노선을 따라서는 모리구치시~카도마시~네야가와시~히라카타시로 이어진다.

  • 스이타시 (吹田市) / 셋쓰시 (摂津市)
  • 이바라키시 (茨木市)
  • 다카쓰키시 (高槻市)
  • 히라카타시 (枚方市)

오사카 동부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 히가시오사카시 (東大阪市) / 야오시 (八尾市)
    오사카시의 위성도시 구실을 하는 곳이다.

사카이시[편집 | 원본 편집]

오사카시 남부에 바로 접하는 정령지정도시이다. 총 7개 구로 이루어져 있다.

사카이 남부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난카이 전기철도 노선(본선)을 따라 다카이시시~이즈미오쓰시(+이즈미시)~다다오카정~기시와다시~가이즈카시~(구마토리정)~이즈미사노시~다지리정~센난시~한난시~미사키정로 이어진 뒤 와카야마로 빠진다.

  • 다카이시시 / 이즈미오쓰시 / 다다오카정
    다다오카정은 일본에서 가장 작은 시정촌으로 유명하다.
  • 이즈미시 (和泉市)
  • 기시와다시 (岸和田市)
    기시와다성(岸和田城) 덕택에 나름 이름이 알려진 지역이다. 다만 동시에 오사카부에서 치안이 가장 개판이기로 유명한 것은 안 자랑.
  • 가이즈카시 (貝塚市) / 구마토리정 (熊取町)
  • 이즈미사노시 (泉佐野市) / 다지리정 (田尻町) / 센난시 (泉南市)
    간사이 국제공항을 사이좋게(?) 3등분하여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이점이다.
  • 한난시 / 미사키정

사카이 동부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 마쓰바라시 / 하비키노시 / 후지이데라시 / 가시와라시
  • 오사카사야마시 / 돈다바야시시
  • 가와치나가노시 (河内長野市)
  • 미나미카와치군 (南河内郡)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예로부터 일본의 수도로서 자리잡은 교토부에 가까운 데다 야마토 강, 요도 강오사카만과 같은 해운에 유리한 지형적 특성을 갖춘 덕분에 6세기 말 ~ 8세기 초엽의 아스카 시대에는 이미 도시로서의 자리잡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당시에는 아직 오사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는 않았으며, 주로 나니와 (難波)[3] 등으로 불리며 지역의 요충지로서 발달하였다.

오사카(大坂)[4]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무렵으로, 이 즈음에는 하카타와 함께 당대 무역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치던 사카이를 권역에 넣은 중추 도시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이후 16세기 초반 이시야마 혼간지가 오사카에 자리를 잡으면서 한동안은 사찰 마을로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6세기 말엽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간의 대립이 벌어지면서 큰 타격을 입으나,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혼간지가 있던 자리에 현재의 오사카성을 세우면서 다시금 지역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과 도쿠가와 가문의 권력 승계를 놓고 오사카 겨울의 진, 오사카 여름의 진으로 일컬어지는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정치의 중심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거지인 에도, 현재의 도쿄로 넘어가게 되나, 덴노가 있는 교토의 턱밑에 자리잡고 전통적으로 중앙 정부에 비협조적이던 주고쿠, 시코쿠, 큐슈를 견제할 수 있는 지리적 중요성과 무역항 사카이를 비롯한 경제적 중요성으로 인해 여전히 지역 중심 도시로서의 위상은 유지하게 된다.

현재의 오사카(大阪) 라는 명칭이 병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 에도 시대 무렵으로 추정되며, 정식 명칭으로 자리잡은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이다. 이 시기, 일본의 수도가 정식으로 교토에서 도쿄로 이전되며 일시적인 침체를 겪였으나, 섬유 및 방적 등의 경공업이 발달하면서 다시금 활기를 띄게 된다. 관동대지진 이후로는 잠시나마 인구수로 당시의 수도였던 도쿄시를 뛰어넘기도 하였다.

이후 일본이 일으킨 희대의 병크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는 조폐국, 기계 공장 등이 공습으로 파괴되는 등 철저한 관광 응징을 받았으며, 이들 공장 중 일부는 폭격을 피해 주변의 위성 도시로 이전, 이후 오사카부 주변의 위성 도시들의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오사카의 쇠퇴는 전후의 고도성장기로 진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한신 공업 단지 내에서도 비교적 경공업의 비중이 높았던 오사카는 중화학 공업, 금융 서비스업으로 산업 구조가 점점 고도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뒤쳐지게 되고,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서 일본의 경제 중심지라는 지위 역시 도쿄에 완전히 건네주게 되어, 오사카 박람회 등을 통해 반짝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만년 콩라인 2인자의 자리로 내려앉게 되었다.

그에 더해 1990년대 초반의 버블 붕괴잃어버린 20년의 시작, 1995년한신 아와지 대지진의 직격타를 받으며 지역 경제가 휘청거리게 되고, 다른 지방 자치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오사카부 및 오사카시 역시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된다. 그러던 것이 유바리시의 지방 자치 단체 파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계기로 재정 건전화의 목소리가 대두, 이를 배경으로 희대의 개초딩 하시모토 도오루오사카도 구상이라는 떡밥 기치 아래 오사카 유신회일본 유신회를 결성하는 기반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5년 5월 17일 (일요일) 에 오사카시에서 벌어진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주민투표가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고 하시모토 도오루가 정계 은퇴를 선언함으로서 당분간 오사카부 - 오사카시의 이중 구성 체제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방언[편집 | 원본 편집]

간사이 방언의 대명사 격인 방언이 바로 오사카 방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동남방언으로 치환되는 경향이 강하며, 주된 화자의 성향이나 어휘적 특성, 해당 국가 내에서의 지방색이라는 측면에서도 유사점이 많은 것으로 인식된다.

각주

  1. 일반적으로는 오사카부, 교토부, 효고현, 나라현, 미에현, 시가현, 와카야마현이 이에 속한다. 단, 긴키 지방의 정의는 일본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1) 미에 현을 뺀 2부 4현, 2) 미에 현을 빼고 후쿠이현을 넣은 2부 5현, 3) 미에 현, 후쿠이 현, 고시마현을 넣은 2부 7현, 4) 미에 현, 후쿠이 현, 도쿠시마현, 돗토리현을 포함하는 2부 8현을 들 수 있다.
  2. 오사카부, 교토부, 효고현, 나라현, 시가현, 와카야마현. 단 이 경우도 긴키와 마찬가지로 최대 2부 8현까지(+미에(주부), 도쿠시마(시코쿠), 돗토리(산인), 후쿠이(호쿠리쿠)) 포함된다는 의견도 존재하고, 간사이 관광청 등지에서는 2부 8현을 민다.
  3. 현재의 오사카의 별칭이기도 하다.
  4. 발음은 같으나 현재의 오사카와는 한자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