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옥

오봉옥
吳奉玉/ Oh Bongok
오봉옥.jpg
인물 정보
출생 1968년 07월 08일 (55세)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국적 대한민국
학력 포항제철고등학교
프로선수 경력
종목 야구
포지션 투수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2~1995)
쌍방울 레이더스 (1996~1999)
KIA 타이거즈 (1999~2003)
한화 이글스 (2004~2006)

소개[편집 | 원본 편집]

KBO 리그에서 활약했던 투수였다.

통산 성적을 보면 위대하지는 않지만 주로 약팀에서 활약해 필승조로 활약했다.

통산 방어율이 3.99인데 한화 이글스의 평균 자책점이 엄청나게 올랐던걸 감안해서는 엄청나게 낮은 수준이다.

고교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사실 중학교 까지는 야구 동아리에 가입해서 취미로 야구만 하는 사람이였다.

우연히 포철공고에서 훈련하는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공이 떨어져서 주워서 던졌는데 공이 멀리 날라가서 야구를 권했다 한다.

고교 졸업후 영남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학년때 퇴학하고 MBC(현 LG)와 롯데의 테스트를 받았으나 실패하고 현역으로 입단했다.

전역후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을 받고 선수 생활을 했다.

선수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 원본 편집]

프로 입단 첫해는 무려 13승 0패를 기록했다. 당연히 불펜으로써 승률 100%를 기록하게 되었다.

사실 이때 구원승이나 타선이 폭발해서 역전승을 기록할때 주로 승리투수가 오봉옥이기 때문에 그런거 일수도 있겠지만

신인왕은 대활약을 펼친 염종석이 수상했다.

사실 오봉옥의 특징은 돌직구에다 묵직한 구위로 기본 3이닝은 버티는 불펜으로써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1995년에는 135 1/3이닝을 던져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그해 12월에 교통사고로 인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풀어났다.

이때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를 이유로 오봉옥을 방출했다.

그해 오봉옥은 쌍방울에 입단하게 된다.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삼성 시절에 활약했던 시절에 감독이 김성근이라서 김성근이 눈에 보였는지 오봉옥을 영입했다.

첫해 100이닝을 넘게 소화해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위엄을 토하게 된다.

그 당시는 마무리 조규제를 제외하면 그다지 불펜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봉옥의 활약은 단비라 할 수 있다.

쌍방울의 성영재의 이어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 이후 해태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는 팀의 주축 불펜 선수로 활약했다.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 시절[편집 | 원본 편집]

1999년 쌍방울의 제정난으로 인해 해태로 트레이드가 되었다.

이강철이 FA로 인해 삼성으로 이적이 되고 나서 투수로써 카리스마를 내뿜었는데 그 당시 100이닝을 소화해 10승을 기록한 곽현희가 6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는데

오봉옥은 3점대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 이 당시는 엄청나게 타자들이 활약하고 투수들이 저조하는 타고투저의 시대이기 때문이다.[1]

해태 역사상 마지막 경기 승리투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만루 홈런을 맞아서 7:7 무승부로 해태의 마지막 경기를 끝냈다.

그 이후 팀이 바뀌고 나서는 점차 이닝 소화율이 낮아지더니 2003년은 4이닝을 소화해서 엄청난 부진을 껶고 말았다.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 원본 편집]

그 이후 한화로 이적했지만 눈에 띄이는 성적을 보이지 못한 채 2006년 시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지도자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은퇴 후에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의 제일중학교에서 감독으로 재임하고 있다.

각주

  1. 이 당시 IMF로 인해 공이 타자에게 유리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