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카

일본에서 발원한 음악의 여러 장르 중 하나인 엔카(演歌)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의된다.

  1. 메이지 시대의 자유민권운동에 따라 정부비판을 노래로 표현한 연설가의 약어이다.
  2. 일본대중가요 장르 중의 하나로써, 일본 특유의 감각이나 정서에 기초한 장르이다. 주로 바다나 , 눈물, 북쪽 지방 등의 소재로 남녀간의 슬픈 사랑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엔카라고 하면 주로 후자를 의미하나, 전자의 연설가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기에 둘이 완전히 무관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 문서(특히 '역사'란)에서는 양자를 모두 설명하겠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연설가[편집 | 원본 편집]

원래 엔카는 연설가(演説歌)의 축약어이었다. 연설가란 메이지(明治) 시대 자유 민권 운동의 산물로써, 번벌 정치[1]에 반발하며 열린 공개 연설회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심해지자, 이를 피하기 위하여 연설할 내용을 노래에 담아 정치적인 주장이나 선전을 위하여 사용하던 것이다. 즉 '엔카'가 지칭하는 것은 본디 정치적인 풍자곡(Protest Song)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정치적인 내용의 엔카는 후대의 서정적인 엔카와 구분하고자 소-시엔카(壮士演歌)라고도 부른다.

엔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 대중 사이로 연설가라는 의미의 '엔카'가 퍼진 것은 1880년대 중반이었는데, 이 시기의 일본은 무늬만 서양화(西洋化)된 상태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적인 국가인 것 같았지만, 앞 문단에서 서술하였듯이 실제로는 파벌에 의하여 정치가 이루어지었고, 이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연설을 탄압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식인들이 이러한 점을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춤과 노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거리에서도 '엔카시(演歌師)'들이 정치에 대한 민중의 의견을 노래로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이러면서 엔카가 생겨난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탄생된 엔카는 1890년대 이후 자유 민권 운동의 쇠퇴와 더불어 내용 면에서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데, 가사의 내용과 창작 시기에 따라

1. 정치와 권력에 대한 비판
2. 사회 문제의 풍자
3. 애국심의 고양

의 세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는 '정치와 권력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담은 노래가 등장하였다. 1880년대에 창작된 엔카 중 대부분은 '정치와 권력에의 비판'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시기의 곡 중 가장 대표적인 곡이 '최초의 엔카곡'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다이너마이트 부시》(ダイナマイト節)로, 이 곡은 작자들인 엔카 장사단(演歌壮士団)[2]'이 활동하기 시작한 메이지 20년을 전후로 만들어졌다. 아래는 그 가사이다.

民権論者の涙の雨で 磨(みが)き上げたる大和胆
コクリミンプクゾウシンシテ ミンリョクキュウヨウセ
若(も)しも成(な)らなきゃ ダイナマイトどん

민권론자의 눈물이 비처럼 흘러 내려 갈고 닦은 야마토 담력
국리민복 증진하고 민력을 보양하세
만약에 안 되면 다이너마이트로 쾅!

이 노래 이후로도 국회 개설이나 청일전쟁을 풍자한 가사가 크게 히트하였고, 공창제 폐지를 풍자한 《스트라이키 부시》(ストライキ節)도 유행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 민권 운동이 조금씩 죽어감에 따라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노래는 사라져가고, 서구에의 무조건적인 숭배 등의 사회 문제를 풍자한 노래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옷페케페 부시》(オッペケペー節)를 필두로 《얏츠케로 부시》(ヤッツケロー節), 《겐코츠 부시》(ゲンコツ節) 등이 히트하였다. 특히 《옷페케페 부시》는 이 시기 노래의 정점으로 취급된다.

이 시기도 지나자 애국심을 고취하고 각성하기 위한 노래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 다이쇼(大正) 시대에 접어들면서 엔카시들이 사회 비판적인 주제 대신 개인의 애환, 삶의 애환을 다루기 시작하였다.

다이쇼 시대를 지나 쇼와(昭和) 시대에 접어들면서, 엔카시들이 서양 음악의 작곡법을 사용하여 엔카를 작곡하기도 하고, 바이올린을 이용한 반주가 도입되기도 하였다. 거기에 외국에서 레코드(record)라고 하는, 새로운 미디어의 유입으로 많은 엔카시들이 레코드 시장에 유입되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엔카시들은 엔카의 변화에 대하여 반발심을 가졌고, 이후에도 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살아갔다.

이 시기의 엔카에 대하여서는, 주로 엔카시의 시조 격인 소에다 아젠보(添田 唖蝉坊)와 그의 아들 소에다 토모미치(添田 知道)의 저작물을 주요 정보원(情報源)으로 하여 연구하고 있으며, 실증적인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다. 한편 이 시기 엔카의 정치적 태도에 대하여서는 쿠라타 요시히로(倉田 喜弘), 니시자와 소(西沢 爽) 등이 실증적인 연구를 행하고 있다.

유행가의 시대[편집 | 원본 편집]

'1.1 연설가' 부분에서 서술하였듯이, 쇼와(昭和) 시대에 접어들면서 외국계 레코드 회사가 일본에 진출하면서 전기 녹음이라는 새로운 녹음 시스템을 도입함에 따라 음악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쇼와 3년(1928년)에 사토 치야코(佐藤 千夜子)와 후타무라 테이이치(二村 定一)가, 쇼와 6년(1931년)에 후지야마 이치로(藤山 一郎)가 등장하면서, 다이쇼 말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유행가(流行歌)'라는 일대분야가 대중 음악의 세계를 거의 독점하게 되었고 메이지 시대의 엔카, 즉 연설가는 음악계에서 퇴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시기의 레코드 음악 중 '엔카'라고 불릴 만한 작품이나 장르는 전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엔카와 비슷한 곡조의 노래는 있었다. 다이쇼 말기 '船頭小唄(센도-코우타, 뱃사공의 노래)'가 가사의 내용이 관동 대지진 후의 어두웠던 사회 분위기와 부합하며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 곡의 염세적인 가사나 요나누키 단음계 등의 음악적 특징이 후에 나오는 '엔카'의 음악적 특징과 일치한다. 이 곡은 엔카시에 의하여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었지만, 엔카시의 가창에 의하여 널리 퍼지게 되면서 화제를 얻어 영화화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엔카시였던 돗토리 슌요(鳥取 春陽)가 이 곡과 비슷한 분위기의 곡인 '籠の鳥(카고노 토리, 새장 안의 새)'를 지었고, 이 역시 히트하였다.

또, 이 시기의 유행가의 작곡풍 등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지금에 흔히 이르는 엔카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즉, 이 시기는 메이지(明治) 시대의 엔카의 쇠퇴와, 현재의 엔카의 탄생에 모두 영항을 주는 중요한 시기라 볼 수 있다.

1950년대[편집 | 원본 편집]

전후 일본의 대중가요는 유행가에 치우쳐 있었지만, 신세대의 등장과 쇼와 28년(1953년)에 후지무라 이치로의 은퇴에 따른 음악성의 동요와 동시에 지금의 엔카와 비슷한 곡이 출현했다. 그러면서 그 시기 이미 부기우기(boogiewoogie, 미국 흑인 음악에서 나온 리듬이 빠른 재즈의 하나)로 유행가 가수로 데뷔했던 미소라 히바리도 엔카 가수로 시프트했고, 킹 레코드에서 망향가요의 카스가 하치로, 미하시 미치야, 빅터 레코드(現 빅터 엔터테인먼트)에서 임협노선의 스타 츠루타 코지, 테이직 레코드(現 테이직 엔터테인먼트)에서 낭곡출신의 미나미 하루오, 전후 대스타 이시하라 유지로, 콜롬비아 레코드(現 일본 콜롬비아)에서는 泣き節의 시마쿠라 치요코(1954년 데뷔, 2013년 75세를 일기로 사망)가 등장하는 등, 쇼와의 엔카에 한 획을 긋는 가수들이 이 시기에 나온다.

1960년대[편집 | 원본 편집]

쇼와 38년(1963년)에 엔카 전문 레코드 회사인 일본 크라운(日本クラウン)이 독립하고, 음악 시장에 여러 종류의 음악이 유입되면서 '유행가'는 소멸하고, 다수의 음악 분야가 성립되었다. 그 중에서 요나누키 음계(ヨナ抜き音階, 서양의 7음계를 기준으로 4번째 음인 파(B)와 7번째 음인 시(B)가 빠진 형태의 5음계)와 소절(しょうせつ, 음악에서 악보가 읽기 쉽게 적당한 길이로 구분된 것)을 이용한 것이 '엔카'라고 호칭된 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전의 엔카라는 장르의 재기였지만, 명칭만의 부활이었다.

이 시기에도 많은 가수들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는 기타지마 사부로(北島 三郎, 1962년 데뷔),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 1964년 데뷔), 스이젠지 키요코(水前寺 清子, 1964년 데뷔), 고뱌야시 사치코(小林 幸子, 1964년, 10세의 나이로 데뷔), 센 마사오(千 昌夫, 1965년 데뷔), 아오에 미나(青江 三奈, 1966년 데뷔), 모리 신이치(森 進一, 1966년 데뷔), 오오카와 에이사쿠(大川 栄策, 1969년 데뷔)등이 있다.

작사가로는 나카시니 레이(なかにし 礼), 호시노 테츠로(星野 哲郎), 이와타니 토키코(岩谷 時子), 야마구치 요코(山口 洋子), 카와우치 코한(川内 康範)등이 등장했고, 작곡가로는 유행가에서 전향한 고가 마사오에 요시다 타다시(吉田 正), 이노마타 고쇼(猪俣 公章), 후나무라 도루(船村 徹), 이치카와 쇼스케(市川 昭介), 나가시(流し)에서 전향한 엔도 미노루(遠藤 実), 로커빌리 가수에서 전향한 히라오 마사아키가 등장한다.

이 시기의 대표곡은 哀愁波止場('60년 7월, 미소라 히바리), 潮来笠('60년 7월, 하시 유키오, 120만장 이상 판매), 王将('61년 11월, 무라다 히데오, 150만장 이상 판매), アンコ椿は恋の花('64년 10월, 미야코 하루미, 130만장 이상 판매), 柔('64년 11월, 미소라 히바리, 180만장 이상 판매), 帰ろかな('65년 4월, 키타지마 사부로, 100만장 이상 판매), 涙の連絡船('65년 10월, 미야코 하루미, 155만장 이상 판매), 柳ヶ瀬ブルース('66년 4월, 미카와 켄이치, 120만장 이상 판매), 悲しい酒('66년 6월, 미소라 히바리, 145만장 이상 판매), 恍惚のブルース('66년 6월, 아오에 미나, 70만장 이상 판매), 星影のワルツ('66년 3월, 센 마사오, 170만장 이상 판매), 港町ブルース('69년 4월, 모리 신이치, 150만장 이상 판매), 池袋の夜('69년 7월, 아오에 미나, 150만장 이상 판매) 등이 있다.

1970년대[편집 | 원본 편집]

1970년대는 이츠키 히로시(五木ひろし, 1971년 재데뷔), 야시로 아키(八代亜紀, 1971년 데뷔), 모리 마사코(森昌子, 1972년 데뷔),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 1973년 데뷔), 호소카와 타카시(細川たかし,1975년 데뷔), 니이누마 켄지, 카와나카 미유키 등 지금은 「大御所」라 불리는 가수들이 대거 가요계에 등장한 시대이다.

또한. 1970년대는 엔카가 포크 송과 뉴 뮤직, 아이돌 음악 등과 경쟁을 하기도 하면서, 또 그것들의 영향을 받아 발전을 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이 시기의 엔카에는 이전까지의 엔카와는 가사와 곡조 등에 있어서 사뭇 다른 곡들이 상당히 많다.

이 시기에 히트한 엔카[편집 | 원본 편집]

  • 女のブルース : 1970년 2월 5일 발매. 1970년 연간 4위(오리콘).
  • 恋ひとすじ : 1970년 2월 5일 발매. 1970년 연간 19위(오리콘).
  • 希望(희망) : 1970년 4월 1일 발매. 1970년 연간 12위(오리콘). 제12회 일본 레코드 대상·가창상[3] 수상.
  • 圭子の夢は夜ひらく : 1970년 4월 25일 발매. 1970년 연간 3위(오리콘). 제1회 일본 가요 대상·대상 수상.
  • 京都の恋(교토의 사랑) : 1970년 5월 25일 발매. 1970년 연간 10위(오리콘). 1971년 연간 27위(오리콘). 제12회 일본 레코드 대상·기획상 수상.
  • 波止場女のブルース : 1970년 6월 5일 발매. 1970년 연간 17위(오리콘). 제12회 일본 레코드 대상·가창상[3] 수상.
  • 噂の女 : 1970년 7월 5일 발매. 1970년 연간 14위(오리콘). 제12회 일본 레코드 대상·가창상[3] 수상.
  • 手紙 : 1970년 7월 5일 발매. 1970년 연간 6위(오리콘). 제12회 일본 레코드 대상·가창상[3] 수상.
  • 命預けます : 1970년 7월 25일 발매. 1970년 연간 18위(오리콘). 제12회 일본 레코드 대상·대중상 수상.
  • 雨がやんだら : 1970년 10월 21일 발매. 1971년 연간 23위(오리콘).
  • 大勝負(대승패) : 1970년 11월 발매. 1971년 연간 21위(오리콘).
  • 京都慕情(교토 모정) : 1970년 12월 1일 발매. 1971년 연간 15위(오리콘).
  • 傷だらけの人生 : 1970년 12월 25일 발매. 1971년 연간 4위(오리콘). 제4회 일본 유선 대상·대상 수상.
  • 望郷(망향) : 1970년 12월 25일 발매. 1971년 연간 9위(오리콘).
  • よこはま・たそがれ : 1971년 3월 1일 발매. 1971년 연간 6위(오리콘).
  • わたしの城下町 : 1971년 4월 25일 발매. 1971년 연간 1위(오리콘). 1972년 연간 45위(오리콘). 제13회 일본 레코드 대상·최우수 신인상 수상.
  • 雨の御堂筋 : 1971년 9월 5일 발매. 1971년 연간 18위(오리콘). 1972년 연간 12위(오리콘).
  • 瀬戸の花嫁('72년 4월, 74만장 판매)
  • 女のみち('72년 5월, 330만장 이상 판매)
  • せんせい('72년 7월, 51만장 판매)
  • 女のねがい('72년 12월, 83만장 판매)
  • なみだ恋('73년 2월, 60만장 판매)
  • ふるさと('73년 7월, 38만장 판매)
  • くちなしの花('73년 8월, 150만장 판매)
  • 夜空('73년 10월, 44만장 판매)
  • なみだの操('73년 11월, 200만장 판매)
  • 夫婦鏡('74년 5월, 150만장 판매)
  • 昔の名前で出ています('75년 1월, 95만장 판매)
  • 心のこり('75년 4월, 80만장 판매)
  • 北の宿から('75년 12월, 143만장 판매)
  • 津軽海峡・冬景色('77년 1월, 72만장 판매)
  • 北国の春('77년 4월, 130만장 판매)
  • 能登半島('77년 5월, 45만장 판매)
  • 夢追い酒('78년 2월, 280만장 이상 판매)
  • 与作(1978년)
  • みちづれ('78년 10월, 100만장 판매)
  • おもいで酒('79년 1월, 150만장 판매)
  • 舟唄('79년 5월)

1980~90년대[편집 | 원본 편집]

1970년대 후반부터 중장년층 사이에서 가라오케 붐이 일면서 1980년대에는 호소카와 타카시같이 노래방에서 부르기 쉬움을 의식한 가수들이 떠올라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그러나 청년층에서는 팝송을 더 좋아하는 면도 있고, 엔카의 인기가 떨어지게 되는 것도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듣는 음악에 더더욱 괴리가 발생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된다. TV방송도 청년층을 타겟으로 잡은 것과 중년층을 타겟으로 잡은 것으로 나누어지고, 이렇게 되면서 연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엔카곡이 탄생하는 것이 그 이전에 비하여 어려워졌다. 또, 청년층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일본 팝도 노래방용의 악곡을 제작하는 등의 마케팅을 하게 되고, 기타지마 사부로같은 성량이 큰 가수나, 모리 신이치같은 독창적인 가창법을 가진 가수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엔카는 1960~70년대에 비하여 TV 노출이 줄어들고, 그 자리는 대부분 아이돌 음악이 차지한다. 그러면서 엔카도 보수화와 쇠퇴가 발생한다.

이 시기에 데뷔를 한 가수는 사카모토 후유미, 고자이 카오리, 고다이 나츠코 등이 있다. 그러나, 1984년 미야코 하루미가, 1986년 모리 마사코가 은퇴를 하고, 1987년 이시하라 유지로, 1989년 미소라 히바리가 세상을 떠나는 등, 악재가 겹친다.

이 시기에 히트한 엔카[편집 | 원본 편집]

  • とまり木 : 1980년 1월 1일 발매. 1980년 연간 13위(오리콘). 1980년 연간 19위(더 베스트 텐).
  • 大阪しぐれ(오사카 가을비[4]) : 1980년 2월 1일 발매. 1980년 연간 49위(오리콘). 1981년 연간 6위(오리콘). 제22회 일본 레코드 대상·최우수 가창상 수상.
  • 倖せさがして(행복을 찾아서) : 1980년 3월 5일 발매. 1980년 연간 21위(오리콘). 1980년 연간 1위(더 베스트 텐).
  • 帰ってこいよ : 1980년 4월 21일 발매. 1981년 연간 17위(오리콘). 1981년 상반기 30위(더 베스트 텐).
  • 雨の慕情(비의 모정) : 1980년 4월 25일 발매. 1980년 연간 26위(오리콘). 제22회 일본 레코드 대상·대상, 제11회 일본 가요 대상·대상 수상.
  • 奥飛騨慕情(오쿠히다 모정) : 1980년 6월 25일 발매. 1981년 연간 2위(오리콘). 제14회 일본 유선 대상·대상 수상.
  • みちのくひとり旅(미치노쿠[5] 나 혼자 여행) : 1980년 8월 5일 발매. 1981년 연간 16위(오리콘). 1981년 연간 2위(더 베스트 텐). 1982년 연간 30위(오리콘).
  • 北酒場(북쪽의 술집) : 1982년 3월 21일 발매. 1982년 연간 5위(오리콘). 1982년 연간 1위(더 베스트 텐). 제24회 일본 레코드 대상·대상 수상.
  • 氷雨 (카야마 아키오 版) : 1982년 7월 21일 발매. 1983년 연간 5위(오리콘). 1983년 연간 4위(더 베스트 텐).
  • 氷雨 (히노 미카 版) : 1982년 12월 5일 발매. 1983년 연간 15위(오리콘). 1983년 연간 21위(더 베스트 텐).
  • さざんかの宿 : 1982년 8월 21일 발매. 1983년 연간 1위(오리콘). 1983년 연간 3위(더 베스트 텐).
  • 3年目の浮気(3년째의 바람기) : 1982년 8월 21일 발매. 1983년 연간 12위(오리콘).
  • 矢切の渡し(야기리[6]의 나루터) (치아키 나오미 版) : 1982년 10월 21일 발매. 1983년 연간 2위(유선).
  • 矢切の渡し(야기리의 나루터) (호소카와 타카시 版) : 1983년 2월 21일 발매. 1983년 연간 2위(오리콘). 1983년 연간 1위(더 베스트 텐). 제25회 일본 레코드 대상·대상 수상.
  • 冬のリヴィエラ(겨울의 리비에라[7]) : 1982년 11월 21일 발매. 1983년 연간 41위(오리콘). 1983년 연간 36위(더 베스트 텐).
  • 夢芝居 : 1982년 11월 21일 발매. 1983년 연간 44위(오리콘). 1984년 연간 55위(오리콘).
  • 浪花恋しぐれ : 1983년 5월 21일 발매. 1983년 연간 18위(오리콘). 1984년 연간 39위(오리콘).
  • 細雪[세설(조금씩 잘게 내리는 눈)] : 1983년 9월 1일 발매. 1983년 연간 62위(오리콘). 1984년 연간 47위(오리콘).
  • 釜山港へ帰れ(부산항에 돌아와라) (아츠미 지로 版) : 1983년 9월 1일 발매. 1984년 연간 32위(오리콘).
  • つぐない(속죄) : 1984년 1월 21일 발매. 1984년 연간 42위(오리콘). 1985년 연간 58위(오리콘).
  • 娘よ(딸아) : 1984년 2월 1일 발매. 1984년 연간 7위(오리콘). 1984년 연간 9위(더 베스트 텐). 1985년 연간 48위(오리콘).
  • 長良川艶歌(나가라가와 엔카) : 1984년 4월 21일 발매. 1984년 연간 14위(오리콘). 1984년 연간 1위(더 베스트 텐). 제26회 일본 레코드 대상·대상 수상.
  • 夫婦坂(부부의 고개) : 1984년 9월 30일 발매. 1985년 연간 27위(오리콘).
  • 俺ら東京さ行ぐだ : 1984년 11월 25일 발매. 1985년 연간 21위(오리콘). 1985년 연간 21위(더 베스트 텐).
  • そして…めぐり逢い(그리고… 우연히 만남) : 1985년 4월 5일 발매. 1985년 연간 32위(오리콘). 1985년 연간 6위(더 베스트 텐).
  • 熱き心に(뜨거운 마음에) : 1985년 11월 20일 발매. 1986년 연간 20위(오리콘). 1986년 연간 22위(더 베스트 텐).
  • 天城越え(1986년)
  • 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어) : 1986년 2월 21일 발매. 1986년 연간 62위(오리콘). 1987년 연간 42위(오리콘).
  • 雪國(설국) : 1986년 2월 21일 발매. 1987년 연간 3위(오리콘). 1987년 상반기 1위(더 베스트 텐). 1987년 연간 8위(더 베스트 텐).
  • 命くれない : 1986년 3월 21일 발매. 1987년 연간 1위(오리콘). 1987년 연간 2위(더 베스트 텐). 1988년 연간 20위(오리콘). 1988년 연간 62위(더 베스트 텐).
  • 無錫旅情(무석[8] 여정) : 1986년 9월 21일 발매. 1987년 연간 8위(오리콘). 1987년 연간 42위(더 베스트 텐). 1988년 연간 50위(오리콘). 1988년 연간 1위(가라오케).
  • 想いで迷子(추억의 미아) : 1986년 9월 25일 발매. 1988년 연간 35위(오리콘). 1988년 연간 30위(더 베스트 텐).
  • 男と女のラブゲーム(남자와 여자의 러브 게임) (히노 미카·아오이 시로 版) : 1986년 12월 21일 발매. 1987년 연간 41위(오리콘). 1987년 연간 40위(더 베스트 텐).
  • 夫婦善哉 : 1987년 2월 1일 발매. 1987년 연간 56위(오리콘).
  • 追憶(추억) : 1987년 4월 1일 발매. 1987년 연간 9위(오리콘). 1987년 연간 1위(더 베스트 텐).
  • 人生いろいろ(인생 여러 가지) : 1987년 4월 21일 발매. 1988년 연간 54위(오리콘). 1989년 연간 72위(오리콘). 제30회 일본 레코드 대상·최우수 가창상 수상.
  • 雪椿 : 1987년 6월 25일 발매. 1988년 연간 29위(오리콘).
  • 北の旅人(북쪽의 여인[9]) : 1987년 8월 10일 발매. 1987년 연간 30위(오리콘). 1987년 연간 21위(더 베스트 텐).
  • 男と女のはしご酒 : 1987년 11월 11일 발매. 1988년 연간 48위(오리콘). 1988년 연간 58위(더 베스트 텐).
  • 憂き世川 : 1988년 2월 5일 발매. 1988년 연간 27위(오리콘).
  • 祝い酒(축하주) : 1988년 4월 6일 발매. 1988년 연간 24위(오리콘). 1988년 연간 29위(더 베스트 텐).
  • 雨酒場 : 1988년 5월 25일 발매. 1989년 연간 47위(오리콘). 1990년 연간 79위(오리콘).
  • 酒よ(술이여) : 1988년 9월 1일 발매. 1989년 연간 26위(오리콘). 1989년 상반기 13위(더 베스트 텐).
  • 川の流れのように(강물이 흘러가는 것 같이) : 1989년 1월 11일 발매. 1989년 연간 35위(오리콘). 1990년 연간 78위(오리콘).
  • 男の情話 : 1989년 3월 8일 발매. 1989년 연간 40위(오리콘). 1989년 상반기 32위(더 베스트 텐).
  • 발매일 순으로 기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함.
  •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여러 명의 가수가 음반을 발매한 경우, 발매일 순으로 연이어 기재함.

2000년대[편집 | 원본 편집]

그러던 2000년, 오이즈미 이츠로(大泉 逸郎)의 '孫'와 히카와 키요시(氷川きよし)의 '箱根八里の半次郎'가 각각 240만장 판매와 100만장 이상 판매라는 대 히트를 기록하여, 엔카라는 장르의 부활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단, '孫'은 오이즈미(당시 40대 중반)의 동년배나 그 이상인 중장년층에게서의 히트였고, 10대와 20대에게도 인기를 얻은 히카와는 전형적인 엔카가수의 용모가 아닌 것이 젊은 층에게 먹힌 부분이 컸으므로, 노래 그 자체에 대한 평가는 전과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마에카와 키요시(前川 清)의 'ひまわり'(2002년,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 프로듀스), 사카모토 후유미(坂本 冬美)의 'また君に恋してる'(2009년, 포크 듀오인 빌리 반반(ビリーバンバン)의 악곡 커버) 등과 같이 엔카가수가 대중 가요를 의식한 곡을 발표하는 경우도 늘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엔카라는 장르에 들어가지 않는 곡들도 많아지게 되어, 아예 엔카게의 곡을 통칭하여 엔카 가요곡(演歌・歌謡曲)으로 부르게 된다. 또한, 엔카・가요곡에 포함되는 곡 중에는, 스기모토 마사토(すぎもとまさと)의 '吾亦紅' 같이, 엔카가수가 아닌 가수가 가창한 곡이나, 이전이라면 좁은 의미로의 가요곡에 포함되지 않았던 포크 계열의 음악과 그 가창법의 악곡도 일부 포함하게 되어, 예전에 갈라졌던, 사회풍자적인 요소가 있지는 않지만, 연설가의 피를 물려받은 포크계열의 음악과, 명칭뿐의 엔카로 부활한 현재의 엔카가 하나의 장르로 합쳐지는 현상도 발생했다.

한때는 1명, 또는 두 세명이었던 대형 신인 엔카 가수의 데뷔도 매년 네다섯명으로 확대된다. 또, 8-90년대 랭킹 상위를 독점했던 j-pop 전체의 매상고 등이 정체되면서, 상대적으로 엔카곡들이 다시 랭킹 상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또, 2008년에는, 엔카계 사상 최초로 흑인 엔카가수인 제로가 데뷔하면서, 주목을 많이 받았고, 그의 데뷔곡 '海雪'도 그의 힙합 스타일이 가미된 가창법이 화제가 되면서 히트를 한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음계[편집 | 원본 편집]

가창법[편집 | 원본 편집]

가창법에는 두 가지의 큰 특징이 있다. 고부시와 깊은 비브라토이다. 고부시는 가사의 한 음절에 많은 음표를 장식적으로 달아 음을 풍부하게 해주는 멜리스마(melisma)와 거의 비슷한 창법으로서 많이 사용된다. 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비브라토를 깊고 교묘하게 넣는다. 이 두 가지는 엔카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적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장[편집 | 원본 편집]

엔카 가수들은, 일본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가창 시에 기모노를 입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성 가수들이 남성 가수들보다 기모노를 더 많이 입는다.

내용, 곡조, 테마[편집 | 원본 편집]

가사의 내용은 미소라 히바리의 '悲しい酒(슬픈 술)', 미야코 하루미의 '北の宿から(북쪽의 숙소에서)', 요시 이쿠조의 '雪國(설국)', 야시로 아키의 '舟唄(뱃노래)', 이시카와 사유리의 '津軽海峡冬景色(츠가루 해협 겨울 풍경)'등과 같이 바다・술・눈물・여자・비・북쪽・눈・이별 등의 소재를 사용하여 남녀간의 슬픈 사랑 등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또, 호소카와 타카시의 '北酒場', 후지 케이코의 '新宿の女' 등과 같이, 유흥 업소의 여자가 손님에게 사랑을 품는 내용도 많이 나오며, 이런 노래는 유흥 업소의 주 고객층인 중장년의 남성 청취자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곡조는 애틋한 감정, 진지한 심정 등을 나타내기 위해 단조로 나타내는 곡이 많다. 그러나 장조로 써진 곡도 많고, 이 경우에는 요나누키 음계로 써진 것이 많다.

곡의 테마는 남녀간의 슬픈 사랑이 대다수를 차지하나, 이 이외의 테마에는

  • 행복한 부부…무라다 히데오의 '夫婦春秋', 미카사 유우코의 '夫婦舟', 카와자나 미유키의 '二輪草' 등
  • 어머니…키쿠치 아키코・후타바 유리코의 '岸壁の母', 카네다 타츠에의 '花街の母' 등
  • 상기 이외의 가족…토바 이치로의 '兄弟船', 아시야 간노스케의 '娘よ', 오이즈미 이츠로의 '孫' 등。
  • 인생, 기상…무라다 히데오의 '人生劇場', '花と竜', 키타지마 사부로의 '山', '川', 나카무라 미츠코의 '河内おとこ節' 등
  • 유랑…딕 미네의 '旅姿三人男', 하시 유키오의 '潮来笠', 히카와 키요시의 '箱根八里の半次郎' 등
  • 임협…키타지마 사부로의 '兄弟仁義', 타카쿠라 켄의 '唐獅子牡丹' 등(유랑물에 가깝지만, 유랑물은 경쾌, 임협물은 중후한 곡조)
  • 가요낭곡…미나미 하루오의 '俵星玄蕃', '紀伊国屋文左衛門' 등
  • 극장형 드라마틱…야마구치 루미의 '山内一豊と妻千代', '至高の王将', 白虎隊' 등
  • 망향…가스카 하치로의 '別れの一本杉', 미하시 미치야의 'リンゴ村から', 키타지마 사부로의 '帰ろかな' 센 마사오의 '北国の春', '望郷酒場' 등이 있다.

유명 엔카 가수[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藩閥政治, 메이지 유신에 공이 있었던 번의 출신자가 만든 파벌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치
  2. 장사(壮士, そうし)란 당시 길거리나 소극장 등에서 정부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던 젊은이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3. 3.0 3.1 3.2 3.3 제11회 및 제13회 이후의 일본 레코드 대상에 있어서 최우수 가창상(最優秀歌唱賞)에 상당한다.
  4. しぐれ는 엄밀히 말하여 '가을의 끝 무렵부터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내렸다가 그쳤다가 하는 비(秋の末から冬の初め頃に、降ったりやんだりする雨)'를 일컫는 말이다.
  5. 이와키(磐城)・이와시로(岩代)・리쿠젠(陸前)・리쿠츄(陸中)・무츠(陸奥)의 다섯 개의 쿠니(国)의 고칭이다. 지금의 후쿠시마(福島)・미야기(宮城)・이와테(岩手)・아오모리(青森)의 네 개의 현에 거의 상당(相當)하는 지역이다.
  6. 지바현(千葉県) 마쓰도시(松戸市)에 있는 카미야키리(上矢切) 지역, 나카야키리(中矢切) 지역, 시모야키리(下矢切) 지역을 한데 묶어 이르는 말이다. 이 지역은 야키리라고도 부르며, 오히려 공식적으로는 야키리라고 부르는 것이 옳으나, 이 곡의 영향으로 민간에서는 야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7. 프랑스 동남부와 이탈리아 서북부의 지중해 연안 지역
  8. 중국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의 서북쪽에 있는 도시
  9.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