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즘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그리스어 단어인 엑소르키스모스(ἐξορκισμός)가 라틴어에 전해져 엑소르키스무스(exorcismus)가 되고, 라틴어에서 다시 영어로 전해져 영어화한 단어. 그리스어 어원을 분석하면 '밖으로(exo) 나가겠다고 맹세를 받다'라는 의미가 된다. 고대 그리스 주술사들이 귀신에 씐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을 때 압박을 가하며 "나가서 다신 안 들어올게요 ㅠㅠ" 하는 식으로 맹세를 받아내던 것에서 유래했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1973년작 《엑소시스트》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단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75년에 영화를 개봉하였는데, 이 영향 때문인지 엑소시즘이라는 단어를 가톨릭에서 행하는 의례의 고유명사인 듯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영어에서 엑소시즘은 '귀신/정령/그 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쫓아내는 의례'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며, 영어사전에서도 가톨릭, 혹은 그리스도교의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분류한다.[1]


성경에서 예수가 사람에게서 악마를 내쫓은 기사가 있으므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일부 신학자들은 아예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지만, 가톨릭이나 개신교, 혹은 정교회에서도 기본적으로 악마가 존재함과 인간에게 영향을 끼침을 인정하며 악마를 내쫓고자 하는 의례/기도가 있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구마(驅魔)란 말을, 한국 개신교는 축사(逐邪)라는 말을 사용한다.[2]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종교 등에도 저마다 방식으로 이런 의례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무속에서는 푸닥거리가 있다.

개신교 축사[편집 | 원본 편집]

개신교에서는 정해진 의례를 거부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당연히 축사라고 해도 교단 차원에서 정해진 형식이 있지는 않다. 단지 이를 행하는 목회자나 신자 개개인이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자기만의 형식을 구축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정도다.

세부적인 형식은 다르지만 성경 구절을 읽거나 악마에게 예수의 이름과 피의 권세로 물러갈 것을 명령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이럴 때 귀신과 대화를 나누며 정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시어머니 때문에 자살한 여자의 영혼"이라고 대답하는 등, 어딘지 굿판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귀신 보고 나가라고 하면서 때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한국 개신교에서 축사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무속의 영향을 받았다는 비판이 있다.

신사도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이때 '궁핍의 영'이니 '알콜중독의 영' 등등을 내쫓아야 한다고 말한다.

장로교 신학에서는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악마가 과연 신자에게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다룬 개신교 쪽 서적을 보면 신자에게 악마가 씔 수 있는지 먼저 논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천주교의 구마[편집 | 원본 편집]

흔히 엑소시즘이라고 하면 특히 천주교 성직자가 하는 의례를 생각한다. 이것을 한국 천주교는 라틴어로 Magnus exorcismus[3]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큰 엑소시즘이란 뜻이다. 한국 천주교는 이를 번역하여 장엄구마(莊嚴驅魔)라고 하였다.[4]


장엄구마 기도문의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장엄구마 기도문 자체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한 가지 재미난 점은 병자성사도 악마를 내쫓는 용도로 쓰기도 했는데, 악마에 쓰임도 영적인 질병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또한 장엄구마에 대한 통제도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과거에는 성직자 양성 단계 중에 구마품(驅魔品)이라는 단계가 있었는데, 초기에는 정말로 구마품을 받은 사람이 장엄구마를 했었다. 하지만 점차 규정이 엄격해지면서 구마품은 단지 양성과정 중에 받는 단계가 되었고, 실제 장엄구마는 신부나 주교가 하도록 하였다.

기도문도 아무런 규제가 없었다. 4세기 사람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악마를 내쫓는답시고 기도를 쓸데없이 길게 하다간 도리어 악마에게 비웃음을 받는다"라는 요지로 쓴 글이 있음을 보면, 당시에 제각기 기도를 하였으며, 꽤나 길었음을 알 수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본인도 동방교회에서 사용하는 장엄구마용 기도문을 작성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점차 구마를 아무나 하지 못하도록 하교 교회의 권위로 통제하고, 기도문도 제한하는 쪽으로 진행했다.

가톨릭에서는 161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교황청 차원에서 장엄구마 기도문을 표준화했다. 보통은 동방교회 전례가 천주교 전례보다 더 길고 복잡한데 장엄구마만큼은 그 반대라서 도리서 서방교회 쪽이 더 길고 복잡하였다. 장엄구마 기도문은 그 뒤로도 몇 차례 개정하거나 혹은 규정을 바꾸었는데, 전례개혁(1970년) 이전 마지막 개정은 1954년에 있었다.

천주교는 전례개혁 이후로 신자들이 자주 접하는 전례를 우선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당연히 장엄구마는 우선순위에서 밀렸으므로 1999년에 비로소 바뀌었으며, 그 이전까지는 권한을 받은 구마사제들도 1954년판을 사용하였다. 1954년판과 99년판은 여러 가지로 변화가 매우 커서 부분개정이 아니라 전면개정이나 마찬가지다. 2005년에도 일부 개정이 있었다. 구마사제는 자기 판단에 따라 1954년판이든 2005년판이든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오해들[편집 | 원본 편집]

천주교 교회법에 장엄구마는 해당지역을 관할하는 주교, 혹은 주교에게 권한을 받은 신부가 거행한다고 규정돼 있다. 만약 권한을 받지 않은 신부가 장엄구마를 행한다면 이는 불법적이며, 주교에 권한을 침해함이다. 이를 남용할 경우의 피해가 큼을 수백 년에 걸친 경험 끝에 알았기 때문에 강하게 통제한다.

천주교 장엄구마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엑소시스트(장엄구마를 행하는 자)는 바티칸에서 임명된다, 혹은 바티칸에서 파견된다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교회법으로 해당지역을 관할하는 주교나, 그 주교에게 권한을 받은 신부가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바티칸의 허락 운운하는 소리도 많지만 당연히 아니다. 전적으로 관할 주교가 결정할 문제이며 바티칸은 개입하지 않는다.[5]


또 다른 오해는 "엑소시즘의 최고단계인 리투알레 로마눔을 거행" 어쩌고 하는 소리다. 리투알레 로마눔(Rituale Romanum)은 "로마 전례서"란 뜻으로, 전례개혁(1970년) 이전까지 천주교 신부들이 사용하던 의례집의 제목이다. 여기에는 사물이나 사람을 축복하는 등 신부가 필요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쓸 라틴어 기도문이 수록돼 있는데, 그중에 장엄구마도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장엄구마를 하려면 이 의례집이 필요했을 뿐인데, 누군가가 이걸 모르고 잘못된 정보를 퍼트린 모양이다.

리투알레 로마눔에는 두 가지 장엄구마 기도문이 수록돼 있다. 하나는 좀 더 길고 전통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더 짧고 더 현대적(?)인 것이다. 더 짧은 것은 교황 레오 13세(1878~1903년 재위)가 작성하여 추가한 것인데, 이상하게도 이 기도문이 수록되자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해졌다. 미국에서 발행한 평신자용 구마기도문에 이 기도문이 불법적으로 번역되어 수록됐으며, 한국 천주교에서도 이 기도서를 근간으로 묵주기도서를 발행하는 바람에 역시 영어판을 통한 중역이긴 하지만 장엄구마용 기도문이 널리 알려졌다. 1985년에는 신앙교리성 장관 라칭거 추기경[6] 명의로 "몇 년 전부터 신자들이 악마를 내쫓겠다고 기도회를 하면서 레오 13세 교황이 작성한 장엄구마용 기도문을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그거 허락 못함. 노노."하는 요지로 공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실제 가톨릭 장엄구마[편집 | 원본 편집]

가톨릭은 교황청이 발표한 형식이 존재하지만, 일선현장에 있는 구마사제의 판단, 혹은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다르다. 심하게는 아예 기도서를 보지 않는 사제도 있으며, 혹은 기도서 중 악마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는 핵심적인 기도문만 사용하고 다른 부분은 자기 판단대로 하기도 하며, 어떤 사제는 정말로 기도서 그대로 하기도 한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기도서 그대로 하기를 권고하지만, 기도서를 FM대로 모두 낭송하면 2~30분만에 끝나는 반면, 실제 장엄구마는 길 경우에는 한 번에 몇 시간씩, 몇 년에 걸쳐서 장기간 거행하기도 하므로 '기도서대로만'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19세기 프랑스 사람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도 정식으로 장엄구마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 시행한 적이 있는데, 간단하게 성호를 긋거나 성물함을 이마에 얹어주기만 해도 악마가 나갔다고 한다. 살아생전부터 성인(聖人)이라고 소문이 자자하고 덕이 높은 인물이었으며, 기적을 행하는 신부라는 소문이 나 있었다. 사람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 할 수밖에.......

가톨릭은 장엄구마를 행할 때에는 이를 외부에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원래대로는 일일이 주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그리하면 일처리가 굼띠므로, 구마사제에게 어느 정도 권한을 위임하는 듯하다. 현대에 와서는 정신과 의사와 구마사제가 서로 협력하는 사례가 있으며, 장엄구마를 받고 싶다고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먼저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를 떼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명백한 실패사례도 존재한다. 독일에서는 1976년에 아넬리제 미헬(Anneliese Michel)[7]이라는 여자가 가톨릭 신부에게 장엄구마를 받던 중 만23세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이 때문에 신부와 부모가 법정에 섰야 했던 사건이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지고 또 극적인 사례 중 하나라 이 사건을 모티브로 몇몇 영화도 제작되었다. 실제 사례 속 신부들은 과실치사가 인정되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구마사제들에게는 중요한 참고사례가 되었다.

각주

  1.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영어권 덕후 자료에서는 식령에 등장하는 이사야마 요미도 엑소시스트라고 한다. 일본도를 들고 요괴를 때려잡는 소녀도 엑소시스트라고 하니 말 다했다.
  2. 축하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는 뜻인 축사(祝辭)와 한글표기가 똑같다 보니, 인터넷으로 딱 집어 검색하기가 쉽지 않다.
  3. 교회 라틴어 발음으로는 마뉴스 엑소르치스무스. 인문학게에서 주로 사용하는 고전 라틴어로는 '마그누스 엑소르치스무스'라고 하지만, 천주교 용어이므로 천주교 기준대로 음역해야 한다.
  4. 장엄구마, 혹은 큰 구마가 있다면 당연히 작은(?) 구마, 혹은 장엄하지 않은(?) 구마도 있어야 한다. 세례받기 전에도 세례받을 사람들에게 성직자가 간단한 구마기도를 하는 절차가 있다.
  5. 바티칸은 관료제의 끝을 본 곳 중 하나다. 바티칸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인다. 안 그래도 느린데, 이런 것까지 바티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6. 2005년에 베네딕토 16세란 이름으로 교황으로 선출되고, 2013년에는 수백 년 만에 생전에 자진으로 퇴임함으로써 가톨릭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7. 정확한 한글 음역이 없어서 표기가 조금씩 다르다. 독일어 표기법에 따르면 성이 '미헬'임은 확실하지만, 이름 부분이 확실하지 않다. 일단 아넬리제라는 표기가 독일어 표기법에 맞다고 보고 사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