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
Авинанесущий крейсер Проекта 1143《Тбилйси》[1]
Admiral Kuznetsov aircraft carrier.jpg
선박 정보
종류 항공모함(항공중순양함)
건조 2척
운영 러시아
중국
진수 2척
정원 약 1960명
제원
엔진 증기 보일러8개 증기터빈4개
속도 32노트
무장

대함: P-700 그라니트

대공: 9K330
카쉬탄,AK-630
항공기 Su-33
MiG-29K
전장 305m
선폭 73m
배수량 55000톤
67500톤 (만재)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Проекта 1143.5,6》은 구 소련항공모함이다.

소련이 미 해군 항모전단에 대항하기 위해 건조한 항공모함으로 소련의 첫 정규 항공모함이다. 현재는 러시아의 유일한 항모로, 중대형급의 체급에도 경항모와 유사하게 스키점프대를 사용하며 항모가 자체적으로 중무장을 했다는 특징이 있다. 동급함으론 쿠즈네초프와 바랴그[2]가 있다.

함명의 유래는 소련 해군의 아버지인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제독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전간기부터 항공모함 건조를 시도해 왔으나 번번히 불발되고 만다.

심지언 2차대전 종전 후 전리품이 된 독일의 항모 그라프 체펠린을 개수하여 소련 해군에 편입하려던 계획까지 있었지만 이 역시 실현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소련은 동서 대립의 질서가 자리잡는 냉전기가 도래함에 따라 해양에서 미국의 패권을 견제해 영향력을 확보하고 광활한 해안선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때문에 전함을 대신하여 함대의 주력함으로 부상한 항공모함의 보유는 필연적이었으나 이미 다수의 항공모함 전력을 보유하고 거대한 대양함대를 운용중이던 미 해군에 비하면 소련 해군의 전력은 초라했고 여기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단 비대칭적 전력 구조를 취함으로써 독자적인 해상 전략을 구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양성된 붉은 함대의 강력한 잠수함대들은 유사시 대서양 항행을 틀어막고 미국과 유럽을 분리시키는 한편, 핵미사일로 무장한 SLBM들이 마음껏 활보함으로써 핵전쟁에서의 우위를 달성하는 대전략을 구상하게 된다.

이에 소련 수상함대는 부분적 해상 패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잠수함대의 안전을 적으로부터 보장할 의무를 띄게 되었고 소련식 항공모함의 청사진도 이 전략을 따라 원거리 함대 방공망을 제공함과 동시에 다수의 대잠 항공기(대잠 헬기)를 운용함으로써 적성 대잠 항공세력 및 잠수함대를 견제하는 항공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따라서 소련식 항공모함은 적의 항공세력과 유도탄으로부터 함대를 호위하고 잠수함대라는 비대칭전력을 주력으로, 운용되는 함재기들은 이들을 지원하는 지원 세력에 가까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대신 소련의 항모 역시 적 함대와 주력함, 즉 항공모함을 무력화 하는 수단을 갖고 있는데 통상적인 항공모함이 함재기로 적 함대를 타격한다면 소련의 항공모함은 초장거리미사일을 발진시켜 적함을 공격한다는 발상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헬기 모함이였던 키예프급 항공모함으로 중량급의 대함, 대공미사일로 무장한 이 대형 순양함에 수직 이착륙 전투기의 운용능력을 부여하여 항모로의 기능을 기대하였으나 정작 함재기였던 야크38의 절망적인 수준으로 해리어를 운용하던 경항모들보다 항모로의 성능은 미달이었고 단순히 비행갑판 및 격납고 외엔 고정익 항공기를 위한 시설이 알천했던 키예프급으로는 서방권의 항공모함과 대응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도 키예프급의 운용은 목표했던 대전략에 일정 수준 부합하는데는 성공했고 나름 항모 운용 경험 축적을 이루며 절반 수준의 성공을 이루었다. 일단은 소련 해군도 키예프급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이후 보다 항공기 운용에 중점을 맞춘 방향으로 항공모함의 개발을 이어나가게 되니 이후 1975년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 건조에 대응해 예정되었던 프로젝트 1153, 1160 오룔이 그것이다.

오룔은 핵추진 방식의 8만톤급 대형 항공모함으로, 키예프급에서 보여준 과도기적 순양함 구조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정규 항공모함의 구조를 따르며 대신 대함 미사일 24발을 장착하는 무장형 항공모함을 지향했지만 결국 취소되었다.

하지만 냉전이 격화되던 1980년대, 미 해군의 제해권을 견제할 해양력의 필요성에 따라 프로젝트 1143.5로 명명된 새로운 항공모함 건조 계획이 오룔을 바탕으로 하여 키예프급의 5번함을 건조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고 그렇게 반세기 이상을 끌어온 소련 해군의 염원은 결실을 앞두고 있었다.

건조[편집 | 원본 편집]

Tbilisi-Class-Carrier-DIA.jpg

프로젝트 1143.5는 키에프급의 프로젝트명인 1143의 파생형임을 보여주나 실제 최종 설계는 항공순양함 키예프급과는 다른 프로젝트 1160 오룔을 모체로 하는 사실상의 정규 항공모함이 되어버렸다.

본래 키예프급의 5번함으로 건조되려던 프로젝트 1143.5는, 그저 비행갑판 하나만 달아놓은 키예프급의 선체를 확장하여 탑재 함재기 수를 늘리는 것과 함께 증기식 사출기와 강제 제동 기능이 포함된 CATOBAR 기능을 갖출수 있게 설계되었다. 결국 최종 결과물은 전장 300미터 이상에 만재 6만톤을 넘는 중~대형 항공모함이 되었고 더이상 키예프급이라고 부를수 없는, 그냥 오룔의 건조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파생된 뒤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가 사항들로 인해 이전까지 소련이 시도한적 없는 신기술들이 대거 도입되었고 개발의 난이도와 건조 비용은 급상승했다. 결국 이를 보다못한 소련 군부는 1980년 CATOBAR 방식을 포기하는 대신 VSTOL 항공기를 위한 스키점프대를 장착하는 것으로 선회한다.

이런 설계 변경과 함께 함명도 여러번 변경되었는데, 키예프급 5번함이던 시절은 '리가' 였지만 새로운 함급으로 파생된 이후엔 전임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건조 계획이 확정된 다음엔 '트빌리시'가 되었다.

아무튼, 프로젝트 1143.5, 일명 트빌리시는 우크라이나 의 흑해 연안에 위치했던 흑해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었고 바랴그란 함명을 얻게 될 2번함 1143.6도 기공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 과정 역시도 순탄치는 않았다.

1980년 중반 냉전이 끝자락을 보이던 시기 군비경쟁의 후유증과 여러 대내외적 악재들로 소련 경제는 서서히 침몰해 가던 중이었고 그에 따른 자금 부족으로 건조는 일정이 늘어졌다.

그래도 근성으로 건조를 이어감에 따라 마침내 1985년 1번함이 진수되며 소련도 정규 항공모함 보유국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좋은 것은 거기뿐이었다. 비록 핵추진은 아니었으나 만재 6만톤이 넘는 대형함의 존재는 냉전 말 소련 군부에는 과중한 부담으로 다가왔고 1988년에는 무려 전략 자산인 항모를 제3국에 처분하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사업은 착실히 진행되던 중이었는지1989년 함재기 이착함에 성공한 1번함은 여기에 힘입어 1990년 10월, 소련 해군의 아버지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제독의 이름을 딴 어드미럴 쿠즈네초프란 정식 함명을 얻으며 25일 정식으로 취역하게 되었다. 소련은 마침내 제대로 된 정규 항모를 보유하게 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정확히 다음 해 하고도 하루 뒤, 소련이 해체되며 소련이란 나라가 지도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쿠즈네초프와 1988년 진수가 완료된 2번함 프로젝트 1143.6 바랴그는 주인을 잃고 붕 떠버린 신세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바로 쿠즈네초프급이 위치한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이란 장소였는데 소련의 붕괴로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쿠즈네초프급 항모 2척은 졸지에 타국 영해에 묶인 꼴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신생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두 척의 항모가 우크라이나의 소유라며 인도를 거부하였고 소련 북방함대는 유리 우스티멘코 제독을 보내 우크라이나 정부를 설득, 결국 1991년 12월 쿠즈네초프는 흑해 연안을 떠나 북극의 모항으로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일단 완성된 쿠즈네초프는 소련, 그리고 후신인 러시아 연방이 다시 환수에 성공했지만 진수된 상태에서 70% 가량만 공정이 완료된 바랴그는 항해조차 할수 없었고 러시아도 항모 2척을 떠안을 여력까진 없었으므로 결국 바랴그는 신생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소유가 되었다.

본래대로라면 바랴그는 소련 흑해함대, 또는 태평양 함대에 배치되었겠지만 정작 바랴그를 떠맞게 된 우크라이나에겐 항모는 너무 과분한 자산이었고 우크라이나 내부 사정도 혼란기를 맞은 상황이라 그렇게 바랴그는 항구에서 방치되게 된다. 그렇게 바랴그는 1997년까지 폐허가 되어 고철로 녹슬어 가는 운명으로 보였다.

운용[편집 | 원본 편집]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편집 | 원본 편집]

USS Deyo with Admiral Kuznetsov.jpg

계획명 1143.5, 어드미럴 쿠즈네초프의 네임쉽인 쿠즈네초프는 건조 중에는 리가, 그리고 브레즈네프란 함명을 거쳐 나중엔 트빌리시로 불렸었으나 1985년 진수된 이후 1995년 10월 취역과 함께 어드미럴 쿠즈네초프(소련 해군 제독 쿠즈네초프함)로 정식 명명되었다.

취역 직후 1989년에 항공기 운용 시험을 거쳐 1991년에 북방함대로 정식 배정이 난 쿠즈네초프는 앞선 시련 끝에 우크라이나를 떠날수 있게 되었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거쳐 지중해와 지브롤터를 지난 쿠즈네초프는 북대서양을 도는 긴 항해 끝에 북방함대가 있는 북해에 도착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북방함대에 합류한 쿠즈네초프였으나, 붉은 함대의 잔존 세력들이나 긁어모아 간신히 모습만 맞추고 있던 러시아 해군에게 무려 항공모함의 존재는 감당하기 힘든 부담거리였다. 때문에 쿠즈네초프는 함대를 끌고 대양으로 나가긴 커녕 조금씩 모항 근처 연안선만 전전하며 간단한 훈련이나 진행할 뿐이었고 이마저도 대부분은 항구에 정박해 있기 일쑤였다.

그래도 배치 2년 만에 수호이33으로 구성된 항공 부대를 받게 된 쿠즈네초프는 항모로 기능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4년만인 1995년, 지중해 순항 작전에 참가하며 마침내 북해를 떠나 대양으로 나가게 된다. 지중해에 진입한 쿠즈네초프는 시리아 연안에서 함재기를 발진시켜 첫 항공 작전에 나섰고 인근 이스라엘 공군을 견제하며 이들의 신경을 긁기도 하는 등 원양 진출에는 성공하였다.

이후 비용 부담으로 보수라는 명목 하에 일선에서 물러난 쿠즈네초프는 선창에서 방치 및 유지보수 작업을 받은 뒤 1998년 다시 북방함대로 복귀한다.

복귀한 쿠즈네초프는 다음 지중해 작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도중 그라니트/얀테이급(오스카급) 순항미사일 잠수함인 쿠르스크함 침몰 사고로 지중해 작전은 취소되었고 대신 이를 수습하며 행동을 재개하였다.

비록 여러 악재들이 겹치긴 했어도 21세기 들어 러시아 해군의 사정이 호전됨에 따라 쿠즈네초프에 대한 지원은 증가하였고 그에 비례해 활동량도 늘어나게 된다.

2000년 초반 대서양 원양 훈련으로 완전히 대양 작전 능력을 확보하고 활발히 원해로 진출하기 시작한 쿠즈네초프는 2007년 두번째 지중해 배치 이후 1년만에 지중해와 흑해 일대의 항구를 전전하는 순항작전과 본래 지중해를 담당하던 흑해함대와의 연합작전에 참여하며 3번째로 지중해에 배치된다.

이 세번째 지중해 파견 당시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러시아 국적 선원이 탑승한 유조선 두척을 구조했던 러시아 대양함대에 쿠즈네초프가 속해 있었다는 얘기도 있어 사실이라면 지중해에 외에도 인도양에서도 작전을 수행했다는 의미와 함께 첫 실전이 2014년이 아닌 2008년에 치뤄졌다는 의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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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격받는 쿠즈네초프

2010년 들어서는 큰 활동 없이 북방함대에 머무는가 싶더니 2011년부터 다시 지중해로 보내졌다. 이때 북해상에 진입해 아이슬란드 일대에서 항행중인 쿠즈네초프를 영국 구축함인 HMS 요크가 추적하기도 하는 일이 있었고 14년에는 HMS 드래곤이 영국 인근에 접근한 쿠즈네초프를 추적하는 등 꾸준히 지중해와 북해 일대를 오가며 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2016년, 건조된지 거의 20년 만에 첫 실전에 투입되었다. 시리아 내전으로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오랜만에 지중해로 전개된 쿠즈네초프는 기존 수호이33과 함께 신예기 미그29K를 탑재한 상태였고 이들 전폭기들로 지상 공격을 하게 되었다.

출항한 쿠즈네초프는 북해에서 유럽 해안선을 따라 스페인 해안까지 도달했고 이동하는 동안 유럽과 나토의 함정들이 따라다니며 밀착감시를 하는 등 러시아와 서방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시리아 내전에 러시아와 서방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항공모함이 자국 인근 해역을 지난다는 자체가 큰 위협이기 때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단 지중해 진입을 앞두고 스페인에서 10일간 정박해 그동안 재보급을 받을 예정이였으나 나토와 유럽연합의 반발로 보급 차질을 겪는 등, 우여곡절을 넘어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지중해 동쪽 연안 시리아 인근 해역에서 작전에 참가했다.

러시아의 쿠즈네초프 투입은 사실 전술적인 목적보다 전략적,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하고 오랫동안 운용되지 않았던 쿠즈네초프의 재가동과 항모 운용능력의 지속적 축적이 이유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측한다는 듯 하다.

시리아 인근 지중해 해역에서 처음으로 실전에서 함재기를 발진시키며 시리아 제공 임무와 지상공격 임무를 수행한 쿠즈네초프와 함재기는 무유도 폭탄으로 폭격임무를 수행하는 등의 작전이 진행되었는데, 작전 도중 착함하던 수호이33과 미그29K가 각각1대씩 어레스팅 기어가 끊어지는 사고로 손실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항모 운용의 미숙함을 드러낸것 아니냐며 서방 국가들의 조소를 사기도 했지만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였던 러시아 해군은 평가가 어쨌건 만족을 표했다.

시리아에서의 작전은 2017년에 종료되었고 쿠즈네초프는 지중해에서 훈련 참여한 다음 북해로 복귀하였다. 복귀한 쿠즈네초프는 개장 및 대대적인 현대화 필요성으로 다시 일선에서 배제되어 드라이 독 안에서 개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해당 개장을 통해 자체 무장을 제거하고 신형 항공기와 전자장비의 개량을 예정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었다.

그러나 2018년 개장 중 크레인이 갑판을 강타하는 사고로 비행갑판이 파손되고 부유 도크가 침몰하는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며 근로자가 사망하기까지 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19년 개장 중 화재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원인은 용접 불꽃이 함내 잔여연료(중유)에 옮겨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처럼 다사다난한 사건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다시 복귀하지 못하고 독에서 퇴역할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으며 랴오닝이란 이름으로 중국에서 운용중인 2번함 바랴그를 재매입해 오자는 의견까지 나오기까지 했으나 이미 취역까지 완료하고 중국 북부전구 해군(북해함대)에 배속된 바랴그를 빼온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러시아군도 쿠즈네초프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결국 차근차근 복구 및 개장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결국 근성의 쿠즈네초프는 2023년 2월 독에서 벗어나 재 진수를 앞둘 만큼 복구되었으며 앞으로 시험 항해를 거쳐 2024년 북방함대로 복귀할 예정이다.

바랴그(현 랴오닝)[편집 | 원본 편집]

중국으로 떠나는 바랴그

한편 2번함 바랴그는 1988년 진수된 이래 70퍼센트 정도 기공이 진행되었지만 소련 붕괴라는 대사건 이래 건조가 중단되었고 건조지였던 우크라이나에 방치되었다.

그 과정에서 소련의 구성국이던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이 우크라이나로 독립하고 자국 영토에 위치한 바랴그의 소유권까지 가지게 되었으나[3] 막 탄생한 신생국 우크라이나로선 항공모함의 건조를 진행할 여유 따윈 없었고 결국 공정이 중단된 바랴그는 몇년 동안 조선소 항구 한켠에서 방치되어 녹슬어 갈 뿐이었다.

그렇게 폐허가 되어 잊혀져 가던 바랴그는 1998년, 의외의 이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는데 해양 테마파크 건설을 위해 중국의 한 회사가 우크라이나에게 바랴그를 매입을 희망한 것이다.

물론 주체가 불분명한 회사의 실체는 의심스러웠고 주변국역시 우려를 표했지만 몇년 이상 해상에서 방치되며 손상 정도가 심각했던 미완성 선체뿐이었는데다 중국 해군 역시 겉으로는 항모 도입 의지를 보이지 않아 그저 지나가는 말이 되었다.

그렇게 바랴그는 한화로 약 200억원에 불과한 헐값에 중국으로 매각되었고 한때 소련의 항공모함이었던 바랴그는 카지노로 전락할 처지가 되었다.[4]

하지만 흑해에서 동아시아까지의 항해는 멀고도 험난했다.우선 보스포러스 해협 통과를 위한 협상이 튀르키예와 이루어져야 했으며 원칙적으로 전함과 항공모함의 해협 통과를 불허하던 튀르키예는 협상 끝에 빡빡한 조건을 걸며 통과를 허용했다. 그리고 난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이번에는 수에즈 운하에서 통행을 불허함에 따라 바랴그는 지구 반바퀴에 가까운 긴 항해를 해야만 했다.

어찌되었건 10년 넘게 묶여있던 흑해 연안을 벗어난 바랴그는 주변국들의 우려와 함께 튀르키예의 감시 하에서 무해협을 통과해 지중해로 나왔고 10노트의 속도로 남대서양과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지난 바랴그는 마침내 먼 동녘 중국 해안까지 이어진 긴 항해 끝에 중국 해안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던 것은 중국 해군의 기술자들과 중국 해군이 보유한 대련 조선소였다.

사실 모든 것은 중국의 속임수로 위장 회사를 통해 주변국의 경계를 희석시키고 물밑에서 항모 보유를 위한 뒷작업을 진행중이었던 것이다. 바랴그는 대련 조선소 내에서 대대적인 보수작업과 추가 공정작업을 통해 건조를 완료했고 2011년부터 약 1년간 시운전을 했고 엔진 이상으로 문제를 겪긴 했으나 2012년 9월 25일 중국 해군으로 넘겨졌고 바랴그란 이름 대신 랴오닝이란 새 이름을 부여받으며 중국 해군의 첫 항모가 된다.

취역한 랴오닝은 이후 중국 남해함대에 배속되어 2013년부터 하이난섬 일대에서 기본 훈련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운용에 돌입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미 해군과 대치하기도 했다.

2016년 말에는 아예 항모 전단을 구성한 랴오닝은 대련에서 출항해 황해를 거쳐 대만 해협 동수로를 통과하여 하이난 섬 일대 남중국해로 항행하는 대규모 순항 훈련을 벌였다.

남중국해에 진입한 랴오닝은 함재기 발진 등 운용 훈련을 진행하였고 이듬해인 2017년 1월 대만 해협 서수로를 통해 황해로 재진입하여 모항인 대련으로 복귀했는데, 전반적인 항로는 대만 섬을 한바퀴 왕복하는 모양으로 대만을 포위하는 형국인 한편 황해와 인접한 한국은 물론 조어도 인근을 항행하며 일본에도 무력시위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이런 세력 과시는 몇달 뒤인 2017년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랴오닝 전단이 남중국해로 향하며 재현되었다. 홍콩 기항을 위해 대련에서 출항한 랴오닝은 이번에도 비슷한 항로를 통해 남중국해로 진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군사 훈련을 진행하여 대만을 압박했다. 복귀 항로 역시 몇달 전과 유사했으며 역시 황해를 거쳐 모항인 대련으로 귀항했다.

이처럼 랴오닝함은 대만을 압박하는 전략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중화민국 공군 및 해군을 견제하는 목적으로 남중국해 일대에서 운용되었다. 또한 조어도 일대 일본 해상자위대를 상대로 한 분쟁에서의 우위 선점과 동남아시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하며 도입 목적을 달성하였다.

설계 및 성능[편집 | 원본 편집]

쿠즈네초프급의 설계 사상은 키예프급과 거의 동일하다. 쿠즈네초프급은 건조 과정에서 정규 항공모함으로 건조되긴 했으나 용도는 과거 항공 유도탄 순양함의 그것으로 함재기를 이용한 조기경보와 함대 방공, 그리고 적 대잠 항공세력의 견제이며 함 자체의 강력한 화력으로 직접 적 항공모함(을 포함한 주력 함정들)을 무력화 하는 것을 지향한다. 즉, 키예프급은 주로 후자에 치중된 반면 쿠즈네초프급은 항공모함의 임무인 전자의 비중을 주로 하여 설계된 함급으로 볼수 있다.

해당 문단은 주로 선도함이자 원본 함선인 어드미럴 쿠즈네초프를 기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항공기 운용[편집 | 원본 편집]

이함하는 수호이33

쿠즈네초프급은 사출기 대신 함재기의 자체 추력으로 활주 후 경사진 스키점프대를 타고 이함하는 방식이며 착함은 일반적인 중대형급 항모들처럼 강제 착함 방식을 사용하는 STOBAR 방식의 항공모함이다.

이러한 점은 수직이착륙기가 아닌 통상 함재 전투기 운용이 가능하게 해 육상 기반 전투기와 동등한 사항의 기체를 함상에서 운용하게 해 주었으나 좁은 항모 갑판에서 자체 추력만으로 활주하기엔 이륙시 충분한 가속이 붙지 않으므로 스키점프대로 받음각을 올려 추력이 아래로 향하게 해 이륙하는 원리를 사용한다. 때문에 함재기는 강력한 추력을 가진 기종이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중량급 기체를 이륙시키기엔 사출기와 비교해 여러 제약이 가해지는 문제가 있으므로 항모의 작전능력을 약화시키는 부분이 있다. 다만 러시아(당시 소련)의 케터펄트 운용 경험이 없고 비용 문제로 불가피하게 택하게 된 사항이였다.

스키점프대와 이함 대기중인 수호이33

쿠즈네초프급은 총 3곳에서 전투기를 발진시킬수 있지만 활주거리가 긴 1개가 경사갑판 쪽에 위치해 항시 운용 가능한건 전방의 2개 뿐이다.

취역 직후부터 수호이27의 함재형인 수호이33(Su-33) 전투기를 함재기로 운용하고 있었으며 24대의 전투기와 28대의 헬기 운용을 상정하였다. 최대 항모 내에 50대 이상의 함재기를 적재하고 운용할 수 있으나 정작 수호이33의 생산 댓수가 적어 12대만 운용중에 있다.

Sukhoi Su-33 on Admiral Kuznetsov-1.jpg
착함하는 수호이33과 주기된 모습
비행하는 미그29K

수호이 33은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 해군까지, 러시아가 보유한 첫 고성능 함재 전투기다. 원형인 수호이27이 개발 당시에는 F-15를 상대할만한 고성능 전투기였고 우수한 공중전 능력을 갖추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 한 수호이33에 거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생산된 수가 적어 함재기의 가격이 상승한데다 항모 내 주기 가능 댓수가 12대로 제한되어 작전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개량도 이루어지지 않아 성능적으로도 주변국의 전투기에 비해 열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그29(MiG-29)M의 함재형인 미그29K로 주력 함재기로 교체하는 중이며 비교적 소형으로, 함내 탑재 가능한 함재기 수량 증가가 가능하다는 컴팩트함과 함께 수호이33보다 현대화된 4~4.5세대 기체로써 작전 성능이 수호이33보다 향상된 점 때문에[5] 오히려 항모 자체의 전투력은 이전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본래는 2015년까지 수호이33을 함상에서 도태시키고 그 자리를 미그29K가 채워나갈 계획으로, 대체 기간이였던 2014년 첫 실전 투입때는 수호이33과 미그29 두 기종을 모두 운용했었다. 다만 현재 수호이33의 노후화와 지속적 개랑의 미비로 퇴역 절차를 진행하려 했지만 대형 기체가 갖는 이점은 포기할순 없는지 수호이33 역시 소폭 개량 계획을 통해 운용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앞으로 개장 후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수호이57(Su-57)의 함재형을 운용할 계획은 있으나 정작 아직까지도 수호이57의 함재형의 개발 진척을 알수 없는 현실이다. 쿠즈네초프함이 수호이57을 탑재한다면 그 성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겠지만 정작 함의 미래마저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라 확정짓기 힘든 사항이다. 그나마 2023년 다시 항해를 시작할 예정이니 그 점에선 다행이겠지만 이제는 수호이57 함재형 개발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애초에 70여대로 도입 수량이 칼질당하고 배치 속도도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새로 파생형을 설계하기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함을 준비중인 카모프27

울리야놉스급 계획 당시에는 자체적인 함재 조기경보기 계획과 수호이25(Su-25) 기반의 자체 공격기 보유 계획도 있었지만 쿠즈네초프급 때는 조기경보기는 취소되고 공격기로 수호이25를 운용하려 했지만 본격적인 운용은 훈련 용도로만 사용하였다. 현재로선 조기경보 임무는 대잠 헬기에 레이더를 달아 이용하고 있다. 대잠 헬기론 Ka-27을 운용하고 Ka-32가 조기경보레이더를 운용한다. 또한 함재 전투기 자체 레이더로도 조기경보가 가능하다.

한편 2번함 바랴그는 중국 해군에 001 랴오닝으로 취역한 뒤 중국이 수호이33의 데드카피로 양산한 젠15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성능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여 중국 해군도 이 기종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진 않다. 따라서 러시아 측으로부터 수호이33이나 미그29K의 구매와 신형 함재기 개발을 원하면서 사실상 젠15는 실패작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당장 쓸수 있는 기체는 젠15가 전부이므로 결함을 보완해 가며 운용중이며 중국 해군은 앞으로 미군의 F-35C에 대응하기 위해 5세대 함재기 개발을 진행중이다.

중국 공군이 운용중인 5세대기인 젠20의 함재기설도 나오긴 하였으나 워낙 대형의 기체라 함상에서 운용하기에는 제약이 컸기에 선양 항공에서 개발한 FC-31이 차기 함재기로 유력했고 2022년 FC-31을 기반으로 제작된 함재기 시제기가 시험비행을 하는 모습과 함께 모형 연습항모 위에 놓인 모습까지 확인되며 사실상 차기 함재기로 낙점된 상태다.

무장[편집 | 원본 편집]

P-700 그라니트

항공모함이지만 키예프급 당시부터 항모가 자체 무장을 하는 러시아식 항공 순양함 설개대로 적 항모 및 주력함을 직접 타격하기 위한 자체 무장을 갖추고 있다.

그 핵심은 스키점프대 뒤쪽에 있는데 미 대형 항모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P-700 그라니트 대함미사일 12발을 탑재한 수직 발사대가 그것이다. 이 그라니트란 물건은 마하2의 순항속도를 갖는 초음속 대함미사일로 대응 가능 시간이 극히 짧은데다 탄두 중량만 해도 최대 1톤에 달해 피격을 허용할 시 초음속으로 가속된 운동 에너지와 함께 수만톤의 거함이래도 대파 이상의 피해를 입힌다. 이런 흉악한 물건을 12발이나 달고 있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 자체 대함무장으로 적 항모를 파괴하는 걸 상정했기 때문이며 최대 사거리 600km 밖에서 함재기 대신 미사일을 발진시켜 적 항모에 타격을 주는 개념이다.

아무튼 그라니트 12발을 탑재한 쿠즈네초프급은 어지간한 순양함 이상가는 화력을 보유한 항모가 되었고 러시아 해군 내에서도 모스크바급이나 키로프급 원자력 순양함 정도를 제외하면 쿠즈네초프급의 타격력을 직접 상대할 함정은 없다.

개방된 수직발사대
미사일을 발사한 쿠즈네초프

또한 소련 해군 자체가 세계 2위의 전력을 자랑하며 유럽 및 아시아에서 위세를 떨쳤지만, 전 세계 제해권을 장악한 미 해군에 비하면 열세임은 분명했고 항모에게도 순양함, 구축함의 역할까지 부여하는 개념도 있었다.

그래서 쿠즈네초프급의 개함 방어는 타국의 항모들보다 과무장된 편으로 CIWS만 해도 탄막형인 30밀리 개틀링 포 AK-630이 6문, 쌍열 30밀리 개틀링에 사거리 8km ~ 10km 의 레이저 유도 대공미사일을 장착한 카쉬탄 복합 체계 8문을 보유중이다. 보통 해당 근접방공체계가 구축함 등에 많아봐야 2~3개 달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항모라 해도 상당한 수준이며 니미츠급이 20밀리 팰렁스를 3개만 단것만 봐도 무장 수준을 알만 하다.

물론 여기서 그친다면 단순히 좀 무장된 항모라는 선에서 넘어갈수 있겠지만 근접 방어를 넘어 개함 방공 면에서 시 스패로와 동급인 3K95 킨잘(토르 방공체계의 해상형)미사일을 8쉘 묶음 수직발사대 24개를 배치하여 총합 196발의 대공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해당 미사일은 지령 유도로 유도되어 사거리 12km 내 접근하는 비행체를 격추시킬수 있으며 니미츠급에 배치된 연장 발사기의 시 스패로처럼 카쉬탄 및 AK-630의 영역 밖인 개함 방공 영역에서 비행체 요격에 나선다.

즉 12km 개함방공 영역에선 킨잘, 그 안인 5~10km 내에선 카쉬탄의 대공미사일이 저지에 나서며 카쉬탄을 넘어 공격하는 비행체에 대해선 카쉬탄의 2연장 개틀링 포 및 AK-630이 탄막을 형성해 자함을 방어한다.

대신 키예프급 항공모함을 설계할 때와 달리 원, 중거리 대공 미사일 및 대공 체계는 탑재하지 않아 함대 방공은 어려우며 함대 방공 부분은 주위 호위 세력에 있는 순양함, 구축함에서 담당한다. 개장 계획에서 해상형 S-400 의 탑재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각종 악재들이 겹친데다 러시아군의 궁핍한 사정으로 인하여 사실상 흐지부지 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무슨 난공불략의 항공전함, 또는 해상 항공기지로 느껴지겠지만 실상은 한계도 명확하다. 가장 큰 문제는 피격 시 피해 통제(데미지 컨트롤)이 힘들다는 것으로 함내 여기저기 박아놓은 무장이 피격의 충격으로 2차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키예프급 항공모함보단 나아졌지만 반쪽은 대형 미사일 순양함이라는 사상 자체는 쿠즈네초프급의 항공 능력에 걸림돌이 되었다.

만재 6만 5천톤급에 전장은 니미츠급에 근접하는 나름의 대형 항모지만 30대의 전투기 + 2대의 조기경보기 및 대잠초계기를 실을 수 있는 4만톤급 중형 항모 샤를 드골급 항모보다 함재기 탑재 수량이 딸리는 것 역시 무장을 위한 내부공간 희생이 이유이다.

과거 항공전함이 그랬듯이 소련 특유의 전술 때문임을 감안해야겠지만, 결국 두 함종의 혼합은 죽도 밥도 아닌 어중간한 절충안을 만들어 냈고 쿠즈네초프급 자체는 과거 항공전함들에 비하면 우수하긴 하나[6] 명백한 한계점을 드러냈기에 차기 러시아 항모는 무장을 제거한 완전한 정규 항모로 개발이 진행중이다.

선체 설계[편집 | 원본 편집]

핵추진 대신 재래식 추진 방식을 사용하는 항모이다. 다수의 고성능 원잠 건조와 키로프급 같은 핵추진 수상함을 다수 건조했던 소련이었기에 기술적으로 큰 벽은 없었지만 기존 계획이 재래식 추진이었던 키예프급의 개량에서 시작되었던데다 핵추진 방식을 사용하면 그렇지 않아도 비싼 항모 획득비용이 급상승할 게 뻔하므로 핵추진 대신 기존 증기 터빈 추진방식을 택했다.[7]

쿠즈네초프는 8개의 중유 보일러와 4개의 증기 터빈으로 추진되며 20만 마력으로 29~30노트까지 가속한다. 그래서 쿠즈네초프는 함교 뒤 연통이 존재하며 추진 시 발생하는 매연을 확인할수 있다.

바랴그도 자매함이니만큼 쿠즈네초프와 동일 사항의 기관을 탑재할 예정이었지만 건조가 중단되었고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으로 개조되면서 중국제 기관이 들어가게 된다.

파생형[편집 | 원본 편집]

001형 랴오닝(바랴그)[편집 | 원본 편집]

항행하는 랴오닝(구 바랴그)

2번함인 바랴그가 중국에 팔려가 개장을 받고 중국 해군에 취역하면서 랴오닝이란 이름으로 개칭되었고 중국이 보유한 첫번째 정규 항공모함이 되었다ㆍ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에 방치되어 있던 바랴그를 해상 테마파크 건설이란 명목으로 매입했고 결국 중국 해군 소속으로 함적이 바뀌고 말았다. 바랴그는 중국으로 매입된 후 VLS가 제거되고 러시아제 무장들을 덜어내면서 쿠즈네초프급과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전자장비와 내부 장비들이 쿠즈네초프와 완전히 달라 다른 급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쿠즈네초프의 자매함이란 사실은 불변이며 랴오닝급으로 분류되기엔 무리가 많다.

애초에 랴오닝 이전 본명은 바랴그이기도 했고, 이후 중국은 바랴그를 기반으로 한 001A형 산둥을 취역시켰고 전체적인 형상은 쿠즈네초프와 바랴그의 형상과 동일하지만 중국의 자체 설계와 건조로 만들어진 사실상의 중국 최초의 독자건조 항모다. 산둥급 역시 신체개조(?) 당한 바랴그같이 쿠즈네초프급과 동형함으로 보는 시각보단 파생된 별개의 함종, 혹은 따로 산둥급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두 척의 중국 항모는 아직까진 수호이33의 불법복제판인 젠15를 운용하곤 있지만 젠15의 작전능력 불충분으로 FC-31 기반의 함재기 개발설도 나오고 있다.

002형 산둥[편집 | 원본 편집]

Type 002 aircraft carrier of People's Liberation Army Navy (cropped).jpg

바랴그를 기반으로 개발된 중국의 첫 자체개발 항공모함으로 2017년 4월 26일 진수 및 공개되어 중국 남해함대에 배치되었다.

바랴그를 개장하며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건조되었기 때문에 외형부터 항공기 운용 방식까지 쿠즈네초프급과 유사하나 옛 소련과의 작전 환경 및 운용 전술이 다르므로 세세한 설계는 독자적으로 이루어졌고 쿠즈네초프급에서 비롯된 SATOBR 방식만 제외하면 서방권의 보편적인 항모 구조를 따른다.

특히 규모가 만재 7만톤 급으로 증가하며 바랴그를 비롯한 쿠즈네초프급을 능가하는 규모를 갖게 되었고 항모 자체의 중무장은 바랴그 개장 당시부터 제거된 바 산둥에는 반영되지 않았고 외형을 제외한 내부의 설계들은 중국 자체기술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모태인 랴오닝과 마찬가지로 젠15를 주력 함재기로 운용하고 있으며 역시 FC-31이 함재기로 개발된다면 이를 운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각주

  1. 항공순양함 프로젝트 1143 《트빌리시》, 트빌리시는 가칭이다.
  2. 현 랴오닝.
  3. 모스크바급 순양함 3번함이었던 우크라이나함 역시 같은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소유가 되었지만 건조 여력 및 운용 부담을 감당할수 없었던 우크라이나는 순양함을 방치하다 결국 고철로 처분하였다.
  4. 그렇게 특이한 건 아닌것이 이전에 팔려온 키예프급 항모 민스크를 해상 공원으로 개장해 운영한 전적이 있다. 현재는 폐장.
  5. 미그29K는 수호이33보다 탐지거리 및 해상도, 동시교전 능력이 우세한 Zhuck-ME 위상배열 레이더를 탑재하여 서방권의 최신 4세대 전투기와 대등한 항전 수준을 갖추었고 복합 신소재의 적극적 사용으로 레이더 반사면적을 감소시키는 개량이 있었다.
  6. 단적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세급 전함 이세나 휴우가는 함재기조차 운용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이착함 자체를 해 내지 못한 물건들이니 그에 비하면 키예프급이나 쿠즈네초프급은 양반이다.
  7. 세계 최초의 핵추진 항모 CVN-65 엔터프라이즈도 본래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으로 건조가 계획되었으나 기술적 위험성 및 상상 이상의 비용 상승으로 단함만 건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