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섀클턴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
Ernest Henry Shackleton
Ernest Henry Shackleton.jpg
섀클턴 경의 생전 모습
인물 정보
출생 1874년 2월 15일
아일랜드 킬케아 킬더에 가운티
사망 1922년 1월 5일 (48세)
국적 영국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 1874년 2월 15일~1922년 1월 5일)은 아일랜드 출신의 탐험가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모험가로, 실패했음에도 영웅적인 탐험으로 기억되는 강인하고도 현명한 리더.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유소년기[편집 | 원본 편집]

섀클턴은 1874년 2월 15일, 아일랜드 킬케아의 킬더에 가운티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집안은 앵글로-아이리시 혈통으로 선조는 본디 퀘이커교도였지만 아버지 헨리가 성공회로 개종했으며, 그 아들인 어니스트 역시 평생 성공회 신앙을 간직하였다. 아버지 헨리는 모두 2남 8녀를 두었는데, 어니스트 섀클턴은 집안의 두 번째 자식이면서 또한 장남이었다.

저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1847-1852)은 지났지만 사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1884년, 아일랜드에서 반영투쟁이 격화되자 아버지 헨리는 위기감을 느끼고는 영국으로 이주했다. 헨리는 의사 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병원을 열었지만 실패하고 런던 외곽에 위치한 시든헴으로 다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을 시든헴에서 보냈다. 이 무렵부터 어머니가 원인 모를 병 때문에 40년 이상 병상에 누워 있게 되었다. 어니스트는 여기에서부터 매우 활달한 성격으로 성장하였다.

1887년에 어니스트는 집에서 가까운 덜위치 칼리지에 진학했다. 일류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괜찮은 대학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책 읽기를 좋아했고 남들과 어울려서 놀기보다는 혼자 생각하고 해결하기를 좋아했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를 매우 좋아했으며 자기도 바다로 나가보기를 원하였다. 아버지 헨리는 아들이 자기를 따라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아들의 뜻을 꺾지 못하였다. 당시 어니스트의 나이가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늦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다른 상선에 선원으로 들어가도록 수배하였다. 이후 어니스트는 휴학계를 내고 1890년 4월 19일에 휴튼 타워호(Houghton Tower)에 선원으로서 승선하였다.

청년기[편집 | 원본 편집]

섀클턴은 당시 기준에서도 슬슬 저물어가던 범선인 휴튼 타워호에서 선원으로서 일하면서 뱃일을 배웠다. 첫 승선한 항해에서 케이프 혼을 찍고 1년 만에 돌아왔다. 이 항해에서 선장은 섀클턴에 대해서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고집 세고 완고한 녀석이야!"라고 했는데, 섀클턴의 성격은 과연 그러했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 4년짜리 견습 승무원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1894년 8월에는 2등항해사 자격을 얻었고, 6주 뒤에는 나침반을 다룰 자격을 얻었다. 이때가 20세였다. 같은 해 11월, 섀클턴은 몬마우셔(Monmouthshire)라는 부정기 화물선을 타고 5년간 뱃일을 더 하였다. 1896년에 1등 항해사 자격을, 1898년 4월에 선장 자격을 획득하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