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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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W. 앨버스(Andrew W. Albers)는 캐나다의 야구 선수로 2015 시즌 시점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이다. 한화 이글스의 용병투수로 뛰면서 대한민국 야구 팬들에게 알려졌다.

데뷔 및 메이저리그[편집 | 원본 편집]

2004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12라운드 전체 346순위로 밀워키 브루어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거부 후 대학에 진학했다. 켄터키 대학에 진학한 후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미국대학경기협회)에서 선발 및 구원으로 전천후로 활약하며 20승 12세이브를 기록한 후 2008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지명을 받고 입단하지만 데뷔시즌 루키 리그에서 초반에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고 이탈,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방출되었다.

수술 후 2010년 독립리그인 캐나다-아메리칸 리그에서 호투하며 몸을 만든 후, 2011년 트라이아웃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했다. 미네소타는 2008년에도 앨버스를 지명하려다가 샌디에이고에게 밀린 바가 있어서 앨버스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이후 2011~12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있으며 11시즌 8승 2패 ERA 2.16, 12시즌 5승 3패 ERA 3.67을 기록한다. 13시즌에도 리그를 씹어먹으며 11승 5패 ERA 2.86을 기록, 미네소타 선발진의 최고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마침 2013시즌 미네소타는 스캇 다이아몬드가 부상으로 이탈한 뒤 제대로 된 선발투수가 없어서 선발진이 붕괴되었기에 올스타전 이후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8월 6일 감동적인 메이저리그 데뷔를 치른다.

그리고 첫 데뷔전인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8 1/3이닝 4피안타 무실점 승리투수로 충공깽한 데뷔를 하며 혜성처럼 등장했고 그 다음 경기인 클리브랜드 인디언스전에서 9이닝 2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여 순식간에 2승을 챙긴다. 두 경기 합쳐 17과 1/3이닝 연속 무실점은 팀 내 신인 최고기록이며, 이와 같은 활약에 미네소타 팬들과 언론의 집중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관심에 부담을 가진 것과, 상대 팀들이 앨버스를 분석하고 나오는 것이 악재로 적용하며 시즌 최종적으로 더 이상 승수를 쌓지 못하고 2승 5패 ERA 4.05로 마무리했다. 다만 본인이 무너진 경기도 있었지만 8월 28일 캔자스시티전 7이닝 2실점 패전, 9월 8일 토론토전 7이닝 무실점 ND처럼 승운이 따라주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선발진이 무너진 미네소타에서 올스타전 이후 유일하게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주었고, 경기 내용도 괜찮았기에 팀은 앨버스를 40인 로스터에 포함시키고 내년 시즌을 준비했다.

문제는 앨버스가 아니라 팀에 있었다. 미네소타는 전력 강화를 위해 리키 놀라스코필 휴즈를 FA로 영입하고, 마이크 펠프리와 계약했다. 여기에 기존의 투수인 스캇 다이아몬드, 케빈 코레이아, 사무엘 데두노까지 있다보니 선발자원이 과포화 상태에 놓였던 것이다. 앨버스도 선발 경쟁자 중 한 명이었는데 불행히도 유일한 마이너 옵션[1] 미실행자여서 입지가 급격히 좁아진 상태였다.[2]

이런 상황을 파악한 한화 이글스는 전격적으로 그에게 한국행 의사를 타진했다. 앨버스 입장에선 딱 1년만 한국에서 뛰더라도 바로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데, 선발이 보장되지 않는 미네소타에 잔류할 경우 FA 자격이 2019년에야 가능했기에 너무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결국 계약금 10만 달러, 연봉 70만 달러에 계약하며 한화에 입단했다. 2013시즌 미네소타에서 앨버스가 받은 연봉은 49만 달러.[3]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한화에서는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일단 팀 수비가 노답이라 꾸역꾸역 실점과 방어율을 올려주었고 타선은 타선대로 제대로 점수를 뽑지 못했으며 겨우 승리투수 조건을 채우고 내려가면 볼펜진이 블론을 저지르는 총체적 난국이 연이어 찾아왔다.이게 팀이냐... 이런 문제점들이 겹치면서 본인도 꽤 기복이 있는 투구를 하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러나 퀄리티 스타트를 상당히 많이 기록, 즉 최소 6이닝 이상은 기본적으로 늘 책임져주는 투수였고 삼진도 107개나 잡는 등 제구력이나 경기운영능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투구수 관리가 잘되는 편임에도 5회나 6회 후 내리고 계투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역전패를 당하고 이에 대한 반발이 꽤 있었다. 8월 25일 기아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할 정도[4]로 완급조절이나 이닝 소화능력은 괜찮은 편, 아니 14시즌 한화 선발투수 중 가장 독보적이었다. 세이버 매트릭스상으로는 리그 톱 수준이었다.

최종적으로 6승 13패(...) ERA 5.89의 기록을 올렸다. 팀을 잘못 만나 그렇지 상당히 준수한 활약을 했는데, 최종적으로 재계약하지 못했다. 본인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성적은 찍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해야 유리하겠지만, 팀이 워낙 못하는 데다가 세이버 매트릭스상으로는 괜찮았기에 어필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한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후일 토로했다. 팬들이나 동료들은 다 잘해주었지만 본인이 적응을 못했다고...

메이저리그 복귀[편집 | 원본 편집]

2015시즌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로 복귀했다. 이를 두고 역시 ML 사관학교 한화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다나 이블랜드, 류현진 등과 달리 앨버스는 원래 메이저리거였다가 다시 복귀하는 차이점이 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캐나다 국가대표로 2011년 파나마 야구 월드컵에 참가, 한국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4피안타 무실점 승리투수가 된 적이 있다. 그 외에는 국가대표 커리어는 없다.

주석[편집 | 원본 편집]

  1. 40인 로스터에 들어간 선수에 대한 보호 옵션이다. 40인 로스터에 들어간 선수에 대해 구단은 선수의 동의를 얻지 않고 딱 3번까지만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있다. 그 다음부터 마이너리그에 보내려면 선수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2. 그러나 2014시즌 미네소타는 놀라스코가 먹튀가 되었고, 나머지 투수들도 필 휴즈를 제외하면 모두 부진해서 선발진이 또 붕괴했다! 결과론적이지만 앨버스가 시즌 초 마이너 생활을 각오했다면 다시 메이저리그 콜업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
  3. 참고로 앨버스는 KBO에서 개나소나 30만 달러 받는다고 뻥치던 외국인 용병 상한제가 정식으로 철폐된 후 처음으로 계약한 선수이다.
  4. 팀으로는 2011년 5월 28일 이후 약 3년 3개월만이며, 팀 외국인선수 기록으로는 11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