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 카디르 칸

압둘 카디르 칸
عبد القدیر خان
이름 압둘 카디르 칸
출생 1936년 4월 1일 영국령 인도 보팔주 보팔
사망 2021년 10월 10일(향년 85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국적 파키스탄
연구분야 금속공학
지도교수 마틴 바버
제자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عبد القدیر خان)은 파키스탄금속공학자이자 파키스탄 핵개발의 중심이 된 인물이다.

상세[편집 | 원본 편집]

압둘 카디르 칸은 1936년 4월 1일에 인도 보팔에서 태어났고 1956년에 카라치 대학에서 고체 물리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1961년에 독일 베를린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서 재료 공학을 공부하였으나 1965년에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과대학으로 옮겨서 계속 공부를 하였으며 1967년에 재료공학으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다음 벨기에의 루뱅 대학에서 마틴 바버 교수의 지도하에 금속공학을 공부하였고 1972년에 박사학위 논문인 〈The Effect of Morphology on the Strength of Copper-based Martensites〉을 제출하여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바버 교수의 추천으로 원자력 연료를 제작하는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으며 우라늄을 다루는 기술을 습득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1974년, 인도가 핵개발에 성공하자 그는 조국인 파키스탄의 핵개발 계획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지도하에 1998년 파키스탄은 핵개발에 성공하여 7번째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 공로로 그는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파키스탄의 국민적 영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004년에 이란, 북한, 리비아 등에 불법으로 핵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는 파키스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가택 연급되었다가 2009년에 사면되었다. 그가 이런 행위를 한 동기는 불분명하여 돈이나 이념이라는 추측도 있고 파키스탄 지도부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가 파키스탄 핵무장에 큰 공로를 세웠음은 분명한지라 파키스탄에서는 그 이후에도 존경받았으며 2021년 10월 11일에 코로나 치료 도중 죽었을 때 파키스탄 총리는 국가적 아이콘을 잃었다며 애도하였다.[1]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국내에서는 핵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이유떄문인지 종종 핵물리학자로 소개된다. 물론 엄연히 금속공학으로 학위를 받았고 핵물리학 연구를 한 사람은 아니니 핵물리학자라는 설명은 틀렸다.
  • 이유야 어찌되었든 북한의 핵개발에 기여한 인물인 만큼 우리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일단 본인은 북한이 진짜 핵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그가 생각한거 보다 더 막나가는 집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