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쇼류 아키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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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거르수렌긴 다그와도르즈(Долгорсүрэнгийн Дагвадорж, 1980년 9월 27일 ~ ), 제68대 요코즈나 아사쇼류 아키노리(朝青龍 明徳)[1]몽골의 사업가, 탤런트, 해설, 평론가, 영화 배우, 자선 사업가, 몽골 레슬링 협회 (명예)회장, 전(前) 스모 선수이다. 몽골 인 최초로 요코즈나가 되고 21번의 오즈모 우승을 달성한 전설적인 선수이나, 각종 사건 사고와 혐한 발언으로 인한 구설수로 은퇴 이후로도 많은 논란을 쌓고 있다.[2]

1980년 9월 27일, 몽골 울란바토르의 격투기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으로 스모 유학을 갔다. 고등학교[3]를 중퇴한 후 그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타카사고베야(高砂部屋)의 감독에게 스카우트 되어 1999년 스모에 입문하였다.

불과 2년만에 마쿠우치 리키시가 되었으며, 2001년 11월 대회와 다음해 1월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여 요코즈나로 등극, 몽골 스모 붐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았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도 지녀서 인터뷰 때 재치있는 말솜씨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특유의 망나니 같은 성격 탓에 패배 후 욕설, 상대 선수 차량 파손, 심판과의 언쟁, 경기장 위에서의 승리 포즈, 상투 잡기, 동료들과의 싸움, 승부 조작 논란, 혐한 발언 등 여러 번의 적잖은 논란을 저질러 요코즈나 심의회로부터 잦은 경고를 받았다.

게다가 2007년 8월 3일에 열리는 여름 경기 순회 경기에서 왼무릎 내측 인대손상, 왼 척골 신경장애, 급성 요통증, 제 5추 피로골절 등의 갖가지 병을 사유로 진단서를 제출하고 몽골로 돌아갔는데, 진단서 제출 후 7월 25일에 일본의 축구 스타 나카타 히데토시(中田 英寿)와 자선 축구 시합에 출전한 것이 딱 걸려서 7월 30일에 도쿄에서 정밀 재검진을 받은 결과, 꾀병으로 들통나버렸다.

결국 그는 스모협회에 와서 사과를 하고 사태를 진정시키러 나섰지만, 스모협회의 1일 오후에 열린 긴급 이사회에서 9월 나고야 대회, 11월 규슈 대회 출장 정지 및 4개월 간 30% 감봉 처분을 받았으며, 덩달아 그의 스승마저 4개월 30% 감봉 처분을 받아버렸다. 현역 요코즈나로서는 최초의 출장 정지 및 감봉 조치였으며, 이 사건을 기점으로 몽골인 선수들의 인성 및 태도 문제가 입방아에 오르내려왔다.

협회 규정에 의하면 해고를 피할 수 없었지만, 협회에서 외국인 요코즈나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 이후에도 현역으로서 뛰었다. 이런 협회의 가벼운 조치는 상당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고, 그의 병명은 급성 스트레스성 장애로 판정났다. 실제로 일본 스모계는 줄어드는 새내기들을 메꾸기 위해 해외로 손을 뻗치고 있는데, 그 결과 태평양 원주민, 몽골인 선수들이 대거 들어와 요코즈나 자리를 메꾸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들을 상업적 캐릭터로 포장시켜 아동층까지 확보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짓을 혐오하는 일본 사회에서 요코즈나가 꾀병을 부렸다는 논란이 나오니 학부모들의 입깁으로 스모 자체가 불매운동에 처할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따라서 스모 스타인 그를 버리자니 출혈이 심하고, 놔두자니 스모계가 위험하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몽골 내부에서는 자국의 스포츠 영웅에게 축구 한 번 뛴 걸 가지고 강제로 일본으로 불러서 정신과 감정까지 받게 한 것에 분노하였다. 실제로 일본 스포츠 언론들은 그를 매도하고 과거의 자잘한 잘못들까지 끌어와서 마치 고향에서 놀았다는 식으로 매도하였다.

이후 커리어를 이어나가다가 2008년 후반에 은퇴설이 나돌았고, 2009년 5월에 일본 영주권을 취득하다 2009년 7월 6일에 공식 블로그에서 부인과의 이혼을 밝혔다.

2010년 1월 16일 폭행 사건을 일으키고[4][5] 거짓 진술을 한 이후 2월 4일, 은퇴하였다.

장형의 둘째 아들인 스가라차 뱜바스렌(Сугаррагчаагийн Бямбасүрэн)이 삼촌을 따라 스모를 하고 있다. 타츠나미베야(立浪部屋) 소속으로 호쇼류 토모카츠(豊昇龍 智勝)라는 링네임을 쓰며, 2023년 7월 바쇼 마쿠노우치 우승, 그 달 26일 오제키 승급이라는 대업을 이루며 삼촌의 전철을 착실하게 밟아나가고 있다. 둘째형은 울란바토르의 시장이다.

각주

  1. 참고로 고향에서부터 함께한 절친도 스모를 했는데 이 친구의 링네임(しこ名, 시코나)은 아사세키류(朝龍)…이쪽도 세키와케(關脇)까지 올랐으며 친구와 달리 무난하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토시요리(年寄) 니시키지마(錦島)로 있다가, 2020년 타카사고(高砂) 오야카타의 정년으로 타카사고를 계승, 일문(一門)의 총수로는 최초의 외국인이 된다.
  2.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별하게 한국을 싫어한다기보단 그냥 수틀리면 덤비고 보는, 전형적인 대륙 스타일. 물론 몽골 인이라 그랬다기엔 일으킨 사고가 유별나게 많아서 일본에서도 처치곤란이란 인식이 딱 박힌 상태였다.
  3. 고치 현에 위치한 메이토쿠 의숙(明徳義塾) 고등학교. 야구계에서도 이름이 높으며 유학생 장사에 능해 일본 유학 프로그램에 단골로 나오는 학교이다.
  4. 피해자는 카와나 츠요시(川名 毅). 사실은 거대 폭주족 산겐자야 구렌타이(三軒茶屋愚連隊)의 간부였으며 조폭과도 관계가 깊은 인물. 일본 마약 시장의 거물이라 마약 스캔들 터지면 항상 거론되는 인물이다. 사건 현장은 그가 운영하던 술집 페리아(フェリア)였으며, 술에 취해 손님에게 민폐를 끼치던(…) 아사쇼류를 제지한 죄로 차량으로 끌려가 깨강정이 되도록 털린 것.
  5. 나중에 카와나 츠요시는 한 취객이 이걸로 약을 올리자 맥주병으로 까버린 뒤 마구 폭행하여 또 뉴스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