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능찬

沈能璨. 자는 경방(景方).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1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59년 2월 25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부친 소류(小流) 심성지와 어머니 함안 조씨의 2남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고려 말 충혜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악은(岳隱) 심덕부(沈德符)의 6세손으로, 백부 심강지(沈岡之)에게 출계(出系)하여 양자가 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잇달아 발발하자, 심성지는 66세의 고령을 무릅쓰고 청송향교에 모인 유림 200여 명의 추대를 받아 청송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심능찬은 부친을 도와 군관(軍官)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심능찬은 의병을 사칭해 민폐를 끼치는 자들을 응징하기도 했다.

1896년 5월 25일 고종의 해산령이 내려지면서 청송의진의 본진이 해산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진을 소규모로 분산해 유사시 서로 조응하는 것을 계책으로 삼았고, 면군 체제 하에서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면군 체제는 군사적 활동뿐 아니라 향촌사회의 혼란기 행정치안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도 한 것이었다. 이후 청송의진은 면단위 출진소를 기반으로 경주·흥해·영덕 등지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7월 하순 이천 의진을 돕기 위해 출전했다가 마평(馬坪, 청송군 부동면 상평리)의 화전등(花田嶝)에서 관군의 기습을 받고 패전했다. 이후 청송의진은 관군의 추격을 받으며 각처를 전전하다 완전히 해산했다.

그후 소류정에 은거한 부친을 봉양하며 지내다 1903년 5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심능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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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