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 정식 명칭 신정동 연쇄 폭행살인 사건은 2005년2006년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에서 3차례에 걸쳐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및 살인 미수 사건으로 1,2차 사건의 피해자는 사망하였지만 3차 사건의 피해자는 기적적으로 범인들의 은거지로부터 빠져나와 생존하였다. 그래서 연쇄 폭행살인 및 살인 미수 사건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현재까지도 범인이 검거되지 않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피해자가 범인들의 눈을 피해 숨었을 때, 범인들의 은거지 바로 윗집 신발장에 마시마로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있었던 지라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사건[편집 | 원본 편집]

첫 번째 사건[편집 | 원본 편집]

현충일이었던 지난 2005년 6월 6일, 가장 먼저 당시 신정동에 살고 있었던 20대 후반의 권 양이 범인에게 납치되었다. 권 양은 그 날 오후, 감기 증세를 보여 병원에 갔다온다며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으며, 이후 권 양의 행적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 날인 6월 7일 오전 9시가 되어서야 권 양은 당시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던 황 씨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권 양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자택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쓰레기장. 황 씨는 쌀 포대에 싸인 권 양의 시신을 보고 처음에는 마네킹으로 생각하였으나, 뭔가 사람처럼 물컹한 것이 느껴졌고, 이내 시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권 양의 시신은 속옷이 약간 벗겨진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에 생식기에 2개의 생리대와 말아진 휴지가 삽입된 채로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슴에는 누군가에게 물린 듯한 치흔이 남아있었고, 복부 내출혈 또한 심했기에 폭행당한 후 살해되었다는 것이 명확했다. 그리고 부검 결과 밝혀진 최종적인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 즉, 목졸림에 의해 사망한 것이었다.

여러 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여졌지만 범인의 흔적은 시신에서 찾을 수 없었으며, DNA도 전혀 검출되지 않고 정액 반응 또한 음성으로 결과가 나와서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한 건의 미제 사건으로 남는 듯 했다.

두 번째 사건[편집 | 원본 편집]

2005년 11월 20일. 첫 사건이 벌어진 후 약 6개월이 지난 이 날은 일요일이었다. 역시나 이 동네에 살던 40대 주부 이 씨가 그 날 집으로 돌아오던 퇴근길에서 실종되었으며, 아래 사진과 같이 서울 지하철 5호선 신정역에스컬레이터 위에 설치된 CCTV에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확인되었다.

결국 이 씨는 끝내 그 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으며, 늦은 이 씨의 귀가에 걱정이 된 남편이 통화를 시도했지만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고, 이 씨는 불행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채 아내가 잠시 친정집에 들른 것으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날인 11월 21일이 되어도 아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서서히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남편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경찰로부터 당신의 아내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게 된다. 결국 이 씨도 그 날 범인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를 당한 것.

이 씨의 시신은 한 주택 옆 외진 주차장에 놓여 있었으며[1], 시신은 얇은 비닐에 싸인 채 야외용 돗자리 안에 한 번 더 쌓여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시신의 상태가 매우 처참했는데, 얼굴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씌여져 있었으며, 다리가 꺾여 있었다.

이 사건이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것이 시신의 상태에서 명확히 드러나기도 했는데, 6개월 전 첫 사건과 동일하게 무언가에 시신이 싸여진 채 발견되었고 심한 폭행을 당한 듯 복부 내출혈이 크게 발생한 상태였으며, 세 번째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은 이번 피해자의 시신의 옷에서 반지하에서 주로 번식하는 종류의 곰팡이가 묻은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 보아 이 사건은 거의 100% 연쇄살인 사건이 맞는 것으로 보이지만, 모방범죄라는 의견도 많지는 않다. 또한 2차 사건의 경우 시신을 묶은 매듭이 매우 섬세했던 것으로 보아 범인은 현수막 업체 등 끈을 많이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역시나 범인에 대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아 끝내 범인을 검거하는 것은 실패한다.

세 번째 사건[편집 | 원본 편집]

결국 해가 바뀌고 2006년이 되었다. 이번 사건의 마지막(세 번째) 사건이자 유일하게 피해자가 생존한, 즉 납치 및 살인미수 사건은 2006년 5월의 마지막 날이자 지방 선거일이었던 5월 31일에 발생하였다. 또한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이 6개월 간격을 두고 일어난 것과 공통적으로 이 사건도 두 번째 사건과 6개월 간격을 두고 일어났다.

그 날 오후, 3차 사건의 피해자인 20대 여성 박 씨는 남자친구와 목동오거리 인근에서 약속이 있었고,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즐기다 그만 약속장소를 지나쳐버렸고, 한 정거장을 더 이동한 신정역에서야 택시에서 내려 약속장소를 향해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걸어가던 박 씨에게 얼마 안 있어 한 남성이 와보라는 말을 하였고, 이에 박 씨는 당연히 무시하고 갈 길을 갔지만, 갑자기 그 남성이 박 씨의 옆구리 부분에 커터칼을 들이대면서 따라오라고 협박을 하여 어쩔 수 없이 박 씨는 남성이 향한 곳까지 끌려갔다고 한다.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는 박 씨와 범인을 본 한 시민이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범인은 여자친구가 낮술에 취해서 정신이 나갔다라며 변명했고, 행인은 범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도와주지 않았다.[2] 결국 박 씨는 신정동 어느 주택의 반지하실까지 그대로 끌려갔으며,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범인이 박 씨의 눈을 가려버렸다. 박 씨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 TV와 라디오 소리가 커지면서 주변에 있던 한 남성이[3] 자신을 끌고 온 남성에게 "왔어?"라고 말하며 박 씨를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때 박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의 수많은 톱과 노끈들. 또한 반지하방으로 끌려들어온 박 씨에게 남성이 웃으면서 "너 죽여버릴꺼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범인이 바지를 내리면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고, 박 씨는 범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기지를 발휘하여 반지하방에서 탈출한다. 이 때 박 씨는 행여나 범인들에게 바로 붙잡힐까 바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범인들의 은거지 바로 위 2층 한 가정집 현관으로 뛰어올라갔으며, 그 곳에 놓여있었던 신발장 뒤에 잠시동안 숨어 있었다.[4]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들이 잡히면 죽여버리겠다며 욕을 하며 집 대문을 나섰고 그 틈을 타 박 씨는 대문을 뛰쳐나와 죽기살기로 달려서 한 초등학교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전화하여 천만다행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박 씨의 당시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면 범인은 신정동에서 초록색 또는 검은색 대문을 가진 다세대주택의 반지하방에 거주하였으며, 왼쪽과 오른쪽 집 중 왼쪽 집에 살았고, 계단을 올라가서 있는 2층의 가정집 앞에는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있고 위에 화분이 올려져 있는 낡은 신발장이 현관 앞에 위치해 있었다. 박 씨가 기억한 당시 범인의 모습은 175cm 정도의 키에 마르고 단단한 체격을 갖추고 있었으며,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 범인의 나이는 대략 30대 초중반 정도로 추정되었다.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편집 | 원본 편집]

DNA나 정액 등 물증이 전혀 나오지 않아 사건 수사는 난관을 피할 수 없었고,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박 씨가 있기는 했지만 무서운 상황 속에서 범인들의 인상착의나 특징, 또는 해당 주택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또한 세 번째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범인의 윤곽을 잡을 만한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에 많은 사람들은 범인들이 자신의 범행을 들킬까 겁이 나서 이사를 간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있다.

2006년 9월에 범인의 은거지로 추정되는 집을 업무로 인해 방문했던 작업자에 의해 범인의 몽타주가 만들어졌으며, 몽타주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약 10년이 지난 2015년에 경찰은 이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에는 DNA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2005년에 발생하여 10년 동안 DNA 분석 기술은 꾸준히 발전되어 왔기에 어쩌면 범인의 실마리를 늦게나마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담으로, 당시 경찰의 수사 태도에 대한 비판 의견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3차 사건의 피해자 박 씨가 기억하는 범행 장소는 해당 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위치였고, 대로를 건넌 적이 없어 결국 당시 범인들의 은거지는 해당 초등학교에서 대로를 사이에 두고 있지 않은, 즉, 학교 주변 골목에 인접한 다세대 주택일 확률이 높으며, 더구나 대로를 건너지 않는 위치라면 은거지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지역은 그렇게 넓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피해자가 신발장과 엽기토끼 스티커, 초록색 대문 등 특징들을 몇몇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경찰들을 조금만 더 많이 투입해서 인근 지역들 중 초록색 대문과 2층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은 신발장을 가진 주택을 뒤져보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지 않겠냐며 당시 경찰의 수사 태도를 비판하였다. 물론 다세대 주택 특성상 건물이 비슷하게 생겼고 너무 많은 집들을 전부 조사해야 된다는 점이 있지만, 진짜로 당시에 범인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로 의심되는 지역들의 집들을 다 뒤져봤다면 피해자가 집의 특성을 잘못 기억한 것이 아닌 이상 잡혔을 가능성 또한 결코 적지 않다.[5]

끝내 밝혀지지 않은 범인[편집 | 원본 편집]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재수사가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사건은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본래 이 사건은 2021년 5월 31일을 끝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 사건이 되어버릴 뻔 했으나 태완이법의 통과로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됨에 따라 이 사건의 범인 또한 잡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다. 만약 이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관할 경찰청 혹은 경찰서에 제보해보자.

방송[편집 | 원본 편집]

  • 드라마 시그널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사건이 등장하였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이 사건의 1,2,3차 사건 모두 일요일 및 공휴일에 일어났으며, 이에 범인은 일요일 및 공휴일에 일을 쉬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범인이 현수막 업종 종사자였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범행에 주로 사용된 수많은 노끈 때문.

각주

  1. 사실 이 곳이 골목 옆에 위치하여 사람들에게 금방 발견될 거 같았지만, 전문가들은 사각지대가 있어 당시에는 CCTV도 많이 없었기에 어두워지면 충분히 이런 일이 일어날 만한 장소였다고 한다.
  2. 피해자 박 씨를 제외하면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셈이다.
  3. 즉, 이 사건의 범인은 한 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4. 이 때, 해당 신발장 위에는 어린이가 만든 듯한 화분 하나가 놓여져 있었고, 신발장의 옆면에는 엽기토끼 마시마로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엽기토끼 살인사건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이유이다.
  5. 당시 해당 지역에 배송을 오던 택배기사를 활용하는 것은 어땠겠냐는 의견도 있다. 2005~6년 당시에는 경력이 제법 있는 택배기사들이 많아서 집의 특징 및 위치 등을 잘 기억하기도 했기 때문
  6. 또한 2015년 방송분의 뒷부분을 보면 당시 범인들의 은거지 바로 윗집(즉, 3차 사건의 피해자 박 씨가 숨었던 그 집이다.)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제보가 있었는데, 제보자는 자신의 집 앞에 신발장이 있었는데, 당시 3세의 큰애가 신발장에 토끼 스티커를 자주 붙였다.라고 말하며 또한 큰애가 만든 화분을 만들기 위해 신발장 위에 올려둔 적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제보자의 아래층에는 2명 이하의 남성이 살고 있었는데, 둘째가 태어나기 전 이사를 갔으며, 둘째가 2006년 10월생이라는 것을 밝히게 되면서 만약 제보가 사실이라면 범인들은 06년 10월 이전에 신정동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