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라!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neoliberalism)는 작지만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확정하고, 시장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상이다. 1938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된 한 모임에서 출발하였으며, 기존의 케인스주의가 1970년대 들어서 한계점이 드러남에 따라서 주류 경제체제로 떠올랐다. 현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경제정책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상에 속한다. 관련 정치인으로는 마가릿 대처영국 총리, 로널드 레이건미국 대통령 등이 있다.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정당으로는 대한민국의 자유한국당, 미국의 공화당, 일본의 자유민주당, 독일의 자유민주당[1], 영국의 보수당 등이 있다. 이외의 유럽의 중도우파 정당들도 20세기말과 21세기 초엔 간간히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지지했었다.[2]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신자유주의는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된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월터 리프먼 콜로키움’에서 출발하였다. 이 모임이 결성될 당시 사회분위기는 1929년에 시작된 경제대공황의 원인이 된 자유방임주의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이었고, 각국은 기존의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케인스 경제학, 공산주의, 전체주의 등의 새로운 체제로 옮겨가고 있었다. 따라서 이 모임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헛소리라는 조롱과 비웃음을 당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한 서구의 여러 선진국들은 장기적인 경제불황에 빠지게 되었다. 수정자본주의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하여 시장경제를 왜곡시켰고, 이로 인하여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경제문제를 유발하였다. 이에 따라 수정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9년에 영국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와 1981년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은 기존의 케인즈주의(수정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두 명의 정치인은 재임 동안 세금 인하, 복지 축소, 규제 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정책을 실시하여 기업의 자유로운 시장경제 참여를 독려하였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 모두 장기 경기침체에서 벗어났고 1980년대 경제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두 나라의 성공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대표적인 특징[편집 | 원본 편집]

신자유주의는 오스트리아 학파시카고 학파에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시장경제 중시, 세금 인하, 노동시장 유연화(쉬운 해고)[3], 국가에 대한 경제 규제 완화’를 추구한다. 자유무역을 중시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것도 국가에 의한 경제 규제를 완화해서 자유 시장 경제를 추구하기 위해 그렇다. FTA 협정을 맺는 것도 세계화를 지지하고 자유 무역을 추구하기 때문에 저렇다.

이러한 성향은 대안우파의 경제관과 대조가 된다.

스펙트럼상 평균적으로는 중도우파~우익 포지션의 정당들이 표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3의 길의 사례같이 중도좌파 또한 부분적으로 지지할 수 있으며, 중남미의 독재정권 같이 우익~극우정권의 사례도 있다.

의외로 중도좌파 중 사회자유주의신좌파 성향을 띈 중도좌파와는 은근히 성향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세계화와 자유 무역을 추구하게 되면 국경의 해체와 다문화나 다원주의, 세계시민주의 등 신좌파의 가치들도 표방하기 쉽기 때문이다.[4][5]

신자유주의는 예전의 자유주의와 같이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즉, 자유 시장, 규제의 완화, 재산권 등을 중시한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방법들을 통해 타국의 시장을 여는 것을 선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개방을 자유 무역과 국제적 분업 (Division of Labour)으로 지칭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 (WTO), 세계은행 (특히 IBRD; 국제부흥개발은행), 아시아 개발은행 (ADB; Asian Development Bank)을 통한 다자간 압력의 시장 개방 역시 선호한다. 하지만 예전의 자유주의(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예전의 자유주의는 이론상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하는데 반해 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이 다양한 인적, 물적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억제하려는 국가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자유로운 사회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도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제한이라는 자유방임주의를 인정하지만 그 접근이 다르다. 신자유주의의 경우 시장은 경쟁을 기초로 하지만, 문제가 있을 때 자체수정이 가능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으며, 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전제한다. 예전의 자유주의와는 다른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물질주의적인 탐욕과 단순한 자유주의 이론이 아니라 무질서한 시장에 도덕성을 부여하고, 윤리성을 지니는 이론이다. 그리고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는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6]

국내에서는 마냥 부정적으로만 알려져있고, 실제로 여러 가지 문제점 또한 낳았지만 비판적으로 바라보더라도 좀 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비판/결함[편집 | 원본 편집]

복지 정책을 축소[7]하여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문제점(Inequality)이 있다. 노동조합 활동(파업 등)을 제한하고 규제 완화와 부자들을 위한 감세 등으로 인하여 부자와 대기업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노동자의 삶은 팍팍해져 갔다.[8] 노동자의 소득과 혜택이 줄어들면서 노동자의 안정적인 삶이 위협받았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부유층과 빈곤층으로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양극화 현상은 신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제 현상이다.

덕택에 재벌들은 정부의 방해 없이 몸집을 계속 불려갔으며, 재벌 1세에서 재벌 2세로, 그 다음에는 재벌 3세에게 기업을 물려주면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왔다. 특히 부동산 담보 대출관련 규제 완화와 빈부격차 심화 등의 원인이 맞물려 발생한 2007년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의 한계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추구하는 가치 특성상 엘리트주의적으로 흐르기 쉬운 이념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재의 서구 정치권의 경우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중도우파/중도좌파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 대중들이 현재 극우/극좌 포퓰리즘 세력에 힘을 점점 실어주고 있다.

대한민국과 신자유주의[편집 | 원본 편집]

국내에서는 박정희식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한데, 사실 저 시절 박정희는 신자유주의가 뭔지도 몰랐고, 신자유주의에 근거해서 정책을 세우지도 않았다. 노조 탄압과 재벌기업 육성 등의 공통점도 있지만, 박정희 정권은 계획 자본주의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국가가 직접 나서서 경제정책을 이끌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자는 김영삼이었다. 그는 1996년 10월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른 국제적 자유무역 협약에 따라 쌀 시장 개방을 해서 국민의 반발을 샀다. [9]

그 후 김대중 정권에서 1997년 외환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는 카드 발급 규제를 완화하여 국민의 소비를 북돋아 경제를 활성화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부동산 관련 규제를 완화하여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했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를 예상보다 훨씬 일찍 극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이후 카드대란, 부동산 투기 문제 등의 원인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은 적극적인 FTA 체결을 통하여 대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인하여 양극화 문제가 대두되었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은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FTA 체결은 가속화되었고, 공기업의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며 신자유주의의 한계점이 드러난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일관한 것에 대하여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는 2007년 후보 시절에 ‘줄푸세’(세금은 이고 규제는 고 법질서는 우고)라며 신자유주의를 대놓고 걸고 나왔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창조경제’, ‘증세 없는 복지’라는 실체 없는 정책을 하고 청년고용정책으로 바꾸었다.

점차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문제점들이 축적되면서, 현재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쓴 패배를 맛보았으며, 이러한 경제체제가 계속된다면 언제 또 다른 곪은 문제가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단,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권리가 굉장히 미약하고, 노동 시간도 굉장히 긴 편이지만 정작 한국의 노동시장은 경직되어 있다.[10][11] 이는 단순히 신자유주의의 결과라기보다는 외려 이에 대조되는 박정희식 계획경제(국가자본주의), 관치경제 체제가 오히려 정부주도로 공권력을 동원해 노동운동 등을 억압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정경유착으로 재벌들을 지원했던 것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각주

  1. Liberal이 아닌 Free를 당명으로 쓴다.
  2.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 등이 있다.
  3. 반의어로 노동시장 경직화가 있다
  4. 실제로 60년대 신좌파들의 공유 정신과 코스모폴리탄적 개방성은 훗날 정제, 경치, 문화 등의 세계화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한때 히피였던 스티븐 잡스는 창조의 화신이 되었다.
  5. 다만 이러한 류의 중도좌파들은 우파마냥 경제 부분의 정글자본주의적인 무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지지한다기 보단 부분적인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추구하면 주로 사회문화적 세계화나 인권의 보편화에 있어서 세계화에 더 초점을 맞춘다.
  6. 신자유주의, 경제적 측면, 한국어 위키백과,.
  7. 예를 들자면 무상의료, 무상교육 철폐, 등이 있다
  8. 이에 따라 최저임금을 인상하라는 목소리가 있는 이유가 그렇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만든다며 반대한다.
  9. 참고: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992&cid=40942&categoryId=31645
  10. 김희원. “다보스의 경고 "노동시장 경직성·강성노조가 韓 경제 걸림돌"”, 2018년 1월 23일 작성.
  11. 조민영. “1200만 정규직을 말하다 노동시장 유연성, OECD ‘꼴찌’… 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2015년 2월 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