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TMI 전경. 왼쪽이 2호기다.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Three Mile Island accident)는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위치한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2호기에서 발생한 원자력 사고다. 줄여 부를 때는 “TMI 사고”또는 “TMI-2”라고 한다.

개괄[편집 | 원본 편집]

가압수형 경수로 모델이었던 스리마일섬 2호기의 2차 냉각 순환펌프가 정지하고, 증기발생기가 기능을 못하면서 1차 냉각측에서 냉각수가 끓기 시작했다. 압력이 높아지자 가압기의 방출 밸브가 열렸다. 열린 밸브는 적정 압력 밑으로 떨어져도 닫히지 않았으며 밸브로 증발된 냉각수가 계속 유출되어 노심 내부의 수위가 떨어졌고, 노심용융으로 이어졌다.

INES 5등급으로 당시까지만 해도 발전소에서 터진 사고 중에서는 가장 악랄한 사고였다. 훗날 체르노빌후쿠시마가 터지기 전까진.

경과[편집 | 원본 편집]

훼손된 노심
4시 0분 37초 2차 순환펌프 정지
일상정비 도중 터빈건물의 2차 냉각 순환펌프가 정지했고, 이에 따라 원자로가 자동정지했다. 2차 펌프가 멈춤에 따라 증기발생기도 기능을 상실해 원자로 냉각이 멈췄다. 사고가 진행되는 동안 펌프 재가동을 지속적으로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2차 펌프가 정지하는 것을 대비해 임의로 담수를 2차 계통에 주입하는 보조계통이 있으나, 수동으로 잠긴 상태였으며 제어실의 보조계통 지시계는 상단 조작부의 꼬리표로 가려져 있어서 운전원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4시 0분 45초 압력방출밸브 개방
비상주입이 자동으로 개시되었고, 물 주입이 계속됨에 따라 1차 계통의 압력이 계속 상승했고, 가압기의 압력방출밸브가 개방되었다.
4시 0분 50초 1차 냉각계통 압력 정상화
압력방출에 따라 압력이 정상화되었으나, 압력방출밸브가 원위치되지 않고 개방된 채로 고착되었다. 제어실에는 밸브가 닫힌 것으로 표시되었기 때문에 운전원의 혼란을 야기했다. 개방된 밸브로 냉각수가 계속 유출되면서 수위도 덩달아 떨어지기 시작한다.
4시 4분~11분 비상노심냉각장치 작동
압력이 계속 떨어지면서 비상노심냉각장치(ECCS)가 작동했다. 냉각재가 끓기 시작했었기 때문에 계통 내에 거품이 생기면서 가압기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였고, 또 ECCS 자체의 오작동도 잦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운전원이 수동으로 정지시켰다.
4시 8분 2차 보조계통 투입
잠겨있는 밸브 스위치를 발견하고 2차 계통에 보조급수를 하는 밸브를 열었으나, 이미 증기 발생기의 1차측 냉각수가 고갈되어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4시 32분 방사성 증기 감지
1차 냉각수는 높은 방사능을 함유하고 있다. 냉각수가 계속 증발했기 때문에 수증기와 함께 방사성 물질이 격납용기 내에 가득차게 된다.
5시 40분 1차 냉각펌프 정지
운전원이 수동으로 1차 냉각펌프 2개를 모두 정지시켰다. 계통에 공기가 유입되면서 수격현상이 발생했기에 이상작동이라고 판단된 것이다.
6시 15분 중성자 다량 감지
원자로 내에 갇혀있어야 할 중성자가 격납용기 내에서 다량감지되었다는 것은 노심 수위 저하의 전조였다. 즉, 노심에 물이 부족해 중성자가 뛰쳐나왔으며, 노심융해가 일부 진행되었을거라 예상할 수 있다.
6시 22분 압력방출밸브 잠금
사고 2시간 22분만에 진짜 원인이 파악되었다. 압력방출밸브를 잠그자 1차 계통의 압력과 수위가 정상화되었다.
6시 55분 비상 발령
방사선 누출이 의심됨에 따라 지역비상을 발령했다. 이는 노심용융의 증거가 발생되면서 7시 24분 일반비상으로 격상되었고, 원자력규제위원회에 통보되었다.
7시 28분~ 방사선량 증가
가압기에서 넘친 냉각수를 격납용기 내에서 퍼냈던 보조 건물에서 방사선 검출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외 터빈건물 등에서도 방사선이 검출되었다.
13시 50분 수소폭발
격납용기 내의 온도가 순간적으로 치솟았는데, 격납용기 내에서 수소폭발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격납용기의 기밀성은 유지되었다.
29일 10시 옥내대피 발령
추가적인 수소폭발로 인한 압력용기의 파괴를 우려한 기술진의 권고로 옥내대피가 발령되었다. 어린이와 여성은 지역 바깥으로 대피하라는 권고도 같이 내려왔다.
4월 1일 대피령 해제
대피령은 4월 1일 수소폭발의 염려가 해소되고 나서야 해제되었다. 같은 날에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발전소를 방문해 브리핑을 청취했다.

후폭풍[편집 | 원본 편집]

보조급수계통 스위치를 가린 택들(Tags)

다른 대형 사고처럼 격납건물이 통째로 날아간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지만, 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었으며 원자로 운전반 설계, 운전원 교육에 대한 교훈을 남겼다.

  • 방사성 물질 유출
    바닥에 고인 냉각재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탱크가 격납용기 외부에 있었으며, 탱크가 넘치면서 격납용기 외부에 방사성 물질이 소량 누출되었다. 또한 사고 후 격납용기 내 증기를 배출하는 과정에서도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기체가 방출되면서 사고로 충격에 휩싸여 있던 지역사회에 한번 더 충격을 안겨주었다.
  • 인간-기계 인터페이스(HMI)의 고려
    사고 악화에 운전원이 상황을 오판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압력 저하와 수위 상승이라는 상반된 신호가 동시에 발생했으며 일부 계기가 메모 택들에 가려지거나 오작동해 운전원의 판단을 방해했다. 또한 면밀히 검토되지 않은 운전절차서가 상황을 악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1차 계통의 순환중단으로 인한 노심용융에 이르게 되었다.
  • 대민활동
    미국에서 이정도로 지역사회에 충격을 준 원자력 사고는 TMI 사고가 처음이었다. 당연히 지역사회는 이후의 모든 과정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었고,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이후 폐로과정에서 상당한 마찰(1호기 재가동, 폐기물 처리 등)을 겪게 된다. 지역위원회 발족, 지역주민 감사제도 도입 등 대민활동에 대한 정책은 이때 대부분 마련되었다.
  • 탈원전
    미국에서 60년대~70년대는 원자력 발전이 눈부시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반문도 끊이지 않았으며 그 끄트머리에서 TMI가 매섭게 찬물을 끼얹어버리면서 산업이 급속히 위축되었다. 100기 이상의 원전이 백지화됐으며 그 결과 미국의 원자력 발전량은 기존 건설 프로젝트들이 마무리 된 90년대를 정점으로 성장이 정체되었다.[1] 이후 오랫동안 추가 건설이 없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원전 건설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하여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그틀 원자력 발전소(Vogtle Electric Generating Plant)에 추가 반응로 2개를 건설하는 계획은 진행되어 2022 ~ 2023년에 상업운전에 들어갈 계획이다.[2]

폐로[편집 | 원본 편집]

연료 제거 작업

면밀한 진단 끝에 폐로가 결정되었고, TMI 사고는 역대 사고중 유일하게 정식 폐로가 완료된 사례로 꼽히며 단순히 석관으로 덮어둔 체르노빌이나 사용후 핵연료 처리만으로도 고생하는 후쿠시마와 비교된다.

4월 25일 동형 원자로 일제 정지
원자력규제위원회는 TMI와 같은 설계로 제작된 원자로의 운전 정지를 권고했고, 운영사들은 일제히 이에 따랐다. 대부분 5~6월 중에 발전을 재개했으나, 계획예방점검중이었던 1호기는 2호기와 같은 루틴으로 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재가동이 보류돼 1985년이 되어서야 재가동했다.
7월 20일 운전허가 정지
원자력규제위원회는 TMI 운영사의 2호기 운전허가를 정지하고 원자로를 정지 상태로 유지할 것을 명령했다.
10월 6일 오염수 처리
2호기 내부에 고여있는 중저준위 오염수를 정화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1980년 7월 23일 격납용기 내 작업자 첫 진입
원자력규제위원회는 6월 12일 폐로 작업자가 내부에 진입할 수 있도록 격납용기 내부의 방사성 기체를 외부로 방출하라고 명령했다. 방출은 6월 28일부터 실시했으며 7월 23일에 처음으로 폐로 작업자가 내부에 진입했다.
1982년 7월 21일 원자로 내부 촬영
노심의 상태가 어떤지 카메라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했다. 사고 당시 2호기는 상업운전에 투입된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운영사는 내심 적은 손상으로 2호기 재가동을 바랬으나 손상이 너무 심각해 폐로할 수밖에 없었다. 83년 9월에는 연료의 일부를 채취해 분석했다.
1985년 연료 제거 작업
84년 7월에 처음으로 원자로 뚜껑을 땄고, 원자로 안에서 녹은 핵연료를 제거하는 작업이 10월 31일부터 개시되었다. 뚜껑을 딴 원자로 위에 차폐 구조물을 덮고 특수 크레인으로 퍼내는 작업이었으며, 작업은 90년 3월까지 계속되었다.
1993년 작업 종료
TMI 2호기 내부를 정리하는 작업이 완전히 종료되었고, 1호기와 공유하는 시설을 철거하기 어려워 원자로 건물을 철거하지 않았다. 1호기는 운영사에서 2019년 하반기에 폐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3] TMI의 유산 철거에 20년은 더 걸릴 전망이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