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일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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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대 다이쇼 일왕 | ← | 124대 쇼와 일왕 | → | 125대 아키히토 일왕 |
역대 일본제국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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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다이쇼 일왕 | ← | 3대 쇼와 일왕 | → | 일본제국 멸망(군정기시대) |
역대 일본국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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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기시대) | ← | 1대 쇼와 일왕 | → | 2대 아키히토 일왕 |
히로히토 裕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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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다른이름 |
미치노미야 히로히토(왕세자 책봉 전) 쇼와(연호) |
출생 |
1901년 04월 29일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이궁 |
사망 |
1989년 01월 07일 (88세)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왕궁 |
국적 | 일본 |
학력 | 가쿠슈인 |
직업 | 일왕 |
종교 | 신토 |
신체 | 165cm |
배우자 | 고준왕후(나가코) |
가족 |
할아버지 메이지 일왕, 할머니(적조모) 쇼켄왕후(하루코), 할머니(생조모) 야나기하라 나루코[1] 아버지 다이쇼 일왕, 어머니 데이메이왕후(사다코) 형제: 남동생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왕자, 다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 왕자,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왕자 자녀: 장녀 히가시쿠니 시게코, 차녀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 3녀 다카츠카사 가즈코, 4녀 이케다 아츠코, 장남 아키히토 상왕, 차남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왕자, 5녀 시마즈 다카코 며느리: 큰며느리 미치코 상왕비, 작은며느리 하나코 비 손자 나루히토 일왕,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왕자 손자며느리 마사코 왕비, 키코 비 손녀 구로다 사야코 증손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 코무로 마코, 카코 공주 증손자 히사히토 왕자 |
활동기간 |
1912년 왕세자 책봉 1921년 대리청정 1926년 일왕 즉위 |
소개[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의 124대 국왕으로 연호는 쇼와(昭和/소화)이다. 히로히토 일왕의 1945년 8월 15일 육성 방송(포츠담 선언)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은 8.15 광복을 맞게 된다. 20세기 이후 최장기간 재위한 일왕이다.
출생[편집 | 원본 편집]
1901년 요시히토(다이쇼) 왕세자와 사다코 왕세자비(데이메이왕후)의 4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어칭호는 미치노미야(迪宮), 이름은 히로히토(裕仁)로 지어졌다. 오랫동안 일본 왕실은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하여 후궁 소생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 왔으나, 히로히토 왕자는 적장자(嫡長子)로서 왕위를 계승했다.
행적[편집 | 원본 편집]
1946년 1월 1일에는 인간선언을 했다.
패전 이후 야스쿠니 신사 등을 참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이웃 국가들에게 크게 실례가 되는 행동이다
이곳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이들을 모셔놓는 곳이다. 헌데 저 자들이 이곳에 모셔질 자격이 있는가?“
A급 전범을 합사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패전 이후의 자신의 운명을 두려워했던 적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죄책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자녀[편집 | 원본 편집]
아내 고준왕후(나가코)와의 사이에서 2남 5녀를 낳았다.
- 장녀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1925-1961): 방계 왕족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의 장남인 모리히로(盛厚)에게 시집갔다. 모리히로는 아버지 히로히토 일왕의 고종사촌 동생이자 어머니 나가코 왕비의 사촌동생으로, 시게코 공주에게는 5촌 당숙이 된다. 패전 후에 시게코는 왕족 신분을 잃고 평민이 되어 힘들게 살다가, 어린 3남 2녀를 두고 요절했다. 남편 모리히로는 데라오 요시코(寺尾佳子)라는 여성과 재혼하여 2남을 더 낳았으나, 그 역시 후처와 5남 2녀를 두고 1969년에 사망했다.
- 차녀 히사노미야 사치코(久宮祐子) 공주(1927-1928): 병으로 생후 6개월에 요절.
- 3녀 다카노미야 가즈코 공주(1929-1989): 옛 화족(귀족) 가문의 아들인 다카츠카사 도시미치(鷹司平通)에게 시집갔다. 불임, 남편의 바람, 사별, 강도 피해 등으로 불운한 삶을 살다가 사망했다.
- 4녀 요리노미야 아츠코 공주(1931-): 옛 화족 가문의 아들인 이케다 다카마사(池田隆政)에게 시집갔다. 병으로 오래 고생했고, 자녀는 없다. 2012년에 남편과 사별했다.
- 장남 쓰구노미야 아키히토 왕자(1933-): 제125대 일왕 아키히토. 히로히토 일왕 내외가 어렵게 얻은 귀한 맏아들이다. 1952년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평민 재벌가의 딸인 쇼다 미치코와 약 2년간 연애하여 1959년에 결혼했다. 왕실의 며느리는 왕족 내지는 화족 가문의 딸들 중에서만 뽑았던 오랜 전통을 깨뜨린 것으로,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일이었다. 아내 미치코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다.
- 차남 요시노미야 마사히토 왕자(1935-): 1964년 옛 화족 가문의 딸인 츠가루 하나코(津輕華子)와 결혼하여 ‘히타치노미야(常陸宮)’라는 궁호를 새로 받았다. 마사히토 왕자의 문제로 인해 자녀는 없다.
- 5녀 스가노미야 다카코 공주(1939-): 옛 화족 가문의 아들이자 외가 쪽으로 5촌 당숙인 시마즈 히사나가(島津久永)와 결혼하여 1남을 두었다.
사망[편집 | 원본 편집]
1989년 1월 7일(쇼와 64년[2])십이지장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1989년 2월 24일 무사시노능에 안치된다. 본래 1989년은 손녀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의 성년(만 20세)이라 각종 축하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히로히토 일왕의 죽음으로 인해 이듬해로 미루어졌다.
히로히토 일왕이 사망하면서, 다음 왕위는 그의 장남 아키히토 왕세자가 물려받게 된다.